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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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좁고 어둡고 뾰족한 독일의 글자들과 달리, 이탈리아의 글자들은 햇빛을 받아 몸을 활짝 폈다.

- 《글자 풍경》 본문 27쪽 중에서

 

 

제목에서부터 벌써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어떤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예쁜 제목을 지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서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으로서 ‘글자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동안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글자의 생태를 이해하고 그로뷰터 기쁨을 느끼기를 바라며 꾸렸다’는 저자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글자가 생물과 같기에 글자의 생태를 다룬다는 말이 흥미진진합니다.

 

국경을 넘는 즉시 확실하게 불연속적인 것은 도로 표지판의 글자체들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몸소 체험하고 수집한 정보들이기에 이런 세세한 이야기가 참 재밌습니다. 마치 꿀팁을 알게 된 기분입니다. 믿음직스럽고요. 글자체가 자연의 기질과 닮아 국경을 넘으면 달라진다는 걸 보면 제목이 왜 글자 풍경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영문캘리그래피에도 지대한 관심을 두던 저는 이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1장에 나오는 유럽 글자 풍경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왜 블랙레터인지, 왜 로만체인지 이렇게 아름답게 설명해주는 책이 있을까요? 자연과 기술과 정신의 흐름에 따라 글자체에도 이토록 깊은 뜻이 담겨있다니 정말 멋집니다.

 

‘소른’이라는 글자는 처음 알았습니다. 여지껏 살면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이유가 뭘까요? 혼란 속에서 잘 살아남은 글자라니 왠지 기특합니다.

 

해외도 인정하듯, 한글은 정말 위대한 글자입니다. 최근 영화 <말모이>를 봤던 것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자부심이 뿜뿜 넘쳐 흐르는 기분입니다. 2장은 한국어를 중점으로 다뤘습니다.

 

저는 한글캘리그래피를 하며 한글을 더 사랑하고 깊이있게 느끼려고 애써왔는데요. 이 챕터를 읽으니 그동안 막연하고 얕게 알아왔던 한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영어 철자를 틀리면 비난하지만 한글을 틀리면 혀를 차는 수준에 그치고 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어요. 과연 그들은 한글을 제대로 알면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한글은 과학이고, 얼이고, 생물입니다. 자세한 맞춤법은 파고들기 시작하면 너무나 어렵죠. 국문학과가 아닌 이상 잘 알 수 없는 정보들과 과학적인 시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전문가에게는 공감을, 일반인에게는 새로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언어유희, 이름짓기(제목학원)처럼 해학적이면서 감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언어는 한글뿐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글의 위대함이야 대부분 어렴풋이 알고 살아가겠지요. 한글을 어떻게 쓰느냐, 글자 풍경으로서는 어떻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2장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편지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궁체가 어떤 것인지 여기서 알았네요. 로마자가 처음엔 대문자로만 출발을 했다는 사실도요. 한글의 흘림체, 한자의 흘림체, 로마자의 소문자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재밌네요.

 

디지털이 생활화된 요즘입니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우린 글자를 끊임없이 보고 있지요. 글자체 디자이너는 없어서는 안될 직업인 것 같습니다. 긴 텍스트를 위한 본문 타이포그래피를 발명한 디자이너들에게 감사하며 책을 읽게 됩니다. 궁서체로 도배된 글자를 다 읽으려면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명조체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희한하게 결정학, 구조학, 화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까지 걸칩니다. 글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기이하고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더군요. 4장에서는 악보에도 글자 풍경이 담겨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 일상에 이렇게나 다양하게 글자가 녹아있다니요.

 

여러분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담긴 글자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아이폰을 오래 써오면서도 시스템 폰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과연 디자이너의 시각은 참 다릅니다. 시력 검사표는 또 어떻고요. 디자이너는 정말 넓고 크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번뜩이는 거겠죠? 신기합니다. 글자에도 엽사가 있다?! 여러분은 일상에서 이런 소소한 것을 찾아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숨은 풍경까지 알려줘서 참 재밌네요.

