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 이야기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네게 전해. 봄볕은 따뜻하다지만 아직 3월 중순이 갓 지났을 따름이고 바람은 여전히 차가워. 새벽에는 눈도 내렸다는데 그 찰나에 내린 눈을 마주하지 못했던 게 좀 안타깝기도 했어. 동경에서 계속 들고 다니던 클라리시 책은 내게 예언서 같았어. 그리고 봄이야. 곧 4월이고.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1분 1초가 어떻게 흐르는지 그 시간 감각이 통째로 몸에 문신처럼 박히는 걸 즐기고 있어. 사람들은 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보편 감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개인적인 게 되기도 해. 가까운 사람은 언제나 상처를 줘. 그건 사랑의 가장 모순적인 특징이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서 상처를 주고받는지조차 모르지만 말야. 오롯이 자기만 아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건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아주 젊었던 엄마를 마주하면서 궁금해했던 것들이기도 했지. 항상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부족했지. 하지만 엄마는 나만의 엄마로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립고 언제나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니고 싶은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어. 나이가 들고 포기해야 할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내 아쉽고 부족한 마음까지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딸아이의 방치되어 살아가는 몇몇 친구들을 마주하면서 아이들의 끼니를 가끔 챙겨주면서 온통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엄마들을 바라봐. 사업을 하고 골프를 치고 비지니스 파트너들을 만나. 아이는 거의 내내 혼자서 지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기껏 가끔 끼니를 챙겨주거나 집에 혼자 있기 싫으면 이모집으로 와, 와서 민이랑 놀아. 그게 전부야. 80평이 넘는 집에서 아이는 내내 혼자 지내. 어른들은 어둠의 중심에서도 더 그 농도가 짙어져 깜깜해질 무렵에야 집에 당도하고. 흘깃 방 안을 보고 간식을 챙겨주고 다시 내일을 위해서 뜨거운 물 속으로 들어가지, 뜨거운 잠 속으로 들어가고. 그건 어떤 느낌일까. 그 광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스산해서 몸을 오두카니 동글게 마는 건 나야. 홀로 넓은 집에 있는 그 소녀와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서 홀로 있는 그 엄마는 동시에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애착이론 관련서를 읽고 있어서 어쩌면 아이의 상황을 나 혼자 더 확대 해석하는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는 온몸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그게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고 생각해, 나는. 어른은 감추려고 하고, 감춰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노라고 주입받으면서 살아가니까. 허나 아이는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드러내. 그래서 어쩌면 철이 들지 않고 내내 늙은 아이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많은 건 아닐까? 나는 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클라리시 언니의 책이 새로 나왔어. 이것도 어떤 계시 같지 않아? 이사갈 집을 두 군데 보고 왔는데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에 들게 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인데 그건 일단 미래에. 짐을 확 줄인다. 집을 넓힌다. 으흠. 일단 미래로 미뤄두는 연습은 아주 오래 전부터 했던 것도 같아.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은 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작년 여름, 매일 산책을 하며 지나다니던 숲 속의 한가운데에서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나무들은 모두 다 바싹 말라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 이 나무가 그 나무가 맞던가 갸우뚱 고개를 외로 틀어보고 그 나무가 맞는데 너무 추워 보이네, 봄인 줄 알았는데 아직 봄이 아니구나 그 황폐한 풍경을 마주 하고 알았지. 바라보면서도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갔어. 나무들은 오죽 할까. 산책길 끄트머리, 항상 너와 통화를 하던 미술관 앞 벤치 근처_ 개나리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어. 아 봄인가. 봄은 4월부터인가봐. 4월에는 너와 나의 역사가 시작될 테고. 한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아이가 해달라는 호박전에 봄나물을 살짝 무쳐 뜨거운 밥을 갓 지어서 먹어야겠다. 조금 배가 고프다. 심플하고 소박하게 하지만 기쁨은 그득하게, 우리의 모토를 잊지 말고 오늘밤에는 당신의 당직 서는 밤 한가운데로 가봐야겠다, 꿈결에 노래를 하나 틀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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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0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은 4월에 온대요. 패딩 입고 나갔는데 추워서 절로 뛰게 되더라는....
마음에 드는 집을 어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

자목련 2024-03-20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4월이 좋아요. 4월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