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매기는 평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웃 분들이 계신다. 나 역시 다른 이들 평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쓰레기 책들에 높은 평점을 매기는 이웃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별 다섯 개 매기는 글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이 분은 과연 칼뱅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화형에 처한 걸 알고도 이런 평점을 매긴 걸까. 칼뱅이 그러했듯, 칼뱅주의자들이 칼뱅의 책을 구실로 집단학살(모히칸족, 피쿼트족, 시먼족, 트와족, 줄루족 등등)을 정당화한 걸 알고도 이런 평점을 매긴 걸까. 루소는 인간은 개차반이었지만 그가 쓴 책은 그와는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인류 공통에게 값진 유산이다. 칼뱅은 인간도 개차반이었지만 그가 쓴 책은 더더욱 개차반이다. 기독교인들이 21세기에도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아무런 비판적 성찰없이 받들어 모시는 건,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IS를 만든 건 이슬람이라기보다는 야훼다.

 

어쨌든 나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이웃분의 평점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평점에 대한 이의를 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이 기회에 평점에 대한 기준을 밝힌다. ‘,,의에 입각한 평점’, 혹은 ,,미에 입각한 평점이라고 해야 할까. , 내 지식의 폭을 넓혀 주었는가, 내 얼어붙은 감수성에 쩌억 쩌억 갈라지는 도끼질을 가했는가, 내 차가운 심장을 의기로 채워주었는가,가 관건이다.

독서 전이나 독서 이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별 세 개 정도.

 

지적인 기준으로 볼 때,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 내 무지를 까발겼는가

둘째, 내 편견과 선입견을 산산히 부섰는가

 

마르크스를 읽는다고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어느 수준에서 자신의 사고가 막혀 있는가, 자신이 얼마나 인습적인 사고 틀에 갇혀 있는가......, 이런 점은 뼈가 시리도록 잘 알 수 있어요. 마르크스를 읽고 있으면 스스로의 사고 틀(갇혀 있는 감옥에 비유해도 좋겠지요)이 외부의 충격으로 덜컹 흔들려서 감옥 벽에 균열이 생기고 철창이 휘어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감옥 벽에 금이 가고 먼지가 풀풀 나면서 철창이 휘어지고 삐걱거려야 비로소 나는 감옥 속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법이죠......마르크스는 내가 감옥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수를 궁리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법이니까요.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P 43.

(원문의 역어 우리감옥으로 대체합니다.) 

 

위 지문에서 마르크스으로 대체해보자. 내가 어떤 식으로든(,,) ‘감옥속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 내게는 좋은 책이다.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의 경우 '정'과 '의'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다분히 지적인 책이었고(상상력과 통찰력, 소설가의 두 타입 등등) 편견과 선입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지언정, 내 무지를 완전히 까발겼다는 점에서 나는 별 다섯 개를 던졌다. 위화의 평점에 이의를 제기한 분은 나보단 분명 지적으로 뛰어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별 하나도 과한 책들도 있다. 예를 들면 이지성, 김병완, 공병호의 책들. 사회문제를 은폐하고 조작하고, 사회의 책임을 개인으로 환원시키고, 재벌과 기득권을 위해 거짓된 학문을 유포하는 기득권의 충실한 딸랑이들. 딸랑 딸랑 ~~

 

지식인의 도덕적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파리코뮌의 위대한 역사가 프로스페 올리비에 리사가레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민중에게 거짓된 혁명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거짓된 사실로 현혹시켜 민중을 속이는 자는 항해자에게 틀린 지도를 그려주는 지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 장 지글러, <인간의 길을 가다> p. 48 

 

 

간혹가다 ,,가 적절히 혼합된 책을 만날 때도 있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그렇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을 때도 몰랐던 내 사고의 결함을 리베카 솔닛 때문에 깨달았다. 내 편견과 선입견이 산산이 깨지는 순간.

 

특히 여자들이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이 상투적으로 보이는 반응,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라는 반응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 추라는 여성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세상에. 나는 감옥에 있었구나

얼마 전 쓴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의 독후감의 요점이 그것이었다.

나는 안 그런데

 

이건 정말 맞는 말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남자로서 나는 안 그런데로 귀결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여자들이 남자에게 착취당하고,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요점이다. 등산로에서 연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혹은 살인이 벌어진다. 와이프는 무서워서 대낮임에도 혼자서 자전거길 산책을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으로서 밤길에도 걸을 자유에 대해 말했다. 한국 여성들은 아직도 밤은 고사하고 낮에도 걸을 자유가 없다.

 

흔히 남성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이렇다. 남성들이 겪는 차별과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쉽사리 동일시한다. 남성들이 말하는 차별은 오로지 기득권 유지의 차원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겪는 차별은 실존이다. 차원이 전혀 다른데, 똑같은 잣대라고 착각한다.

