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알라딘 이달의 당선작</title><link>http://blog.aladin.co.kr/town/winn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입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1.0</generator><lastBuildDate>Sat, 26 May 2012 03:52:0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알라딘 이달의 당선작</title><url>http://www.aladin.co.kr/ucl_editor/img_secur/header/logo.jpg</url><link>http://blog.aladin.co.kr/town/winner</link><width>152</width><height>53</height><description>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입니다.</description></image><item><author>구단씨</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존재 자체가 “0번째” 아이니까요. - [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blog.aladin.co.kr/773826105/5539021</link><pubDate>Sun, 01 Apr 2012 1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73826105/55390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352&TPaperId=553902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92/73/coveroff/89546173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352&TPaperId=55390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a><br/>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 2012년 01월<br/></td></tr></table><br/>정자은행의 문을 두드려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결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절에 혼자 늙어갈 외로움이 두려워 나와 함께 할 아이 한명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가 꺼낸 단어였습니다. 정자은행. 그 말에 저는 친구에게 물었지요.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유전자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이 활발한 O형의 혈액형이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키가 컸으면 좋겠고, 나에게 부족한 언어적인 두뇌가 뛰어나 외국어를 잘했으면 좋겠고, 얼굴이 작고 예뻤으면 좋겠고, 엄마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여자 아이였으면 좋겠고…….” 그 말에 친구가 대답을 해줍니다. “내가 너에게 밀가루 한 봉지를 사줄게. 이걸 반죽해서 네가 원하는 모양대로 인형을 만들어. 그리고 단단하게 굳혀서 평생 데리고 살아!”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었지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부모 역시 아이를 골라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서로가 서로를 스스로 선택해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왜 저는 꼭 제 맘에 드는 아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었을까요.<BR><BR>그런데 아이를 골라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이 책 『열세 번째 아이』를 읽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시우의 엄마는 시우를 그렇게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된 키는 187센티미터 정도로, 성격은 판단력이 뛰어난 냉철한 이성을 가진 남자 아이로 시우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2075년 그때는 뭐든 맞춤형으로 만들어낼 수 있나 봅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로봇부터 자신의 아이까지 말이지요.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딱 맞추어 태어난다면, 태어난 아이도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부모도 서로가 생각이 엇갈려 싸우거나 대치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살아간다면 평화로운 시간은 계속될 테니까요. 그렇게 행복할 테니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게 정말, 행복일까요? 누구에게요?<BR><BR>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12년과 먼 미래의 2075년은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감정보다 이성이 우위여야만, 살아갈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무엇이든 월등하고 우수해야만 존재 가치가 부여되는 사회,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거기에 따라야만 하는 의무감이 필수인 곳. 감정이 넘쳐흘러서는 안 되며 냉정한 이성을 가진 자가 앞서 가는 것이 너무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린 곳이지요. 이미 그렇게 살아온 어른들이 맞춤형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치열한 그 시간들을 견디듯이 살아온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위에 있기를, 남들보다 더 안전하게 앞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다가오거든요.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였을 때 가졌던 그 생각들이나 바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 점차 희석되어지고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자신들이 아이였던 시간들은 기억에서 아예 사라지기도 합니다. 입장이 바뀌니 부모들의 생각만 남아있을 뿐이니까요. 부모의 입장에서 보고 부모의 입장에서만 하는 말들이 옳은 것으로만 판단되는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까요. 정녕, 오래전 아이였던 자신들의 그 시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나요? 아이였던 시간을 건너 뛰어 어른이 된 순간만 간직하고 싶은가요? <BR><BR>아이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75년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2012년의 아이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요? 제 눈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가 않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부모가 정해준 스케줄대로 하루를 움직이고 미래를 결정짓는 것처럼 2075년의 시우와 시우의 친구들 역시도 부모의 조종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보여줍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야할 길이 정해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새로운 개발로 태어나는 로봇들뿐입니다. 그것마저도 계급이 정해져 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소유하는 로봇의 레벨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단일 감정의 로봇이냐 아니냐의 차이. 소유한 장난감이 바뀌는 정도의 것으로만 여겨지는 소소한 일상 중의 하나일 뿐인 것이지요.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사는 동네가 어디냐, 부모가 가진 부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어울리는 무리들이 달라지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입니다. 현재에서 6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그 시간에 달라진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BR><BR>“감정을 느끼는 로봇이야. 분노와 증오도 할 줄 알고, 기억까지 있어. 언젠가 인간을 위협할지도 몰라.”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낸 많은 것들의 부작용은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업그레이드 된 장난감으로 여겼던 감정 로봇들은 인간보다 더 감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대항하고 있었고, 인간은 로봇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조종이 불가능해지자 폐기처분 해버립니다. 인간과 로봇의 전쟁 아닌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겨야만 끝이 나는 전쟁.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도 더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단순히 로봇과 인간의 대치가 아닌, 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지요. 맞춤형 아이 1호인 김선 박사가 결코 자랑스러움만 가졌던 것은 아니라는 것과 로봇들의 반란과 시우의 반항으로 보이는 행동.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그러한 현상들이 보여주려고 애쓰는 게 무엇인지를요. 본인들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서 꾹꾹 눌러 담았을 어둠을 봐야할 때입니다.<BR><BR>시우 VS 레오? NO! 시우 = 레오! <BR>냉정한 이성으로 채워진 강한 아이를 만들고 싶어서 거기에 맞게 태어난 시우에게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만들어진 기억을 주입시킨 감정 로봇 레오는 너무 달라 보입니다. 감정 따위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온 시우에게 레오가 드러내는 감정들은 부담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반면 감정 로봇인 레오는 시우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에게 입력된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친구가 되고 싶고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지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시오와 레오가 그렇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우와 레오는 너무 닮은 아이들입니다. 엄마에게 조종당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계속 살아갈 시우와 인간에게 조종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로봇 레오는 너무 닮았거든요.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미래가 주체적인 것이 아닌 정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는 묻혀버리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아가야할 둘은 너무 닮았습니다. “로봇으로 만들어진 레오 =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시우” 그래서 결국 두 아이가 가지는 슬픔과 분노와 끌려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지요. 하지만 긍정적인 것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 로봇 레오와 이성적인 인간 시우처럼요. 레오가 감정을 나누어주고 느끼게 해주었던 것과 시우가 레오에게 제 발로 찾아간 것은 같은 마음으로 보입니다. 진심이 통한 것이라고. 결국은 그 순간 인간이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간성과 진심을 시우와 레오 그 아이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찾아낸 것이라고……. <BR><BR>“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만들 수는 없어. 내가 그런 존재도 될 수 없고. 나는 신도 아니고 그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니니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내고 무엇을 죽이고 있었던 것일까요. 누구를 위해 그렇게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이가 바라는, 진짜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면서 계속 해왔던 것일까요. 그 모든 것들을 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알려주어야 할 것들을 알고나 있었던 것인지요.<BR>부모, 당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당신은 완벽한 부모였나요? 혹시 아이를 통한 대리만족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나요? “모두 널 위한 거야.” 이 한마디로 아이를 조종하려 하지는 않았나요? 치열한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경쟁 사회니까요.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었던가요? 아이가 경쟁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앞서 달려가는 것보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서로가 진심으로 먼저 보듬어주고 지켜봐 주어야할 가족의 일원으로 보는 시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요? (웃음) 저도 쉬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루하루를 부모와 자식이라는 자리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라는 것을 혹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매 순간 서로의 존재감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부모는, 아이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야지 조종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우리의 아이들은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0번째” 아이니까요.



《장시우 프로젝트》
성장과정이나 감정상태, 진로가 정해지고 조종되었던 장시우 프로젝트. 더 이상 만들어지고 조종되어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시우가 아닌, 시우 자신이 만들어가는 ‘진짜 장시우 프로젝트’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걸맞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성은 감정을 사랑해야 하고, 감정은 이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성과 감정은 우리 안에 늘 공존해야 조화를 이루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감정이 있고, 감동을 할 줄 아는 존재이기에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BR>“걱정하지 않아도 돼.”<BR>“조금 늦어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너처럼 결정이 늦어지는 아이들이 있어. 엄마가 저러는 건 네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탁월하다고 믿기 때문이야.”<BR>“문제가 생겼다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92/73/cover150/895461735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352</link></image></item><item><author>헤르메스</author><category>미스터리</category><title>'쓰리 세컨즈'를 읽는다는 것은... - [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title><link>http://blog.aladin.co.kr/748481184/5542761</link><pubDate>Mon, 02 Apr 2012 22: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48481184/55427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35&TPaperId=55427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4/43/coveroff/895276493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35&TPaperId=55427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a><br/>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03월<br/></td></tr></table><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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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작년, 영국의 미스터리 작가협회가 비 영어권 미스터리 소설중 최고의 작품에게 수여하는 '인터내셔널 대거'는 우리나라에도 스릴러 '비스트'로 소개된 바 있는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의 다섯번째 작품 '쓰리 세컨즈'에 돌아갔다. 이로써 그들은 이미 형사 발란더 시리즈의 헤닝 만켈과 '밀레니엄 시리즈로 지금은 스릴러의 대표적 이름이 되어버린 스티그 라르손을 배출하여&nbsp;이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nbsp;출간된&nbsp;스릴러를 뜻하는&nbsp;'노르딕 느와르'에 있어서 일종의 총본산으로 자리잡은 스웨덴 출신으로 바로 그들의 직계 계승자임을 입증하는 방점을 확실히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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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르뽀타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것은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그들의 작품은 한 마디로 고발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nbsp;그들의 작품은&nbsp;독자들에게 단순히 읽는 재미만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직접 바로 작품 속으로 가져오며 독자들에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여파를&nbsp;항상 직시하도록 한다.&nbsp;그래서 대단히 묘사가 현실적이며 르뽀타쥬가 그렇듯이 때로는 논쟁이 유발되도록 그것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가감없이 펼쳐보인다. 이게 그들의 스타일이 르뽀타쥬라고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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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단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문학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게다가 그것이 문학적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사유든 행동이든 직접적이며 현실적인 참여를 불러 일으키도록 만든다. 즉 그 문제를 바로 독자 자신의 문제로 인지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또한 그들의 문학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며 그렇게 사실성의 충실한 복원을 위해 작가의 관점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묘사하는 사건을 되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nbsp;만일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의&nbsp;소설들이 뭔가 지금까지 읽었던&nbsp;같은 장르의 소설들과는 다르다고&nbsp;느꼈다면 아마도 바로 그들이 가진 이러한 특징이 당신의 의식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을 건드린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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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그들이 이런 특징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 작가들 자신에게서 연유한다. 스웨덴의 노르딕 느와르를&nbsp;이끌어갔던 대표주자들인 헤닝 만켈과 스티그 라르손은 모두 저널리스트 출신이었는데 바로 쓰리 세컨즈의 작가 안데슈 루술룬드 역시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고발문학적 성격은 만켈과 라르손이 그랬듯이 바로 그러한 출신에서 기인되는 탓이 크다. 더구나&nbsp;콤비인 버리에 헬스트럼은 실제 형무소에서 복역까지 한&nbsp;범죄자 출신이다. '쓰리 세컨즈'가 보여주는&nbsp;스웨덴&nbsp;형무소의 압도적 리얼리티는 분명 이 헬스트럼의 공이다. 그런데&nbsp;헬스트럼 자신이 소설에 뛰어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nbsp;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불행에 빠지는 것을 막자는 동기도 있었다.&nbsp;이런 면에서 그의 소설 쓰기는 어쩌면&nbsp;사실상 참회와도 같은데 이러한 그들의 출신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이 사람들에게 만연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nbsp;고발문학적 성격을&nbsp;띠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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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쓰리 세컨즈'는&nbsp;'경찰 정보원'의 이야기이다.&nbsp;여기서 경찰 정보원이란 범죄조직에 잠입하여 그들을 일망타진할 정보를 알려주는 존재를 뜻한다. 뭐, 이런 경찰 정보원에 대한 얘기는 사실 그리 새롭지 않다. 비근한 예로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무간도'에서 이미 접해본 바 있다. 하지만 거기서 경찰 정보원 역할을 했던 양조위는 그래도 어엿한 경찰 출신이었다.&nbsp;'쓰리 세컨즈'의 정보원 호프만은 경찰 출신이 아니라 범죄자 출신이다. 그는 범죄자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처음엔 돈을 위해 다음엔 가족을 위해 경찰에 의해&nbsp;고용되어 정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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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홍콩&nbsp;느와르에서 경찰 정보원은 경찰과&nbsp;범죄조직 사이의 그렇게 경계에 서 있는 자였다. 경찰이지만 범죄자 역할을 해야만 하는 양조위는 그 때문에 자신이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겪게 된다. 이것은 사실 그대로 곧 중국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홍콩인 자체를 은유한 것이기도 했다.&nbsp;양조위가 겪는 정체성의 혼돈과 불안은 그대로 역사적, 체제적 경험이 전혀 다른 중국에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맞춰야 하는 홍콩인들이 겪는 혼돈과&nbsp;불안이었다.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이 가지는 상징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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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사실&nbsp;97년 중국에로의 강제반환을 앞에&nbsp;두고 있었던&nbsp;홍콩인들의 특성 때문에 이러한 경계 위의 존재들은 늘 홍콩 영화에서 즐겨 사용되던 소재이기도 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홍콩 느와르의 대부격이라 할만한 오우삼 감독의 홍콩 시절 마지막 작품 '랄수신탐(국내 개봉 제목은 '첩혈속집'이고 영어 제목은 'HARDBOILED' 이다.)이다. 여기서도&nbsp;양조위는 무간도와 똑같이 경찰 출신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는데 (때문에 이 영화는 사실 무간도의 원본 같은 영화라 할만하다.)&nbsp;그 경계 위에서 양조위가 느끼는 혼돈과 불안은 홍콩인 자체만이 아니라 곧 이제 홍콩을 떠나 미국에서 감독 생활을 해야 하는 오우삼 본인의 혼돈과 불안마저 드러내고 있어 흥미롭다. 사실 영화 랄수신탐은 쓰리 세컨즈와 비슷한 부분이 좀 있는데 우선은&nbsp;영화 초반에 이 소설 '쓰리 세컨즈'에서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그 사건 그대로 한 경찰 정보원이 현장에서 사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 정보원을 죽인 것은 바로 주인공 형사인 주윤발이었지만 이러한 상황, 그러니까 같은 동료 경찰인데도 서로의 정체를 몰라 어이없게 죽이게 되는 일들은 호프만을 정보원을 만든 유일한 경찰쪽 연락책 '빌손'의 말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nbsp;또한 정보원이 죽으면 연락책이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던 그&nbsp;신원 증명을 위한 비밀 서류를 가져와 없애는 장면도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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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시대와 국적의 차이는 있으나 그렇게 이 소설 '쓰리 세컨즈'는 홍콩 느와르와 마치 어깨를 나란히 하기라도 하듯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콤비 중 하나인 헬스트롬&nbsp;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그는 범죄자였다가 갱생하고 다시 작가로 새로이 삶을 시작하는 자이다. 앞서 랄수신탐의 양조위의 심리 상태는 곧 홍콩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이 작가 생활을 해야 하는 감독 오우삼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 말했었는데 바로 그와 똑같이 그러한 헬스트롬의 심리가 그대로 '쓰리 세컨즈'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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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이렇게 생각하면 이 작품이 지닌 색다른 재미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작품 속 정보원 호프만과 연락책 빌손의 관계가 어쩐지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호프만을 정보원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빌손은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갱생 프로그램을 취재하다 만난 헬스트럼에게 다시금 작가로 새로이 살게 해 준 안데슈 루술룬드와 비슷하고 호프만은 영락없이 헬스트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빌손과 호프만의 얘기를 그리면서 서로의 상황을 유추하면서 집필 중 낄낄거리고 있을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를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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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다른 쪽으로 잠깐 얘기가 샜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이 소설은 앞에서 말했던 대로 '경계 위에 서 있는 자'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경계 위에 서 있는 자란 무엇보다 강요되는 변화에 직면한 존재다. 게다가 그건 스스로 초래한 모순적 상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 위에 서 있을 것을 선택했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확고했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계 위에 서 있는 자들의 얘기는 일단 의도된 연기와 진짜 정체성의 경계가 사실은 상당히 가변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테면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한 연구팀이 모의 감옥 실험을 했을 때 처럼 말이다. 그러니까&nbsp;그 실험에서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을 간수와 죄수로 나누어 그 각각의 역할을 연기하도록 시켰지만 어느새 사람들이 거기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정말 스스로가 간수와 죄수인 것 처럼 행동하고 서로 반목에 반목을 거듭하더니 결국엔 폭력사태까지 일으키고 말았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들의 연기가&nbsp;그들의 진짜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이다.&nbsp;&nbsp;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의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역시 이와 비슷한 것을 보여준다. 거기서도 일부러 정신병 환자인 것 처럼&nbsp;연기하는 주인공은 나중에 가서 자신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미친 연기를 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nbsp;이건 이 소설 '쓰리 세컨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nbsp;호프만은 정보원으로 일하는 동안 살아남기 위하여 내내 스스로 '범죄자 보다 더 완벽하게 범죄자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누누히 되뇌이는데 그와 같은 완벽한 연기&nbsp;때문에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종종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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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쓰리 세컨즈'가 경계 위에 서 있는 자를 가져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도된 연기가 진짜 정체성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
&nbsp;그런데&nbsp;왜 그들은 이것을 가져온 것일까? 바로 거기에 그들이 '쓰리 세컨즈'를 쓴 진짜 목적이 있는 것&nbsp;같다.&nbsp;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결론 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nbsp;호프만을 두고 전개되는 비밀스런 공모와 음흉한 획책의 주체가 되는 '국가' 자체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란 게&nbsp;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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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이 소설이 헤닝 만켈과 스티그 라르손의 것을 바로&nbsp;계승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쓰리 세컨즈' 역시도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nbsp;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nbsp;의심과 불안을 정확히 꼬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호프만이&nbsp;스웨덴 국가에게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스웨덴 사회에&nbsp;마약을 만연시키려는 폴란드 마약 조직을 소탕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nbsp;존재이기 때문이다. 폴란드 마약 조직은 소설 초반에서는 사람들을 관광객으로 위장시켜 스웨덴 내부에 마약을 들여오고 급기야는 스웨덴 형무소를 모두 그들의 마약 시장으로 만들려 획책한다. 그 교도소에서는 사회 계층의 상하를 막론하고 모두 마약을 구입하는데 상류층은 높은 값을 지불해오는 수입원으로 하류층은 그들의 부하로 삼는다. 그렇게 폴란드 마약 조직은 교도소로 상징되는 사회 전체를 집어 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시 보면 정확히 몰려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나라를 깡그리 망칠지 모른다는 스웨덴 자국민의 공포가 반영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즉&nbsp;폴란드 마약 조직이란 이 소설에서 일종의 은유인 셈이다.&nbsp;그러니까 스웨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을 드러내기 위한 은유말이다.&nbsp;그렇다면 우리의 다음 질문은 이것이 다. 이처럼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과 호프만으로 집약되는 경계에 서 있는 존재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nbsp;
&nbsp;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정체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nbsp;
&nbsp;외국인 혐오증은&nbsp;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혐오증이다. 그렇게 스웨덴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이 고정적이고 불변적이라 생각해서 외국인들을 규정하고 혐오하는데 과연 정체성이란 그런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는&nbsp;바로 이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nbsp;무엇보다&nbsp;호프만을 통해서 말이다.&nbsp;그가 경계 위에 서 있는 자로서 자신의 연기와 진짜 정체성을 구별하기가 혼란스러웠듯이 그렇게 정체성이란 것도 알고보면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의도와 의지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존재임을&nbsp;보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두 콤비가 경계에 서 있는 자를 소설의 핵심으로 가져온 이유였다.
&nbsp;
&nbsp;&nbsp; 한 마디로 정체성이란&nbsp;우연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nbsp; 그런데도 스웨덴은&nbsp;그것을 마치 운명적인 것 처럼 받들고 그로 인해 외국인에게 불합리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는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nbsp; 한 편, 이렇게&nbsp;정체성을 가변적으로 보는 것은 무엇보다 헬스트럼 작가 자신과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 그 역시도 범죄자란 정체성에서 새로이 작가의 정체성으로 탈바꿈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지금처럼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하나로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변모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주었던 것도 분명 한 몫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만연된 전과자에 대한 편견이 거기에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었다면 아무래도 작가로 성장하기엔 꽤 부담으로 작용했을테니까 말이다. 즉 우리는 여기서 헬스트럼 자체가 증명하는 바,&nbsp;그러한&nbsp;정체성이란 게 확고하다는 관념이 또한 존재가 지닐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마저 사전에 압살할 우려가 있음을 본다. 바로 여기서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가 왜 이토록 외국인 혐오증을 문제시&nbsp;하는가 역시 우리는 깨닫게 된다.&nbsp;그것은 바로 새로이 돋아날 무수한 가능성들이 오로지 정체성에 대한&nbsp;고정관념으로 인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임을 말이다. 이것은 단적으로 책의&nbsp;후반, 국가가 호프만이 위협적인 존재가 되자 행하는 책략에서&nbsp;그대로 드러난다.
&nbsp;
&nbsp;
&nbsp;가급적 내용 노출을 막기 위해 이쯤에서 결론으로 서둘러 가자면, '쓰리 세컨즈'는 말하자면 이런 소설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따라서 여전히 점증되고 있는 스웨덴 사회에 만연된 외국인 혐오증에 대해 그 혐오증의 기반이 되는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볼 여지를 줌으로써 오히려 외국인의 유입으로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가능성들을 지켜주려고 하는...&nbsp; 그 타자와 타자가 일으킬 변화에 대한 포용이 바로 '쓰리 세컨즈'가 가진 핵심이다.
&nbsp;
&nbsp; 그렇게, '쓰리 세컨즈'는&nbsp;이를테면 'ONE COIN CLEAR' 하듯이 잡은 순간 내처 끝까지 읽게 될 정도로 재미있는 스릴러이지만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남게 되는 건 재미 보다 더 한 '나'를 돌아봄이다. 어쩌면 정말 호프만이 그랬듯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으로 알고 있는 것은 그저 하나의 연기에 불과할 지 모른다. 사실 우리에겐 '~답다'라는 말에서 바로 드러나듯, 역할에&nbsp;따라 걸맞게 행동해야 하는 정형화된 행위 형식들이 참으로 즐비하지 않은가? 어쩌면&nbsp;우리는 그저 우리의 본성과는 상관없이 그 정형화된 행위 형식들을 답습할 뿐인데도 그것을 '진짜 나'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nbsp;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는 바로 거기로 나를 데려간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사실은 전제하고 있는 것... 내가 여기고 있는 '진짜 나'가 '정말 나'인지 알아보게 만드는 경계의 장소로 말이다.
&nbsp;&nbsp;그 균열의 지점에서 문득 그 틈새로 지나가는 바람이 되는 것... 안데슈 루술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가 나에게 남긴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nbsp;가변과 유동으로 넘쳐나는 존재인 바람...
&nbsp;
&nbsp; 아마도 그래서 마지막이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nbsp;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보자는 말로...
&nbsp; 그렇게 늘&nbsp;다른 날에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있는 존재는 바람 밖에는 없을테니까...&nbsp;&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04/43/cover150/8952764935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3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타인에게 말 걸기</category><title>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과 마주하다 - [원더보이]</title><link>http://blog.aladin.co.kr/rilkecactus/5543928</link><pubDate>Tue, 03 Apr 2012 1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rilkecactus/55439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TPaperId=554392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93/55/coveroff/89546174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TPaperId=55439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원더보이</a><br/>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02월<br/></td></tr></table><br/>&nbsp;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소한 우연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nbsp;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이다.&nbsp;해서 우리는 종종 만약에 라는 말을 사용하다. 만약에 그 순간&nbsp;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공간에 가지 않았더라면 삶은 분명 달라졌을 꺼라 말한다. 
&nbsp;
&nbsp;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시각, 그 순간에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건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만약에라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나와 닿은 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상하게도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nbsp;작은 위로를 받은 듯 충만해진다.&nbsp;그러니까 이 말은 김연수의 소설은 누군가도 나처럼 슬프고 누군가도 나처럼 아팠고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너도 괜찮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함이 있다는 거다.
&nbsp;
&nbsp;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 열네 살 정훈이 들려주는 이야기 &lt;원더보이&gt;는 특히 더 그랬다.&nbsp;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는 아빠와 단 둘이 살던 정훈은 1984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빠는 죽고 정훈만 살아남은 것이다. 공교롭게 그 사건은 남파 간첩이 연류 되어 있어 죽은 아빠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자가 되고 정훈은 세상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고아가 된 정훈은 나라의 보호를 받게 되고 그 뒤로 정훈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된다. 정훈의 능력을 알게 된 국가는 이를 이용하려 한다. 
&nbsp;
&nbsp;1980년대, 사회는 불안했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젊은 청춘이 많았던 시절이다.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정훈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했다. 아니, 국가가 원하는 대로 읽어야 했다는 게 맞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누군가의 두려운 마음을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는 일은 사춘기 소년 정훈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nbsp;아빠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도 힘든 아이에게 국가라는 보호자는 참으로 가혹했다.&nbsp;그러던 중 정훈은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 있다는 기쁘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고 아빠의 유품인 망원경과 수첩을 통해 어딘가 존재할 엄마를 찾아 나선다.
&nbsp;
&nbsp;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세상의 모든 게&nbsp;다르게 보였을 정훈은&nbsp;자신의 병실을&nbsp;지키다 제대한&nbsp;선재를&nbsp;찾아가고 그를 통해 강토를 만난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고 했을까. 아니, 사실은 강토를 고문을 당하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보았던 것이다. 약혼자를 잃은 강토는 정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훈은 죽은 아빠가 단지 보이지 않을 뿐 저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그러니 언젠가는 분명 아빠와 닿을 수 있다는&nbsp;것이다. &nbsp;
&nbsp;
&nbsp;김연수는 정훈이라는 아이의 슬픔을 통해 1980년대의 슬픔을 보여준다. 더불어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그 누구도 위로하지&nbsp;않는&nbsp;정훈의 아픔을 안아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는 현실은, 그 시절을 지나온 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의&nbsp;어른은&nbsp;어떠했나.&nbsp;강압적이었고 비겁했다.&nbsp;오직 당사자만이 그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세상이, 끔찍하다. 물론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nbsp;
내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가령 그것은 서울대공원에 놀러 간다거나, 밥을 짓는다거나,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거나, 나무의 연두빛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일이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이거나,&nbsp;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삶을&nbsp;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막연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그 일상들을 아름답고 경건하게&nbsp;지켜보고 말한다. &nbsp;&nbsp;&nbsp;
&nbsp;
&nbsp;‘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사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 &lt;단편, 뉴욕 백화점 중에서&gt; 
&nbsp;
&nbsp;‘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lt;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gt;
&nbsp;
&nbsp;그러니까 정훈은 열네 살이었던 1984년을 지나가게 될 것이고 어른이 될 것이다. 아빠가 죽던 그 순간 보았던 빛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희선 역시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희선이 아닌 강토의 삶을 살았던&nbsp;시절을 간직할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정훈처럼 열네 살의 소년도 아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기는 커녕 내 마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정훈과 강토가 서로에게 바람이었던 것처럼&nbsp;누군가에게 우주에서 부는 바람을 만날 것이라는&nbsp;것을,&nbsp;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바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nbsp;말이다.&nbsp;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봉우리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 말이다.
&nbsp;
&nbsp;‘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lt;원더보이 p. 300&gt;
&nbsp;
&nbsp;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좋은 시절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슬픔, 아픔, 고통, 절망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삶이라는 걸 말이다.&nbsp;그 위험한 돌, 하나 하나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훈의 삶이 그러했듯 우리는 분명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찰나의 순간에 우주의 빛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저절로 어떤 비밀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nbsp;당신과 마주한 지금 일 수도 있고, 아직 닿지 않은 누군가를 만날 때일 수도 있다. 그렇게&nbsp;눈부신 날들이 바로 생이다. 그러니&nbsp;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품은 비밀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작성한 글 E--><!--메모 출처 S --><!--메모 출처 E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93/55/cover150/895461748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link></image></item><item><author>모든사이</author><category>환멸과 유혹</category><title>쓰이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 -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deepblueroom/5548880</link><pubDate>Thu, 05 Apr 2012 1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deepblueroom/55488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0498&TPaperId=55488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56/62/coveroff/89374904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0498&TPaperId=55488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a><br/>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07월<br/></td></tr></table><br/>몇 년 전에 &lt;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gt;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후 이 나라에서는 나보코프나 제인 오스틴을 읽는 것은 거의 목숨을 건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 나라가 술을 사랑하고, 술과 연애를 찬미하던 시인 오마르 카이얌의 나라인지 참으로 의아스러웠다.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이라면 그 권력을 해체하고 민주화하면 되지만, 다수 국민의 참여와 동의하에 형성된 문화적 억압을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란과 같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 국가에서 특정 종교의 신념과 관습이 강요되는 상황은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해 내가 혐오감을 갖는 이유다. 
&nbsp;
&lt;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gt;는 바로 그런 이슬람 근본주의 지배하의 이란 이야기다. 소설 속의 작가는 사라라는 여자와 다라라는 남자가 연인으로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 그는 가상의 작가도 아니고, 바로 작가 자신인 샤리아르 만다니푸르다. 하지만, 그의 연애소설은 문화 및 이슬람교 지도부의 ‘페트로비치’(이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 등장하는 형사의 이름이다. 페트로비치는 소설 속에 검열 담당 공무원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차라리 작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검열을 하도록 하는 자기검열 기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에 의해 문장 하나하나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검열을 받아야 한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그래서 작가의 ‘사랑이야기’와 작가가 당대의 이란 사회 검열구조 속에서 소설을 실제로 써가는 이야기, 두 축으로 진행된다. 소설과 소설의 발생사적 맥락을 그대로 드러내기. 이야기의 창조자로서 작가가 날 것으로 드러나는 소설, 포스트모던 소설의 한 특징인 셈이다. 
&nbsp;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처녀가 아닌 여자는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나라인 이란에서 ‘사랑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그러니, 소설 속의 사라와 다라는 둘이 얼굴을 마주 본 채 거리를 걸어다닐 수 없고, 공개된 장소에서 키스를 할 수도 없음은 물론, 집으로 초대할 때조차도 이웃 감시자의 예리한 눈을 피해야 한다. 이란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멜로 드라마’는 연인들의 대화를 ‘교육적인’ 이야기로 더빙되어 방송되고, &lt;위대한 개츠비&gt;니 &lt;백년동안의 고독&gt;을 읽는 것은 ‘문화 및 이슬람교 지도부’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찍힐 수 있는 모험이 된다. 소설이 이렇다면 정치소설이거나 정치사회적 억압을 고발하는 고발문학 쯤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그러나, 샤리아르 만다니푸르는 그렇게 엄숙하게 이란의 현실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 않다.
&nbsp;
작가는 자신이 검열당할 만한 문장을 쓰고, 그것을 줄을 그어 삭제해 버린다. 삭제의 대목은 그대로 작품속에 노출되어 ‘가능한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의 실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령, “드레스 가슴과 배 쪽에 접혀 있는 새틴 주름을 매만지던 사라의 눈에 다라의 눈에 보이는 갈망에 사로잡힌다”는 문장에서 ‘드레스 가슴과 배’,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갈망’은 삭제가 되어야 한다. 여성의 신체를 문장으로 드러내는 것, 갈망과 같은 성적 욕망을 의미하는 용어를 구사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런 검열로 삭제당한 문장을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조롱이자 가벼운 풍자의 방식으로 이해된다. 적어도 검열과 폭력적인 억압구조에 대항하는 저항과 폭로의 리얼리즘은 아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구조 하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나름의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제 몫의 삶을 찾기위해 분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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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독재와 저항의 대립 구도 속의 어느 한 편에 위치해 있지 않다는 것은 대단히 우화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소설의 서두에 등장하는 경찰과 시위대의 가운데 서 있는 소녀와 그 소녀가 들었던 구호, “독재에 죽음을, 자유에 죽음을”에서도 그렇다. 전자는 저항세력을, 후자는 지배세력을 상징하는데, 그 구호가 한꺼번이 쓰여져 있는 이 모순. 이 대립과 부딪침의 어느 구석에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그렇지 않을까. 그의 영화에는 적어도 이란의 정치적 억압과 문화적 불모성이 고발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 선함과 척박할 지언정 소박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지 않은가.(하지만, 동시에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나는 ‘순백의 상상력’을 보기도 한다. 그것은 불순물이 제거된 본성적 착함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보여주는 방식인데, 이런 상상은 이슬람근본주의의 억압성이 문화적으로 드러난 형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순함과 모든 ‘악’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미장센) 그래서, 작가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쓰여지지 못하고, 사라와 다라의 사랑도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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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속 여주인공 사라는 다라와의 마지막 밀회를 위해 그의 집을 찾아오면서 ‘재스민 덤불’을 본 이야기를 전한다. “정원 곳곳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를 식물에게 허락한다는 것은 아름다워요.” 사라의 눈에 비친 재스민 덤불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의 아름다움, 억압되지 않은 어떤 자유의 상징 같은 것이다. 남자인 다라의 눈에는 보여지지 않지만, 여자인 사라의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이란 같은 문화적 억압국가에서는 여자가 ‘사랑’에 대해 더 용감하고 욕망에 더 솔직하다. 다라는 끊임없이 사라의 사랑을 의심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하는 것에 비해 사라는 줄곧 다라를 사랑하며 과감하게 그에게 구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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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쓰고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이 소설의 방식은 낯설기도 하고, 책읽기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말하자면 소설을 읽는 과정 전체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체감케 하는 것이다. 작가의 문학적 교양도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카프카, 헨리 제임스 같은 고전 작가를 비롯하여 이란의 고대 문학, 쿤데라와 다니엘 스틸과 같은 현대 작가도 곳곳에서 인용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재미있었나? 출퇴근 와중의 토막시간과 주말 한낮 편안한 휴식을 반납할 만큼 흥미로웠던가?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이 책에서 얻은 거의 유일한 이득은, 난 이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물론, 이 소설 속 현실과 실제의 그 곳이 같다라는 전제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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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책에서&nbsp;얻은 또하나의 교양지식. 와인의 한 종류인 '쉬라즈'는 이란의 한 지명을 뜻한다는 것. 이 곳이 원산지인 포도 종류가 오늘날 '쉬라즈' 와인이 되었다는 것.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56/62/cover150/893749049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0498</link></image></item><item><author>취한미남</author><category>만난 책들</category><title>백치 아다다, 옛그림 앞에서 입을 떼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 - [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title><link>http://blog.aladin.co.kr/795816154/5551572</link><pubDate>Fri, 06 Apr 2012 1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95816154/55515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075X&TPaperId=555157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65/88/coveroff/89619607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075X&TPaperId=55515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a><br/>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01월<br/></td></tr></table><br/>
 
