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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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픔을 길로…

우리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축난다는 것을. 개인적인 스트레스 뿐 아니라 사회적인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만큼 몸이 더 아프고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습니다.

간혹 기사로 전해지는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때 뿐이었지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많은 전문가분들이 계심에 감사하면서, 제 자신은 그 이야기들을 잊어갔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건사고들이 줄을 잇고, 또다른 희생자들이 나타납니다. 아픈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마음이 우울해 지다 보니,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선을 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습기 사건, 세월호 사건 어느 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에 대처하는 우리 나라 사회의 무능함 역시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늘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사회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들의 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개인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발생 빈도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더 높게 나타난다면, 그 뒤에 뭔가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게 자연스럽습니다.

저자인 김승섭 교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소방공무원, 전공의 등의 아픔을 직시하며, 그들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그 내용을 데이타로 정리하고 분석에 분석을 거칩니다. 그렇게 과학의 이름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아픔의 원인을 드러내려 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성소수자들같이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더 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한 작업들을 어떻게 해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상황을 진단하고자 하는 저자는 사회역학자입니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입니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벤젠 노출이 백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일반적인 역학의 역할이라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가설을 탐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폭력의 경험과 질병의 발병 사이의 시점이 제법 차이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고,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 조사가 필요하게 됩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도 많다 합니다. 사회적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차별이라고 인정하기 보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덜 불편하기 때문에 차별로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저자는 IBM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직업병 소송을 도와주었던 보스턴 보건 대학원의 리처드 클랩 교수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그는 “문헌 검토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1961년부터 1991년까지 IBM에서 일했던 3만 3,730명의 건강자료를 분석해 암 사망 비율을 계산하고 그들의 직업이 뇌종양, 신장암,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물을 법정에 제출합니다.” 법정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클랩 교수의 보고서를 공식적인 자료로 채택하지 않았고, IBM측은 여러 언론을 통해 클랩 교수의 연구 결과를 깎아내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들은 클랩 교수를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저널은 클랩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합니다.

인터뷰어: 왜 이런 일을 하나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 교수: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라는 클랩 교수의 말과 같이 저자는 그렇게 이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도 함께 하며, 그들의 아픔을 기록하려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아픔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1994년의 성수대교 참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 합니다. 아픔은 기록되지 않았고, 대책도 전무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온전히 기억되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 위해 저자는 살아남은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또한 동성애를 향한 혐오가 비과학적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동성애는 질병’이고 ‘치료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라는 식의 폭력적인 구호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오래전 정리되어 더 이상 논쟁조차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들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라고 합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한 이후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 여러 학제에서 성소자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오늘날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학계의 상식이 되었다 합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합니다. 1976년에 설립되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동성애 전환 치료를 주도하는 가장 큰 규모의 탈 동성애 운동 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13년 6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그동안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을 닫습니다.

또한 저자는 HIV/AIDS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동성애를 그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과학적 발언이라고 합니다. 파트너가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성 간, 동성 간 성관계 모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동성애에 대한 혐오에 기초해서 동성애와 HIV 감염을 연관 짓는 것은 HIV/AIDS의 예방과 치료에 큰 장벽이 되었고, 오히려 그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현재의 연구 결과라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지향이고 HIV/AIDS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무리로 저자는 1960년대 이전의 미국의 로세토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199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로세토 공동체는 30년간 비슷한 환경을 지닌 이웃 마을 대비 지속적으로 낮은 심장병 사망률을 보여주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고, 이 확신이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합니다.

로세토 공동체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합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요.

저자는 후배들과 함께하는 지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면서 책을 맺습니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저도 싫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관련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막연히 마음 한 끝 아프기만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역학이란 학문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닌, 논리적 과학적 데이타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에 근거하다 보니 힘있게 다가옵니다.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이 저자가 기대하듯 그렇게 변화해 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그러한 변화에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기로 결단한 저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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