 

저자는 글자뿐 아니라 다방면에 지식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글자 생태’를 이야기 하려면 글자만 알아서는 어렵겠지요. 그 배경과 역사, 지역의 특징 등 어쩜 이리 꼼꼼하게 다 알고 설명해주시는지 감탄했습니다.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일지도 모르는 삶의 장면들에 같이 호흡하고 깊게 느낀 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해주어서 덩달아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저자만의 감성으로 표현되는 문장들입니다. 글자에 대한 상투적인 설명만 있다면 교재를 읽는 것처럼 지루했을텐데, 소제목도 그냥 짓는 법이 없었습니다.

 

문명과 문화부터 이해하며 글자를 소화해낸 저자에게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타이포그래퍼는 참 멋진 직업이네요. 저는 그동안 캘리그래피를 하며 단순히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글씨, 글자체를 생각했는데 저자로부터 큰 배움을 얻었답니다. 이 책을 읽기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글씨를 한획 한획 쓰며 이 배움을 곱씹겠지요.

 

나름 문명에 관심을 두고 박물관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동안 제가 가진 관심이 그리 깊진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렇게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모르고 지냈다니 아깝습니다. 글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크고 넓은 세상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준 저자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만들어진 게 없습니다. 스치듯 구경하고 말법한 작품들, 물건들도 저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흔한 간판들조차 말이죠.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좁은 시야를 갖고 있는 제게 큰 귀감이 되었어요.

 

캘리그래피를 하는 제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그동안 몰랐던 글자에 관한 전문용어들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두고두고 다시 펼쳐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가득하고 예술적 해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글자와 글씨의 영역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용어 정리까지 꼭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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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탐험대와 지구 한 바퀴 - 숨은그림찾기 세계 여행 웅진 지식그림책 52
기욤 코네 지음, 서남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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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가본 제주도가 가장 멀리 가본 곳이랍니다. 그마저도 몸이 허약해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는데요.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도 다녀본 적이 없으니 이 책에 그려진 모든 나라가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신기하고 신나지 뭐예요! 물론 영화나 만화에서 보긴 했지만 이렇게 특색을 살린 그림을 보니 새롭더라구요. 아마존이나 마다가스카르처럼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곳을 이렇게 구석구석 다닐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아마존과 로마는 녹색,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눈이 호강했습니다. 마치 직접 풍경을 눈에 담은 듯하여 잠깐 행복하기까지 했어요.

 

각 나라의 화폐, 언어, 인구, 인사법, 갈만한 곳, 해볼 것, 살 것, 먹어볼 것들 정보까지 다 있어요. 또 행선지를 옮길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도 있어요. 정말 여행하는 느낌이 물씬 나죠. 이 책 거의 뭐 가이드 수준입니다. 디테일한 정보와 그림에 감동까지 받았어요. 작가의 정성이 얼마나 담겨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느 부분하나 그냥 넘어가기 아쉽답니다. 그런데 코끼리 탐험대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중 한국이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왜일까요...

 

30대 이상이라면 《월리를 찾아라》를 대부분 아실텐데요. 그림 속의 많은 사람 중 월리를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요.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월리와 비슷한 사람인 경우가 더 많았어요. 그림에 볼 거리가 많아 즐거운 시간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재밌는 숨은 그림 찾기를 찾기가 어려웠었는데요. 《코끼리 탐험대와 지구 한 바퀴》가 저를 흥미진진하게 해주었어요!