그 앞에만 서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심장은 벌렁벌렁 두근반 세근반이고 혹시라도 누가 나에게 물어볼까 주위 눈치를 재빨리 살펴본다. 때로는 긴장감에 못 이겨 마른기침이 나오기도 한다. 나를 이토록 한 순간에 멍청이로 만드는 게 살면서 그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바로 동양화 감상이 내게 있어 쥐약이다. 낭만주의, 인상파, 입체파, 나비파, 야수파 등등 서양미술사에 대해서 학문적으로나 상식선에서는 어느 정도 입이 열리는데, 이놈의 동양화 앞에 서면 백치 아다다이다. 동양권에 살면서 우리의 미술을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어디 가서 입 한번 놀리지 못할 정도로 모른다면 분명, 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비단 나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문화를 향유한다고 어디 가서 고상 떠는 이들조차도 동양화에 대한 관심은 미비하다. 그렇다고 서양문화에 열광하는 동양인의 콤플렉스가 자초한 무식과 무관심이라고 폄훼하고 매도할 수만도 없다. 근대화 이후, 사회, 문화 측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통예술과 멀어진 부분도 얼마간 있기 때문이다. 강렬한 색채, 명징한 상징과 이야기가 특징인 서양미술과 달리, 우리의 옛 그림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기술상의 문제로 대부분 누렇게 변색돼, 감상의 시각적 재미를 반감시키기까지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동양화에 대한 관심은 서양미술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그렇다고 면피를 받고 싶지는 않다. 수묵화, 담채화, 사군자, 민화 등 우리의 미술은 3차원적 세계를 2차원적 단면에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무형의 정신을 시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서양문화에 익숙하고 길들여졌다고 해도, 본질적인 면에서 바뀌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 정신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옛것 그대로이다. 그 옛날 엄격한 지배계급사회에서 소위 귀족문화로 향유된 그림은 경직된 사회분위기만큼이나 엄격한 형식미와 도식성을 가지고 제작됐다. 국화는 도연명을, 매는 군주, 모란은 부귀영화 등, 일정한 패턴이 정해진 상태에서 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격하게 지켜진 도식성이 새로운 것을 좇아 열광하는 현대인의 심미안에선 보자면 지루하고 고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그려지게 된 연유나 그 안에 내재된 정서나 정신을 이해한다면, 우리 옛 그림은 서양미술과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한다. 물론 안견, 정선, 김홍도, 심사정, 김정희, 강세황 등, 조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그들의 그림이 서양화의 인기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렇게 변색된 그림에서 감동을 마치 보물찾기하듯 찾아내 즐긴다는 것은 제대로 문화특권을 향유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전통미술을 주제로 여러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를 펼치고 있는 고연희 교수의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편견과 무지로 느끼지 못했던 옛 그림의 감동과 그 감동을 있게 한 앎의 기쁨을 제대로 호사스럽게 누리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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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 옛 그림의 다양한 감상법 중, 문학과 그림의 관계로 보는 그림 감상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은 중국 남송의 주자(1130~1200)가 세운 주자학을 나라의 근간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당연지사, 예술과 생활도 성리학의 영향력에 안에 재배치됐다. 특히, 문학의 향유 방법에 있어서도 성리학적 접근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 향유 방법 중에 하나가 문학을 그림으로 옮겨 감상하는 것이었다. 즉, 그림의 주제나 소재로 문학을 인용했다. 때문에 그림의 제작과 형식은 물론, 감상방법에서도 성리학적 접근과 해석이 골자였다. 현존하는 옛 그림 대부분이 詩나 동양고전의 한 구절을 그림 속에 포함시켰고, 때로는 그림을 설명하는 운문을 그림 속에 적어 놨다. 시간예술인 문학을 시각예술 그림으로 전이한다는 것은, 문학을 모르면 결코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현대에 와서 옛 그림의 이러한 특징은 그림 감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다. 원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도 짐작되지 않는 오래된 그림 앞에서 우리가 매력을 못 느꼈던 이유도, 그림 외관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한문으로 표기된 문학을 몰라 그림 속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가 뚫려야 밖에 소리가 들리듯, 눈이 열려야 그림 안 세계도 보이는 법이다. 결국, 동양화 감상은 단순히 시각적 안목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 고난도의 문화해독 체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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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원기」로 유명한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 도연명(365~427)은 정절선생, 오류선생 등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난히 사랑한 시인이었다. 속세를 벗어난 전원생활, 無心과 無爲의 경지를 보여준 그의 문학세계는 그림의 단골소재였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과 추사파의 대표화가 전기는 도연명의 시 한 수를 포함한 그림을 남겼다. 책에서 소개한 전기의 「귀거래도歸去來圖」와 정선의「동리채국東籬採菊」과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은, 우리 옛 그림이 어떤 식으로 문학을 그림으로 표현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명징한 예일 것이다. 도연명은 말단 관리직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뒤, 그 모든 속세의 삶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부와 명예, 권력에의 욕심을 버린 그는 자연에서 얻은 삶의 깨달음을 시로 남겼다. 무엇보다 은둔자의 쓸쓸함마저 무심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문학세계는 미술의 경지와 꼭짓점이 맞닿아 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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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 알려진 요절한 천재, 조선 후기의 화가 전기(1825 ~ 1854)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서사성을, 그림「귀거래도」로 표현했다. 아래의 글은 도연명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것 중, 그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분만 발췌해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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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리.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왜 돌아가지 않으리.
내 스스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었던 것을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지난 일 탓할 필요 없고 앞으로의 일을 올바르게 할 것을 깨달았도다.
길을 잘못 들었지만 더 멀리 가기 전에, 이제는 옳고 예전은 잘못되었던 것을 알았다.
배가 흔들흔들 가볍게 가고, 바람이 한들한들 옷을 스치는구나.
길손에서 물어 가노라니, 새벽빛 희미한 것이 한스럽구나.
(중략)
세 갈래 길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살아 있구나.
어린 놈 손잡고 방에 드니, 술 가득한 항아리가 있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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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그림에는 두건을 쓰고 쪽배에 몸을 실은 도연명이 매우 작게 그려져 있다. 대신, 소나무와 집을 둘러싼 대자연의 풍경이 새벽안개에 쌓인 듯 후경에 거대하게 배치돼 있다. 그림은 ‘배가 흔들흔들 가볍게 가고, 바람이 한들한들 옷을 스치는구나’에 드러난 시인 자신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전기는 대자연에 가까워질수록 담대해지는 도연명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작게, 자연은 거대하게 그려 표현해냈다.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 도연명의 사연과 그것을 읊은 그의 시를 알고 전기의 그림을 본다면, 떠나가는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온전한 꿈과 기대의 설렘을, 그림 감상자 역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돌아가는’ 귀거래의 행복에 잠시나마 젖어들 것이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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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그림이 귀거래의 기대와 행복을 표현했다면, 정선의 부채그림 두 폭「동리채국」과 「유연견남산」은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은자의 깨달음을 시각화한 그림이다. 정선의 부채그림 두 폭은 총 20수로 이루어진 연작시인 도연명의「음주」에서 가장 유명한 5수의 구절인 채국동이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을 모티브로 삼았다. 아래는 5수를 한글 번역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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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를 지어 마을에 살고 있으나
수레 다니는 시끄러움이 없구나.
누가 묻네, “그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소?”
마음이 아득하면 머무는 곳도 절로 외지게 되오.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가 
그윽이 남산을 보노라.
산 기운이 저녁이라 아름답고,
새들이 날아 짝지어 돌아가네.
이 속에 참뜻이 담긴 걸
꼬치꼬치 말해주고 싶은데 이미 말을 잊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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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방법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두건을 쓰고 있거나, 술병이 그려져 있다면 대게는 도연명을 그린 것이다. 또는 앞의 전기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인물 주변에 국화와 소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면 그림 속 인물은 도연명이 확실하다. 사군자에 국화가 포함되는 이유도 도연명을 닮고자 했던 옛 선인들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소개한 시의 제목과 인물을 표현하는 도식법 중 하나인 술병에서 알 수 있듯, 도연명은 대단한 애주가였던 모양이다. 시「음주」의 주제는 술에 빗대, 욕심에 취해 사는 사람은 자연에 취해 사는 사람의 깨달음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거다. 여기서 ‘취醉’함은 술에 취한다는 일상의 범주를 넘어선다. 취醉의 정신적 일탈은 욕심 없는 마음을 지키는 굳센 기상이며, 이로써 보장되는 완전하고 안전한 자유였다. 도연명은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가 그윽이 남산을 보노라’는 구절에서 무위와 무심의 경지를 끝간데까지 길어 올렸다. 때문에 채국동이하, 유연견남산은 명구 중의 명구로 꼽히고 있다. 정선은 동쪽 울타리 소나무 밑에서 술에 취해 국화를 따다, 문득 먼 산을 바라보는 도연명을 그려 무심의 경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욕심은 부릴수록 늘어난다. 옛 사람들 역시 그것을 경계하고자 또는 속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통해서라도 은자 도연명에게 자신을 이입해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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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은 이처럼 문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감동을 누릴 수 없다. 저자는 그림에 깃든 문학을 이해하고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총 7가지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 시상이 떠오르듯 문학 속에 내재된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 정선과 전기의 그림처럼 삶을 위로하는 문인을 기르고 배움을 권장하는 학자를 그린 그림, 문학 속에 묘사된 상상의 장소를 그린 그림, 문학의 영역에서 은유한 소리를 형상화한 그림, 문인의 깊은 시심을 표현한 그림, 시가 절로 읊어지는 명산을 담은 그림, 문학의 순수성을 잃고 세속의 욕망과 복의 기원을 위해 그린 민화 등으로 나눠, 문학과 그림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조목조목 살펴보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시와 글을 지은 문인들은 중국 송나라 시인 소식(소동파)을 필두로 도연명, 두보, 왕유, 주희, 백거이, 구양수, 나업, 장자 등 중국문학사를 대표하는 문인과 학자들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지배층이 즐긴 문학은 대부분 중국문학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지금과 달리 그때의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공유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물론 최치원, 율곡 이이, 『구운몽』등 우리 문학 역시 그림의 소재로 즐겨 인용됐다. 이중 주희(주자)의 「무희도가」에 버금가는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당대의 최고의 화가인 김이혁,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윤제홍 등이 참여해 합동그림으로 제작한 대작「고산구곡도」는 그 시대 문학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만들어준다. 더욱이 이 그림에는 우암 송시열, 문곡 김수항, 김창흡, 이희조 등 유명 정치인과 문인들이 이이의 고산구곡가의 시문을 분담해 자필로 남겼다. 이는 이이를 따르는 후학의 계보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써도 그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의 화풍을 12폭짜리 병풍으로 한 눈에 감상한다는 것은, 후대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싶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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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 장득만, 강세황, 이인문, 안견, 김정희, 전기, 정신, 김홍도, 심사정, 김정희, 허련 등, 조선미술사의 대표 화가들의 그림을 전과 달리 문학의 자장 안에서 감상하는 일은 색다른 경험과 감동을 선사했다. 더욱이 그게 그들의 그림을 읽는 옳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배웠으니 그림과 문학에 절로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옛 그림 중, 가장 감동스러웠던 그림은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었다. 조선시대 미술평론가로 더 유명한 문인화가 강세황의「수석유화」는 마치 인상파 화가의 드로잉 같은 그림이다. 66면으로 이루어진 『표옹서화첩』에 수록된 이 그림은 남송의 시인 육유(1125~1210) 의 「한거자술閒居自述」에 담긴 인생의 깨달음을 화폭에 옮겼다. 육유의 시 제목을 풀이해보면, ‘한가롭게 머물며 나에 대해 읊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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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미소 지으면 도리어 일이 많고, 
돌은 말을 못하니 가장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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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은 기괴한 괴석과 작은 꽃이 한 폭에 담긴 자신의 그림 옆에 육유의 시 한 구절을 적어 놨다. 분분한 세상사를 좇아 남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뜻으로 지내고 싶다는 시인의 다짐을 꽃과 돌의 명료한 비유로 표현했다. 그림 속 마른 돌은 수석으로 과묵한 속성을, 숨은 꽃은 웃음 헤픈 인간형을 지양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시 한 구절을 재치 있게 표현한 화가의 연륜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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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단원 김홍도의 후기 걸작으로 꼽히는「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는 제목 그대로 소나무 아래에서 생황을 연주하는 장면을 화폭에 담고 있다. 강세황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책에 소개된 다른 그림보다 김홍도의 그림에 마음이 갔던 이유는, 늘그막에 느끼는 인생의 고요함이 그림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강세황이 육신은 말랐으나(늙었으나) 변하지 않는 정신을 괴석에 빗대 표현했다면, 김홍도의 그림에선 생황이라는 전통악기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속세의 때를 벗겨내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고결한 정신이 엿보인다. 그림에서 생황을 불고 있는 소년은 중국 주나라의 태자 왕자진이다. 왕자진은 왕자로 태어났으나 정치에 뜻이 없고, 산수를 노닐던 열다섯 살에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운다. 그리고 이듬해에 그는 신선이 되어 흰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김홍도는 왕자진의 생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이등분하는 위치와 크기로 노송을 전면에 배치하고 생황을 부는 소년을 그 뒤에 배치하고 있다. 만약 왕자진에 대한 전설을 몰랐다면 아무리 김홍도의 그림이라도 생황연주 소리가 들리는 듯한 감동을 이 그림에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감동의 크기에서 천지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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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그림은 문학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동양고전문학을 이해하면 그림이 보이고 그림을 좋아한다면 자연스레 문학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처럼 문학작품을 취取한 그림을 보면 마치 옛 그림이 문학에 취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위에서 말했듯, 그림 감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림이 취한 문학을 모른다면 말이다.『그림, 문학에 취하다』를 읽기 전까지 나는 지금까지 옛 그림 감상에 있어, 그림의 외양만 보는 무지한 관객이었다. 그저 낡고 오래된 그림 앞에서 심장의 떨림 없이 “좋다”를 연발한 거짓말쟁이였다. 반쪽자리 감상이 낳은 꼴불견을 연출한 것이다. 옛 그림을 보는 이유는 그 시절의 모습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고자 보는 것이다. 그걸 통해,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 정서를 새삼 자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시대의 기저에 깔려있는 정신의 뿌리를 확인함으로써 삶의 물음에 답하고자 함이다. 옛 그림 앞에만 서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백치 아다다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림 앞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떼 보련다. 
<BR>&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65/88/cover150/896196075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075X</link></image></item><item><author>에세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클 코리타,[오늘밤 안녕을]-질투심이 나는 뛰어난 데뷔작 - [오늘 밤 안녕을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1]</title><link>http://blog.aladin.co.kr/722392126/5555773</link><pubDate>Mon, 09 Apr 2012 1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22392126/55557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6167&TPaperId=55557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56/84/coveroff/89255461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6167&TPaperId=55557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늘 밤 안녕을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1</a><br/>마이클 코리타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03월<br/></td></tr></table><br/>조가 방을 가로질러 와서 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녹색 크레용으로 어린애가 갈겨쓴 일기의 한 대목을 읽었다.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 p.84(Joe crossed the room and knelt beside me, then  read the diary entry, written in a child's scrawl with a green crayon: Tonite I said goodby. * 어린애가 썼기에 일부러 작가가 오타로 쓴 것.)&nbsp; 모든 것이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라는 문장에서 자라났다. 17살때, 부모님집의 잔디를 깎으면서 그 네 단어가 내 머리속을 떠다녔다. 책 전체가 바로 그 4단어 (Tonight I said goodbye)로 부터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그 타이틀에서 나왔다." -마이클 코리타 *코리타는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에 이끌려 글을 쓴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강력한 장소로서의 이미지말이다. 이 작품의 경우는,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쓴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라는 문장과 이미지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수레의 바퀴살처럼 그것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뻗어 나온셈이랄까. &nbsp;&nbsp;&nbsp;&nbsp;&nbsp; 좌(左)데니스 루헤인, 우(右) 마이클 코넬리               막 첫번째 소설을 끝낸 문청(文靑)시절의 코리타는 장르소설계의 거장인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에게 자신의 이메일 주소가 포함된 팬 레터를 보내게 된다. 뜻밖에도 이 새파랗게 젊은 작가 지망생은 루헤인에게서 즉각적인 답신을 받는다. 코리타가 범죄 소설 작가의 꿈을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으로 갖게 된것은 16살때에 루헤인의 [가라,아이야 가라]를 읽고 난 후였다. 자신의 문학적 영웅에게 답장을 받은 코리타는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허락받은 사람처럼 기뻐했고, 그 뒤로 몇년간 코리타는 르헤인과 서신왕래를 지속하며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코리타는 만족할 수 없었고, 에커드(Eckerd)대학에서 데니스 루헤인이 주관하는 소설작법 강의를 통해 그를 멘토로 삼고 개인적 친분을 두텁게 한다. (고등학생 시절 몸담았던 신문사(Bloomington Herald Times)의 스포츠섹션 편집장이었던 밥 하멜(Bob Hammel)에게서 신문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은 충분히 받았지만, 창의적 글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운적이 없기에 이 시기의 배움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술회한다.)크라임 소설계의 또다른 거장,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와는 2004년 자신의 첫번째 소설 [오늘밤 안녕을(Tonight I said goodbye)]이 출간된 이후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코리타에 따르면 하루에 1500단어씩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코넬리의 영향이라고 한다. 마이클 코넬리가 작가 지망생에게 종종 주는 충고인,"머리를 쳐박고, 한명의 독자를 위해 써라 (Keep your head down and write for an audience of 1)"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셈. 코리타는 시리즈 탐정물이나 형사물의 주인공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해리 보슈'라고 주저없이 꼽을 정도로 코넬리의 영향력을 감추지 않고있고, 요즘은 코넬리와 주말에 야구를 보러가거나 정기적인 골프 파트너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한다.          장르소설계에서 최강의 원투 펀치라 불리울만한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 이 젊은 작가를 지지하고, 보통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던적스럽게도 코리타가 '윗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처세술'에 대한 책을 썼어도 그것은 분명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젊은 친구가 힘있는사람 비위를 잘 맞추어 주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군,이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내마음속에서 이 재능있는 젊은 작가에게 헤살을 부리고 싶다는 뒤틀린 질투심에서 나왔던 것이다.나는 그의 처녀작 [오늘밤 안녕을]을 읽고 난 이후에, 쟁쟁한 거장들이 그의 작품을 앞다투어 칭찬하고 기꺼이 그와 가깝게 지내는 이유를 어렵지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재능이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재능. &nbsp;&nbsp;&nbsp; 맞춤인생 :작가가 되기 위해 살다               코리타의 인생은 이쪽 계통(크라임소설)의 글을 쓰기 위해 고도로 계획되고 집중시킨 삶처럼 보인다.마치 어떤 부위의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무엇을 먹고 어떤 운동을 반복적으로 해야 효과적인지 아는 사람처럼, 자신의 삶을 작가가 되는 방향으로 집요하고 효율적으로 몰고갔다. 코리타는 18살의 어린 나이에 사설 탐정 잡지 'PI (Private Investigator) Magazine'의 편집자였던 돈 존슨(Don Johnson)밑에서 사립탐정 조수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전업작가가 되기 전까지 8년간 보험사기부터 부당한 죽음조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립탐정일을 하게 된다.이때의 경험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특히 사립탐정이 주인공인 링컨 페리시리즈의 세부 묘사에 있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소위 "글로 키스를 배운사람"에게 "실제 경험자"가 갖게 되는 우월함이 그의 글에는 훈장처럼 빛나며 박혀 있다. 탐정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잘 알기에, 추측이나 책을 읽어 간접적으로 아는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다움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할까. 거친 비유를 하자면, 진품이기에 짝퉁제품에서 보여지는 디테일의 조잡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성 크라임소설계에 힘차게 파고 들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원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 때문이었다.그는 또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블루밍턴 헤럴드 타임즈(Bloomington Herald Times)라는 지역신문의 신문기자로도 활약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마감일에 맞춰 글쓰는 법과 명쾌하고 간결하게 쓰는 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기사때문에 자신이 만났던 다양한 군상들이 그의 소설에서 살아있는 캐릭터가 되었다.(특히 이무렵, 그의 글쓰기를 지도했던 신문사 편집장인 밥 하멜(Bob Hammel)은 코리타를 세인트 마틴 출판사와 연결시켜주었고, 여기에서 출판사 편집장인 피터 울버튼(Peter Wolverton)이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게된다. 데뷔작 [오늘밤 안녕을]의 헌제에 코리타가 밥 하멜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현한 이유는, 그가 코리타에게 있어서 일생의 은인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한 인디애나 대학에서 형사 사법학(Criminal Justice)을 전공한 것은, 그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이 분야의 책을 쓰려고 벼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써 법과 경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 권위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이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식으로 용의주도 했다는 느낌이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밤 안녕을         코리타는 인디애나 출신이지만, 그의 부모님이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도 어린시절 이곳에서 보냈다) 이 지역을 어떤 도시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링컨 페리 시리즈의 무대를 이곳으로 상정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클리브랜드는 매우 블루칼라(육체 노동자)적인 색채를 띠고있는 도시고, 제조분야의 직업들이 점점 사라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시라는 것. 이런 사실이 느와르적인 세계의 분위기와 퍽 잘어울린다는 것이다. 클리브랜드의 유명 사립탐정인 웨인 웨스턴이 자살을 하고, 그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다. 웨스턴의 아버지 존은 며느리 줄리와 손녀 딸 베시를 찾아달라고 탐정인 링컨 페리와 그의 나이많은 동료 조 프리처드에게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링컨과 조는 탐문조사를 해나가던 중, 웨스턴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 러시아계 마피아와 지역의 거부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여느 탐정소설처럼 '실종된 사람찾기'로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가리워졌던 사건의 진상에 바투 다가선다는 이야기.(그 사이사이에 총격전도 있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도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장르의 규칙에 충실한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로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울것이 없는' 진부한 스타일로 볼 수 도 있다. 개인적으로 장르의 규칙을 따르려고 한 것은 다분히 영민한 작가의 의도라고 느껴진다. 그때문에 젊은 작가다운 파격적인 신선한 시도는 책에서 찾을 순 없었지만, 더할나위 없는 안정적인 느낌으로 레이몬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을  좋아했던 향수를 자극하여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실제로 필립 말로나 샘 스페이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책을 구입한 미국 독자들이 꽤 있었다.사실 코리타는 대학교 1학년때 링컨 페리시리즈의 첫편(비공식적 작품, 당연히 출판되지 않았다)을 이미 썼고, 세인트 마틴(St. Martin) 출판사에 보내지만 -약간 설익었기 때문이었을까- 출판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았던 편집장 피터 울버튼(Peter Wolverton)은 코리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기꺼이 읽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코리타가 본작 [오늘밤 안녕을]을 완성했을 때, 세인트 마틴 출판사의 피터 울버튼과 사립탐정 소설 경쟁부분(Private eye novel contest) 두군데에 보내게 된다.피터 울버튼은 만약 콘테스트에서 수상하지 못해도 책의 판권을 사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게 평가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코리타는 최우수 사립탐정 소설 신인상을 수상했고, 당당히 책을 계약하게 되었다. 요컨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편집자가 콘테스트의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어린 나이도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출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nbsp;    양날의 검-나이 (그가 대머리끼가 없었더라면 난 그를 미워했을 것이다.)  &nbsp;       말이 나온김에 언급하자면, 마이클 코리타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바로 '나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중 금붕어의 똥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어 코리타 자신도 널더리를 낼 정도다. 그가 만약 국내 작가였다면, 그래서 국내 검색엔진에서 그의 이름을 찾는다면 '코리타 몇살'이나 '코리타 데뷔 나이'같은 연관 검색어가 뜨지 않았을까. 데니스 루헤인이 최초로 작품을 쓴 것이 서른살이었지만, 그때 당시 이 분야에서 가장 어린축에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밤 안녕을]로 신인상을 수상할 당시 그의 나이(음주를 할 수 없는 21세가 되지 않은 나이였다)가 얼마나 화제가 될만한 것인지를 알수 있다. 심지어 데니스 루헤인은 그의 나이를 언급하면서 '만약 코리타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대머리의 징후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로 그를 싫어할 것이다 (코리타는 젊은 나이지만, 숱이 상당히 없는 편인데, 이 정도의 재능있는 젊은이가 젊어보이기까지 하면 그를 미워했을거라는 루헤인식 유머.)'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그의 나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독자들은 그의 나이에 흥미를 갖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시하기도 한다. 코리타가 진정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내용이 아니라 나이에 의해서 평가받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어린 나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강하긴 하지만 담금질을 아직 하지 않은 칼처럼 부러지기 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작품 어딘가에 아직 농익지 않은 젊은이 특유의 치기나 헛점이 분명 몸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처녀작에 대해 품는 고정관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독한후 나의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국어사전적 의미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속도감이 있었다. 간결한 문체와 짧고 분명한 대화가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속도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nbsp;&nbsp;문체,시점, 그의 작법        오직 이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하며 읽던 어린날의 코리타는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아이야 가라]를 읽고 그의 산문(prose) 자체에 매료된다.  루헤인의 문장 자체가 담고있는 힘과 울림에 깊은 영향을 받은 듯한 코리타의 문체.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문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다른 탐정소설의 특징처럼, 장식적이거나 화려하게 미사어구를 쓰지 않고, 간결하고 날렵한 문체를 보여준다. 그의 문체는 군살 한줌 없는, 공들여 단련된 날씬한 몸을 연상케한다. '쓸데없는 말은 모두 생략할것'. 이것이 그의 글쓰기 멘토들이 문체에 대해 주문했던 단 하나의 명제였다.  그 영향일까. 코리타 스스로도 "좋은 글쓰기란 화려한 문체보다는 간결하고 정확한 것"에 있다고 믿고, 그 특징을 그대로 데뷔작에 반영 시켰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것은 메마른 문체를 지향하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내 등의 근육은 지미 헨드릭스가 솔로를 연주한 후의 기타 줄 같이 느껴졌다(p.182)"같은 문장처럼, 재치있는 표현이 책 전체에 산재해 있어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답게 1인칭 시점을 사용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사용은  최초의 스탠드 얼론인 [Envy the Night]을 3인칭 시점으로 쓸때까지 계속된다. 1인칭 시점은 장단점이 뚜렷한 시점인데, 역시 장점이라면, 독자가 주인공에게 자연스런 친근감을 느끼고, 이야기 속으로 뛰어 들기 쉽다는 점이다. 반면에 작가가 서투르게 사용하여,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짓 따위를 하면, 이야기의 속도감이 늘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데뷔작에서  코리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는 또 그의 나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얄미울정도로 노련한 베테랑처럼 1인칭 시점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했다.코리타는 글을 쓸때 아우트라인(대체적인 줄거리)을 만들지 않고 쓴다고 한다. 스토리 전체를 미리 짜고 쓸것인지 아닌지는 작가 개인의 취사선택이겠지만, 내 생각에 코리타는 스토리자체는 언제나 가변적이고 유동적인체로 놓아주는 것이 좋다고 믿는 스타일인듯 싶다. 아우트라인을 정해놓으면 스토리라인상에서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생각과 방향성에 제한받기 쉽기때문이다. 등장인물을 틀 속에 가두거나 옭아매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 속에서 활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스타일인 그의 작법에 맞춰 이 책을 읽어나가도 흥미로울 것이다. 코리타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때, 끝이 어떻게 될지 작가도 모르고 시작하는 스타일인 셈인데, 실제로 [오늘밤 안녕을]을 쓸 당시, 첫번째 초고에 대한 교정을 하기 전까지 누가 살인을 하는지, 작가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쓴 장면에서 오직 한,두장면만 앞을 내다 볼수 있다고 한다. &nbsp;&nbsp;&nbsp;  서스펜스, 긴장감        영화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악인보다 너무 강해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코리타는 잔인한 러시아 마피아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부패한 거부와 같은 강력하고 거대한 악의 축을 설정함으로써 서스펜스를 높였다. 다 아는 이야기라 말하기도 미안하지만, 주인공의 신변에 대한 염려과 걱정은 독자를 다음 페이지를 향해 끊이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서스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라임 소설에서 서스펜스가 없다는 것은 폭주족에게 오토바이가 없는 것과 같다고할까. 사실 이 분야의 작가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자명한 사실이긴 해도,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듯 싶다. 영화라면 불길한 음악이나 거칠고 낮은 조명, 이상한 카메라 앵글따위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만, 소설은 다르다. 코리타의 이 소설은 링컨 페리를 중심으로 1인칭 '나'로 진행되므로 독자는 자연스레 그의 심리상태에 동화되어 그의 신상을 걱정하게 되지만, 그 캐릭터의 깊이가 없다면 공감이 만들어지기 힘들어서 서스펜스가 담길수 없을 공산이 크다.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코리타는 그만의 방식으로 주인공에게 입체감을 주었고, 따라서 주인공이 맞게되는 위험에 대해 독자는 자기 일처럼 마음을 졸이게 된다. 게다가 서스펜스를 주어야하는 장면에서 묘사를 최소화하고 행동과 대화로 표현해서 속도감을 높이고, 서스펜스가 늘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후반부는 '시간압박'과 같은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증폭시켰음은 물론이다. &nbsp;&nbsp;&nbsp;&nbsp;  &nbsp;총평       하드보일드 장르가 현대사회에서 거세된 수컷의 마초적 성향을 일깨우기에 인기가 있다던가, 이런 장르 소설을 통해 독자는 거대한 악의 세계에 대항하는 영웅에게 자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던가,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행간에 녹아있는 미국 문화의 어두운 단면에 대한 알레고리라든가 메타포같은 것들은 그런것을 찾아내는데 능숙한 분들이 해주기 바란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재밌다'는 간명한 사실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에두른 말을 해대며, 먼길을 이렇듯 돌아왔다. 사실 그 한마디면 족하지 않은가. 이런 장르 소설에서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리 차일드가 이 작품에 대해이야기한 "서스펜스, 긴장감, 트릭, 매력..모든 것이 충만한 일급 데뷔작'이란 말은 에누리 없는 사실이다.이 책을 읽어 본 독자는 리 차일드가 세인트 마틴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고마운 마음에 마지못해 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진지한 철학척 성찰이나 미학적 아름다움 같은 것을 희구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선택에 후회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코리타의 데뷔작이 느와르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거나, 인간 본성에 대한 아픈 물음이나, 미국 사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뼈저리게 보여준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코리타만의 고유한 지문이 뭍어 있는 점때문에 아껴주고 싶다. 이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이 맘에 들었다. 사설 탐정일에 실제로 몸담고 있어서였을까. 그의 책 속에서 작가가 진심으로 '사설탐정들의 일을 이해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삶에서 견뎌야하는 무게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장에서 보여준 의외의 따스한 느낌도 좋았다. 그것이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나는 억지로 짜내는 듯한 '감동의 강요'를 합을 맞춘 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무술장면만큼이나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코리타는 선을 넘지 않고 절제한다. 그렇다. 과잉하지 않은 점이 이 데뷔작의 미덕일 수 있겠다.      마이클 코리타의 나이 서른살. 어느덧 이젠 나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한 대담에서 탐정 시리즈만으로 30권을 내놓는 작가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숨은강]이나 [사이프러스 하우스]같은 호러물로 가지를 뻗어 나가면서 글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가고 있다. 마음 속에 이야기꾼이 있어 글을 쓴다는 마이클 코리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져 나는 이 작가 근처를 기웃거리게 된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56/84/cover150/89255461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6167</link></image></item><item><author>깐짜나부리</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광활한 우주 속에 나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 [원더보이]</title><link>http://blog.aladin.co.kr/754037145/5560097</link><pubDate>Wed, 11 Apr 2012 0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54037145/5560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TPaperId=556009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93/55/coveroff/89546174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TPaperId=5560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원더보이</a><br/>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02월<br/></td></tr></table><br/>글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울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단지 이야기의 전달 수단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글이라는 재료를 잘 닦고 문지르고 가다듬어, 마치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관상용 소품처럼 활자만 바라봐도 흐뭇해지게 하는 작품 말이다. 정확하게는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 활자가 시신경과 만나는 찰나의 울림이 큰 소설을 말하는데 내게는 김연수의 소설들이 그렇다. 이런 소설들은 시간의 연속 선상에 놓인 장면들을 따라가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정서적 감응을 이끌어낸다. 미장센이 제거된 스토리텔링에 아름다움을 첨가하는 다양한 시도는, 말하자면 텍스트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글쓰기의 전범인 셈이다. 가령 영화 제작자가 소설을 검토하다가 "이런 건 표현할 수 없어"라며 내던져버릴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역으로 소설이 소설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 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로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활자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은, 어떤 의미로 현대 소설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성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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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농담(濃淡), 여백의 활용, 활자들의 배열 방식, 이미지의 삽입과 같은 노골적인 시각적 효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lt;원더보이&gt;는 충분히 매력적인 텍스트로 존재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주의 물리적 법칙들을 망각해 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단순한 인과법칙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려는 소년의 내면에 집중할 것을 처음부터 요구한다. 역설과 모순형용으로 가득 찬 소제목들은 우주의 정지와는 전혀 관계 없는 소년의 시끄러운 내면의 모습이며, 그것은 활자 자체에 가해진 다양한 기법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진다. 시간을 멈추고,염력을 발휘하게 되고, 타인의 생각을 듣게 되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가 받아들여 왔던 세계의 질서는 파편적으로 흩어진 활자처럼 깨어진다. 홀로 남은 정훈은 부조리한 세상을 온 몸으로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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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lt;원더보이&gt;는 일견 초능력을 갖게 된 한 소년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원더러스'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는 시종일관 불합리한 '전체'에 놓여진 한 '개인'의 내면을 좇는다. 그리하여 소설은 분노와 투쟁보다 외로움과 슬픔에 더 근접해 있다. 대개 외로움과 슬픔의 근원은 상실로부터다. 특히 부모를 잃는 경험은 일생에 걸쳐 개인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시련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런 크나큰 상실의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성장 소설에서 성장의 동력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이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lt;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조너선 사프란 포어)&gt;의 오스카가 그랬고, 죽은 아빠의 스웨터를 42일 내내 입고 다니던 &lt;사랑의 역사(니콜 크라우스)&gt;의 알마가 그랬고, 또 신화가 사라진 처용포에서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lt;꽃피는 고래(김형경)&gt;의 니은이 그랬다.소중한 것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그것들은 소중하지만 평소에는 잊고 살기 쉬운 그 무엇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것은 내면의 보호막이 걷혔을 때 최초로 대면하게 되는 무방비 상태의 자아일 것이다.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보호막이 없어진 자리에&nbsp;각자는&nbsp;자신만의 껍질을 새로 입히게 된다. 상실로 인해 생긴 구멍은 딱 그 빈 자리만큼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심으로 무한히 커진다. 상실의 아픔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화전 같은 것이다. 잡목과 들풀이 태워진 자리에 새로운 밭을 일구듯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단순한 치유 그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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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도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 정훈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병원에서 깨어나는 부분이다. '원더보이' 정훈에게는 아버지가 사라져 간 빈 자리에 놀랍게도 초능력이 깃든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그 생각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 감정들이 읽히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 또한 타인에게 여과없이 전해진다. 감정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경계 없는 왕성한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이 순간을 '시간이 멈추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화전을 모두 불태우고 새로운 작물이 수확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즉 성장의 도움닫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빠에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속죄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고, 듣지 않아도 느끼게 되는 정훈에게 물리적 시간의 정지는 10광년 이상 떨어진 별빛이 지구에 닿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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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지와는 별개로 초능력자의 신분으로 80년대를 견뎌내야 했던 정훈의 처지는 꽤나 힘겹다. 정훈의 초능력은 국가에 대한 봉사수단으로 사용되기를 강요받지만 실상은 유리 겔러의 염력과 같은 눈요기감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이해하고 있다. 사실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기분을 이해하는 것 따위가 무슨 초능력이란 말인가? 그것이 초능력일 수 있는 까닭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조차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능력을 초능력으로 치부하는 이 절묘한 비틀기는, 당대의 사회상을 우회해서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다. 권대령이 맹신하는 국가 체계 안에서는 개인의 죽음조차도 개별적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개인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전체 속의 개별성이 억압받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훈의 자아 찾기는 어쩌면 광활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훈이 홀로 남겨져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근원적인 고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존재하기에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맺기가 중요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정훈에게 깃든 초능력은 상대의 감정에 감응하고 이해하고 나누려는 노력이다. 그것이 광활한 우주에 나홀로 존재하는 이유이자 흔적이 된다.
<BR>&nbsp;개인의 성장은 하나의 무리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광활한 우주에서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없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을 뜻한다는 논리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개별성에 대한 이해와 여기에서 비롯되는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의 발견이 있다. &lt;원더보이&gt;는 메타포가 넘쳐나는 소설이다.&nbsp;그래서 모순과 거짓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진실된 삶의 이미 찾기를 시도하는 소년의 협소한 이야기이기보다 오히려 우주의 비밀에 닿기 위한 한 소년의 여정으로 읽히기를&nbsp;요구한다. '누군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운다면 그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정훈은 한 뼘 성장한다. 이것이 정훈이 발견한 우주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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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93/55/cover150/895461748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484</link></image></item><item><author>Jeanne_Hébuterne</author><category>A</category><title>흉터 - [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0427/5560943</link><pubDate>Wed, 11 Apr 2012 18: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0427/55609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3178&TPaperId=556094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0/92/coveroff/89837131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3178&TPaperId=55609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a><br/>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br/></td></tr></table><br/>코디미 쇼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는 '결혼은 행복한 결말(해피 엔딩)이 아니라 그냥 결말(엔딩)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nbsp;사는 일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부친이 숨을 거두며 결론을 말한다. '삶은 하나의 오렌지였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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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문장에는 오렌지 대신 사과, 파인애플, 책상, 그리고 그 클리셰 초콜렛 상자까지 무엇이 들어가도 문장이 성립된다는 것이 포인트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단락이 없다. 단원의 구분이 없다. 단지 쉼표, 마침표, 울림이 있을 뿐이다. 이 일이 끝나면 모든 것이 결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로 그것들은 삶의 중대한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의 행사에 불과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학을 가든 이직을 하든 사표를 내든 무엇을 하든 일의 성격은 달라질 것이나 그것을 겪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며 그 혹은 그녀의 고유한 특성대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 달라지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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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내가 사고로 장애인이 된 남자가 그리고 쓴 그림과 글 모음이 있다. 뉴요커, 스타일리스트, 어느날 승강장에서 추락, 척추뼈 마비, 반신불수, 휠체어, 그리고 그 다음의 생활. 여기에는 그 일을 굳이 겪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그러나 상상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일들이 있다. 그녀의 남편 대니 그레고리는 단 한 번도 장애인의 남편으로 사는 것을 꿈꾸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조용히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모든 생활은 당신이 꿈꾸어왔던 어떤 것이었는지를.&nbsp;
<BR>
결국 하늘 아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교해 보면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성서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떠올리지 않아도 새로운 것은 기껏해야 배반 정도인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놀라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 배반이 아닐까. 상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예측하지 못했떤 어떤 일은 사람을 그 현상으로부터 튕겨낸다. 균형, 견제, 파악, 생각, 행동, 이 모든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무조건 모두 지하철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거나 그런 이의 배우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이라는 부사구가 들어가는 순간 사람의 삶은 여지없이 전체주의의 전제에 압사당하기 마련이니까.
<BR>
여름철 산들바람이 부는 순간 같은 책. 그래서 살짝 이마에 맺힌 땀. 그 송글송글 맺힌 형체가 더 드러나도록 만들어주는 글과 그림들. 표지의 밝은 노란색의 건물과 푸른 하늘색의 하늘 같은 책. 그리고 그 앞의 애완견 같은 흑색의 글씨들의 글귀들. 대니 그레고리는(둘 다 어째 이름 같다. 이름과 성이 아니라 이름과 이름) 종종 가장 그림을 그리기에 힘든 자세를 찾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 했다가 안든다 했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림이 제대로 안될 때엔 꼭 삶이 제대로 안되는 기분이라는 말은, 아니, 혹시 그 반대인가 하는 이 사람의 부가의문문을 보며 더욱 명확해진다. 그림의 붓이 가는, 펜이 가는 길은 개인의 서명과도 같다. 어떤 이의 필체를 흉내내야 할 때에는(나는 왜 이런 것을 체득했나) 모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펜이 흐르는 선을 흉내내야 한다.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펜 선이 가는 그 길을 흉내낸 다음의 일이다. 이것은 그러니까 잘 그린 그림일 수도 있고 못 그린 그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는 반기를 들 수가 없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나오는 이 사람의 마음. 이 사람의 눈이 흐르는 길. 이 사람의 생각의 흐름. 시선의 고정과 흑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적인 것이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그린 부분이다. 아름다운, 지혜로운, 글래머(이건 아마 글래머러스-의 번역이지 싶은데 그렇다면 멋있는, 멋을 부린, 쿨한, 차라리 쉬크한, 이렇게 번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어디까지나 원문을 못본 독자의 의견일 뿐), 섹시한 패티를 그렸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얼굴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러다 덧붙인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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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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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역사가 담겨 있다. 그것을 모두 알아서는 안될 일. 가만히 보면 사물이 말을 거는 일이 생긴다고 대니 그레고리는 말한다. 결국 이 사람의 그림 그리기, 일기 쓰기는 모든 생활의 총합이다. 어느 순간은 더하고 어느 순간은 빼게 된다. 이 이합집산에서 남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아내가 휠체어를 평생 타야 했을 때 이 남자는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그리 책에 쓰진 않았지만 독자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앞으로의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대니 그레고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패티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이 두 문장 아래 갈등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갈등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BR>
I love my wife. I am in love with her.