 

별 하나도 과분한 허태균의 <어쩌다 한국인>을 보면, 저자는 재벌 2세들이 겪는 외로움에 대해 설파하신다. 재벌 2세들이 겪는 외로움과 노동자들이 겪는 외로움의 차원이 똑같을까? 경상도 사람들이 박근혜에 몰표를 주는 것과 전라도 사람들이 김대중에게 몰표를 주는 것 역시 동일한 차원이 아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기득권 유지의 차원이지만 광주항쟁으로 빨갱이로 몰려, 총칼로 짓밟힌 전라도 사람들이 김대중을 지지하는 건 실존의 차원이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참고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으며 정말 놀랐다.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성추행과 강간을 당했단 말인가? 전혀 몰랐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어릴 적 집단 강간당한 일화를 고백한다. 독후감을 썼을 때는 록산 게이가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건 그만큼 여성들이 강간 사실을 숨겨야 했던 한국 문화 탓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더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경험을 더 많이 공론화해야 하는 건 아닐까. 미국은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이 강간당한다고 한다. 신고 된 건수로는 6분마다 강간이 벌어진다. 신고 된 건수만 이러니, 실제로 강간은 거의 1분마다 벌어질지 모른다. 매년 87천 건의 강간 사건이 터진다니. 대체적으로 아시아는 강간에서만큼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하니, 한국에선 얼마나 많은 성폭력, 성희롱, 강간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얼마 전 강남역 화장실에서 묻지마살인 사건이 있었다. ‘여성혐오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었었다. 여성혐오인지 아닌지는 내 식견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건을 여성 혐오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건,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 꼽을만한 성과라고 본다. 서중석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4월 혁명 사진 중에 놀라운 사진이 있다. 마산 의거 자료 사진 중엔 오로지 어머니들로만 이루어진 시위대가 있었다. 이미 1960년대에 여성들은 연대했었다. 한국 여성들에게 이태영 변호사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모른다는 것도 놀랍다. 한국 여성으로서 이태영 변호사를 모르다니! 호주제 폐지뿐만이 아니라, 이혼할 때 여성들이 재산청구권을 갖게 된 건 99프로 이태영 변호사의 노고 때문이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지만 여성들 역시나 한국 여성 혹은 모든 이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분들의 노고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국가 간의 불평등이 질병, 이민, 테러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국가 내의 불평등 역시 로드니 킹 폭동과도 같은 폭동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에 일어난 강남역 화장실 사건은 일차적으로 여성혐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결국 불평등이 초래한 사태가 아닐까. 차별당한 자, 착취당한 자는 자신을 차별한 자, 자신을 착취한 자에게 복수하기 보단, 자신보다 약한 자를 제물로 삼는다.

나는 강남역 화장실사건을 단지 여성혐오에 국한하는 입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문제에만 국한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모든 불평등, 모든 차별에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고, 되야하는 것이 아닐까.

 

과연 남혐여혐의 대안일 수 있을까.

<공산당 혁명>에서 마르크스는 모든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책을 끝맺는다.

 

참된 혁명의 선언은 미움이나 파괴를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우애를 담은 말로 끝맺지 않으면 안 돼요. 이렇게 아주 인간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르크스는 19~20세기에 출현한 무수한 혁명가들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여성들 입장에서 남혐은 통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움분열이 여성의 차별 과 착취를 철폐하는 데 도움이 될까.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 쓰는 만큼의 열의로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을 쓰는 유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인간 해방의 완수라고 봤어요.

 

-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마르크스에 따르면, ‘나를 위해 만드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단지 동물일 뿐이다. ‘유적 존재에게 나의 이익사회의 이익과 구분되지 않는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의 리뷰 소제목을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로 달았다. 나는 페미니스트 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리베카 솔닛의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야 한다. 한국의 남성과 여성,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야만 한다.


만국의 모든 남성, 여성이여 단결하라! 

 

나는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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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6-2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을 모아서 라다크(일처다부제 나라)로 갑시다!! ㅋㅋ

시이소오 2016-06-25 15:58   좋아요 0 | URL
앗, 그건 ㅋ ㅋ ㅋ

cyrus 2016-06-25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앞으로 모든 불평등, 모든 차별에 반대하려면, 다문화 가정, 특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 여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6-25 16:25   좋아요 1 | URL
외국인 차별도 심각하죠.
전세계적으로요.

말씀
하신것처럼 그래야겠죠.
사이러스님도 우리나라 페미니스트시잖아요 ^^

고양이라디오 2016-08-2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시원한 글이네요^^ 저도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ㅎ

시이소오 2016-08-25 13:01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되야죠. 메갈보다 현명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