 

생각보다 숨은 그림을 찾는 건 어려웠답니다. 코끼리는 좀 덩치가 있어서 나름 잘 찾을 수 있었지만, 코끼리가 아끼는 소중한 물건들은 상황에 따라 크기와 각도가 변형되어 그려졌기에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봐야 하거든요. 더 어려운 건 ‘지난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다음 여행지에서 보고 싶은 것’, ‘다시 돌아와서 느낀 멋진 순간들’이에요. 탐험대와 소중한 물건은 앞서 예시 그림이 있지만 나머지들은 텍스트로 된 설명만 보고 찾아야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찾은 게 정답인지 확신하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찾으면 더 짜릿합니다. 특히 지난 여행에서 다시 찾아보라고 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 있죠. 아주 재밌어요. 처음엔 탐험대와 소중한 물건들만 찾는 줄 알았는데 뒤로 갈 수록 반전의 반전으로 다른 것을 찾으라고 해요. 찾았다는 표시로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이고 나면 다시 뗄 수도 없고 책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은 여기서 끝인가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반전이 있어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그림들에 계속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니까 정말 여행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겨우 네 번째 행선지인 도쿄 편에서 정말 애먹었어요.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질 것만 같은 느낌에 꼭 도쿄를 클리어하고 싶었지요. 작가가 이끄는대로, 순서대로 여행을 하고 싶은데 도쿄에서 막혀서 진도를 못나갔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여기서 멈춰있어야 하나 싶어서 다음 여행지로 넘어갔습니다. 다른 곳을 먼저 다녀온 후 도쿄로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 성격상 ‘패스’를 하고 넘어가는 건 찜찜했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스트레스 받으라고 이 책을 그린 건 아닐테니까요. 가볍게 즐기며 하는 걸 추천합니다. 저처럼 끙끙 앓지 마시고! 나중에 보니 난이도와 여행순서는 관계없는 것 같더라구요.

 

간만에 아주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즐긴 시간이었어요. 단조롭지 않고 알찬 여행, 여러분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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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 편이던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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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라디오 오프닝이 끝나고 첫 곡이 흐를 때쯤 작가의 어머니는 매번 답장이라도 하듯 문자를 보내시곤 했답니다. 오프닝의 내용이 어떻든 늘 딸에 관심 주시는 어머니였고, 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딸의 글을 들을 수 있어 좋으셨겠지요. 이런 말을 하면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참 부럽습니다. 세상의 엄마들은 대부분 자식에게 애틋하죠. 다 커버린 자식들의 소식은 엄마에겐 너무나 소중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자는 라디오 오프닝으로 엄마께 ‘효도’를 하고 있던 게 아닐까요? 다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라디오작가는 딸이 쓴 글을 엄마께 들려드릴 수 있고, 간접적으로나마 하고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좋은 직업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역시 저자도 이를 무척 다행이고 잘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네요.

 

도입부에서부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 옵니다. 벌써 목이 메어 와요. 역시 작가가 쓴 글이어서 그런가 읽으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효과를 느낄 수 있네요. 잔잔한 물결처럼 아픔이 넘실거립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아픈 기억들과 마주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과몰입돼서 눈물이 자꾸만 나더라구요. 펑펑 울고 나면 시원해지긴 하는데... 이걸 노린 것일까요!

 

딸과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빨간 머리 앤과 성격이 꼭 닮았다는 저자의 엄마에게서 저는 인생을 배우고 있었어요. 후회만 하며 사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답니다. 책을 읽으면 이렇게 뜻밖의 배울 점이 있어서 좋네요.

 

짧은 에피소드가 여러 개 엮여 있어서 좋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록 저도 느끼는 게 많으니까요. 감정이 너무 북받치면 쉬었다 읽어도 좋게끔 구성이 되어 있어요. 분명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인지하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너무 슬퍼요.

 

사랑하는 사람이 쓰던 전화번호로 문자메시지를 하거나 전화를 걸어본다는 것은 사실 흔한 감동스토리지만 다시 접할 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싫어요. 그 이별을 이겨낸 저자를 보면서도 저는 자신없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나이는 30대지만 아직도 엄마아빠 없으면 어떻게 사나 하는 애기 때의 걱정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책을 쓰며 이별을 극복한 저자도 역시 때때로 아프겠죠? 그래도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저도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네요.

 

유난히 제 감정이 극에 달했던 건지, 책 한장 한장 넘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픈 이야기가 보기 싫었던 것 같아요. 영화 <몬스터콜>의 원작 <몬스터 콜스>를 읽을 땐 소설이니까, 허구니까 맘껏 울면서 봤는데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은 실화니까 더욱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남의 아픔을 읽는 저도 이렇게 힘든데 저자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요? 정말이지 겪고 싶지 않은 일이네요...