I love my wife. but I am not in love with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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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한국 말로는 러브가 무조건 사랑인지라 무엇이라 옮길 수 없지만 이 미묘한 차이를 무엇이라 설명해야 했을까.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더이상 마음이 간질간질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중앙분리대. 이 때 결국 이 두 사람을 여전히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존경, 신뢰, 고마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런 중요한 요소들은 개인에 따라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돈, 신체, 가정형편, 뭐 이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너무 속된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아름다움은 껍데기일 뿐이라면, 아름다운 췌장이라도 보여주어야 가능한 것일까? 성과 속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이런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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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 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례 치르는 집에도 묘지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nbsp;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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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흉터는 살아남은 자의 훈장이다.&nb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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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0/92/cover150/898371317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3178</link></image></item><item><author>readersu</author><category>readersu 리뷰</category><title>한국의 일러스트 작가, 그들이 그린 세상 - [오늘의 일러스트 1]</title><link>http://blog.aladin.co.kr/readersu/5562077</link><pubDate>Thu, 12 Apr 2012 10: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readersu/55620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06862&TPaperId=556207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54/coveroff/899680686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06862&TPaperId=55620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늘의 일러스트 1</a><br/>김윤경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04월<br/></td></tr></table><br/>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작정 좋아할 뿐이다. 가끔은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나지 못해 글씨도 제대로 못 그려(!) 악필이지만 그럼에도 오래 전엔 크로키도 나름 배우며 유연한 손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꿈. 그림이든 음악이든 다 때가 있는 법. 노력하면 다 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 그건 아마 예술쪽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천성이라는 생각.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좋아하는 그림, 일러스트, 스케치, 웹툰 등등 그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닥치는대로 읽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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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런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신선하고, 아름답고, 멋진,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독창적인', 우리나라의 대표 일러스트 작가의 그림들! 바로 《오늘의 일러스트*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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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잡지 &lt;보그&gt;의 예술 담당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였단다. 그가 네이버에서 기획한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들'의 인터뷰와 기사를 쓰게 되어 이렇게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43인(1권엔 가나다 순으로 23인이 소개된다)은 우리나라의 젊은 미술가들이다. 젋다는 것은 독창적이고 개성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에 관한 생각들을 들어 우리에게 알려준다. 장래 일러스트를 하고 싶거나, 일러스트를 위해 어떤 학교를 가야 하는지 혹은 일러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뭐 부터 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 되겠다. 그럼 23인의 일러스트 작가를 다 소개할 순 없고 내가 궁금한 몇 명의 작가를 소개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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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림보다는 책이 먼저이니 책과 관련한 작가들이 눈에 띄겠지. 그 첫 번째 작가는 아이완 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와 《일곱번째 파도》의 표지를 떠올리면 된다. 표지를 보면 몽환적이면서 사차원적인 느낌을 받는다. 왠지 우울해보이는 소녀, 스산함이랄까, 쓸쓸해보인다. 알고 보니 아이완은 스웨덴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켄트를 즐겨 듣고 영화 [렛미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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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늦은 고 3에 그림이 '미친 듯이' 그려보고 싶어 미대갈 꿈을 꾸었지만 당연히 너무 늦었다는 말만 들을 뿐. 허나 그 열망을 잠재우지 못해 돌고 돌아 스물네 살에 한예종에 들어갔고 자신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작은 세계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엄마가 되고나서부터 더 절박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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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했어요.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드고 억압하니까요. 그래서 아이 갖기를 두려워했죠.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요. 자식이 훌쩍 어딘가 가려고 하면 '그래 잘 다녀와'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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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완에게도 그렇지만 가끔 보면 '아이'라는 존재는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꽤나 큰 힘을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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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일러스트 작가는 박형동이다. 오래 전에 《바이바이 베스파》라는 만화로 그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만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때였다. 우연히 보게 된 만화였는데 그 깊이에 놀라 이후로 만화를 즐겨 읽게 되었다. 그의 그림은 색감이 좋다. 짙은 파스텔 톤의 그림들. 박형동은 책표지 디자이너이자 만화가이면서 다양한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림을 보다시피 그가 그린 책표지 그림은 꽤 된다. 《리버 보이》, 《플라이 대디 플라이》, 《바보 픽터》, 《우리들의 스캔들》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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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우연히 영화 [베티 블루]를 봤고, 이 영화와 같은 작업을 해야겠구나, 맘 먹었더란다. 한데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다른 일을 찾아본 게 만화였다. 그림을 잘 그렸지만 미대는 안 된다는 집안의 반대에 불문과를 갔고, 그랬지만 여기저기 기웃대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만화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돈을 못 벌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갔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하는 족족 망하던 때라 잘 될 리가 없었고 결국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되었단다. 그는 지금 대학을 다니면서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다. 기성 작가이지만 학교에서 꾸지람도 듣고 깨지기도 하는 그는 하지만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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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알아가는 것 중 하나는 가신을 끌어내주는 주변의 매개자가 참 중요하다는 거예요. 나자신이 주변사람들에게 매개자가 되어야 하기도 하고요. 전 요즘 좋은 학생들을 만나고,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합니다. 그래서 혼자 작업하면서 쌓았던 외로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몸은 바쁘고 피곤한데 머리는 행복한 기분이 들고요. 이렇게 계속 자라다가 10년 후 성장 도서관을 하나 짓는게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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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베스파》도 그렇고 그가 표지를 그린 책 《리버 보이》나 《우리들의 스캔들》등등 모두 성장과 관련한 책들이다. 그가 지금 행복하다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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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일러스트 작가는 소윤경이다. 그녀의 그림은 좀 소름끼친다. 뭐랄까, 섬뜩한 그림들이 맘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판타스틱하다. 원래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단다. 그로테스크한 오브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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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간 내면의 잔혹한 심리에 관심이 많아요. 자기 파괴 본능, 가락과 피학의 구도, 육식을 위한 동물공장 등 인간의 일상이라는 표면 밑에 감춰진 잔혹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것은 기묘한 판타지로 표현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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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한데 의외로 그녀는 그림책 작업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니 잔혹이라기보다는 판타지 같은 그림이라고 해야겠다. 《거짓말 학교》, 《선글라스를 쓴 개》, 《건방진 도도군》과 최근에 나온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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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에 파리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뼈저리게 현대미술의 미궁만 접하게 되었단다. 그러고선 텅 빈 퐁피두 센터 지하에서 열린 &lt;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gt;을 보며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맘 먹었다. 그녀는 지금처럼 일러스트 붐이 일기 전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출판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워낙 초기라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비롯된 의도치 않은 무례함도 무수히 겪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런 그녀가 있어 우리나라 일러스트가 점점 발전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그림은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쁘고 착한 그림을 선호한다. 그런 까닭에 작업을 하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비슷한 경험을 할 후배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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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아트를 하다가 이쪽으로 넘어온 경우, 자기 스타일대로만 주장하면 힘들어요. 시스템 속에 섞여 겸손하게 일하면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소통의 장조차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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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오늘의 일러스트*1&gt;에는 노석미, 밥장, 아메바피쉬, 오기사 등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하! 하는 작가들이 많다. 이들 모두 그림을 그리지만 그 다양함은 그들이 그려내는 그림들만큼이나 넓다. 잡지, 책표지, 애니메이션, 가방, 건축 등등 일러스트라는 직업(!)이 이토록 다양한 줄은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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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나니 더욱 후회가 된다. 천성적인 예술가가 안 되더라도 좀 노력을 해서 시늉이라도 내볼 것을. 이미 이루어지기 힘든 꿈을 가지고 헛된 상상을 했다. 해서, 이 책은 일러스트를 꿈꾸는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아마 꽤 유용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처럼 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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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54/cover150/8996806862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06862</link></image></item><item><author>한사람</author><category>...책방 2...</category><title>...주기자를 주기기만 해봐... -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title><link>http://blog.aladin.co.kr/723614123/5545656</link><pubDate>Wed, 04 Apr 2012 0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23614123/55456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782&TPaperId=55456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8/39/coveroff/897184878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782&TPaperId=55456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a><br/>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03월<br/></td></tr></table><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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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술을 좀 마셨다. 오늘도 바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했지만 좀처럼 가슴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다. 머리도 뜨겁고 눈도 시리고 목도 따끔거렸다. 몇 번이나 울컥한 심정에 물을 몇 잔이나 벌컥거리며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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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2012. 4. 3) 주진우 기자의 트윗엔 “쌍용차에서 22번째 비명을 들었습니다.”라는 멘션이 올라왔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한 조합원이 또 투신을 한 모양이었다.(작년까지 열 몇 명이었는데...그새 또 늘었다) 원래는 지난달 말에 사망했는데 부모도 배우자도 없어 뒤늦게 알려졌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조중동엔 저녁때까지 기사 한 줄도 뜨지 않았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건 한국계 미국인 남성이 총기난사로 학생들을 몇 명이나 죽였다는 기사였다. 방금 전 메인 페이지를 확인하니 총기난사 기사 바로 아래에 김용민 후보가 (인터넷 방송에서)몇 년 전에 한 말을 문제 삼아 지겨운 자질론을 들이대며 무슨 시국사건처럼 보도하고 있다. 오늘 업데이트된 봉주 10회의 내용이 천안함 합조단의 보고서 일부가 조작이라는 내용에 황급히 보복대응한 기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 총기난사로 숨진 피해자를 실어 나르는 사진 밑에 ‘테러’라는 제목이 들어간 기사 타이틀과 함께 절묘하게 배치된 김용민의 사진은, 지나가다 언뜻 보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적지 않은 세월 나도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갇혀있던 사람이라 이런 기사를 보고 바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나 잘 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나꼼수 죽이기 프로젝트는 참 디테일하고 꼼꼼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어쩜 그리 내가 아는 한 사람과 똑같은 행보인지 알면서도 매번 새로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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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건 오늘 쌍용자동차 해고자 한 분이 자살한 소식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뉴스로 안쳐줄 뿐만 아니라 뉴스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지방에서 상경해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 한 십 오년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해고를 당하고 삼년동안 무직으로 살았던 한 남자가 빨갱이 소리나 들으면서 주변으로부터 냉대를 받다가 결국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일 같은 건 주진우 기자나 트윗으로 올려주지 우리 사회 메인 언론들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 정도 억울한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기 때문인 걸까. 그런 자살쯤이야 너무나 흔해서 일까. 어쩌면 돈 있고 권력있는 자들은 아예 피해자들이 다 죽어버려서 시끄럽고 귀찮게 하지 말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반도체에서 한 2조를 빼내어 집집마다 LG 대신 삼성으로 냉장고를 바꾸어 주라는 이건희의 발상을 보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서다. 실제로 약 7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 삼성 브랜드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세워질 무렵, 일조권을 침해받은 아파트 단지에 일제히 최신형 지펠 냉장고가 선사된 일이 있었다. 가시는 발걸음에 한 치라도 피곤한 일이 생기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 돈으로 안 되면 주먹으로, 주먹으로 안 되면 법을 만들고 바꾸어서라도 자기들 재산을 불리는 일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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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과 땅,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이 더 가지고 더 불리고 더 오래 해먹기 위해 불철주야 혈안이 된 사건들만 쫒아 다닌 한 기자의 피같은 현장기록이다. 현장을 찾아 직접 발로 뛰어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진상을 파헤친 기자라 그런 것인지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의 글보다 온도는 더 높았다. 아직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몸의 체온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늘 하는 일이 그러므로 어쩌면 주기자는 남들보다 고온으로 일상을 살아갈지 모르겠다. 나라도 뻔히 피해자를 만나고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했는데 기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꼴을 본다면 혈압은 매번 정상이 아닐 것이다. 시기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된 후 출간이고 얼마 전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기소청탁 건으로 맘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행간에 비치는 울분도 상당해 보였다. 같은 사람을 욕해도 언어는 모두 다르다. 김어준이 냉소와 조롱이라면 김용민은 은유와 모사이다. 정봉주가 유머와 풍자라면 주진우는 단연 디테일과 증거다. 이 책을 생각보다 빨리 읽지 못한 것은 팩트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많은 증거와 디테일한 정황묘사 때문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주기자의 실전 이야기, ‘일단 가본다, 일단 해본다’의 취재기법을 가진 그의 체험 삶의 현장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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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가 가장 먼저 칼을 간 대상은 이 나라 검찰조직이었다. 주기자는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이 박은정 검사에게 기소청탁을 한 사실을 나꼼수에서 처음 말할 때에도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있었다. 이 나라에선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검사가 기소를 하거나 죄를 묻지 않으면 죄가 안 되기 때문이다. 무슨 뇌물을 무슨 목적으로 얼마를 주었건 검사가 묻지 않으면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 뇌물도 주지 않았어도 검사가 물으면 죄다. 묻겠다는 건 죄를 잡겠다는 것이기에 일단 불려 가면 설령 죄가 없어도 어떻게든 죄인 취급을 면할 수는 없다. 무죄판결나기 전에 이미 하이에나처럼 물어 뜯어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여론은 의구심을 확산해 놓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살아있는 권력뿐이다. 그는 검찰조직에서 법과 양심, 진실과 정의는 철저하게 출세보다 하위개념이라 꼬집는다. 그런 검찰에도 천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독재천재를 총수로 둔 삼성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정래의 &lt;허수아비춤&gt;이 콕 집어 삼성소설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조정래 작가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을 만나 오랜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는 그 기자가 주기자다)&nbsp;소설에 대기업에서 승진에 목숨 건 인물이 공무원의 이삿날 이삿짐을 날라주며 청소는 물론이요 화분을 옮겨다 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주진우 기자가 일러준 실제 인물의 이야기였다. 삼성은 검찰(과 경찰, 기자)에 하도 떡값을 뿌려 놓았기에 검사들은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독립시킨다 하면 권력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외려 정권의 개가 되길 자처하는 집단. 민주주의 보다는 독재를 사랑하는 집단. 우리나라에서 가장 염치 없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집단. 주기자가 10년 넘게 피의자로 불려 다니면서 깨달은 검찰은 올라갈수록 더 유치하고 확실하게 더럽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고소를 무릅쓰고 짱돌을 던진다는 주기자는 자기가 쓰는 기사가 대단한 특종은 아니라 말한다. 조금만 열심히 다니면 누구나 쓸 수 있는데 기자들이 눈치만 봐서 그렇단다. 다들 명절에 오십만원, 백만원씩&nbsp;받은 게 켕겨서 그렇단다. &nbsp;예를 들어 경찰과 매춘업주가 결탁하고 검찰이 묵인하는 것은 너무나 오래된 관행인데 내가 봐도 굳이 여수까지 가서 여자 몇 명 구하자고 경찰 간부들을 잘라야 할까, 이런 생각을 어찌 안 하겠나 기자님들이. 다른 맛있고 돈 되는 사건들도 많아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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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문가가 된 것도 모든 기자가 물러서 있었기에 자신이 조금만 해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란다. 김어준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이건희가 물러난다고 삼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기자 역시 이건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씨등 오너만 삼성에서 떼어 놓으면 더 훌륭한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삼성은 주기자에게 앞날을 책임지겠다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 삼성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이 나라의 중요인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주기자는 삼성의 비자금 수법을 폭로한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다고 했다. 비록 삼성에 누릴 것을 얼마간 누리고 나왔지만 ‘사회를 위해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평가했다. 꼭 지금 나꼼수 멤버들이 그렇다. 좌파도 우아하게 강남으로 가는 길이 없지 않다. 글빨과 말빨이 있는데 지금보다 편하게 사는 방법이 왜 없겠는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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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슬펐던 건 바로 그들 가진 자들은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인과 친척들 중에 대기업의 프레임에 속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한때 사업 망하기 전까지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모님이 찍는 후보에 표를 던진 사람이었다. 돈을 더 벌게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연스레 그들 세계에서 행해지는 방식대로 살게 된다. 더 조용하고 더 편한 호텔. 더 수준 높고 더 깨끗한 음식. 더 고급이고 더 우아한 옷. 돈이 많아지면 자연 돈 없는 사람들과 무엇이든 같이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오로지 단 한사람 이건희만을 위한&nbsp;단독 슬로프를 보라 - 도로공사가 이건희 길을 안 닦은게 이상하다 - 말로하면 현실이 되는 그들이다. 이건희가 그 정점이요 극단이라고 하지만 그 나머지 추종자들도 그를 욕할 자격은 없다. 그건 쌍욕하면서 투표소에서 이명박을 찍은 심리와 똑같다. 그리고 특별히 이들이 처음부터 오만하고 허영심 많아서 라기 보다는 돈맛을 봤더니&nbsp;오만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더 맞다.&nbsp;알고 봤더니 돈으로 안 되는게 은근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한 검사들만 하는 게 아니다. 돈으로 생긴 우월감은 자연 도덕에의 불감증을 초래한다. 검사들이 스폰서의 지원으로 매번 룸살롱에서 술 마시고 골프 치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처럼 세금 안내고 장부 속이고 횡령하고 하는 것들은 점점&nbsp;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비자금 빼돌려 투자하고 먹튀하는 건 일종의 능력이다. BBK는 기업가로서 이명박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일상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젭니까? 그 정도 머리도 안쓰고 어떻게 사업 합니까? 그럴 사람들이다. 필요하면 조폭도 부르고 그들에게 청부 폭력도 시키는 것이 꼭 대기업 오너들만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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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벤처 사업가는 90년대 말 벤쳐 붐을 타고 코스닥에 상장해 유망기업이 된 후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의 사장이 된 사람이 있다. 그도 처음엔 순수했고 열정과 자존심으로 뭉친 말 그대로 장래 촉망받는 벤쳐 사업가였다. 지금은 한강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시원하게 생일파티를 한다. 조선일보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사업가의 칼럼은 항상 그의 몫이다. 내용은 언제나 같다. 수출은 희망적이며 기술은 세계최고이며 대기업과 공조는 자기네 장점이라고. 보수 프레임에서 메인의 위치에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안착하면 또 그렇게 굳건하고 탄탄할 수가 없다. 이른바 검찰, 경찰, 정치, 언론의 커넥션이 구축이 되었다는 뜻이다. 슬픈 건 일단 올라가면 무슨 자동 제어장치 처럼 알아서 연결된다는 것이다. 사촌오라버니 중에 대기업 임원이 세 명 있다. 그들 모두 학창시절 때부터 성격 좋고 사람 좋고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은 불온서적이다. 그들은 나꼼수같은 종북좌파들의 괴담방송은 듣지 않는다. 일단 가지게 되면 사는 동안 어떻게든 가진 것을 부풀려 놓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메인 스트림이 해온 방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또 슬픈 건 그들 앞에서 누구도 그러한 방식을 욕하거나 잘못된 관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려 어떻게 하면 나도 그 틈에 끼어 뭐라도 얻어 먹을까를 생각하면 했지. 대통령이 사기꾼인데 뭐하러 도덕찾고 법따지고 할 것인가. 좋은 자리 있는 동안 한 몫 챙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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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는 검찰과 삼성 외에도 종교와 언론, MB와 친일파의 속성도 잘 정리했다. 모든 특징은 이명박으로 통하는데 그 중에서 ‘친일파의 애국백년사’는 우리나라 보수의 뿌리와 정체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실마리라 생각된다. 종교가 조폭과 연대하고 언론이 거짓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보수의 도덕불감증의 연원은 결국 친일파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일은 결국 박정희와 수구언론을 상징한다. 반미친일은 반공친미로 발전했고 오늘날 이명박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나라 팔아 자기 챙긴 협잡꾼 들이 권력위에서 외려 나라 살리자 하는 형국이었다. 친일파가 주장하는 것은 빨갱이로 대변되는 김대중 죽이기와 대안논리로 내세우는 박정희 찬양이다. 이는 오늘날 보수 프레임에서의 종북좌파와 박근혜의 대립구도로 요약된다. 친일파의 불감증은 주기자가 지적했듯이 어쩔 수 없어서 일본을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신대를 모집하고 징병을 부추긴 파렴치함에 있다. 지들 가진 자들만 잘 먹고 잘살면 나머지 국민은 피 눈물을 흘려도 되는 태도가 오늘날 속물과 위선, 염치불구와 안하무인의 보수를 잉태한 것이다. 독립운동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못먹고 못사는데 친일 끄나풀 들은 대대손손 떵떵거리면서 사는게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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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는 기자생활이 독립운동이라고 말한다. 기자의 결론은 더 서글프다. 지극히 평범한 당신도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명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약자이고 저들은 강한 자들이니까. 약자는 평생 살아온 터전이라도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하면 때려 맞으면서 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용역깡패 피하려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게 된다. 재수 없어 불에타서 죽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온다고 해군기지가 세워진다고 잘 살고 있던 마을을 하루 아침에 떠나야 한다. 삶과 터전이 무너져서 시위라도 하면 바로 빨갱이라 손짓하고 억울하다 자살해봐야 신문에 한 줄도 안 나온다. 단순 교통사고 사망자는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사고 경위까지 나온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아무리 더 살고 싶어도 내일 그 곳이 개발될지 어떨지 이 놈의 나라에선 이명박과 그 측근만 안다. 제기럴, 조폭을 세탁한 때 아닌 철거회사만&nbsp; 밤이고 낮이고 호황인 시절이었다. 아! 정말로 무식하고 탐욕스런 쥐새끼들이 코끼리처럼 판을 치는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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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명박을 뽑은 건 우리의 탐욕 때문임을 인정하자. 우리는 그가 국가를 잘 경영해 다 같이 잘살게 되는 나라를 만들어 주길 기대했지만 그는 보기 좋게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로지 자기네 식구와 측근들만 잘사는 것이 가능하다 증명해보였다. 삼성의 절대 안 들키는 돈을 받은 검찰과 기자들. 이명박이 눈감아준 검찰과 정치인. 종교가 눈감아준 조폭. 조폭이 뒤를 봐준 건설사. 삼성과 언론에 동조한 지식인.... 주기자는 ‘친이인명사전’을 작성해 끝까지 추적하겠다 말했다.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알고 나꼼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 말했다. 수줍은 꼴통, 열일곱의 심장을 가진 기자는 혼자 피하면 쪽팔리는 거라 말한다. 약한 사람들이 당할 때 옆에서 같이 욕이라도 해주고 비록 진흙탕이지만 같이 범벅이 되어 싸워주면 그놈들도 흠칫 당황한다고 주장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자살소식에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는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지 마음에도 비가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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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가슴에 내리는 비가 그저 약자들의 젖은 옷자락으로만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살면서 봄비가 내릴 때 나는 우산위로 하나둘 떨어지던 빗소리가 좋았다. 여름 소나기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가을비처럼 을씨년스럽지도 겨울비처럼 쓸쓸하지도 않은 것이 이상하게 어떤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약자들에겐 다행히 희망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마지막 가능성이 있다. 진실이 뜨거운 것이라면 그 뜨거운 맛을 꼭 거짓된 자들이 맛보기를 소원한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나는 이렇게 쫓아가서 욕을 할 주제는 못된다. 하지만 당신들이 골치 아픈 "주기자를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야" 이렇게 떠들 순 있다. 생각보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보수들이 갈등하는 건 언제나 자기 혼자 깨끗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이었다. 다들 입다물고 속이고 빼돌려서 잘 먹고 잘 사는데 혼자 아무것도 안 챙기면 무엇을 얻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진실은 뜨겁고 거짓은 시리다. (하필 이 책에서 마지막이 최진실의 이야기이다...) 심장이 따스하고 죽음은 차가운 이유다. 살아있는 한 우리 심장은 적어도 진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서 숨쉬며 하늘과 땅을 번갈아 바라볼 줄 안다면 저 위에서 군림하는 거짓된 자들의 심장에 진실이라는 비수는 꽂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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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잠못들고 있는 내 부끄러운 영혼의 고백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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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88/39/cover150/8971848782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782</link></image></item><item><author>다락방</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뇨, 서투르지 않은걸요. - [버스커버스커 - 정규 1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fallen77/5545881</link><pubDate>Wed, 04 Apr 2012 0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fallen77/55458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9174587&TPaperId=55458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0/20/coveroff/930917458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9174587&TPaperId=55458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버스커버스커 - 정규 1집</a><br/>버스커버스커(Busker Busker)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12년 03월<br/></td></tr></table><br/>그해 봄, 나는 친구를 만나러 낯선 도시로 갔다. 낯선 도시에는 나의 친구만 있는게 아니었다. 바다도 있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바다를 앞에 두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는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홀로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를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바다에 가고 싶다고나 하는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는데, 친구를 기다리는 20분 가량, 바다 앞에 홀로 서 있는 내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가 무척 좋았다.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웃게 됐다. 아, 좋은데?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잠시 걷다가 그렇게 바다 옆에 있었다. 그리고는 참지 못해 바다의 사진을 찍었고, 또다른 낯선 도시에 있는 이에게 바다의 사진을 첨부한 메세지를 보냈다. '바다' . 사진 밑에 첨부한 메세지는 그게 전부였던가, 더 있었던가.&nbsp;<br>친구가 도착했고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릿속 한 구석엔 내가 보낸 바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다. 나에게 바다 사진을 받았던 사람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바다의 사진을 첨부한 메세지였고, 메세지의 내용은 간략했다. '나도 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바다를 보았고 그 바다에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어디있는지를 알렸다. 그리고, 며칠전의 어느 늦은 밤,<br>「여수 밤바다」를 &nbsp;들었다.&nbsp;<br>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中)<br>이 노래를 듣는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바다 메세지 생각이 났다. 아 그래, 나는 그에게 바다 사진을 찍어 보냈지. 그도 내게 바다 사진을 찍어 보냈어. 나는 「여수 밤바다」를 듣는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 시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깊은 밤, 나도 모르게 굳게 결심했다. 바다에 가자, 바다에 가자. 바다에 갈테야. 그래, 여수 밤바다에 가야지, 여수 밤바다에 갈거야. 바다에 가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고, 다시 한번 바다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싶었다. 너를 생각해, 라는 메세지를 띄워 보내지 않아도 좋으니 바다로 가고 싶었다. 내가 바다에 간다면, 이제는 여수 밤바다로 가보자. 그때의 그 바다가 아니라 여수 밤바다로.<br><br>버스커버스커의 노래 한 곡이 나를 이렇게 상념에 젖게 만들었다. 음악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흥얼거리게 만드는 것, 함께하게 만드는 것, 울게 만드는 것, 고단을 치유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의 음악이 역할이라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음악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제대로 된 음악을 만든것이 아닌가.<br>나는 어떡하죠 아직 서툰데(첫사랑), 라고 노래하는 그들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전혀 서툴지 않다. 첫사랑의 설레임과 서투름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그들을 어떻게 서투르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목소리는 앨범 전체를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을만큼 내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개성이 넘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색깔은 아니지만 색깔이 분명하다. 이 앨범의 전까지는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또 나는 그들이 출연했다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도 없지만, 이렇듯 숨어있는 가수를 찾아내는 것을 오디션 프로그램이 해내는 것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오, 괜찮은 프로그램이 아닌가. 가수를 '만들어' 파는 이 때에 '숨어있던 가수를 찾아내'다니,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nbsp;<br><br>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nbsp;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br>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벚꽃 엔딩 中)<br><br>참 이상하다. 목소리도 가사도 세련되기 보다는 촌스러운 쪽에 가깝게 느껴지는데 그런 목소리와 가사가 어우러진 노래가 듣기에 좋다. 이것이야말로 노래가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나는 그들의 앨범중에서는 특히나 「여수 밤바다」와 「첫사랑」이 좋다. &nbsp;혼자 바닷가에 가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들의 노래나 듣고 싶어진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80/20/cover150/9309174587_2.jpg</url><link>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09174587</link></image></item><item><author>마산</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mp;lt;민주주의에 反하다&amp;gt; 2012년, 대선 앞에서 실재하는 희망.  - [민주주의에 反하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87302148/5574117</link><pubDate>Wed, 18 Apr 2012 1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87302148/55741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646766&TPaperId=557411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22/12/coveroff/89896467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646766&TPaperId=55741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주주의에 反하다</a><br/>하승우 지음 / 낮은산 / 2012년 04월<br/></td></tr></table><br/>총선이 끝나고 결과를 보면서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제수씨를 성폭행 했다는 사람을 뽑고, 표절한 사람을 뽑는 것일까.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 앞에, 그것에 숨겨진 의미가 궁금했다. 아마도 투표장에 간 사람들, 그리고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자기들만의 판단 기준이 있으리라. 하지만 결국 동네의 아줌마들 그리고 남편까지 모두가 한숨을 내쉬면서 투표장에 가지만, 그렇게 힘들게 투표가 끝나면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벅차다.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예전엔 누가 좀 어깨를 토닥거리고 기운내라고 해 주면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저 돈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각박해지고 사는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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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시대를 이전 세대들이 살아냈다는 사실이었다. 100년이란 세월속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를 살았고, 지금에 비판받는 386세대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살았다. 우리 아들, 딸들은 무한 경쟁의 학교 속에서 살고 있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다수가 아토피를 겪으면서 아파하고 있다. 그래... 서민들이 민중들이 대중들이 고통받지 않은 세월은 없었다. 하지만 그 세월 속에 우리 앞 세대들이 도대체 어떤 선택을 했길래... 늘 이 모양 이꼴일까?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늘 힘들고 어렵고 아파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 고민 속에 예전 역사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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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역사속에 어떤 사람들은 만날 살기가 힘들다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 온 사람들도 있지만 뭔가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이 있었다. 내가 중, 고등학교 시간에는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남해의 소안도라는 작은 섬에서는 일제 시대에 한 섬 전체가 일제의 교육 과정에 동참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교육과정을 꾸리면서, 국가가 강요하는 삶이 아니라, 섬 사람들이 살고 싶은 인생을 살아낸다. 그 결과 소안도에서 만들어진 학교에서는 수 없이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다. 그들은 일제의 강요나 있는 자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동네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낸다. 또한 암태도란 곳에서는 지역 행정관료와 말을 섞지 않는 불언동맹(말을 섞지 않는 것)이란 것을 펼치면서, 지금 생각해도 획기적인 방식으로 지배에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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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거나, 혹은 누군가가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믿는 대신, 모두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일구어 냈다는 것이다. 물런 이런 사람들은 나라의 핍박을 받았다.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서 모두 그랬다. 국가란 이름으로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는 삶 속에, 큰 언니는 하루에 15시간씩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고, 막내 고모는 오빠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연애 한번 못하고 20~30대를 보냈다. 지금은 어떨까. 김대중 시대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살했고, 내 남편이 실직했다. 노무현 시절이라고 달라지진 않았다. 이명박 이후로는 삼겹살 먹기가 그렇게 어려워졌고, 무슨 낙으로 삶을 살아가는 지 어려울 지경이다. 돌이켜보면 나라가, 국가가, 대통령이, 정부가 우리들에게 무언을 해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으로 부터 나라를 지켜주었다고? 하지만 최전방에 총들고 오들오들 떨고있는 아이들은 다 없는 집 자식들이고, 천안함에서 수장당한 아이들은 모두 서민의 자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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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품물고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속하는 건 모두가 거짓이라고. 그러면서 모두가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기를 쓰고 대학을 가고, 돈을 벌려고 주식을 하고, 주말이면 로또를 산다. 어떻게든 우리 가족은 내 자식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모든 짓을 하면 할 수록, 권력을 가진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된다. 물가가 오르고 비정규직이 늘어나지만 삼성전자는 역사상 가장 큰 수익을 보이고, 대외무역은 최고의 흑자를 보이며,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가 대표로 있던 회사는 몇 조가 되는 돈을 쉽게 벌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냥 나라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면 그냥 살아야 하니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깐 그냥 산다고 한다. 그 좌절감 속에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침 지하철 속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을 보면 가끔은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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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약간의 용기가 생긴다. 지난 100년간 그냥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존중받기 위해서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고민하는 새로운 정치, 혹은 새로운 화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지역 화폐라는 것을 처음 들으면서, 우리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핵 개발에 맞서서 싸우는 녹색당이란 곳을 보면서, 정말 미약하지만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과 자주 만나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고...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되지 않을까. 그런 순진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런 게 희망이라면,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회에도 있다면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내 삶과 내 친구들의 삶이 조금은 낳아지지 않을까. 정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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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고 8개월 후면 대선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다시 술자리에서 박근혜와 안철수, 문재인과 같은 대선 후보들 이야기에 여념이 없을게다. 술자리 안주로서 제격이지만, 정말 삶의 진실은 그들이 진정 안주꺼리란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약속은 이행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한 약속은 기득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바뀌리란 것을 알고 있다. 마루타처럼 매번 당하면서도 다시 희망고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우리들. 나는 이런 내가 참 밉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못났음을 절실히 느꼈다. 변화는, 희망은 나의 움직움 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더 고민을 해 보아야겠지만, 지금의 선거제도와 지금의 국가로은 행복해 질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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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하승우씨는 학력이 박사임에도 알기 쉬운 대화로 어떤 어려운 이론없이, 우리 삶이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민주주의 핵심이 다수결이 아니라 추첨제도, 즉 제비뽑기에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낯설지만 새로운 이야기에 뭔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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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들어가는 말에 이런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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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산업 문명에 정면으로 맞섰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 보자'고 하는 것이 유토피아라면,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자신이 이렇게 해 보려 하는 것'이 희망"이라 말했다. 행동하려 마음을 먹는 순간 나는 희망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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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아보니, 그는 경희대학교 교수였다가 실제 자기 삶과 자기 생각을 맞추어가기 위해 교수직을 때려치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용인에서 살며 지역 도서관에서 동네 아줌마와 가출 청소년, 동네 백수들을 만나서 같이 책을 읽으며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 속에서 나온 생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행동하며 같이 걸어가자는 사람. 책을 읽고 저자를 보며, 정말 희망을 보았다. 어려운 이론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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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스며있다.&nbsp;국가와&nbsp;거대 자본들이 정말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선거 제도가 민주주의의 힘인지, 좋은 대통령이 우리의 희망인지... 그런 고민을 다시 할 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고민을 회피하지 말고 더욱&nbsp;거세게 부딪칠&nbsp;때&nbsp;희망은 밝게 빛을 낸다. 희망버스를 통해 살아온 김진숙씨처럼. 지금 사람들이 고통받고 싸우고&nbsp;있는 현장에 희망이 되어야 한다. 제주의 강정마을과 밀양의 송전탑 싸움. 4대강 곳곳의 폐허들. 도시 재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비정규직들...&nbsp;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힘을 키울 때, 국가의 지배자들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한 정치가 가능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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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발한 계절이지만, 아직까지 꽃을 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마음이 얼음장처럼, 그리고 배가 고픈 사람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온 종일 먹은 게 없어도 하루는 배가 부르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밥값을 하는 책이란 말이다. 고맙다. 이런 책을 써 주어서.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22/12/cover150/898964676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646766</link></image></item><item><author>분홍신</author><category>사랑의 춤</category><title>감사의 이유를 알겠습니다 -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title><link>http://blog.aladin.co.kr/751501146/5577290</link><pubDate>Fri, 20 Apr 2012 1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51501146/55772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14626&TPaperId=557729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64/27/coveroff/899221462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14626&TPaperId=55772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a><br/>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 2008년 10월<br/></td></tr></table><br/>&nbsp;
서문의 첫 머리, 첫 문장부터 거침없이 내 가슴을 쓸어 내렸던 한 권의 책에 관하여...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nbsp;
<BR>필자는 첩첩산중, 내륙의 작은 도시 무주에서 1996년부터 1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작업에 매달린 적이 있다.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무려 30여 개의 건축을 다루는 일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 <BR>(p.6, 저자의 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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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이 초단위로 환산되면서 모래같은 시간의 알갱이들이 와르르 엄습해왔다. 가슴을 쓸어 내리는 느낌도 분명 이 모래 알갱이 같은 시간의 낙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토록 시간의 무게가 절절했던 까닭은 공교롭게도 머나먼 타국의 낙후된 도시에서 500여 일간의 파견근무를 마친 후 이 책과 만났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대도시의 편의와 가족을 떠나 산골짜기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평범한 일상생활이 아니라 일개 시(市)를 맡아 그곳의 공공건물들을 설계한다는 것은, 그리고 관(官)을 상대로 그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최대치의 열정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며 저자의 표현 그대로 '고난의 행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 고난의 행군을 한편으론 '행운'이라고 불렀다.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닌 10여 년의 세월을 첩첩산중에서 30여 개의 공공건축물과 씨름하며 보냈던 그가 이를 행운이라 부르는데 더 이상 무어라 항변할 수 있을까, 그저 존경스러울 밖에. 남은 것은 숙연한 마음으로 한 건축가의 혼이 누적된 10년의 세월을 조심스레 들춰보는 일밖에 없었다.
<o:p></o:p>&nbsp;
