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매우 유명한 에세이집. 2,3년 전에 국내에 에코 붐이 일면서 더불어 유명해졌던 책이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에스프레소라는 잡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묶은 책인 Diario Minimo(작은 일기) 2권에 몇 편의 글을 더해서 나온 번역판이다.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며 꼼꼼하게 번역했을 뿐더러, 영문판과 프랑스어 판의 잘 된 점을 참고하는 등 역자의 세심함이 돋보인 책이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 있는 짧은 칼럼들은 매우 유쾌하고 멋지다. 에코만이 할 수 있는 지적 패러디는 독자로 하여금 웃는 중에도 두뇌를 활발하게 사용하게 한다.(사실 나는 대부분의 패러디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의 지식은 에코의 천 분의 일도 못 따라갈 게 분명하므로!) 에코는 이 장에 있는 칼럼들 속에서 세상의 바보 같고 부조리하고 실용성 없이 복잡하기만 한 제도들과 여러 가지 발명품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문에서 그가 말하기를 '이 칼럼들이 우습다면 그것은 내가 글을 쓸 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배를 잡고 웃었지만 그가 무엇에 화가 난 것인지를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그에게 공감했다. 개인적으로는 '기내식을 먹는 방법'과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이 기억에 남는다.

2부에는 전 은하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적이라고 호칭할 만한 세력이 없어져 버린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싸울 적이 없어진, 그저 유지만을 위해 존재하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비대한 군대라는 조직을 통제하는 규정들 중에는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들이 태반이다. 이런 제도들을 놓고 서신으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토론들을 통해 에코는 인간 사회의 제도들을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

3부에는 에코와 그의 몇몇 친구들이 편찬하려고 시도했던 반지식적인 백과사전을 위해 쓰여진 글들이 실려 있고, 4부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 알레산드리아를 추억하고 있다. 앞부분의 칼럼들이 내게 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뒷부분에 와서는 사실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3부에 실린 글들은 매우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나의 전공 혹은 생활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분야의 지식들이라 나의 무지를 통감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매우 멋지다고 아니할 수 없는 에세이집이었다. 그의 풍부한 지식에서 나오는 고도로 지적인 풍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웃게 하고, 또한 생각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 지난 여름방학에 한국에 갔을 때 코엘료의 신작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연금술사'와 '11분'을 읽고 매우 감명을 받았던 나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동기가 이 책을 샀다고 해서 중국에 와서 곧 빌려서 읽어 보았다.