 

개인적으로 신기한 대목이 있었어요. 저자의 엄마는 사는 게 힘들 때 시장에 가 사람들 오가는 모습을 보며 힘을 냈다고 하는데요. 며칠 전 제 엄마가 ‘힘들 때 동대문이라도 나가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좀 보라.’고 저를 위로해주었거든요. 엄마들은 비슷한가봅니다. 슬픈 내용도 아닌데 울컥했지 뭐예요.

 

한편, 엄마아빠를 향한 그리움 틈에서 자연스레 스며드는 아들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치유되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감동했습니다.

 

저자는 돌아가신 엄마가 가끔 곁에 있는 것 같고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고 해요. 보이지 않고,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도 그렇게 믿게 됩니다. 사람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의 모든 것들로 흩어진다는 말을 믿는 것처럼, ‘엄마를 느끼는 날’도 내가 믿으면 당연히 가능한 일이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절 울리는 책이지만요. 각 에피소드마다 떠오르는 엄마아빠와의 추억에 잠겼다가도 저를 사랑하기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얼마나 절 사랑하시는지 다시금 알게 돼서 속상하게 해드렸던 일들에 전부 후회스럽고, 아프고, 따뜻했습니다. 온전히 엄마아빠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아픔을 알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상처를 모른 체 하고 싶었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죠. 꼭 읽어봐야겠죠?

 

그리고.. 책 표지 정말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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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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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읽긴 했지만 첫 장부터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됐다. 목차가 템포로 되어 있다. 첫 장은 Moderato이니 보통 빠르기로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느긋한 걸 좋아해서 Ritardando 장이 맘에 든다. 책의 중간 챕터가 '점점 느리게'라니 매력적이다. 더 빠르게가 아니라 점점 느리게라니. 내용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느긋하게 중간 장을 읽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은 본디 빠르기로 a tempo다. 책에는 2018년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앞으로의 삶은 어떤 템포일까 생각도 해본다.

 

여름 휴가 이야기가 있다. 글에서 해수욕장의 짠내가 느껴지고, 호통치며 길안내를 하는 개그맨 박명수 네비게이션의 음성도 돋는다. 저자의 운전과정을 읽자니 내가 그 차에 동승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었다는 대목은 정말 짧게 지나갔는데, 그 짧은 문장에서 나는 그 라면의 맛과 냄새, 양 등 오만 가지가 떠올랐다. 지칠 줄 모르고 수영놀이를 하는 저자의 두 딸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처가와 함께 휴가를 보내는 온가족의 모습이 생생했다.

 

첫 장에서 저자는 《남한산성》이 아주 재밌어 아껴 읽었다고 말한다. 나는 최근 JTBC의 드라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을 시청중인데 시대적 배경이 바로 조선왕 인조시대다. 김훈 저 《남한산성》도 그렇다. 신기했다. 내가 딱 인조시대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마침 이 책에서도 인조시대 책을 이야기하다니!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런 우연이 참 신기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남한산성》도 꼭 읽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각 장 앞부분은 2007년 가을, 뒷부분은 2018년 봄에 쓴 글이라고 한다. 뭔가 스페셜 에피소드같아서 풍족하게 음미한 기분이다. 그 예로, 앞서 《남한산성》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뒷부분을 보니 영화 <남한산성>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뜻밖의 정보에 신났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내가 바로 어제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바로 뒷페이지에 스케일링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ㅋㅋ 뒷부분엔 강원대학교 후문이 나오는데, 이 또한 내가 살던 고장이니 반갑다. 내가 인생책으로 여기는 한동일 저 《라틴어 수업》을 윤이가 감명 깊게 읽고 엄마께 선물을 드렸다니! 저자의 둘째 따님과 같은 책에 감동 받았다는 사실이 반갑다. 이 책은 반가움 투성이다.