&lt;감응의 건축&gt;은 한 도시와 한 건축가의 성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생생한 일대기이며 건축을 너머 사회와 환경 전반에 울림이 되는 소중한 발언들이다. 얼핏 보면 무주시 프로젝트에 관한 작품집 같지만 건축가 한 개인의 '작품'보다는 농촌문제, 건축행정, 민주주의, 자연과 생태에 더 주목하고자 하며 언변에만 그치는 이상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경험 속에서 우러난 실천 가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자,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한결같은 건축생애의 행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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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건축가 누구' 하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어떤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라고 해야 겨우 그 건축물의 인지도에 따라 '아~!'하는 동의나마 얻을 수 있다. 정기용 선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그가 건축계의 저명인사라 할지라도 '고(故)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st1:PersonName w:st="on"><?xml:namespace prefix = st2 ns = "urn:schemas:contacts" /><st2:Sn w:st="on">노</st2:Sn><st2:GivenName w:st="on">무현</st2:GivenName></st1:PersonName>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나 '기적의 도서관'을 들지 않고는 대중들에게 소개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같은 건축가들의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그의 건축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lt;말하는 건축가&gt;가 개봉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CEO든 학자든 예술가든 '듣는' 것을 미덕으로 강조하는 요즘 세상에 굳이 '말하는' 자를 자처하며 나섰던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건축과 인간과 자연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었으며, 대장암 말기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한 건축가의 사회를 향한 간절한 유언이기도 했다. 그리고 &lt;감응의 건축&gt;은 바로 그 말들이 비롯된 선생의 건축적 경험과 소신의 산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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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건축’은 정기용 선생에게 있어 모토(motto)와도 같은 중심개념이다. ‘말하는 건축가’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그는 늘 ‘감응의 건축가’였으니까. 여기서 감응이란 쌍방적인 것, 느끼고 응하는 것, 영어로 하면 ‘correspondence’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를 한자로 풀이하면 ‘생성’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좀 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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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을 한자로 표현한다면 ‘어질 인(仁)’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어질 인’자는 사람이 둘이다. 사실 ‘어질 인’자에는 ‘생성’의 의미가 있다. 은행나무 열매를 행인(杏仁)이라고 하는데, 열매를 인(仁)이라고 쓰는 것은 감응해서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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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해 싹을 틔운 것. 그것의 참 모습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주 프로젝트이다. 여기서는 자연, 시간, 기관, 주민, 건축가가 서로 소통하며 모두를 위한 30여 개의 공공건축물들을 탄생시켰다. 설계를 의뢰했던 무주군수부터 공공건축과 행정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건축가는 그와 함께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고 귀로 들었으며, 콘크리트와 아파트로 대변되는 근대건축이 밀어내 버린 자연과 시간을 건축 환경 속에 다시 회복시켰다. 일례로 애초에 계획했던 주민자치센터(면사무소)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여타 자치센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목욕탕을 포함하기로 했다. 모든 주민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였고, 목욕을 하려면 봉고차를 빌려 대전까지 다녀오는 것이 그들의 상황인데 어찌 천편일률적인 자치센터의 시설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공설운동장의 경우에도 주민들의 뼈아픈 충고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공설 운동장에서 행사를 할 때면 주민들이 오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아보니 “높으신 분들만 그늘에 앉아 있고 우리들은 땡볕에 나 앉아 있어야 하니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그래서 공공건물의 권위주의를 벗겨내고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시도한 것이 등나무 그늘막이다. 그늘막을 위한 구조는 평범한 철골로 토대를 세우고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등나무가 자라나 타오르게 만든 것이다. 등나무가 자라 철골구조를 다 덮으면 친구처럼 서로의 굵기도 엇비슷해지고 그늘은 기성품 천막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천연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그늘막의 풍경도 달라지고 일년에 한 계절은 꽃 향기까지 맡을 수 있으니, 이보다 아름다운 민(民)의 공간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비록 정기용 선생 스스로 조금 비약적이라 표현했지만) 건축이 사회적 제안임을 확인시켜주었고, 감응을 통해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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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시는 보기 드물게 우리나라의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농촌이니만큼 여기서 농촌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농촌의 토지, 농촌 개발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밀려드는 신도시, 공장, 골프장들…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농촌은 더 이상 농민의 것이 아니라 부를 소유한 큰 손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문제는 농민들의 땅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마저 침식당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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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람들에게 개발의 개념이란 땅값이 오르면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p.85)&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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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가 사회적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건축이 맞선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향해 수많은 분야들을 끌어안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설계자이기 이전에 세상에 대한 번역가이고, 세상을 읽어주는 사람이고, 사회를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당차게 말한다. 앞서 언급한 농촌문제의 경우도 단지 도시와 같은 생활의 편의를 그곳에 옮겨 심는 것이 아니라 국토개발이나 건축행정, 지역성 등의 관점에서 그들의 미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제안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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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감응의 건축&gt;은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건축의 사회적인 측면들을 많이 언급하지만 각각의 건물에 함축된 아름다운 의도와 그것을 이끌어나갔던 사유의 자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늘의 질서를 따르기로 했다는 부남면의 건물들, 망자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도록 창을 만든 무주 보건의료원, <st1:PersonName w:st="on">최재천</st1:PersonName> 교수를 쫓아다니며 배운 곤충과 식물과의 공생관계를 적용한 곤충박물관, 이 밖에도 자연과 현실과 미래를 고민한 많은 건물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은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라는 커다란 명제 아래 치열하게, 때론 포근하게 진행된다. 평소 해외 건축사조와 건축철학을 답습하며 늘 선진사례, 선진사례, 하는 것을 염려했던 선생이었기에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이 땅의 것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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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리고 마지막으로…<BR>정기용 선생은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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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나무, 바람, 하늘, 공기, 모두 다 고맙습니다."<o:p></o:p>
<BR>처음엔 그저 생을 마감하는 이가 고맙다는 말씀을 남겼기에 어쩐지 가슴이 찡했지만 나중에 문득 이 책을 떠올리고 나니 보다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연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던 것은 이생을 통해 그들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건축을 함께 만들어나갔던 친구였으며, 스승이자 조언자이기 때문이었다. &lt;감응의 건축&gt;은 정기용 선생이 자연과 인간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행운과 고난의 10년을 살뜰하게 기록해 우리가 가야 할 지점까지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을 걷다 보면 그가 말했던 모든 것들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말보다도 더 많은 습작들이 우리의 열정을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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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고(故) 정기용 선생의 마지막 작품집. 노란색이다. 환히 웃으시는 것&nbsp;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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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64/27/cover150/8992214626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214626</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밤에 피는 장미 - [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81516</link><pubDate>Sun, 22 Apr 2012 2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815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TPaperId=558151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36/coveroff/93559700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TPaperId=55815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a><br/>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래 / 이엠아이(EMI) / 2012년 05월<br/></td></tr></table><br/>'Sunrise'와 'What am I to you'는 내게 국보급. 악보가 어딨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 치면서 흉내내려고 했다. 체르니 100번,30번 친 동생은 피아노를 전혀 못치는데 나는 40번,50번도 뗐기 때문에 까먹은 상태는 아니라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는 가능하나 노래를 못-_-해서 첫 번째 좌절. 두 곡은&nbsp;몇 년&nbsp;동안 자장가였고, 'Young Blood'는 여전히 벨소리인데다가, 'Sinkin' Soon'을 듣다보면 반드시 레이 찰스 앨범도 듣게 되는데, 그럼 그날 밤 잠은 완전히 설치게 된다. 이건 부활하고는 또 다른 이유로. 자꾸 찾게 되는 무의식이 취향과 관심, 애정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녀의 정규앨범들을 얼마나 닳도록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 엄청, 많이,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함께 줄세울 엄청난 수의&nbsp;다른 뮤지션들이 있다.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있는 건 언제나 문어발로 존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유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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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노라 존스는 바르게 안착했다. 첫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적이지만 듣는 대중 개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떤 지점을 개척했다. 혼자 좋아하면서 분위기 잡고 싶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은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스러울 만큼. 노라 존스가 누구에게나 친근한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못됐다. 취향을 나누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지가 별로 없다. 실제로 재잘재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얘기하는 사람은 J 뿐이다. 함부로 재단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유일한 가족 아닌 가족. 다들 아는 분야, 읽은 책, 들어본 음악에 숟가락 하나 더 못 얹어서 난린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늘 헬스장 뛰어다니고 드라이브 하는 것 같은데 책은 언제 읽는지,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닮아간다. 정확히는 내가 닮고 싶다. 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나가는 얘를.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나를 견뎌야 하는데(그럴 경우 타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가려고할 때면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진중함은 늘 나를 붙잡는다. 나를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나는 늘 아무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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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때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것,&nbsp;도착해서 짐을 풀&nbsp;때부터&nbsp;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lt;비밀과 거짓말&gt;을 쓰고나서&nbsp;은희경 작가가 애기했던 '역마살'인데 나는 그건가. 여튼 뭔가 궤도에 올리면 울궈먹는 대신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소설가에게는 역마살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살붙이고 숨결 불어넣고 사랑하고 애증하다 언젠가 보내야 하는데, 그걸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책을 더 읽거나 공부를 더하면 되는데, 공감력이나 감성이 모자라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과 공감력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일반인을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느낀다. 가식이 아니라 뼈저리는 고통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탐색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노라 존스는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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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잡식성이고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재즈에 대해 모른다(음악잡지 재즈피플을 몇 달 받아보면서 알았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쉬웠다). 두 번째 좌절. 굳이 비교하면 나는, 재즈 &lt; 컨트리,인데 그래서 노라 존스 &lt; 올리비아 뉴튼 존,이다. 제이슨 므라즈는 두 장르 모두를 넘나들지만 그의 곡들은 한국사람 정서에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기가 쉽고, 좋아하는 사람 찾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쉽고, 싫어한다고 하면 모두 확 달려들어 공격해올 태세. 참고로, 나는 안 싫어한다. 좋다. 부산 콘서트. 라이센스 공연은 예전에 갔던 스위트 박스 이후로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비싼 돈 들여 공연 갔다가 얄궂은 일로 죽어라 싸워서 헤어질 뻔;;(갑자기 이게 왜..)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nbsp;어쨌든 제이슨 므라즈의 새 앨범 월드투어 첫 스타트가 부산이란 게 신기하고, 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를 동경하던 언젠가처럼 아련해진다. 좋겠다, 가수는.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온 세계 도시들을 누빌 수 있다니. 그래도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나는 지금 노라 존스 새 앨범에 리뷰를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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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맛보기로 싱글이 발매되었다. 'Happy Pills'는 여전히 상큼하고 부드럽고 강했지만, 그동안 귀가 예전 곡들에 적응했는지 쉽게 마음으로 듣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가능해졌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곡들의 느낌이 나를 나이먹게 한다. 이게 3월이었나, 어쨌든 그러면서 잊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건&nbsp;참을 수 없는 충동이다보니, 우연히 앨범을 구하게 돼서 들을 수 있을 때 얼른 들었다. 처음부터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가사의 뜻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동이 한걸음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말리는 마음의 느낌으로 한 곡씩 마음에 넣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또 이 곡들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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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피아노' 때문인데, 우연찮게 [Live in Paris] 앨범을 듣다가(다이애나 크롤도&nbsp;파리 라이브 앨범 있는데! 그것과 달리 노라 존스의 이건 해외앨범인 것 같다)&nbsp;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모든 곡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놀랐다. 편곡의 힘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라이브의 현장성도 물론이고, 새삼 감탄하다가 역시, 좋겠다, 가수는. 으로 귀결. 사실은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운 거지만. 전에 데이트 하던 날, 걔 성격 답게 말 꺼내자마자 114에 묻고&nbsp;서면 뒤져서 '애플스토어' 가서&nbsp;아이팟 충전기 사왔다. 2만원 생각하고 갔다가 4만원이래서 잠시 놀랐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한데다가, 어차피 없으면 안되고, 안사고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샀다. 산 건 잘 한 일이었지만 4만원 충전기+USB잭이 불안하게 덜렁거리는 걸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기존고장도 그래서 났는데, 원래 쉽게 고장나도록 만들어 놨던 거군, 하면서 애플 씹다가 그냥 잊었다. 며칠 지나니까 역시 돈이 좋아,이러면서 아이팟으로 밤마다 &lt;패션왕&gt; 무한반복과 각종 영화들 섭렵을...( '') 자연히 노트북은 자료 옮길 때만 쓰고, 그즈음 엄청나게 인문서를 사모으고,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인터넷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으로 무장한 다음, &lt;데인저러스 메소드&gt;를 보고는 이제 프로이트와 융을 읽겠다며 책장을 다 뒤져서 엉망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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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파전과 부추전을 굽고, 돼지고기 엄청나게 넣어서 보글보글 매운 김치찌개도 끓이고, 두부랑 호박 숑숑 썰어서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양념소고기를 엄청나게 볶아서 상추쌈을... 먹긴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노라 존스와 상추쌈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노라 존스는 충분히 갖다 붙이는 대로 간다니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나른하고,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이건 틀렸다. 슬픈 거랑 달콤한 건 반대말이 아니니까. 그래도 맞다. 낮을 슬퍼하면서&nbsp;밤에만 피어나는 장미 같다. 노라 존스를 들으면서 생각도 안 나는 많은 악기들을 배워볼 생각을 했다. 처음 'Sunrise'를 듣게 된 건 누가 피아노 치며 그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그렇게 강해 보이는 거다. 연약할 때 연약하고 강할 때 강해서 사랑받는다. 강약을 잘 알아야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노라 존스는 그런 여자처럼 노래하고, 그녀의 여성성에 환상을 품게 한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희미한 첫사랑의 느낌. 그녀를 보며 늘 피아노 치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던 내가 드디어 피아노 연주하는 타인에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노라 존스가 있는 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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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가 딱 보편적 취향이다 싶은 게, 매번 '미는 곡'이 좋다. '숨겨진 곡'이나 '끼워진 곡'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이나 욕도 안듣고 이러고 대충 사는 거겠지,싶어서 세 번째 좌절. 이번 앨범자켓은 이전보다 더 예쁘다. 통에 든 포스터도 저 자켓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실 문 앞에 붙이면 욕실이 환해질 것 같아서 내 방 말고 욕실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36/cover150/9355970048_1.jpg</url><link>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link></image></item><item><author>Memories</author><category>만화</category><title>주술을 통해 사별을 되돌릴 수 있다면...&amp;lt;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amp;gt; -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764223194/5587290</link><pubDate>Wed, 25 Apr 2012 1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64223194/55872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94395&TPaperId=558729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41/84/coveroff/89591943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94395&TPaperId=55872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a><br/>토지츠키 하지메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04월<br/></td></tr></table><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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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정확히 보지않는다면, 이 깔끔한 표지와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아마 '삼각관계'가 아닐까. 주인공인 나 와 그녀와 선생의 삼각관계, 이 얼마나 흔하지만 또 골치아프면서, 또 여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인가! 사실 어쨌든, '삼각관계'이기는 하다. 서로 얽혀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 세 인물을 얽혀놓은 끈은 '사랑'이 아닌&nbsp;'주술'이다. 그것도 죽은 이를 이승과 저승 사이에 묶어두고, 나아가 다시 산 사람으로 돌아오게끔 하는 주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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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과 사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꾸어보았을지도 모를 '꿈' 같은 이야기 아닐까.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공유할 수 없는 그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눴던 유일한 한 사람을&nbsp;결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기때문에,&nbsp;사별은 언제나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세운다. 다만 그 절망을 버티는 방법과 시간만이 모두 각자 다른 법. &lt;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gt;는 기본적으로는 주술을 소재로 한 기담이야기 지만, 핵심은 그 사별에 대한 절망을 대하는 이들의 모습을 반추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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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켄신'은 루로우니 켄신과는 전혀 다르게 (이건 뭐 망언수준의 개그랄까;) 귀여운 여고생들이나 보자며 시작한 여고 앞 편의점의 새벽파트 알바생이다.(이런 경쟁률 쎈 편의점에서 일하다니, 실은 진정 능력자!?;)&nbsp;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변을 보아하니 정말로 '보는 정도' 에 그친 것 같은 일상(OTL), 그런 켄신에게 난데없이 한 여고생이 나타나 염주로 '딱밤'을 때리며 건네는 한마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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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면 일찍 죽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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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일이란 무엇일까? 모던한 올 블랙으로 깔맞춤한 수수께끼의 미소녀 코마치는 그렇게 도도하고 난데없이 켄신에게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고, 집에 돌아간 켄신은 할머니에게 요바나시(동지 즈음에 입춘 무렵까지 해가 진 뒤에 이루어지는 다도 모임을 이르는 말)의 한도(다도 모임에서 주인의 보좌역을 맡는 사람을 이르는 말)역할을 부탁받게 된다. 왠지 유유자적하게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이는 이 켄신은 다름아닌 삼대를 이어온 유라쿠류 다도 집안의 남자 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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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에 박식한 사람이라면 잘&nbsp;알겠지만, 나처럼 일본문화에 '관심'만 쬐금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도라고 하면 그저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한잔 하는 것, 혹은 기껏해야 그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리는 격식같은 것으로 알고있을 지도 모르는데, 여기서는 물론 그런 '실내'에서의 다도의 모습이 아닌, 거기까지의 '과정' 이 주 무대가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흥미를 느끼면서 다도에 대해 최소한 좀 더 나아간 겉핥기를 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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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그 자체는 엄숙하고 딱딱할지 모르나,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라는' 켄신의 태도 때문인지, 일본의 다도 문화에 대해서 좀 더 다가가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선에서, '기묘하게' 진행된다.&nbsp;'쓸데 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코마치의 말이 조금 난데없었다면, 켄신이 로지(다실로 통하는 정원의 통로)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길은 마치 피안(흔히 사후세계를 가리킴) 으로 건너는 길처럼 기묘한 느낌을 잘 보여주며, 동시에 슬슬 본격적인 기담으로 안내한다. 이제 켄신은 불현듯, 자신에게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던 코마치의 말을 떠올릴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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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스즈키 선생의 집에서의 요바나시에서, 한도 역할을 하게 된 켄신은 '손님' 마음에&nbsp;들게되며, 더불어&nbsp;스즈키 선생의 호의를 받게되고, 세가지 소원을 이뤄주는 이상한 상자까지 선물을 받는다. 처음엔 그것을 믿지 못하다가 말미에, 돌아가신 할머니(아까 전화를 했던!) 를 살려내기에 이르고, 그 할머니는 이제 켄신을 찾아온다고 하는데... 가까스로 그 위기를 코마치로 인해 모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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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nbsp;'딱밤의 귀재인데다 머리뽑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수수께끼의 미소녀 코마치는&nbsp;사라져버린 의식이나 주술 같은걸 되살리기 위한 - 민속학을 연구한다는 스즈키의 조카였던 것. 그런 코마치의 눈돌아가게 휘황찬란한 생일파티에서 켄신은, 코마치와 함께 있으면서스즈키 선생 家의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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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은 그의 누나이자,&nbsp;돌아가신 코마치의 엄마인 한 여인을 되살리려 하고 있었는데, 이유인 즉 그 집안의 여성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액운을 대신 받아주는 액받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코마치는 죽은 엄마와 아빠는 분명 행복하게 살았었다며, 스즈키 선생의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은 누이를 살려내려는 스즈키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코마치, 그리고 그 사이에 '쓸데없이 끼어들어 버린' 켄신, 이 세 사람은 과연 어떤 광경을 보게 될 것인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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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를 보고 있노라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lt;별을 쫓는 아이&gt;에서의 모리사키가 떠오른다. 죽은 자신의 아내를 잊지 못하고, 결국 신화적 지하세계인 아가르타 를 찾아내서, 아내를 되살리려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그의 모습이... 물론 이 &lt;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gt;의 스즈키는 약간 더 절제된 느낌이지만, 결국 그 마음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저, 그 감정을 그리는 작가의 방식이 다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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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다 읽고 버뜩 든 생각은 '부담없이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란 점이다. 기본적으로 베이스를 기담(奇談)에 두고 있긴 하지만, 여타의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기담의 형식 자체에, 유머러스 함이 합쳐진 이야기다. 번역의 센스라고 생각되는 현대(특히 한국)식의 개그 대사 들은, 우리가 이야기를 즐겁게 따라가는데 충분히 감초역할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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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lt;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gt;는 누군가 악역 혹은 큰 피해를 주는&nbsp;일&nbsp;없이,&nbsp;복수나 원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별한 누군가를 다시금 만나고자 하는, 어쩌면 서글픈 주술에 얽힌 이야기 인지라, 이야기를 이해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기담보다는, 그리움과 애절함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기묘한 일들을&nbsp;예상보다 덜 기묘하게 받아들이는, 어딘가 조금 덤벙대는 듯 보이는 켄신과 이미 세상 다 아는것처럼 시크한 코마치, 그리고 교회오빠 스타일인줄 알았더니 그도 아닌 스즈키 선생 각자 모두가 미워 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태도는 부딪힐 지라도, 모두가 각자의 선함과 옳음을 갖고 행동하는 이들이니깐. 그리고 그것이 결국 누군가 혹은 서로를 위한 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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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언급하기도 했지만,&nbsp;이 이야기의 기묘함을 묘사하는 연출력 또한&nbsp;빼놓을 순 없다.&nbsp;마치 청춘만화의 그것처럼 시작하는 켄신과 코마치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켄신이 다도 중에 로지를 걸으며 손님을 안내하는 그 순간, 본격적인 기담의 분위기를 풍겨댄다. 그럼에도 또 거기에 함몰되어 어둡게 진행되지도 않는 것이 &lt;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gt;다. 가벼운 일상과 무거운 기담의 중심을 잘 잡은 이 이야기는 결국, 생과 사의 경계를 인위적으로으로 어찌 해보려는 안타까운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 우리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것을 보여주기위한 스틸은 본문에 포함시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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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츠키 하지메 작가가 펼치는 이,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다 때론 살짝 무겁게 뒤섞인 이야기, 부드럽게 뜬 분위기의&nbsp;말미엔, 모두가 한번 쯤은 바랄법한,&nbsp;(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결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갈망하는&nbsp;간절한 어떤 순간, 그 순간을 바라마지 않는 '감정'을 살짝 어루만져준다. 누구든 분명, '어느 순간'의 그 '감정'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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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로 시작해서, 일본 전통의 주술적 이야기와, 동양적 저승 신화에 대한 소소한 지식들은 덤이다. (아래 컷도 그냥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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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 안되는 상황에서의 켄신과 스즈키의 의사소통. '러브액츄얼리' 뺨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41/84/cover150/895919439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94395</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고전</category><title>야망은 마법보다 강력한 부적 - [일곱 박공의 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blanca98/5590179</link><pubDate>Fri, 27 Apr 2012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lanca98/55901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26&TPaperId=559017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8/29/coveroff/89374628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26&TPaperId=55901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곱 박공의 집</a><br/>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03월<br/></td></tr></table><br/>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lt;주홍글씨&gt;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제목에서부터 의문이 들었다. 대체 '박공'이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 싶었다. 원문 제목은&nbsp; &lt;The House of the Seven Gables&gt;<THE Gables Seven the of House>다. 게이블. 바로 &lt;빨간머리 앤&gt;의 아름다운 집, '그린 게이블즈'가 떠올랐다. 문을 두드리면 꼭 그들의 앤이 아니더라도 머슈 아저씨와 마릴라가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그 집도 이 '박공'과 관련이 있었다. 알고보니 가장 흔한 ㅅ자 지붕형태를 얘기하는 단어였다. 장소가 바로 제목이자 소재, 주제가 되는 책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붕이 일곱 개인 집이 잘 그려지지 않아 인터넷에 검색하니 실제 비슷한 모델의 집의 이미지가 있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집의 정경을 불러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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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물 자체가 마치 화려하고 음울한 회상들로 가득 찬, 자기 생명을 가진 거대한 인간의 심장과 같았다.<BR>-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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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온 곳이다. 일곱 박공의 집처럼 두 세기까진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장소 이상의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지위를 부여받는 것 같다. 그 집에서 매번 최대한 교통이 불편한 학교, 직장 등에 나갔다 어깨에 먼지떠께를 얹고 귀환하곤 했던 기억들은 구석 구석마다 먼지처럼 가라앉아 또르르 말려 있는 느낌이다. 벽마다 가족 구성원들의 추억, 회한들을 숨기고 이 집도 함께 늙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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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박공의 집'에는 쇠락한 귀족 핀천 가문의 후손인 헵지바가 숙부을 죽인 혐의를 받고 수감 중인 오빠 클리퍼드를 기다리며 그 집에 구멍 가게를 열어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 노년의 오누이는 더없이 음침하고 비참하다. 하루 하루를 견뎌 나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시련이자 고문이다. 외부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기대도 없다. 그 집 한 귀퉁이에 세들어 사는 청년 은판 사진사 홀그레이브에게 핀천 가문의 처녀 피비가 이 집에 온 것은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구원의 세례는 이 늙은 오누이에게도 미친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처럼 만연체의 연설을 늘어 놓던 작가 호손의 목소리가 갑자기 청랑해지는 것도 자신이 만든 이 캐릭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쁜 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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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듯이 피비를 읽었다. &lt;중략&gt; 그녀는 그에게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가 갖지 못했지만 그의 생각에 아주 절실한 모든 것에 대한 통역이었다.<BR>-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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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서 갖지 못했지만 절실하게 원하는 것들에 대한 통역이라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언어들은 또 다른 차원의 감정을 고양한다.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구체화하고 해석해 주는 존재로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자 희망. 그 극대점에는 비참하게도 살인 누면을 쓰고 감옥에서 젊음을 소진하고 풀려 난 클리퍼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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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그는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이 비참해지는 법을 배워 왔다.<BR>-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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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언제나 사람을 각성시키고 상처의 생채기는 언제나 저릿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포기해도 비참해지는 법은 언제나 다른 경로를 통해 새롭게 학습된다. 손을 놓았다 다시 접하면 또다시 외국어 실력은 저만치 물러가 있다. 호손은 예리하지만 잔인가히도 한 것 같다. 고딕 소설 같은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기억들을 환기시키고 고통을 소환해 낸다. 핀천 대령과 땅의 소유권을 놓고 분란이 일어 마법사 누명을 쓰고 처형되는 매슈 몰이 단말마에 짜내었다는 예언은 만화경처럼 다양한 형태로 복제되어 후손들에게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오해. 그 속에서 태어나는 희생양. 고색창연한 이 집은 딱딱해져가는 심장처럼 몰락의 징후를 예감하며 힘겹게 박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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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서야 밝혀지는 무고한 클리퍼드를 감옥까지 가게 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촌 핀천 판사의 묘사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그는 외부에서 볼 때 더없이 고상하고 인자한 존경받을 만한 대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근접해서 보면 그의 모든 면은 탐욕과 위선에서 나온 일종의 타락한 연기다. 그 연기는 지역에서 사회에서 너무나 잘 먹힌다. 정계에까지 진출하려는 그의 의도는 무지한 대중 앞에서의 그럴듯한 연기로 갑작스러운 죽음만 아니었다면 곧 현실화될 전망이었다. 그가 그의 선조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바로 그 의자에서 시들어 가고 있을 때 호손이 장황하게 그가 그렇게 마침표를 찍지 않았으면 행해졌을 일들을 늘어놓는 대목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이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하는 것들에 대한 잔인한 실체를 눈 앞에 그려주는 그의 명민함 때문이다. 핀천 판사는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유형이면서도 가장 욕망하는 것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야망이 마법보다 무서운 부적'이라는 호손의 경구는 인간이 한 곳에 뿌리박고 앉아 대대 손손 부귀 영달을 누리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사실은 하나의 잘 변장한 야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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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가 '일곱 박공의 집'을 도망치듯이 떠났다 다시 돌아오고 나서 새로운 정착지를 향해 떠나는 결말은 동화적이기도 하면서 호손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한 결말이기도 하다. 현실과 비현실, 시간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가 그려낸 스케치는 그가 삶에서 깨달은 남겨진 자들에게 해주고 떠나고 싶었던 애기인 것만 같아 기억해 두고 싶다. 그 누구나에게도&nbsp;개별적이지만 공통적으로&nbsp;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도 같다. 상처도 후회도 회한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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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 세상에서 정말 잘못된 일은, 내가 행한 것이든 당한 것이든 진정으로 바로잡히지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lt;중략&gt;아주 오랜 세월이&nbsp;흐른 후에&nbsp;정당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끼워 넣을 마땅한&nbsp;구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보다 나은&nbsp;치유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라고 여겼던 그것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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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문체는 때로 굉장히 장황하고 교조적이다. 하지만 이런 서술이 지루함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다. 캐릭터와 배경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능력과 초현실적이고 마법적인 서사의 힘이 매력이다. 마르께스의 &lt;백년 동안의 고독&gt;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결말의 해피엔딩은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다. '그린 게이블즈'에 앤이 오지 않았더라면 마릴라와 머슈 남매가 핀천 남매처럼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을 것 같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08/29/cover150/893746282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26</link></image></item><item><author>그리움마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개의 힘 1.2 - 돈 윈슬로우 - [개의 힘 1]</title><link>http://blog.aladin.co.kr/743854126/5590212</link><pubDate>Fri, 27 Apr 2012 0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43854126/55902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4114&TPaperId=559021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56/93/coveroff/89601741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4114&TPaperId=55902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개의 힘 1</a><br/>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04월<br/></td></tr></table><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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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익숙하면서도 가장 생소한 단어중의 하나가 아마 마약일 듯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마약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는 말 자체만으로도 지옥을 연상시키는 폭탄같은 단어이지요.. 대마초 냄새만 맡아도 잡혀가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지 싶다능, 아님 말고..&nbsp;하지만 이 마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세계적인 대중화가 되어있는지는 누구도 알 듯 싶네요.. 수많은 미디어와 매체들을 비롯한 욕망을 다룬 소재속에는 마약이라는 것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만큼 흔한 것이기도 하다는거지요.. 특히나 북미와 남미쪽에 있어서의 마약이라는 물질에 대한 존재성은 절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껏 보아온 경험으로는 그네들의 생활속에는 마약이 삶의 일부분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약사업이라는 불법 범죄조직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듯 합니다..뿌리를 뽑기위해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과 맞서지만 심지어는 약소국의 국방력보다 더 화려한 화기를 보유한체 심각한 전쟁을 벌리는 마약조직도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멕시코 마약조직이지요.. 거대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접하면서 그 속으로 가장 쉽게 접근이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마약시장으로 불리우는(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나오더라) 미국이라는 나라에&nbsp;최대한의 수요와 공급을 제공하는 중심이 되는거죠.. 아주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인 마약조직이 여전히 지금 이순간에도 멕시코에서는 나라의 경찰조직을 넘어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무섭네요.. 이런&nbsp;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특히 북중미) 마약과의 전쟁을 미리 알아두고 작품을 읽어보심 대단한 집중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어서 함 적어봤습니다.. 싫으면 그냥 읽어보시덩가, 안 읽어보시면 니만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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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의 마약전쟁을 다룬 대서사스릴러소설입니다.. 미국의 마약단속요원과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의 처절한 싸움과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북중미의 정치, 사회, 경제가 모두 총망라된 범죄 스릴러소설인거지요..&nbsp;여기에는 미국이라는 절대강자의 니카라과 등지에서 벌였던 CIA의 정치음모 - 공산화 방지 스파이활동으로&nbsp;소설속에서는 케로베로스작전이나 레드미스트작전으로 보여줌 - 와&nbsp;북중미의 마약카르텔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형되어지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nbsp;&nbsp;주인공은 아트 켈러라는 CIA출신의 마약요원이 전체를 이끌고 나가구요.. 마약 카르텔의 중심인물로 끝까지 대립하고 거울같은 모습으로 대치하는 아단 바레라와 그의 동생 라울이 있고 바레라 카르텔의 티오가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의 범죄조직인 션 칼란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말이죠.. 이 모든 인물을 잇는 여자로 노라 헤이든이라는 고급 콜걸이 있습니다.. 대단한 서사를 이끌고나가는 작품이라 인물적 구성이 상당히 중요합니다..&nbsp; 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nbsp;발생하고 전개되고 마무리가 됩니다.. 어떻게보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버릴 위험을 안고있는 인물적 구조임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nbsp;글빨의 역량은 돈 윈슬로우가 아니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각 인물들만의 캐릭터와 묘사 또한 허접하게 처리하지 않은 완숙함이&nbsp;엿보이기도 합디다.. 그럼 어떤 내용인지는 조금 살펴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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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켈러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마약단속국 요원으로 75년 멕시코로 발령을 받아오게 됩니다..&nbsp; CIA요원으로 마약으로 골머리를 썩고있는 미국의 멕시코 마약정보수집을 목적으로 멕시코로 오게된거죠.. 여기서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평생동안 서로 싸우게 되는 아단 바레라를 만나고 그로 인해 티오 바레라를 만나게 되죠.. 여기에서 아트는 티오의 의도대로 마약조직을 찾게되지만 티오는 이로인해 자신의 바레라 카르텔을 만들어 멕시코내의 최대 마약조직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티오의 조카인 아단과 라울은 자연스럽게 삼촌의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는거죠.. 평생을 걸쳐 이들과 대적하며 마약조직을 소탕하고자 하는 서사의 시작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뉴욕의 치미노조직을 중심으로 션 칼란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일랜드인으로서 빈민가의 소년이지만 친구가&nbsp;치미노조직의 미친살인자인 푸주한에게 살해된 후 우연히 그를 죽여버림으로서&nbsp;오히려 조직에 들어가게 되죠..그리고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조직원인&nbsp;빅 피치로 인해 바레라조직과 연관성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노라 헤이든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말이죠.. 남성&nbsp;위주의 마약전쟁의 중심에서&nbsp;그녀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미친듯이 내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을 엮어주는 중심과 고리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어린시절 불우한 가정에서&nbsp;태어난 노라는 우연히 만난 매춘업소의 사장인 헤일리의 충고와 의견을 듣고 고급 콜걸로 탈바꿈합니다.. 그리고 그녀는&nbsp;칼란을 만나고 아단과 엮이게 되죠.. 물론 이들과 엮이면서&nbsp;아트와도 만나게 됩니다.. 어지러우실까요,&nbsp;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용인즉슨 한 마약단속요원이 카르텔과 전면전쟁을 펼치면서 쫓고&nbsp;쫓기도 복수하고 파괴하고 지옥속에서 살아나 역습하면서 벌어지는 주위의 상황과 나라와 나라들의 정치적 음모도 함께 버무려놓은 스릴러라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내용적 소재이기도 합니다.. 누가나 한번식을 경험해본 영화적 스토리이기도 하니까요.. 느낌이 오시죠, 안오면 꼭 읽어보시라능.. 그럼 올껄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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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돈 윈슬로우라는 작가가&nbsp;실제 벌어지고 있는 멕시코와 미국등지간에 행해지는 마약전쟁을 5년이 넘는 기간동안 조사한 후에 만든 작품입니다.. 대부분 실화에 바탕을 둔 허구적 작품인거지요.. 현재까지도 멕시코의 마약전쟁은 진행형이고 수많은 범죄가 하루에도 몇백건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검색하셔서 살펴보신후에 작품을 접하시면 더욱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듯 싶구요.. 75년부터 시작된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거의 30년간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역사적 상황은 실제 벌어졌던 일들이구요.. 허구지만 대주교의 살해나 멕시코의 지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겝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당시에도 멕시코시티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얼마전입니다.. 한달되었네요.. 그리고 마약카르텔에 대한 존재성 역시도 허구지만 실제적 인물들을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구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허구적 인물로 대체해서&nbsp;옮겨놓은거지요.. 이럴수도 있겠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있다라고&nbsp;생각하시면서 보시면 정확할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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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두꺼운 분량이고 두권으로 분권이 된 작품으로 거의 천페이지의 작품입니다만 밤샘을 하실수 있는 체력만&nbsp;있으시다면 하루만에도 가능하실겝니다.. 그만큼 최고의 가독성과 스릴러적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독자의 똥줄(음, 과했나요.. 그럼 지송)을 쥐고 놓아주질 않더군요.. 여태껏 읽어본 스릴러소설중에서 가장 긴박감과 긴장감이 좋은 작품중 하나라고 전 생각합니데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사적 구성과 심리적 묘사를 비롯한 상황의 연결이 대단한 짜임새를 중심으로 한순간도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집중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함에 따라&nbsp;어떻게보면 상당히 흐트러질 수 밖에 없는 연결구성이 될 가능성이 다분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을 서사속에 살아 숨쉬게 하는 글빨은 아무나 흉내내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짜임새와 인물적 캐릭터의 드라마틱한 묘사들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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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말씀을 드리지만 대중소설을 좋아하는 일반독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최우선입니다.. 이 재미라는 말의 의미속에는 여러가지가 들어있겠죠.. 가독성, 집중도, 감정이입, 공감적 감성 등등 많은 내용들이 포함이 될 것입니다만 그중 두개만 마음에 들어도 전 후한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현재까지 단 두편만 국내에 출시된 생소한 작가인 돈 윈슬로우는 저에게는 이 단 두편만으로 최고의 작가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지하에서 부는 서늘한 바람"(줄여서 지서바)이라는 닐 캐리시리즈를 처녀작으로 데뷔를 한 돈 윈슬로우는 데뷔작부터 남다른 글빨을 선보여준 듯 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지리하게 흐를 가능성이 다분한 지서바에서 읽는 재미와 캐릭터적 유니크함이 돋보였던 작품이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말이죠.. 물론 작가의 집필을 기준으로는 시간차가 있는 스탠드 얼론이지만 국내에서&nbsp;뒤이어 튀어나온 이 작품 "개의 힘"으로 '돈' 윈슬로우는 스릴러계의 대부중 한 분으로 격상시켜드려도 될 듯 싶더이다.. 독후감의 5할 이상을 재미지다라는 기준으로&nbsp;마무리하는 저에게 있어서도 이 작품은 무척이나 재미진 작품으로 후에 욕이 돌아올지언정 읽어보시지 못한 독자분들에게 스릴러소설을 원하신다면 1순위로 선택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중 하나입니다.. 나, 남들 내 욕하는거 더럽게 시르하거덩요! 그런데도 보시라고 권하는거보면 좀 재미지다능거죠..&nbsp;"개의 힘"으로 물어뜯길지도 모를 긴장의 불타는 똥줄을 부여잡고 밤새 달려보아요.. 땡끝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56/93/cover150/896017411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4114</link></image></item><item><author>밤9시의커피</author><category>내가 읽은 책</category><title>봄밤, 열여덟을 향한 일흔의 욕망을 읽기 좋은 시간! - [은교]</title><link>http://blog.aladin.co.kr/lepetitprins/5591669</link><pubDate>Sat, 28 Apr 2012 0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lepetitprins/55916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9166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off/895461068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916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교</a><br/>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04월<br/></td></tr></table><br/>밤에 읽었다. 은밀한 욕망이었으니까. 벌건 대낮, 그 욕망을 들춰내기에 나는 용기가 없었다. 아니, 밤이 적당했다고 해야 하겠다. 일흔이라는 나이가 지닌 욕망 때문에. 인생의 황혼에 다다른 일흔. 하루의 시간에 대입하자면 밤이 적당하겠다. 그 일흔이 은밀하게 욕망하는 시간은 열여덟. 밤은 낮을 원하고 있었다. 달은 해를 꿈꾸고 있다. 그러니, 일흔의 은밀한 욕망을 만나는 시간은 밤이어야 했다. 
<BR jQuery1335538731078="1684">
은교. 그 이름이 그렇게 은밀한 것인지, 나는 처음 알았다. 불멸의 내 젊은 신부, 내 영원한 처녀. 이적요는 은교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괴테가 떠올랐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팔십을 넘어서도 창작활동을 계속 했다. 여든 둘, 그는 《파우스트》2부를 탈고했다. 60년 이상, 괴테의 창작의 샘에선 물이 솟은 셈이다. 
<BR jQuery1335538731078="1690">
섣부르게도 나는 그 창작의 근원 중 하나로, ‘사랑’을 놓는다. 아니 ‘욕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그것. 그러니까, 사랑은 욕망의 다른 형태!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던 괴테 연애사의 한 정점은 1823년. 그의 나이 일흔 넷, 굳이 순서를 붙이자면 여덟 번째 여인, 울리케 폰 레베초를 만났다. 
<BR jQuery1335538731078="1696">
범인의 시선에서 놀라운 건, 당시 울리케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괴테의 마지막 사랑이었다. 누군가는 (더러운)스캔들, 노망, 주책, 추문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글쎄.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랑은 당사자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BR jQuery1335538731078="1702">
일흔 넷과 열아홉. 제 아무리 대문호이자 예술가였던 괴테지만, 모르긴 몰라도 힘들지 않았을까. 오죽했으면 괴테, 당시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통해 “꽃이 모두 져버린 이날 / 다시 만나기를 희망할 수 있을까?”라고 읊기도 했다. 《은교》에 나와 있다. A. 앙드레가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에서 읊조린 시구. “자기를 괴롭혀서 시를 짓는 것보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이적요의 마음이리라.

