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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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는 분이셨었는데 어렸을 적 나에게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셨고, 평범한 일상의 대화 중에서도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단어들을 이용하시곤 하셨었다.  언젠가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던, 그리고 수업 시간에 배웠던 수 많은 역사적 사건 중 하나였던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 남한산성.

 

사실 병자호란은 친구네 집 강아지의 생일 만큼이나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사건이었다.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이런 식으로 단순히 외우기만 했을 뿐이지 그런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볼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인조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 그리고 태평성세에는 나랏님들의 쥐락펴락하는 손아귀에서 울고 웃었던 백성들이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버텨나가는모습을 읽어가며;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 것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 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p.

 

 

;리더의 자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요리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하는 소금 적당량만큼이나 애매모호하고 애매모호하기에 어려운 것이라는 것쯤도 나도 안다.  하지만 리더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그가 범인들에 비해 더 훌륭한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행동을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  만약 그런 능력을 지니지 못한 리더라면 스스로가 마땅히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인조라는 멍청한 리더 한 명과 그를 따르는, 마찬가지로 멍청한, 혹은 똑똑하지만 관습에 묶여 있느라 바쁘셔서 똑똑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신하들 덕분에 더 살 수 있었던 백성들과 동물들이 병조호란 동안에 유명을 달리했다.

인조가, 나의 조상의 리더가 타국의 리더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 치욕스럽긴 하지만 인조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그의 무능력함이, 그의 부족한 리더십과 현명함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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