 

 

어떤 한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고 의식의 흐름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야기가 읽기 편했다. 처음엔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표지가 참 예쁘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방대를 나와 졸업 후 10년동안 자기계발이라곤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반해, 저자의 가족과 지인들은 모두 반듯하고 오래도록 학식을 갖춘 분들인 것 같아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로 흘러가 다행이었다.

 

 

저자의 두 딸, 은이와 윤이의 출생부터 커가는 과정을 읽노라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우리 엄빠(엄마, 아빠를 줄여 부르는 요즘 말), 나, 그리고 내 동생들. 우리 가족. 저자는 첫째 딸을 살림 밑천이 아닌 ‘삶의 밑천’이라 여겼다. 우리 아빤 나에게 편지를 써주는 일은 없었지만, 첫째 딸인 나를 보며 우리 엄빠도 그리 여겨주셨겠지! 둘째가 첫째에게 느끼는 시샘은 분명 내 동생들에게도 있었겠지! 즐겁고 따뜻한 이야기가 계속 되는데 왜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겠다. 화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가족을 참 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한자가 많이 나오는 편인데 문장이 참 맛깔나다. 오히려 한자가 있기 때문에 그 뜻이 더 잘 전달된 걸지도 모른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서 한자가 많이 나오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담백하고 솔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모르는 한자가 더 많은데도 문맥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거의 없었다.

 

 

강원대학교 후문은 술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근처에 부모님과 살던 나도 참 술을 많이 마셨다. 지금은 잘 가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가도 여전히 술을 5차까진 거뜬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근데 또 이렇게 술집이 많아도 캠퍼스 아무 곳이나 앉아 소주 몇 병과 과자 한 봉지면 넉넉했다. 그땐 젊어서 그랬다. 이런 자잘하고 평소 까먹었던 추억들을 새록새록 돋게 하는 책이다.

 

 

말로만 듣고 영화로나 접하던 데모가 춘천 시내에서도 이루어졌다니 놀랍다. 내가 대학생활을 졸업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서야 서울과 이어지는 경춘선 전철이 생기고 나름 수도권인 양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 되었는데, 지역이 발전하기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놀랍다. 역시 그런 일은 시골이나 도시인 것이 관계없는 것일까. 내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오래 전엔 읽으면 죄가 되는 글이라니... 저자는 이것저것 경험했으나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대학생활이라 말하고 있다. 나는 경험 부족, 깊이 부족이라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매 챕터마다 언급되는 모든 것들에 나도 막 떠오르는 것들이 많은 걸 보니 ‘인생 선배’의 삶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참 진솔하다. 가감없이 정보와 사실과 진심을 전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한다.

 

 

아내에게 쓴 연애 편지를 이렇게 공개할 수 있음이 부럽다(?). 가장 맘에 드는 대목이다. 왜그런진 모르겠는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연애편지에서조차 글쓰기 장인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저자의 필력, 생각, 마인드가 부럽다. 곧지만 뻗대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 그런 편지를 나도 받아보고 싶다. 그것이 연애편지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편지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을 읽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추하지 않고, 공부가 크지 않지만 천하지 않고, 너그럽지는 못하더라도 협량치 않은 삶이 나의 바람이다.’는 저자의 소신이 와닿았다. 아주 맘에 드는 문장이다.

 

 

박인기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가 발문에서 ‘경험과 기억을 여러 중층으로 글 속에 구축해 놓은 것만큼이나 그것을 음미하는 느낌과 해석과 의식도 다채로울 것을 요청하는 것이 이낙진의 글’이라는 대목에서 소름 돋았다. 독자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소신있게’ 흡수했을까.

 

 

발문을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나니 머리가 띵해오며 존경심마저 든다. 나는 생각은 많지만 좀 짧은 경향이 있어 스스로 자주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표현해내질 못한다. 책을 읽고 쓰는 리뷰도 자꾸만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또 의외로 많이 고치진 않는다. 어떤 말로 고쳐도 다 표현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뒷 표지에 적혀있듯 ‘가족 가치에 대한 깊고 든든한 인식’이다. 각 챕터마다 많은 것이 떠올랐고, 그것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추가로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유익한 책이다! 은이와 윤이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아내분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이렇게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책이 좋다.