&nbsp;어쨌든 괴테와 울리케,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괴테는 여든 셋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더 놀라운 건, 울리케. 그녀는 아흔다섯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글쎄, 괴테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열아홉에 받은 일흔 넷의 사랑이 어떻게든 그녀의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BR jQuery1335538731078="1714">
괴테의 이런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내게, 열여덟 은교를 향한 일흔 이적요의 욕망을 추하다고 덮을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은밀하다고 혼자서만 펼칠 것도 아니었다. 그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본디 그런 것이다. 이적요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BR jQuery1335538731078="1720">
그것이 국민시인의 옹색한 변명이자 자기 옹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적요가 말했듯, 사랑은 갇힐 수 없는 무엇이고, 본래 미친 감정이다. 동의한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사회의 시선 운운하는 건,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단정한다. 
<BR jQuery1335538731078="1726">
다만 은교와 이적요의 문제는, 각자의 열일곱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 넘을 수 없는 벽은 그것이다. 그럼에도 이적요의 이 짧은 고해성사는 가슴을 덜거덕거리게 만든다. 
<BR jQuery1335538731078="1732">
“아,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p.11)&nbsp; 
<BR jQuery1335538731078="1738">
‘본시창(본능은 시궁창)’이라지만, 나는 그 시궁창에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꽃이 핀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이른바 도덕 등의 사회적 잣대를 들어 삿대질하거나 뒷담화를 구시렁거릴 것이다. 비루한 그들만의 잣대다. 사랑은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 아니다. 사랑은 오롯이 당사자의 것이거늘. 오지라퍼들은 그럼에도 끊임없이 입방아를 찧는다. 
<BR jQuery1335538731078="1744">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흥분하고 있었나 보다. 책에는 그 어떤 농익은 연애보다 더 은밀하게 내 몸을 휘감는 관능(혹은 욕망)이 있었다. 늙는 것은 죄가 아니고, 그 욕망은 자연이었다. 사회주의운동을 한 혁명 전사,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자연이 아니다. 꿈이요, 목표다. 그러나 사랑은, 생피처럼 더운 욕망은 자연 그 자체! 이적요의 몸 깊은 곳에서 솟은 샘물.&nbsp;이적요가 지닌 자연. 그것은 또한 우리 각자가 지닌 자연이다.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nbsp;
<BR jQuery1335538731078="1750">
젊음이 지닌 아름다움이 자연이듯, 늙음도 자연이요, 사랑이라는 욕망도 자연이다. 은교의 옴씬한 발목 인대에 시인의 욕망이 꿈틀댄 것도 자연이다. 그것이 지옥일지라도 자연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망하는 것을 멈추지 못함은,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이므로 어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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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갈망에 감정이입을 한 것은 그런 이유였으리라. 은교는 곧 나의 연인이었다. 나는 이적요와 모든 면에서 달랐지만, 은교를 향한 욕망은 또한 나의 것이기도 했다. 그건 이적요마냥, 은교가 로리타라서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영원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소모적이고 쓸쓸하며 슬픈 동물인 남자였기 때문일까. 영원에 가까운 여자를 향한 갈망이었던 걸까.
<BR jQuery1335538731078="1756">
밤은 그것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하다. 누구에게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다. 나라고 다를까. ‘사회’라는 틀 안에서 우리 각자의 짐승(욕망)은 꼬리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이적요는 그것을 말했다.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빌리지도 않고, 자연 그대로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파괴하거나 해악을 미치게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찾았다. 욕망과 본능을 무시한 죄인이었던 자신의 거짓 인생을 내팽겨 쳤다. 
<BR jQuery1335538731078="1762">
『은교』는 단순히 은밀한 욕망의 이야기가 아니다. 은교도 단순히 열여덟 소녀가 아니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불온한 상상을 불러오면서 예민한 감각의 촉을 세우게 한다. 직접적인 섹스(장면)보다 더 끈적끈적하다. 불가능한 꿈을 향한 우리 깊은 곳의 은밀한 욕망을 포기하지 말 것을 권하기도 한다. 목표를 꿈으로 착각하고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BR jQuery1335538731078="1768">
김훈이 그랬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의 날선 진실이 가진 욕망보다 대담한 노출을 한 여자가 애인의 허리를 안고 활보하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다고. 그래서 성적 매력이 거리를 활보할 때라야 나라의 힘과 겨레의 기쁨이 드러난다고.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볕이 뜨거워지는 시간이 좋다. 음란하다고, 변태같다고 찌푸려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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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가 없는 이적요의 하늘, 혼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을 것 같다. 힘도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원할 수가 없다. 숏팬츠와 레드룩으로 무장한 은교의 모습, 그것이 자연이요, 생의 활력이다. 싱싱한 행복이다. 
<BR jQuery1335538731078="1774">
<B jQuery1335538731078="1778">이 책, 관능적이다. 그래서, 밤에만 읽는 것이 맞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150/8954610684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link></image></item><item><author>cyrus</author><category>恒多讀事 - 역사 </category><title>대륙을 적시고 있는 아프리카의 검은 피, 검은 눈물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haesung/5592598</link><pubDate>Sat, 28 Apr 2012 17: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esung/55925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TPaperId=55925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37/coveroff/89527649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TPaperId=55925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a><br/>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03월<br/></td></tr></table><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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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nbsp;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nbsp;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nbsp;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nbsp; 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nbsp;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nbsp; 그대가 흘린 땀의 피,
&nbsp; 노동의 땀,
&nbsp; 노예 생활의 노동,
&nbsp;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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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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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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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아프리카의 참상을&nbsp;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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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카터 「독수리와 소녀」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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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던 아프리카 수단. 카메라를 목에 건 당신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비쩍 마른 여자아이가 보급품을 받기 위해 급식센터를 향해 네발 짐승처럼 기어가고 있고, 그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서 있다. 독수리의 눈초리는 노골적이다. 얼른 소녀가 기력을 잃고 쓰러지길 바라는 포식자의 시선이다. 게걸스러운 독수리는 소녀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줄곧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밟고 있다.
&nbsp;
아프리카 기아 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수단 남부로 들어간 남아공 출신의 케빈 카터는 우연히 기운을 잃고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녀 뒤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 다음 그는 독수리를 쫓아내고 이 소녀를 아요드 식량센터로 데려갔다. 
&nbsp;
카터가 찍은 사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nbsp;반향은 대단했다.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편지가 신문사로 폭주했다. 이듬해 카터가&nbsp;권위 있는 사진작가들에게 수여하는&nbsp;퓰리처상을 받으며 문제적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사진가에 대한 비난의&nbsp;여론 또한 없는 것은 아니었다.&nbsp;굶주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은 채 사진&nbsp;촬영을 단행한 작가의 선택에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 작품이야말로 과연 퓰리처상의 수상 취지에 부합되는 사진인지에 대해서&nbsp;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카터를 독수리 맞은편에서 비슷한 눈높이를 한 채 쪼그리고 있었을 카터 또한 독수리와 다를 바 없는 모리배라는&nbsp;인신공격성 비난이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져만 갔다.&nbsp;그칠 줄 모르는 대중의 냉담한 비난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카터는 결국 퓰리처상을 받은 지 두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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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lack &amp; Blue, '아프리카'에 대한 이중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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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끔찍한 광경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질병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며 정치적 내전으로 인한 잡읍은&nbsp;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모습들은 케빈 카터의 사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사진들 또는 그러한 장면을 TV를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무덤덤해 져서 그 때만큼 충격을 받지 않는다. 비슷한 장면을 계속 봄으로써 신선함과 충격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이미지 중독' 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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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 대중의 시선은 '이미지 중독'에 빠져 있다.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nbsp;자신과 관련된 일처럼&nbsp;심각하게&nbsp;생각하지&nbsp;않는다.&nbsp;지금 당신의 지갑 안이나 옷 주머니 구속 어딘가에 있을 단돈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 2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nbsp;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성금한 총 금액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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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건설기업 CF '아프리카' 편 장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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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중독'에 의한 아프리카의 시선 및 인식은 단순히 아프리카의 비극을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nbsp;것만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는 항상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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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를 넘어 신흥시장으로, 현지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암흑대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5~7%대의 성장세를 이루며 '지구의 마지막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은 제2의 중동으로 떠오르는 아프리카 공략을 위해 원조 및 경제 협력 카드를 제시하며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이제 우리나라도 아프리카 진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nbsp;
작년에 모&nbsp;건설기업에서는 아프리카&nbsp;시장 진출 사례를 토대로&nbsp;한 광고가&nbsp;제작되었다. 모 건설기업의 '아프리카' 편 TV 광고는 자사기업을 상징하는 캐릭터를&nbsp;통해 남들과 다른 생각과 도전정신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광고 배경음악으로 아프리카 유명 어린이 합창단 '지라니 합창단'의 잠보(JAMBO)라는 곡을 삽입했고 광고음악 사용료는 지라니 합창단 어린이들을 위해 전액 후원했다는 점에 있어서 타 기업 광고와 차별화된 방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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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nbsp;TV 광고 한 편 덕분에&nbsp;기업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공적인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아프리카는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자원이 많은 시장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또 국내 기업이 참여한 개척 사업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nbsp;광고 카피처럼 아프리카의 미래가 밝아지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모 건설기업 이전에도 수많은 세계의 기업들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아프리카의 땅을&nbsp;'수많은 자원의 보고'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 곳에서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해주거나 향상시켜줄 수 있는 국제개발적 사업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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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굴지의 글로벌 은행들마저도 자본창출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아프리카를&nbsp;눈여겨 보고 있다.&nbsp;세계 경기&nbsp;이중침체 우려 및 유로존&nbsp;재정위기의 악영향을 받고 있는 글로벌 은행이 아프리카 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JP모건, 스탠다드차타트(SC) 등과 같은 글로벌 은행들이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손실을 피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금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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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가난,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많은 기아의 나라, 끊임없는 발생하는 내전이 일어나는 암흑(Black)의 대륙'이면서도 '풍부한 자원이 있는&nbsp;블루(Blue)오션'이라는&nbsp;서로 상반되면서도 이중적인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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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왜곡된 '블랙 아프리카'를 만들어 낸 서구인들의 편협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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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 중에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다'와 '슬프다'라는 형용사를 조합한 단어다. 즉 어떠한 상황이나 장면에 대해서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다라는 뜻이다. 우리를 포함한 서구인들이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시선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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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프리카를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원이 넘치는 무한한 대륙으로 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 낙후되면서도 미개한 지역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아프리카를 '믿을 수 없는 병으로 신음하는 국가'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프리카라는 대륙에는 애초부터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의&nbsp;망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정치인들의&nbsp;말 한 마디 속에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하의&nbsp;의미가&nbsp;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무시하는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사업 진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제국주의를 내세운 19세기 정치인들의 사고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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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nbsp;'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된 인식들이 만들어 낸 함축적인 암흑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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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을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라고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부터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키라인이 최초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중 태양신의 아들인 파에톤이 혼자서 태양마차를 모는 장면에서 '아이티오피아(에티오피아)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이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이유를&nbsp;파에톤의 서투른&nbsp;태양마차 운전&nbsp;때문이라고&nbsp;설명하고 있다. 
&nbsp;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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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이윤기 역, 민음사, pp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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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그리고 17세기부터는 검은 피부색이 생기게 된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문화적 진보를 기준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입증의 시도 역시 등장했다.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리카인들을 퇴화된 인종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다. 검은 피부가 인종적 퇴화의 증거라는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까지 이어져오게 되면서 열등한 아프리카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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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미개한 인종의 역사일뿐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심지어&nbsp;의도적으로 세계사에서 삭제시키려고 했다.&nbsp;아프리카의 역사는 구전 전승되는 형식이라서 이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nbsp;서구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아프리카의 역사&nbsp;존립 자체를 무시하였다.&nbsp;다시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대목에서 잠시 다시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마치 유럽 탐험가들이 도전 끝에 얻어낸 전리품처럼 묘사된다. 기존 세계사에서는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는 애써 기술할 필요가 없는 분야로 취급됐다.
&nbsp;
이는 헤겔이『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를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한 데서 정점에 이른다. 이후 아프리카 인을 성경의 족보에서 지워 유럽의 인종적·종교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지키려 했다. 제1차 대전 무렵엔 지능지수 결과가 더해져 흑인들은 저능하고 미개하며 야만적이라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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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메마른 아프리카에서도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BR>폭력사태와 그에 따른 난민들, 각종 전염병에 신음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기아의 땅, 그곳이 아프리카인 것이다. 대부분 아프리카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그저 감상적인 동정주의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익과 헤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보물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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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아프리카를 안다고 하기에는 교류의 양이나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 오랫동안 서구 국가들이 제공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를 통해 전해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nbsp;영화나 드라마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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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구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자원의 보고', '미래를 위한&nbsp;마지막&nbsp;거대 소비 시장'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상처들은 고무와 금 그리고 노예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했던 서구 열강들의 흔적들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nbsp;주목 받고&nbsp;있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 역시 경제적 논리를 앞세운 것으로 과거 서구 열강들의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아프리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는 경제적 진출은 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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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해적활동을 조금 자세히 생각해봐도 서구의 경제적 논리가 얼마나 아프리카에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실 내전이 장기화 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내전 국가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군들은 무기를&nbsp;구하기 위해서&nbsp;대부분 다이아몬드 같은 자원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채취하게&nbsp;만들고 자신들은 확보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무기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즉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용하는 무기 생산국들이 있기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장기화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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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복되는 내전의 악순환은 아프리카 전체를 병들게 할뿐더러 아프리카인들의 피와 눈물을 온 대륙 전체에&nbsp;적시게 만들고&nbsp;있다.&nbsp;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 어린이들은 굶주리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를 구입하고 내전이나 종족 간 전쟁 또는 영토 쟁탈전을 위해 쓰는 돈은 넘쳐나고 있다.&nbsp;일부 아프리카인들은&nbsp;차라리 식민통치 시대가 오히려 더 살기 좋았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에서의 경제 발전 및 민주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nbsp;중요한 이유가&nbsp;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의 부(富)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이&nbsp;많지가&nbsp;않다. 작년에&nbsp;리비아에서 불기 시작한 재스민혁명으로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해왔던 카다피가&nbsp;축출당했한 이후부터&nbsp;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비극은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빈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nbsp;계속&nbsp;이어질&nbsp;것이다.
&nbsp;
명목상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이 되었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메마른 아프리카 대륙에 평화의&nbsp;나무가 자라날&nbsp;수 있을까?&nbsp; 쟈스민혁명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이 당면한 현실적 과제는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 식민지적 구태를 벗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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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BR>&nbsp;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nbsp;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nbsp;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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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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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흐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자유'라는 것은 단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유의 맛이 달콤한 만큼 쓰디쓰기도 하는 인고의 지혜를 알고 있어야하며, 초조하지만 꿈이 성취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유롭고 옹감했던 과거의 역사를 잊은 채 현재는 암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드렝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의 끈을 끊고 끈질기게 일어설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서는 가운데 자유의 참의미를 깨달아, 그 열매 속에 자유를 채워 갈 늘푸른 나무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아프리카'인&nbsp;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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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37/cover150/895276498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link></image></item><item><author>hnine</author><category>나는 나</category><title>'첨'이 아니라 '삭'이다 - [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hnine/5595009</link><pubDate>Mon, 30 Apr 2012 1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nine/55950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761&TPaperId=559500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41/37/coveroff/898431576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761&TPaperId=55950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a><br/>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04월<br/></td></tr></table><br/>소설을 써보라는 지인들의 권유에 시인은 시 속에 소설을 뭉뚱그려 품어보겠다고 했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어려운 단어들의 조합 대신 이야기가 흐른다. 다른 시집들을 읽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줄에서 시간을 잡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땐 갸우뚱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대목을 다시 읽어보느라 시간을 잡고 있게 된다.
이번에 나온 그의 산문집, 이번엔 산문에서 시가 보인다. 시인들이 쓴 산문집이라는 것을 처음 읽는게 아닌데 이런 산문집은 처음이다. 어느 페이지랄 것 없이 그저 주욱 베껴써보고 싶다.&nbsp;눈으로 읽어내리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문학의 문자도 모르는 나이지만 감히 '문학성'있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고도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화려한 감동이 아니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대단히 멋진 문구가 아니다. 그저 '아!'하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탄성 정도의, 무채색 감동이다.
&nbsp;
시인들에게 시란 대체 무엇일까. 책을 받고 아무데나 펼쳐본 곳이 하필 이곳이었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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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다.
시는, 온몸으로 줍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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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 하나로
감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다.
바닥을 친 땡감의 상처, 그 진물에 펜을 찍었다
홍시 너머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nbsp;
&nbsp;
&nbsp;
사랑의 주소는 자주 바뀌었으나,
사랑의 본적은 늘 같은 자리였다.
&nbsp;
개인적으로 마지막 두줄은 없어도, 아니,&nbsp;없었으면 더&nbsp;좋을 것 같으나, 아무튼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써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를 지어냄으로써 그것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nbsp;받아 모시고, 온몸으로 줍는다는 그 마음. 
시인은 우주의 아주 잡스럽고 비밀스런 곳까지 다가가서 살림을 차리는 연애주의자이자 바람둥이라고 하고(223쪽), 설렘과 그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228쪽).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설레는 일이 있고, 남이 보지 못하는 (우주의 잡스럽고 비밀스런 곳까지)&nbsp;그늘을 볼 줄 알고 그것에 마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첫 페이지부터 벌써 푹 빠져 버려 다른 일을 놓아버렸다. 어머니 얘기, 고향 얘기, 이 책에서만 보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말이다. 시인이 뒤에서 따로 얘기하지만 그는 어여쁘다, 곱다, 슬프다, 기분 좋다 등의 말을 쓰지 않고, 한 치 건너 다른 얘기를 하면서 그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었다. 시의 원천인 어머니. 시인이 무엇에 대하여 한 말씀만 해달라고 하면 "너 시 쓸라고 그러지. 얘는 인자 쓸 것 되게 없나보네." 그러신단다. 그런거 아니라고 했더니 "웃기지 말어. 네가 쓰는 시라는 거 거짐 내 얘기 받아 적은 거라고, 먼젓번에 왔던 글 쓴다는 네 선배가 그러드라. 너 그러니께 이 어미헌티 잘혀. 글삯 받으면 어미한티도 한몫 떼주고 말이여." (17쪽)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같은 고향이셨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목소리, 그 사투리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샘가 도랑에 뜨거운 물을 버리면서 "훠어이 훠어이, 얼른 비켜라. 뜨건 물 나가신다."라고 말씀하시며 양팔을 흔드셨다는 시인의 할머니는 또 어떤가. 도랑 속 작은 생명들이 다칠까봐 헛손질로 위험 경고를 하신 것이란다. 말로 떠들고, 글로 난체하는 환경보호, 자연사랑이 이에 비길까.
책의 뒷부분에 가면 시를 짓는 것에 대한 저자의 낮으면서 힘있는 목소리가 따로 작은 제목으로 표시내지도 않고 실려 있다.
좋은 시인은 뼈로 가고자 합니다. 단도직입을 건너 단순무식으로 갑니다. 나쁜 시인은 살로, 옷으로, 장식으로 가고자합니다... 복잡한 치장으로, 요란한 유식으로 갑니다. (248쪽)
시만 그럴까. 어줍잖은 글 한줄 쓰면서 우리는 얼마나 치장과 포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시나 이야기를 지을 때 요구되는 상상력이라는 것도 불현듯 어느 곳에서 해괴망측하게 왕림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252쪽) 내가 바라보고 겪어온 모든 시간 속에, 모든 상처 속에 시는 살아 있는 것이다.
&nbsp;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nbsp;
&nbsp;
내 몸이 너무 성하다.<br>
&nbsp;
&lt;서시&gt;라는 제목의 이 시 속 '마을', '흠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내 몸이 너무 성하다라고 하는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본다. 그래서 시인은 흠집 많은 사람을 보면 기가 죽는다고 한다. 꽃다운 상처, 그건 싹수없는 용 문신과는 격이 다른 것이라고.
미숫가루보다도 잘 풀어지는 정신, 결의를 놓치면 언제나 흩어져버리는 게 마음이라서, 좋은 게 좋다고 느끼는 순간, 타락의 수챗구멍에 처박히고 마니까, 시인은 감히 외친다. 모나게 살자!

