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시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죽음에 관해 생각했다. 또한 같은 인내심과 같은 방법으로 왜 태어났을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생각하다 보니 마침내 알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난 일은 논쟁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이 준 그냥 한 가지 사실일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줄 때, 이미 그에 따른 결과도 준비해두었다. 때문에 죽음은 급하게 바란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오게 되는 기념일이다.‘ - P11

만약 이 세상에 고난이 없다면,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매함이 없다면 영민함이 뭐 그리 대단한 자랑이겠는가?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은 어떻게 그만의 행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악함과 비천함이 없다면 선함과 숭고함은 어떻게 경계를 정하고 또 어떻게 미덕이 될 수 있겠는가? 장애가 없다면 건강함은 너무 흔해서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단어가 되지 않을까? - P35

많은 것들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단 세 가지 문제가 그렇게 괴롭히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첫 번째는 이제 그만 죽을까?
두 번째는 왜 살아야 하나?
세 번째는 대체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지금도 이 세 가지 명제는 여전히 나와 얽혀서 함께하고 있다. - P39

언제든 끝이 날 것 같은 느낌은 끝남 그 자체보다 훨씬 두려웠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기다리는 게 더 두려운 법이다. 나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이 세상이 아예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죽지 않았고, 죽음은 급히 서둘러야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연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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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애국을 주창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로 도피하지 않은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 우리 가족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온갖 치욕을 당하고 있는 힘없는 조국이었지만, 조국을 떠나 남의 나라의 눈치를 보며 사는 하등 국민이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조국의 문화, 조국의 문자, 조국의 언어를 사랑하는 문화인이다. 우리는 강하고 자랑스러운 중국인으로서 살기를 바랐다. 결코 외국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 P213

그 후 국가 지도자의 호소로 명방운동이 시작되었다. 중수는 중난하이에 직접 가서 마오 주석의 강화를 들었는데, ‘뱀을 굴에서 나오게 하려는 유인책‘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진심 어린 강화였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여러 기록과 논설을 보고 나서야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계략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정치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 P241

시간은 곧 생명인데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생명 같은 시간을 팔아 목숨을 이어가던 시대였다. - P246

8월 한 달 동안 나와 중수는 차례로 혁명 군중에게 ‘적발‘되었다. 우리는 처단해야 할 ‘악귀‘가 되었다. 아위안은 급히 집으로 와서 우리가 잘 있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위안 자신도 혁명군중의 한 사람이었고 집으로 가려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 혁명 군중들의 앞을 지나쳐와야 했다. 아위안은 먼저 대자보 하나를 써서 악귀가 된 부모와 뚜렷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건물 벽에 대자보를 붙이고 나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방금 대자보를 붙여서 우리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위안은 ‘사상적으로만 선을 그었다‘고 강조한 후에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 P256

중수는 한직으로 내쫓겼고 그의 학문까지 냉대를 받고 있었다. 중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명해지는 것은 바로 나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야.
우리는 서로 깊게 이해하기를 바랐다. 유명해지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 P281

책을 읽을 때는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가지고 품평을 한다. 하지만 밧줄을 사용할 때는 제일 약한 부분을 보고 얼마나 튼튼한지 가늠한다. 한직으로 내쫓긴 공붓벌레는 사람을 대할 때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사람을 읽는다. 하지만 정치가 혹은 기업가 같은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아마도 사용할 밧줄처럼 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288

소설이나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 후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은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 순수한 행복은 없다. 행복에는 늘 근심과 걱정이 끼어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도 없다. 우리는 평생 순탄치 않은 길을 힘겹게 걷는다. 그리고 그 인생이 다 저물어 갈 무렵에야 편안하게 쉴 곳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늙고 병든 몸이 우리를 인생의 가장자리 끝으로 밀어낸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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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들이 헤어지고 우리집이 사라졌다고 해도 내 인생마저 헛되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셋이 함께하였기에 충만하고 즐거운 인생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의 인생에도 ‘우리 셋‘이 있었고, ‘우리 셋‘이 있었던 각자의 인생은 모두 헛되지 않았다. - P101

중수는 문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국의 장학금을 버리고 외국 재력가의 투자에 의지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 P109

중수는 오랜 시간을 들여 단지 학위 하나를 얻는 것은 그다지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읽고 싶었던 책들은 뒤로 하고 불필요한 과제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중수는 ‘문학 학사는 바로 문학에 대한 무지를 입증하는 것이다‘라는 옥스퍼드 출신의 영국 학자들의 평가를 자주 인용했다. 중수는 앞으로는 학위를 위해서는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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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안이 돌아가고 나면 나 혼자만 객잔에 남겨질 것이다. 난 늘 내가 독립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은 내가 아위안에게 매달려 있는 담쟁이덩굴 같다는 생각이 든다. - P48

허리를 구부리고 차에 타느라 너무 너무 아팠을 텐데, 아위안은 그 고통에도 창문을 내리고,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어 엄마를 향해 흔들었다. 가슴이 아파 차마 떠나지 못한다. 나의 아위안, 하나밖에 없는 내 딸,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영원히 내 애를 태우는 내 딸, 잠을 자도 잊히지 않아 꿈을 만들어 꿈속에서 보는 내 딸, 아위안. 정말 꿈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꿈이 사실인지, 허상인지 선택할 수 없지만 내가 꿈이 되어 아위안의 병원에 간 것을 믿지 않는다. - P72

문득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중수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중수는 내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 나는 이제 알았다. 중수는 예전에 내가 했던 타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짧은 꿈에서 깨어나 왜 꿈속에서 소리도 없이 갑자기 가 버렸느냐고 타박했던 걸 기억하고, 일부러 천천히 떠나고 있다. 내가 조금씩 조금씩 그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이 만나고 떠날 수 있도록, 중수는 내 짧은 꿈을 길게 늘여 이토록 길고 긴 꿈속의 이별을 하고 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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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미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처지야." 엄마가 말했다. "세상은 사람한테만 의지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버렸어. 그래서 우리한테 남은 선택은, 세상을 지금보다 더 연약한 곳으로 만드는 것뿐이야."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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