 

 

초반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책을 소파로 불렀다'. 내 기준에선 아주 신박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여러분도 마음이 단단해지는 <달나라에 간 소신>을 어디서든 불러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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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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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클리블랜드시가 파산하고 딱 2주 뒤에 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자신의 책상을 비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열쇠는 분실되었다. 대여금고는 버려졌고, 건물에는 20년 동안 자물쇠가 채워졌다. | 본문 중에서

 

 

 

 

 

 

 

 

목차가 특이합니다. 얼핏 보면 시간 순서 같긴 하지만, 1978년과 1998년을 오갑니다. 그렇다고 가나다순도 아닙니다. 데드키라는 음산한 제목에 수수께끼같은 목차. 한번 펼치면 계속 읽어야 하니 주의하세요.

 

상황묘사가 무척 리얼합니다. 적절히 섞인 욕설은 더욱 분위기에 빠져들게 하고요. 읽는 내내 섬뜩함에 몸서리를 쳤는데요. 겁쟁이인 저는 영화든 만화든 제목만 보고도 무서운 거라며 피하기 일쑤면서도 또 그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편입니다. 공포 영화를 90%를 눈가리고 볼만큼... 처음엔 정말 이 책이 유령과 인간의 대결인 줄 알고 실감나는 작가의 문장에 두려워하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죠.

 

 

 

 

만약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나를 찾아줄까? | 본문 중에서

 

 

거듭 말하지만 문장이 너무 실감납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앞에 그려져요.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전에 자취할 때 '마스터키'를 쥔 주인때문에 경찰서에 고발까지 한 경험이 있습니다. 작중 은행이나 제가 살던 원룸이나 어떤 곳에서든 마스터키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소름돋는 것 아니겠습니까.

 

1978년도의 데드키를 쥔 여자와 1998년도의 데드키를 가진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라 목차가 특이했던 겁니다. 적절한 때에 끊어져 버리는 각 장의 결말이 궁금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죠.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이름이 데드키라서 이 열쇠를 소유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싶었는데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도 담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놀라웠죠. 저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끝을 모르는 탐욕은 늘 재앙과 죽음을 불러올 뿐인 것 같습니다.

 

 

 

 

 

샤워할 시간은 없었다. 그냥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는 칫솔을 몇 번 놀려 지저분한 재떨이 같은 입안의 악취를 쓸어냈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은 빗질도 하지 않은 채 고무줄로 잡아맸다.

| 본문 중에서, 자세한 표현에 감탄!

 

 

이 책은 무려 651쪽이나 됩니다. 나의 아이폰 충전기의 뚱뚱한 부분과 견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두께를 가졌어요. 내용이 무서울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분량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 먼저 작가소개란을 읽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프롤로그를 펼쳤지요. 그때부터 저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끼니도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화장실도 잘 안갈만큼... 무서운데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었던 거예요.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처럼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소설은 흡입력이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참 대단한 책이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 그 자리에서 확인해야만 했거든요.

 

  

레이먼은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우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바리톤으로 말했다. | 본문 중, 기막히는 문장!

  

 

작가의 이력이 특이합니다. 구조공학자가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단 말인가요. 옛날이고 지금이고 놀라운 재능을 가진 분들은 늘 존재했지만요. 반대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작가가 실감나게 쓰는 것도 대단하지만. 작가가 모르는 일을 조사하고 파헤쳐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창의력에 놀랍고, 다른 직업을 가진 이가 작가로서 글솜씨를 뽐내는 것은,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글발 혹은 말발이 놀랍습니다. 저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글솜씨가 나아지질 않던데. 허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겨울에, 지친 몸과 마음을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어 매서울 정도로 저의 집중력을 뽑아내준 이 책이 좋네요. 자-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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