모나게 살자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nbsp;
&nbsp;
모서리마다
빛나는 작은 칼날
찬물로 세수를 하며
&nbsp;
&nbsp;
서리 매운 새벽
샘이 솟는 곳
차고 맑은 모래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칫 풀어지고 노곤해지려는 정신에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냉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서리 매운 새벽의 차고 맑은 모래를 감싸는 샘물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는다는 말도 잊지 않으면서.
&nbsp;
시를 포함하여, 자신이 이루려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보여주는 다음의 시도 한번 쓰윽 읽고 넘어가기에는 아깝다.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nbsp;
&nbsp;
별이 뜬다
&nbsp;
&nbsp;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nbsp;
&nbsp;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시를 쓰면서 되뇌는 문장은 "새가 난다" 인데, "어떤 새가, 어찌어찌 난다"라고 수식을 달지 않도록 다잡는다고 한다. "무엇 같은, 어떤 빛깔의 새가, 뭣 같은 몸짓으로, 어찌어찌 난다"라고 덕지덕지 휘황한 금박장식을 달지 않도록 펜 끝을 세운다고. 즉 시의 퇴고는 첨(添)이 아니라 삭(削)이어야 한다고. 
&nbsp;
"물끄러미. 단번에 쏘아보고 마는 눈빛이 아니라, 거두지 않겠다는 마음의 눈빛,물끄러미, 
단숨에 내닫는 길이 아니라 구부러져 가더라도 끝까지,
엄살과 과장과 감상적 포즈를 배척하고,
이미 다 보여준 밋밋한 마무리가 아니라
치고 올라가는 기법으로 꿰어 차 올리는 결말"
&nbsp;
이것은 내나름대로 다섯 줄로 요약한, 저자가 말한 '시 작법'인데 '인생 작법'이라고 이름 붙쳐도 좋겠다. 아니, 이것도 다 엄살과 과장일지도.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41/37/cover150/8984315761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761</link></image></item><item><author>양손잡이</author><category /><title>개념찬 청춘 - 조윤호</title><link>http://booktopia.tistory.com/261</link><pubDate>Sat, 21 Apr 2012 1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ooktopia.tistory.com/2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613&TPaperId=55790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94/49/coveroff/89843156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613&TPaperId=55790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개념찬 청춘 -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a><br/>조윤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03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개념찬 청춘]]></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94/49/cover150/898431561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613</link></image></item><item><author>피아노</author><category /><title>현직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정제된 소통법 [변호사처럼 일하는 직장인이 성공한다]</title><link>http://littlegold.tistory.com/296</link><pubDate>Sun, 15 Apr 2012 23: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littlegold.tistory.com/2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183034&TPaperId=556839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85/coveroff/89661830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183034&TPaperId=5568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변호사처럼 일하는 직장인이 성공한다</a><br/>부경복 지음 / 위츠(Wits) / 2012년 03월<br/></td></tr></table><br/>11]]></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85/cover150/896618303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183034</link></image></item><item><author>책읽는벌레</author><category /><title>음식에 빚대어 자본주의를 비판한 책 ｀푸드쇼크｀ </title><link>http://photohistory.tistory.com/11663</link><pubDate>Wed, 18 Apr 2012 15: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photohistory.tistory.com/116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7683X&TPaperId=557364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2/coveroff/89939768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7683X&TPaperId=55736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푸드쇼크 - 기아와 비만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의 속살</a><br/>로버트 앨브리턴 지음, 김원옥 옮김 / 시드페이퍼 / 2012년 03월<br/></td></tr></table><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2/cover150/899397683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7683X</link></image></item><item><author>매그놀리아</author><category /><title>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title><link>http://blog.naver.com/perfumer19/90141312976</link><pubDate>Wed, 18 Apr 2012 1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naver.com/perfumer19/901413129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343598&TPaperId=55739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77/coveroff/89943435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343598&TPaperId=55739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의 뒷면</a><br/>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04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달의 뒷면]]></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77/cover150/899434359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343598</link></image></item><item><author>bunyuk</author><category /><title>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title><link>http://usedbooks.tistory.com/382</link><pubDate>Fri, 13 Apr 2012 0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usedbooks.tistory.com/3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33&TPaperId=556354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0/46/coveroff/89701284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33&TPaperId=55635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90/46/cover150/897012843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33</link></image></item><item><author>깐</author><category /><title>&lt;미술품 위조 사건&gt; 날 감동시킨 이 그림, 과연 진짜일까? </title><link>http://blog.naver.com/realkkan/90141092897</link><pubDate>Sun, 15 Apr 2012 16: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naver.com/realkkan/901410928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812718&TPaperId=55676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18/53/coveroff/89738127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812718&TPaperId=55676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술품 위조 사건 - 20세기 미술계를 뒤흔든 충격적인 범죄 논픽션</a><br/>래니 샐리스베리.앨리 수조 지음, 이근애 옮김 / 소담출판사 / 2012년 04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미술품 위조 사건]]></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8/53/cover150/897381271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812718</link></image></item><item><author>sahngoh</author><category /><title>[짧은 서평] 박범신의 《은교》 - 왜 갈망(渴望)은 파국을 부르는가?</title><link>http://sahngoh.tistory.com/384</link><pubDate>Sun, 08 Apr 2012 1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ahngoh.tistory.com/3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5408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off/895461068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540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교</a><br/>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04월<br/></td></tr></table><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150/8954610684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link></image></item><item><author>인드라나트</author><category /><title>나는꼼수다, MBC에 출연하면 시청률은?</title><link>http://www.ymca.pe.kr/1413</link><pubDate>Mon, 02 Apr 2012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www.ymca.pe.kr/14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74524&TPaperId=554105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09/66/coveroff/89966745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74524&TPaperId=55410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진실을 말하는 광대</a><br/>베페 그릴로 지음, 임지영 옮김 / 호미하우스 / 2012년 02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진실을 말하는 광대]]></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09/66/cover150/899667452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74524</link></image></item><item><author>용짱</author><category /><title>소설 테스, 인습과 편견의 폭력</title><link>http://nermic.tistory.com/975</link><pubDate>Tue, 03 Apr 2012 0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nermic.tistory.com/9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52&TPaperId=554329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4/56/coveroff/89374620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52&TPaperId=55432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테스 1</a><br/>토머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9년 04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테스 1]]></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64/56/cover150/893746205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52</link></image></item><item><author>치나스키</author><category /><title>블루하우스(BH)와 빅브라더(BB), 2012와 1984</title><link>http://arthurjung.tistory.com/143</link><pubDate>Sun, 01 Apr 2012 1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arthurjung.tistory.com/1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163&TPaperId=553992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6/66/coveroff/89546091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163&TPaperId=55399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84 (반양장)</a><br/>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br/></td></tr></table><br/>[블로그 복사하기를 통해 자동으로 생성된 페이퍼] 1984 (반양장)]]></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96/66/cover150/895460916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163</link></image></item><item><author>보슬비</author><category>♤ English Book ♤ </category><title>My Wobbly Tooth Must Not Ever Never Fall Out </title><link>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link><pubDate>Sun, 08 Apr 2012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35.jpg" width="500px" /></a></div><p>독특한 삽화로 로렌 차일드를 기억하고 있었던차에 '찰리와 롤라'시리즈를 발견하고 도서관에 있는 시리즈 모두 대출해왔어요. ㅎㅎ

