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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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개소리에 대한 책이다. 다른 어떤 소재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책도 무척이나 얇고 짧다.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이다.


이 책의 목적은 <개소리>라는 단어의 개념을 개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아닌 것들과 개소리를 대조하며 개소리에 다가간다. 개소리는 협잡과는 다르다. 협잡은 거짓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거짓말 사이의 관계를 전달하려는 것 즉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척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반면 개소리는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척 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개소리는 마구 말한다는 인상을 주는 단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는데, 세심한 개소리들도 세상엔 많기 때문이다. 개소리는 실수와도 다르다. 실수는 잘 말하려고 했는데 잘못 말한 것이지만, 개소리는 잘 말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소리는 거짓말과도 다르다. 거짓말은 사실들의 집합과 정합적이지만 사실이 아닌 문장을 끼워넣는 것이지만, 개소리는 정합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를 통해서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생각없음”(p.34)에서 기원하는 말, 또는 “진리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언어사용(p.37). 개소리는 사실상 입김(더운 공기hot air, p.45)에 불과하며, 어떤 목적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고, 꼭 거짓말일 필요도 없다. 이 차이는 거짓말과의 대조를 통해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프랭크퍼트는 주장한다. 거짓말은 적극적으로 거짓을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진리를 존중하지만(p.53), 개소리는 아예 진리와 무관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용어를 빌리면, 개소리는 “거짓말을 사랑하는 사람들”(p.63)이 내뱉는 공기의 파동(!)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라는 개념, 문장은 참과 거짓 둘 중에 하나이고 인간은 어느 정도는(대개는 거의 정확하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신념을 내버렸다는 것이다.


이 논문, 그리고 프랭크퍼트의 문제의식은, 이 글의 가장 첫 문장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나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개소리는 집단의 목소리 즉 그 만연성을 통해 담론이 된다. 담론화된 개소리의 특징은, 프랭크퍼트가 이야기하듯이, 사실 여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따지려 들면 ‘에이, 재미로 하는 건데 왤케 진지해여?’라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그 담론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에겐 ‘진지충’이라는 낙인과 함께 인간관계의 단절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이 주어지는 것이다. 담론화된 개소리는 경제의 영역으로 작동해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그 이익집단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개소리의 반복재생산에 온힘을 쏟는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이런 담론화된 개소리들이 포진한 것을 나는 본다. 역자의 말과 해제에서는 정치 영역에서의 개소리를 주로 문제시하고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정치의 영역은 오히려 생각보다 개소리가 빠르게 철회되는 편인 것 같다는 게 내 인상이다.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 바깥의 생활 영역이다. 과학의 시선이 들어가야 할 곳에 개소리들이 판을 친다. 온갖 비과학적 이야기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때로 그런 개소리들이 이른바 통찰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나타나는 순간, 나는 소름이 끼친다.


개소리에 대한 해법은, 그래서 그 문제의 심각성과는 아주 반대로 매우 단순하다. 말할 때 사실에 대해서 신경쓰고 말하려고 할 것, 그래서 그 진리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할 것. 즉,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말 것. 하지만 개소리의 절대적인 양이 역사적으로 늘어났는지 줄어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는 프랭크퍼트의 말을 들으며, ‘인류의 언어생활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은 아닌걸까’하는 절망도 머리 한 켠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떤 진술이 참이고 어떤 진술이 거짓인지를 규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두 가지 대안만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과 기만하려는 노력 모두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내세우기를 삼간다는 것이다. 두번째 대안은 상황이 어떠한지를 기술하려는 주장, 그러나 개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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