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흔이 되자 친구들이 이혼하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무책임해서, 시가가 무례해서, 같이 있기 싫어서 갈라선다고 했다. 남 일은 아니었다. 나도 한 달간 떨어져 지냈다. 사람이 이토록 미워지는 마음이 참 낯설었는데, 내가 지은 밥을 그가 먹는 게 싫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심했다. 소설가 위화는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는단다. 계속 읽으면서 작가를 미워하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장 덮듯 나도 얼굴을 덮고 싶었다. 

'한부모 여성 가장'이 된 친구들은 아이에게 이혼 알리기를 가장 어려워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회사 일로 떨어져 지낸다. 아빠는 외국에 갔다는 80년대 연속극 같은 이유를 둘러댔다. 결혼 10년간 한 번도 생활비를 준 적 없는 남편과 헤어진 선배는, 짐을 벗어버렸는데 생각만큼 후련하지 않고 살아갈 힘도 같이 사라졌다는 야릇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나는 타협했다. 여자로서 독립적이나 엄마로서 자립적이지 못했다. 대체 양육자가 없으니 어차피 오래 끌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참고 산다는 말, 비주체적이고 비겁해 보였지만 그 참음이 다른 고통보다 나으니까 참아졌다. 사랑으로 한 시절 살았기에 사랑 없이 한 시절 살아갈 수 있었다. 친구 따라 이리 뒤척, 내 맘에 지쳐 저리 뒤척 하는 동안 나라는 존재의 나약함에, 여성이란 종의 고통에 조금씩 눈떴다. 

그때,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고민거리'로 여겨졌던 아이들의 존재가 들어온 건 근래다. 20대가 된 내 아이 또래가 글쓰기 수업에 오면서 '헤어진 부모'에 관한 글을 접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부부 싸움이 시작되는 전조를 감지하는 초조, 쟤만 없으면 당신이랑 안 산다는 말에 덴 자국, 아빤 외국에 갔다는 엄마의 세뇌, 아빠의 재혼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며 울던 기억,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너도 아빠 없니? 나도 따로 살아"라고 말해 비밀 친구가 된 일화, 조손 가정이라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죽기로 공부에 매달렸다는 고백. 

약자에 가려진 약자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혼은 어느 날 부모 한 명이 증발하는 일이고, 남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고도의 정신노동이 부과되는 삶이며, '너라도 잘 커야' 하는 장기 채무가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한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여섯 살 여자아이 '무니'의 무지갯빛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운다.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 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 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 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40-42) 



겪지 않아도 될 일은 없다. 겪지 말았으면 하는 일은 있다. 그 일을 세상 사람들이 겪는다고 해서 나 역시 겪어야 하겠는가 하고 낙천적으로 웃을 때도 있다. 하지만 왜 그 일이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고 소설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지, 리얼이 더 드라마 같다 이런 말을 해대는지 나도 다 커서야 모두 다 겪고난 후에야 알았다. 물론 아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난 후에 고통이 새싹처럼 또 한 명의 자아를 탄생시키더라는 이야기를 쿨한 척 잘도 해대지만 이게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지나고나면 좀 덜 아프더라. 해줄 말이라고는 이것뿐. 무슨 죄를 지어서 감추고 드러내기가 저어되어 그런 건 아닌데 이게 또 내 자랑거리도 아닌지라 아는 이들은 알고 모르는 이들은 모르고 그런 식으로 쿨하게 반응한다. 실로 마흔이 지나고나면서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내 인생도 그렇고 휙휙 페이지 넘어가는 게 무슨 통속소설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등대는 등대의 역할을 하는지라 더 꼿꼿하게 등을 펴고 더 단단한 척 턱을 당기고 다른 이들을 대한다. 여기에서 나의 적은 누구이고 나의 친구는 누구인가 그런 애매모호한 시선 처리도 하지 않고. 은유의 글은 딱 나의 마음인지라 모두 다 줄을 박박 치면서 읽는다. 나는 나지만 나는 딸을 가진 엄마이고 딸에게는 내가 하나뿐인 엄마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빛을 흐릿하게나마 안겨주는 등대와 암흑 속에서 출렁출렁 파도 사이를 오고가는 선박처럼_ 함께 너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 확실한 건 대한민국에서는 여자들끼리만 살아가기가 더럽게 힘들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깨달은 건 아 책을 읽자, 어마무시하게 읽어보자 이렇게 엉뚱하게 결론. 콜록콜록 기침은 끝없고 도서관은 먼지가 한가득이지만 그래도 좋아, 까짓거 밤을 지새워 읽어보겠어 이런 엉뚱한 마음을 품고 달밤 아래 오슬오슬 떨면서 귀가했다. 내일 시장에 가면 계피를 사갖고 와서 싸구려 와인에 사과를 잔뜩 넣고 보글보글 끓여야겠다. 나는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과연.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간밤 잘 지냈냐고 묻기가 바쁘게 사십대 중반의 내 남자사람친구들은 심장이 콱 막혀서 죽고 과로사로 죽고 그러는데 단지 앞 전복한 자동차 곁을 조심조심 지나면서 여동생과 말을 나누면서 언제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냥 살고싶은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조심성 없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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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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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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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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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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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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