그런데 더 많은 시리즈가 출간되었더라구요. 앞으로 다른 시리즈들도 도서관에서 구매해주면 좋겠어요.^^</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36.jpg" width="500px" /></a></div><p>시리즈이긴하지만, 내용이 연결되지 않아기 때문에 굳이 시리즈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 그림책입니다.

이번편에는 롤라의 이빨이 흔들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었어요. 처음에는 오빠에게 자신은 절대 이빨을 뽑지 않겠다고 말하지만...</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37.jpg" width="500px" /></a></div><p>친구가 뽑은이로 이빨요정이 선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38.jpg" width="500px" /></a></div><p>아직 뽑지도 않은 이빨을 가지고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롤라.</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39.jpg" width="500px" /></a></div><p>이제는 이빨이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롤라의 이빨이 빠졌어요.^^</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40.jpg" width="500px" /></a></div><p>이런...
이빨을 잃어버렸네요.

로렌 차일드의 삽화는 약간 어수선한것 같지만, 그점이 더 매력적인것 같아요. 글씨체도 감정에 따라 사이즈나 모양이 변하기도 합니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41.jpg" width="500px" /></a></div><p>피터는 동생의 이빨을 열심히 찾아주려했지만...</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42.jpg" width="500px" /></a></div><p>결국 못 찾았어요.

