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당연히 매우 흥미로운데.. 번역이 가끔 미묘한 부분이 있다..
구할 수 있으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데 대만 책을 구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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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카레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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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야 해. 일단 멈추면 그때는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거야. 사람에게는 누구나 갑자기 멈춰 서서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리는 무대 공포증이라는 게 있다. 그런 것이 발동하면 필요한 물건에 손을 대었을 때 갑자기 손이 굳어 버린다거나 위장이 녹아내리면서 설사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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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억울한 처지에 있을 경우 진실한 이야기란 꾸며낸 이야기보다 설득력이 없어지는 반대 결과를 가져오게 돼. 반대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꾸며낸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먼저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거짓말을 만들지.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그 이야기는 그다지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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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여자 인생의 축복이라고 모두가 힘주어 말하면서, 정작 그 임신이 가능하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생리는 모두가 언급하는 것조차 불결하다고 믿는 것. 생리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여성의 몸에 가하는 이중 압박—출산을 통해 사회 유지에 기여해야 하지만 그 불편함에 대한 호소는 금지된—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소득층 여학생 중에는 휴지나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면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생리대 시장을 비판하는 여성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이 수십 년 동안 매달 구입해야 하는 생리 관련 용품을 그저 상품의 영역으로만 볼 것인가, 혹은 복지와 기본 인권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주요 국가들의 제품보다 월등히 좋은 품질이 아닌 이상에야, 물가에 대비해서 따져보아도 이렇게까지 비쌀 이유가 없다. 각 지자체별로 무상지급을 고려하되, 생리대 자체의 가격도 주요 국가 수준까지는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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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복지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을 줄이고 최종적으로는 해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영역이야말로 사회와 국가의 발전뿐만 아니라 존속에까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삶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저 임신해서 사회 재생산에 기여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세상에서 과연 여자들은 아이를 기꺼이 낳고 싶어할까? 출산과 양육이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오직 여자만이 커리어의 중단을 맞이하는 것이 아름다운 희생 정도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여자들은 그 희생을 감당하려고 할까? 낮아지는 출생률을 올리는 것은, 낙태죄가 강화된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아이를 낳더라도 자신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출생률은 올라갈 것이다.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통계들이, 결혼 이후의 여성의 삶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며 많은 기회로부터 차단당하는지 또한 얼마나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통계청의 2015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의하면 삼십대 기혼 여성 열 명 중 네 명이 경력단절 여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렇게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출산과 육아 때문이다. 출산도 육아도 오롯이 여성의 몫인 채로 여성이 직장생활과 가정을 병행할 수 없는 구조이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4~5년 정도 경력 단절을 경험하면 그후에는 결혼 전의 커리어를 결코 유지할 수가 없다. 멀쩡한 기업에 다니던 여성이 학습지 교사나 마트 직원밖에는 할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었던 여성이, 가정에서는 “겨우 그 돈 벌려고 애 놔두고 일 나가냐”는 말을 듣다가, 아이 학원비라도 벌기 위해 다운그레이드된 커리어로 내몰리는 이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력 단절 남성은 없고, 오직 경력 단절 여성만이 사회문제가 된다는 현상 역시 결혼이 여전히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유지되는 제도임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여성의 삶에 정답 따위는 없으며, 이기적인 선택이 얼마든지 귀한 선택일 수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고 해도, 당신은 전혀 위축될 이유가 없다. 행복은 아이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든 없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는 여성이든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여성이든, 결국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밟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다. 우리는 모두, 지속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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