책 속에서, 작가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는, 그러나 이름만 작가일 뿐 사실 한 일이라고는 노래 가사를 쓴 것밖에 없는, 그렇지만 그 일로 평생을 써도 좋을 만큼 많은 돈을 벌어 그 생활에 안주해 버린 한 작가와 그의 세 번째 아내 에스테르의 결혼 생활, 십 년의 결혼 생활 끝에 그녀가 일방적으로 고한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그런 그녀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작가는 그녀의 아내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같이 있었다던 미하일이라는 청년을 만나 그 청년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그렇게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가게 되고 그와 함께 있었을 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비치던 불행과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그를 변화시켰다. 현실에 안주하려 하던 그로 하여금 길고 힘든 여행길에 오르게 함으로써 그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만들었고, 그렇게 그를 이름뿐이 아닌 진짜 작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저 작가가 되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그가 지금까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그의 일생에 주어진 단 하나의 사명을 그가 깨닫고 그 사명에 임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녀 덕분에 그는 작가가 되었고, 자신이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있어 '자히르'가 되었다.
'자히르'란, 지금 책 속의 설명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이고, 그로 하여금 참 자아와 인생 속에서의 진정한 사명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물건, 혹은 사람을 뜻한다. 그만큼 그녀는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녀는 점점 불행해져 갔고, 그에게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와 자신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그 문제를 그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종군기자가 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종군기자로서 전쟁터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이 정말 살아 있다고 느끼고, 그 극한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며칠을 씻지도 못하고, 군용 식량으로 허기를 면하고, 하루에 세 시간밖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에 잠을 깨며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에서, 그녀는 그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극한상황에서 인간은 비로소 진실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언제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책 속에서 그는 언뜻 보면 각각 다른 형태의, 그러나 근원은 같은 에너지에서 출발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은 그의 소설 중에서 이렇게 허황되게 들리는 사랑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치 생활은 풍족하고 신변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사람이 특이한 것을 찾고 싶어하는 사치스러운 소리 정도로 들렸다. 물론, 아마도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녀의 말이 맞다고 해도, 반드시 그렇게 죽음에 직면하면서까지 진정한 사랑 따위를 찾아야 하는 걸까? 그 상황에서 보여지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낀들, 그 다음 순간에 내가 날아온 총알을 맞고 죽어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어째서 그녀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 나서는 것일까? 그녀처럼 극한상황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안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 그 속에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많은 시간을 살아 오지 않았고, 삶에 권태를 느낀 적도 아직 없으며, 진정한 불행을 느낀 적도 없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이 책 속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11분'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의 감동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여려 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
리처드 바크 지음, 이은희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것을 스승은 나비라고 부른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다.
작가는 이렇게 책 속에서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얘기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그 좋은 예이다. 도널드의 그 말에 "그래, 그렇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야."라고 리처드 - 나는 이 '리처드'가 작가 리처드 바크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임을 확신한다 - 는 대답한다. 그렇지만 곧이어 흡혈귀의 사념체와 대면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흡혈귀의 부탁을 거절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흡혈귀는 리처드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것이다. 이 때 도널드는 리처드가 사회적 통념에 묶여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래,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라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여, 상식적으로 봐서는 전혀 남에게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할 수도 있다는 통념의 예외를 제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우리의 인생도 모두 환상이고, '나'란 존재는 실체가 아닌 관념체이며 무한한 빛 '이즈'의 아들들이다"라고 메시아, 즉 스승인 도널드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환상인 인생 속에서, 세계 속에서 리처드가 만난 환상 속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환상일 뿐이며 나 자신도 실체가 아니라고 역설하는 도널드의 말에 나는 매우 당황했다. 이 세계도, 인생도 모두 환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이렇게 옥신각신 아둥바둥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그의 '메시아 입문서'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소원이 생기면 그 소원을 이룰 힘도 갖게 되리라. 그러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리라.' 혹 그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환상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현실이 된다. 그러나 이상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역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은 당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숙제를 해결해내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코 허무주의는 아닌 것이다.

일본 애니메애션 '카우보이 비밥'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죽음은 늘 곁에 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순간 죽음은 빛보다도 빨리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 않으면 죽음은 그저 조용히 곁에서 우리를 바라볼 뿐이다." 이 말처럼, 도널드는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을 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느냐는 리처드의 물음에 "난 극적인 것을 좋아하거든"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그는 죽음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군중들의 무지에 지친 도널드는 메시아를 파업하고 여행을 다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가 된 리처드를 만나, 메시아로서 그를 졸업시키고 이 세계의 40억 인구와 같은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리처드를 새로운 세계에서 혼자만의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 주고는 빛 속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너희들이 이 세계에서 살아 있는 한 행복할 것을 명령한다."라고 메시아는 말한다. 행복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소망이고 궁극적 목표이면서도, 그 모든 이들이 손에 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이 도널드나 리처드처럼 메시아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인생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사명을 다한 후 죽는다면, 언젠가 빛 속으로 돌아가는 그 날,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문학책에 소개되어 있는, 혹은 일부만 실려 있는 박완서의 대표작. 왠지 모르게 전문이 읽어보고 싶어져서 계속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 방학에 주문했다. 아마도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호기심에는 이 소설에 나오는 환쟁이가 실존인물인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들은 유난히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워낙 자서전으로 쓰기 시작했던 '그 많던 싱아가...'시리즈는 제쳐두고서라도, 자신의 고향인 개성을 배경으로 한 미망이라든가,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쓴 그 남자네 집, 그 외에도 여러 소설들에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솜씨 있게 엮어넣고 있다. 나목에서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중에서 전쟁 중에 미군 피엑스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소설의 제목인 '나목'이란 소설의 등장인물 중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인물인 환쟁이 옥희도 씨가 그린 그림의 제목이다. 미군들이 맡겨 둔 패스포트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이국 아가씨들의 얼굴을 싸구려 손수건 위에 그리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오래도록 결근하며 집에 틀어박혀서 옥희도 씨가 그려낸 그림. 언뜻 보면 고목처럼 보이지만, 고목과 비슷하지만 다른 '나목'은 소설 속에서 전쟁 중의 참담한 조국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껍질 속 저 깊은 줄기에는 아직도 푸른 기운이 남아 있어서 언젠가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죽어 버린 고목이 아닌 '나목'. 어둡고 절박했던 날들로부터 전쟁이 끝나고 봄을 맞이한 조국까지, 그 모든 것을 '나목'이라는 그림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 옥희도 씨가 죽은 후에 열린 그의 유작전을 관람하러 가서 전시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그림을 발견하고, 그림 속에 우뚝 서 있는 나목이 옥희도 씨였고, 그들 모두였으며, 또한 조국이었음을 깨닫는다.

장편인 '나목' 뒷부분에 실려 있던 단편들도 박완서 소설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들 중에는 밝고 즐거운 내용이 거의 없이 힘들고 우울한 내용이 많고,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마음 속에 한두 가지씩 큰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런 것이 박완서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울하다고는 해도 그 단편들에는 박완서 특유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사회적,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풍자가 실려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내용을 곱씹어 보게 한다.

전체적으로 좋은 책이긴 했지만, 내가 좀 불만이었던 건 박완서의 소설 속에 작가의 인생 경력이나 세밀한 경험들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같은 경험이 여러 소설에 나오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예를 들어 일제 시대 때 정신대 징집을 피하려던 처녀가 숨겨둔 곡식을 찾아내러 온 사람들을 정신대 징집하러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지푸라기 속에 숨었다가 쌀가마를 찾는 꼬챙이로 그 짚 속을 찌르는 바람에 창자를 찔려 죽었다는 일화는 '미망'에도 나왔고 '그 여자네 집'에도 다시 나온다) 경험뿐만 아니라 박완서의 소설 대부분이 작가가 경험한 시대나 환경을 바탕으로 쓰여졌거나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물론 그렇게 쓰면 가장 큰 공감대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식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그 후에 바로 읽기 시작한 최윤의 단편집이 워낙 내용이 다양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이런 몇 가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민족의 슬픈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원제는 Taste.
내달 개봉 예정인 팀버튼 감독, 죠니 뎁 주연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 동화를 쓴 작가 로알드 달의 단편소설집. 표지를 열고 안을 보면 The best of Roald Dahl이라고 되어 있다. 말 그대로 최고의 단편만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어제 하루종일 책을 이것저것 읽어서 저녁때 좀 쉬려고 했는데, 저녁 시간에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이 책이 자꾸 신경쓰여서 결국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한 편, 또 한 편,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엄청난 흡입력을 지닌 이야기들-... 인간이 가진 추악하고, 탐욕스럽고 속물적인 면을 해학적으로 그려 놓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때로는 쓴웃음을 짓고, 때로는 비웃음을 입가에 걸다가 이런 면들은 결국 나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섬뜩해지곤 했다.
작가 로알드 달은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이다. 작가라고 해서 누구나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조금은 비밀스럽고, 그래서 더 재미난 이야기와, 예측도 하지 못한 사이 불시에 찾아오는 충격적인 반전들에 넋을 잃고 읽다가 잘 시간을 놓칠 뻔했다.
(결국 시차와 눈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어제 다섯 편을 읽고 오늘 나머지 다섯 편을 읽었다.)

작가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온갖 예기치 못한 일, 뜻하지 않은 일들을 잘 양념해서 이야기거리로 쓰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각각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그런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들만의 대처법을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뜻밖의 일을 당했을 때 일의 진행을 추측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상대방은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다 된 일이라고 흡족하게 웃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태는 얼마든지 최악의 쪽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예측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해 찾아오는 상상조차 못 할 결말,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었다. 좀 구어적으로 표현하자면, 정말이지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라는 느낌이랄까.
흥미진진한 상황 설정과 플롯들, 사람의 내면을 꿰뚫는 듯한 묘사와 표현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소름마저 끼치게 하는 결말에 취해 나는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한 편 한 편을 꼭꼭 씹어서 읽고 싶었지만, 워낙 책 읽는 속도가 빨라서(요즘 더한 것 같은 느낌이다) 천천히 깊게 음미하며 읽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고,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마도 이 책은 꽤나 오래 옆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펴 보게 될 것 같으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친아이 2005-08-2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렇게 잼나나요? 리뷰보니깐 마음이 동하네요~~빌려봐야겠어요. 리뷰 당선 감축드리오~~^0^

세류 2005-08-2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안녕하세요^^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같은 책들을 좋아하신다면 이 책도 아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제가 느끼기엔 이 책이 '나무'보다 더 낫긴 합니다만..^^;)
축하 감사드립니다. 8월 3주에 올린 리뷰가 두 개였는데 둘 중에 어느 건가 한참 헤맸는데 이거였군요! 어딘가 표시가 있는 건가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