하지만 피터는 롤라의 좋은 오빠랍니다
롤라를 잘 설득시켜 잠들게 합니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43.jpg" width="500px" /></a></div><p>오빠의 말대로 롤라는 이빨요정이 선물로 롤라가 기린인형을 살수 있는 돈을 주고 갔어요.</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boslbee/5554382"><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59069163750844.jpg" width="500px" /></a></div><p>기린 인형을 얻게된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다른 동물들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이가 흔들리지 않나 살펴보고 있는 롤라를 보면 참 귀여웠어요.</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9/25/cover150/0448442558_1.jpg</url><link>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448442558</link></image></item><item><author>동화세상</author><category>유아/어린이 분야</category><title>[시골쥐와 감자튀김]-삽화와 임팩트있는 이야기까지, 두루두루 갖춘 작품</title><link>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link><pubDate>Sun, 15 Apr 2012 2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79.jpg" width="500px" /></a></div><p>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저녁이나 아이들 간식은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안 좋다는 걸 너무도 잘 알면서도 자꾸 편한 걸 찾게 된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한다는 점을 나는 방패막이로 삼고 있으니, 식습관이 고쳐질리 만무하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등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찾는다. 

주말이면 엄마표 간식을 해주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이미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입맛에 엄마의 간식은 그다지 입맛을 당기지 못한다. 엄마표 피자(부침개)보다는 햄과 치즈 등의 토핑을 잔뜩 얹은 피자가 더 좋고, 노랗고 맛나게 삶아진 고구마보다는 햄버거가 더 맛있다고 하니, 이쯤되면 엄마도 한 발자국 물러나 아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사게 된다.
맛있게 무쳐진 나물, 감자조림, 멸치볶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아이들의 입맛을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을까?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0.jpg" width="500px" /></a></div><p>이솝우화 <시골쥐와 서울쥐>를 모티브로 삼은 이 그림책은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음식보다는 자연에서 얻은 음식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데, 내용 뿐만 아니라 삽화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비, 꽃, 그릇과 같은 소품, 자연과 도시의 배경 등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는데, 특히 콜라병을 이용한 자동차, 후추통을 이용한 전화기, 구두와 참치통조림을 이용한 의자 등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1.jpg" width="500px" /></a></div><p>텃밭에서 감자를 캐던 시골쥐는 친구 서울쥐가 떠올라 집으로 초대했다. 시골쥐는 방울토마토, 산나물, 방금 찐 따끈따끈한 감자를 내놓았다. 헌데 서울쥐는 이맛살을 지푸리며 손도 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시골은 역시 시골이구나. 아직도 이렇게 먹고 사는 거야?" (본문 中)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2.jpg" width="500px" /></a></div><p>서울쥐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겠다며 시골쥐를 서울로 데리고 갔다. 빌딩, 쏜살같이 달리는 지하철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햄버거 가게에서 먹은 감자튀김을 맛본 시골쥐는 그 맛에 그 놀라웠다.
더군다나 마트에 간 시골쥐는 태어나서 처음 본 많은 음식에 어리둥절해하며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3.jpg" width="500px" /></a></div><p>시골쥐는 건물 꼭대기에 사는 서울쥐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팝콘믈 먹고, 즉석 스파게티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며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며 빈둥빈둥 놀았다.
서울쥐를 따라 서울 곳곳을 구경한 시골쥐는 신이 나서 "서울은 정말 멋진 곳이야!" 라고 말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7.jpg" width="500px" /></a></div><p>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웠지만, 날이 갈수록 피곤하고 몸도 무거워지고, 배도 아프고, 노는 것도 귀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 갔다 오던 시골쥐는 고양이를 보고 오싹하여 도망가려 했지만,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고양이는 쥐를 잡지 않았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8.jpg" width="500px" /></a></div><p>"촌스럽긴. 서울 고양이들은 더 이상 쥐를 먹지 않아.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힘들게 쥐를 잡겠어?"
정말이었어요. 고양이는 쥐들을 흘깃 보더니 하품을 늘어지게 했어요.
그리고는 뒤룩뒤룩 살이 찐 배를 쓰다듬으며 잠이 들었지요. (본문 中)

그 모습을 본 시골쥐는 배는 뒤룩뒤룩하고 눈동자는 흐리멍덩한데다 얼굴은 푸석한 멍청해 보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89.jpg" width="500px" /></a></div><p>요즘 우리 아이들은 비만으로 인해 성인병에 걸리는 일이 잦다. 아이들은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졌지만,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익숙하다보니 점점 아이들의 비만은 큰 문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군다나 어른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질나쁜 재료를 사용하여 판매하는 일들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의 건강은 너무도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고 걱정하고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이 문제에는 '정답'이라 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먹고,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고, 제철과일과 야채를 잘 먹는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90.jpg" width="500px" /></a></div><p>텃밭 귀퉁이에는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익어 있었지요.
"아, 맛있다. 바로 이 맛이야." (본문 中) 

그동안 걱정하면서도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이용했던 나는 또 한번 깊은 반성을 해본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엄마인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시골쥐와 서울쥐>를 모티브로 한 <<시골쥐와 감자튀김>>은 입맛에 좋은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는 아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자연에서 얻는 신선한 재료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귀여운 캐릭터, 보는 즐거움을 주는 삽화의 소소한 소품들, 임팩트있는 경고의 메시지까지 서로의 융화가 너무 좋았던 작품이다.
더욱이 <<시골쥐와 감자튀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많은 반성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기에, 더 의미가 더욱 크게 와닿는 작품이다. 

(사진출처: '시골쥐와 감자튀김' 본문에서 발췌)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0674126/556823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0674126752791.gif" width="500px" /></a></div><p></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42/89/cover150/8901142430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42430</link></image></item><item><author>파플</author><category>꿈꾸는도서관</category><title>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작은 토마토 한 그루가 세상을 바꾸다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미래아이] -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title><link>http://blog.aladin.co.kr/734726146/5548774</link><pubDate>Thu, 05 Apr 2012 1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34726146/55487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41871&TPaperId=554877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3/41/coveroff/89839418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41871&TPaperId=55487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a><br/>론 바레트 그림, 쥬디 바레트 글, 정혜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2년 03월<br/></td></tr></table><br/>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작은 토마토 한 그루가 세상을 바꾸다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미래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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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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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바레트 글, 론 바레트 그림/ 미래아이(미래아이그림책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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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ld MacDonald had a farm, Ee-i-ee-i-o,<BR>맥도날드 노인에게는 농장이 있었죠. 이야이야오,<BR>And on his farm he had a pig, Ee-i-ee-i-o,<BR>그의 농장에는 돼지가 있었죠.이야이야오.<BR>With an oink-oink here, And an oink-oink there,<BR>여기서도 꿀꿀,저기서도 꿀꿀.<BR>Here an oink, there an oink ,Everywhere an oink-oink,<BR>여기서도 꿀꿀,저기서도 꿀꿀,모든 곳에서 꿀꿀.
<BR>

마더구즈로 알려진 맥도널드 아저씨의 농장 이야기 동요를 알고 계시나요?
왠지 마더구즈로 알려진 동요라 아이들에겐 더욱 정감어린 노랫가사인지 모릅니다.
어릴적 되뇌이던 노래라, 어허~ 그 맥도널드 아저씨 이야기? 하면서


미래아이의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처음엔 단순하면서도 색채미는 떨어져서 그냥 그렇겠지...대체 어떤 내용이야?
어떤 내용이길래 문화관광부추천도서까지 일까? 하면서 넘겼는데요.
이야~ 그야말로 토마토 한 포기가 발상전환이 되어 세상을 아름다운 초록화원으로 뒤덮은 농장이야기 아닐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그러해요.
맥도널드 아저씨가 아파트 한채를 관리하는 관리인이면서 아파트에 살아가는데,
아내가 토마토 한포기를 아파트 안에다 심으니 시들시들 맥도 못 추스립니다.





그래서 창가에 놓아두고, 창가에 비친 그늘이 나무한그루 란걸 알고 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뒤로 아파트 주변에서, 안까지 모두 농장을 만든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아파트 관리인이 하나둘 심어놓은 채소덕분에 아파트 사람들은 불편하다며 하나둘 떠나고,



급기야 아파트 주인이 찾아와 쫒겨날 처지에 놓이지만,
아파트 주인역시 화를 머금고,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답니다.
친환경 아파트 농장쯤 될까요?



아파트 안에 소부터, 닭, 야채과일까지
거대한 과일채소가게를 열어 신선하면서도 멋진 아파트 농장을 만들어 멋지게 살아가는 아파트 농장의 풍경을 엿볼수 있었답니다.

호미로 막을껄 가래로 막으려 하는 맥도널드 아저씨의 모습에서 놀라지 않을뿐더러,
큰일이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주인 역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전환점이 된 이야기.
맥도널드화 되어가는 삭막한 도시환경속에 자본주의에 진정 필요로 한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림책이었답니다.
회색빛 톤에 싱싱한 자연친환경에 맞춰 야채 과일들은 빛을 발하며 표정과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멋진 그림책 아이와 함께 보면서 아이 역시 그러더라구요.


엄마, 꽃을 피울려면 햇빛이 필요해요? 창가에다 놓을까요?
저 형광등에선 꽃이 안자랄것 같은데요... 엄마.

우리 아이가 맥도널드 아저씨의 그림책을 제대로 본 걸까요?
왠지 진지한 아이의 눈동자와, 자연을 생각하는 맥도널드 아저씨, 
자본주의 편리성에 살아가고 우리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책 한권이었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3/41/cover150/898394187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41871</link></image></item><item><author>사랑해유</author><category>어린이</category><title>우리 집에는 형만 있고 나는 없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link><pubDate>Thu, 19 Apr 2012 1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07291156753649.jpg" width="500px" /></a></div><p>「우리 집에는 형만 있고 나는 없다」 이 책은 아들 형제를 키우는 엄마의 일상이 그려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아들 형제가 한집에 있는데 큰 아이는 공부는 잘하지만 몸이 약하고, 작은 아이는 공부는 좀 못해도 몸이 튼튼한 아이였네요. 이 책은 작은 아들의 입장에서 엄마의 관심과 인정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엄마의 관심이 언제나 형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작은 아들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이 책에서도 작은 아들인 민재가 밖에서부터 엄마를 부르면서 이가 아프다고 엄마를 찾는데, 엄마는 하던 일에만 열중하고 있네요. 아이들이 보는 시각, 받는 느낌은 정확하다고 했던가요? 민재는 엄마가 형인 선재만 신경써준다고 생각하지요. 모든 면에서 형과 비교당하며 관심을 얻지 못하는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민재가 좀 더 자라면 알게 되겠지요. 이건 ‘엄마가 누굴 더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엄마의 자녀에 대한 걱정이 누구에게 더 쏠려있는지의 차이’라고 말이에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07291156753650.jpg" width="500px" /></a></div><p>보통 육아의 힘든 고민을 상담해주시는 육아전문가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조언은 아이가 엄마를 부르고 엄마를 필요로 할 때에는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말을 경청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척척 알아서 하는 아이에게는 엄마가 즉시 달려가서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보다는 말로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게 되더라는 것이 저도 경험하는 일이더라고요.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작은 아이는 언제나 다른 형제나 일에서 우선순위에 밀려났다는 것을,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작은 아이의 입장에 서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본의는 아니지만 작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약간은 무시당하는 느낌까지도 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동안 작은 아이가 엄마에게 얼마나 서운한 감정을 많이 느끼며 마음이 아팠을까요? 반성이 됩니다. 오늘부터는 더 이상 무심한 엄마라는 인상을 주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신경을 써야겠습니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07291156753651.jpg" width="500px" /></a></div><p>내가 자장면 먹고 싶다고 할 때는 자장라면 사다 끓이고

나한테는 무엇이든지 형이 쓰던 헌것만 물려주면서.

아침에 형이 닭다리 튀김 먹고 싶다고 하니까

말하기가 무섭게 만드는 것만 봐도 다 알아요. - 본문중에서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07291156/557545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07291156753652.jpg" width="500px" /></a></div><p> 

동생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이 책 읽으면 공감하고 누군가가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6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인 민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때는 엄마에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어 혹시 나는 엄마가 낳은 아이가 아니고 어디서 주어온 자식인가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부족하게 느낀 부분이 있다면 넉넉한 사랑의 표현을 실감나게 해주어서 아이가 더욱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책은 아이보다도 엄마들이 읽으면 아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책이지만, 책 한권이 주는 느낌과 교훈, 지금부터라도 생활에 적용하며 실천해야겠습니다.
</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83/cover150/897184939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9398</link></image></item><item><author>뵈뵈</author><category>취미/실용</category><title>[서평] 정성이 담긴 선물...팝업 카드 만들기~ 펼치면 톡!! 재미있고 뜻깊은 팝업카드 ~ ^^  - [팝업 카드 만들기 - 펼치면 톡! 하고 튀어나오는]</title><link>http://blog.aladin.co.kr/rey/5589016</link><pubDate>Thu, 26 Apr 2012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rey/55890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985&TPaperId=558901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92/73/coveroff/89255459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985&TPaperId=55890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팝업 카드 만들기 - 펼치면 톡! 하고 튀어나오는</a><br/>쿠마다 마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02월<br/></td></tr></table><br/>



펼치면 톡! 하고 튀어나오는
팝업 카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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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카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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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카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카드인 것 같아요..
특히나 크리스마스 카드는...초등학교 시절에..친구들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는데...^^
요즘은 카드 한장 받기도 무척 힘들어진....그런 시절인듯 하여 살짝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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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카드라는것은 그저..선물을 줄때, 옆에 곁들여 주는 하나의 소모품처럼 여겨졌었어요.
그저 누군가가 선물을 주었는지..또는 그 선물의 의미나 그런 것들을 간단하게 적어주는 정도로...
하지만 정성들여 만든 카드는..그 카드 하나로도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이 책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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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쿠마다 마리'
공예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점토나 종이등...핸드메이드로 만들어 내는 책들을 자주 펴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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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그녀의 생일을 알림과 함께 합니다.
1월 30일이....쿠마다 마리의 생일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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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저 문구가 맞는 것 같아요..
아닌척 하면서..은근히 누군가가 내 생일을 먼저 알아주고 축하해주기 바라는 그 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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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물이 아니더라도, 정성이 담긴 카드 한장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성입니다...
저도 이런 카드..한번 받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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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는 기본적으로 카드를 처음 만드는 분들을 위한 기본 레슨부터...기념일을 위한 카드, 움직이고 튀어나오는 재미있는 카드
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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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팝업 카드의 일종이죠...
종이의 중간을 오려서...간단하지만 의미있게..누구나 만들 수 있는 팝업 카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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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모양을 내어 오리고 붙여서 만들어내는 색다른 팝업 카드도 다양합니다.
모양은...만드는 사람이 원하는 것으로...그린 후에 잘라내어 만들어 내면 되겠지요....^^<BR><BR style="CLEAR: b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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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은근한 입체카드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을 법한 카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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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은 알록달록~~ 땡떙이 모자가 이쁜 카드입니다..
생일이나 파티등에 잘 어울릴 것 같지요..
만드는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BR style="CLEAR: both"><BR style="CLEAR: both">&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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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라는 타이틀의 카드인데요..
왠지 이 카드...색감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맘에 들었어요..
파티나 집들이등의 초대에 이용하면..정말 센스 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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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나 기념일날 하면 좋을 법한 카드도 꽤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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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이 곳에서 소개된 카드들은... 아주 어렵지 않은 느낌이였어요....
따라하기 쉽게 상세 설명과 사진이 곁들여져 있기에....더욱 그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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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쇼에서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죠..
모자 속에서 쏙~~ 튀어 나오는 비둘기..^^<BR>보는 사람도 굉장히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특이한 느낌의 카드...^^<BR>요건 다른 것보다 만드는게 쬐끔 더 손이 가긴 하는듯 했지만... 그래도 상세 설명을 잘 따라면 하면 성공할 수 있겠더라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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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카드 소개마다 대부분 따라 하기 과정이 상세컷과 함께 되어 있지만...
그래도 만들기가 애매한 것들이 있을 수 있기에..
더 자세한 만들기 설명이 뒷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이즈와&nbsp; 부위별 만드는 상세 설명이&nbsp;적혀져 있어요.... 그림 도안과 글이 세세합니다...
<BR style="CLEAR: both"><BR style="CLEAR: both">&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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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카드들에 등장하는 도안들도 들어 있는데요..
컬러복사기에 복사하여, 오린 후에 책의 내용대로 따라하면.... 더 쉽게 성공가능 하답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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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편에는 "정성 담아 만든 입체카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nbsp; 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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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선물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졌고.. 카드는 그저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작은 부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요...
생각해보면, 선물보다 카드속에 담긴 내용에서... 상대방의 진심과 마음을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카드를 받아 본적이 얼마나 될까...
새삼...손을 꼽아 봅니다..
그런데 정말...요즘은 편지든 카드든..... 예전보다 받는 횟수가 확연히 적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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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드는 팝업카드..
단순한 카드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어렵지 않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팝업카드를 만들 수 있어요..^^<BR>
특히나,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형식으로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 생일날이나&nbsp;주변 가까운 분들의 생일날... 한번쯤..이런 핸드메이드 카드를 선물해 보시는건 어떨까요..^^<BR>
전 울 아이들 생일날,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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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92/73/cover150/892554598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985</link></image></item><item><author>mellaians</author><category>Books</category><title>앞으로 9년은 족히 끼고 있을 요리책</title><link>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link><pubDate>Sun, 29 Apr 2012 0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1.jpg" width="500px" /></a></div><p>베스트셀러 <아기가 잘 먹는 이유식은 따로 있다> 2탄 

 

아시는 분들은 오래 기다리셨던 마더스 고양이님의 두번 째 유아식책이죠.

<2~11세 아이가 있는 집에 딱좋은 가족밥상>이 드디어 출간되었어요.

저도 얼른 예약구매를 하고 기다렸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금과 종이호일까지 선물로 보내주셔서 기쁨이 두 배~~ 

 

요모조모 참 쓸데가 많은 종이호일,  

요즘 저는 베이킹에 사용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아이들 소금 아무거나 줄 수 없겠죠? 미네랄이 들어있는 키즈솔트

아직 써보지 못했던 핑크색이 왔네요. 

 

요리전문 출판사, 레시피 팩토리는 월간요리잡지인 수퍼레시피를 만들기도 해요.

 수퍼레시피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답니다. 

역시 엄마가 편해야 가족이 편하다는 진실은 요리에서도 통하더군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2.jpg" width="500px" /></a></div><p>불고기, 야채참치, 불고기베이크, 크렌베리 쿠키, 달걀볶음밥

 

예약했던 책을 기다리고 있다가 받자마자 냉큼, 

몇 가지만 일단 따라만들었어요.

역시 기대만큼 허를 찔리며 감탄한 노하우가 곳곳에 숨어있더라구요.

앞으로 차차 알려드릴께요~~~

 

정말 2~11세 아이들이 있는 집에 꼭 필요한 책이었어요. 

마더스고양이님이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보람이 있겠구나 싶었답니다. 

 

아이들 도시락, 파티음식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메뉴가 가득해서 추천할 만 하더군요. 

책을 보고 몇 가지 만들어본 음식들이 죄다 만족스러워서 

하루에 하나씩 다 만들어 맛보고 싶은 궁금함이 생겼어요. 

요리책을 이렇게 정독할 줄이야.. ㅎㅎ

 

맛있는 요리들이 189가지나 들어있어요.

언제 다 따라해볼까요~~ 부지런히 만들어야겠어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3.jpg" width="500px" /></a></div><p>단순한 유아식책은 NO~~~~ 

가족 모두에게 유용한 가족 밥상책

제가 접한 이 책은 아들도 좋아하고, 어른 입맛도 실망시키지 않아요.

평소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들로 간단하게 온가족이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수 많은 장점 중의 하나예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4.jpg" width="500px" /></a></div><p>어른 밥상, 아이밥상 따로 차리기 정말 번거로웠죠. 

같은재료로 크기만 다르게 썰기,

전체적인 간은 아이에게 맞추고 어른용은 추가 양념하기 등의 

아이용 어른용 밥상 함께차리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답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5.jpg" width="500px" /></a></div><p>목차에서 메뉴 옆에 H D F라고 표시된 것이 눈에 들어오죠?

이런 표시들은 흥미를 유발시키고 만들어보면 재미있어서 뿌듯해지더라구요.

이제 김치를 먹기 시작하는 아들을 위해 H부터 시도해봐야겠어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6.jpg" width="500px" /></a></div><p>보기 쉽고 단순한 과정컷이 맘에 들어요. 

재료손질, 크기나 모양, 만드는 과정에서 요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 

요리초보들도 쉽게 따라만들 수 있어요. 

저도 결혼하고선 처음으로 후라이팬을 잡았거든요. 

아직 잘 하진 못하나 음식하는 걸 좋아하는 주부가 되었답니다. 

 

요리재료 중 한가지라도 생소하거나 자주 쓰지 않는 게 있음 그 요리는 시도도 안하게 되더라구요. 

고양이님 책은 몇 가지 안되는 재료, 양념 등 복잡하지 않은 조리과정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으니 활용도 200% 랍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7.jpg" width="500px" /></a></div><p>식습관이 형성되는 2~3세부터 11세까지 하루 필요열량 계산법부터 각 시기에 신경써야할 식습관이 빼곡히 적혀있어요.

3세인 아들이 서서히 편식하는 음식이 생겨나서 걱정이었는데요, 

아무리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10번이상 먹어보면 거부감이 사라진다고 하니 부지런히 먹여야겠다 싶어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8.jpg" width="500px" /></a></div><p>코스트코라는 한정된 마트에서만 맛볼 수 있던 음식을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정말 획기적이지 않나요?

특히 저희 부부는 불고기베이크를 무지 무지 좋아해요.

책을 펼쳐보다 얼마나 반가워했는지요~~^^

제가 가장 먼저 따라 만들었던 메뉴이기도 하답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19.jpg" width="500px" /></a></div><p>아이가 낮잠에서 깨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다 

혼자 하나를 다 먹어버렸어요ㅋㅋ

배부르더라구요. 

간식 뿐 아니라 한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불고기베이크~~ 

사진을 보니 또 만들어 먹고 싶어지네요. 

다시 만들 땐 더 맛있게 만들어보렵니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0.jpg" width="500px" /></a></div><p>급하게 만들어도 맛있고 보기 좋은 야채참치와 달걀 볶음밥은 정말 최고였어요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달걀볶음밥

쪽파와 계란만 있음 된답니다.

저녁에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마땅히 먹일게 없어 고민하다 책을 들춰보고 후딱 만들었거든요. 

아~~ 달걀볶음밥의 색깔이 너무너무 이뻐서 반했답니다.

시간에 쫓기는 엄마들에게 많이 사랑 받을 메뉴같아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1.jpg" width="500px" /></a></div><p>야채참치는 시중에도 파는데 아주 어릴적에 한 번 먹어보곤 너무 맛없어서 수십년 간 입에도 댄 적이 없었는데요, 

오호~~ 이렇게 간단하고 맛있을 수가!!! 

울아들이 정말 좋아하네요.

아들이 엄지를 들어올리며 굿~~이라고 해주었답니다. 

 

이것 저것 많은 재료가 들어가서 번거로운 요리책들 참 많잖아요. 

고양이님의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어른 입맛에도 딱이예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2.jpg" width="500px" /></a></div><p>시금치무침, 두부구이, 우엉조림, 김구이

 

밑반찬도 뚝딱 뚝딱 만들어지니 간단해서 자주 해먹을 것 같아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3.jpg" width="500px" /></a></div><p>특히, 김구이를 한꺼번에 굽는 방법!!!!  정말 좋아요. 

매번 한 장씩 기름 바르고 프라이팬에 구워내서 자르기도 번거롭고 

가루가 떨어져 뒷정리도 불편해서 자주 하게되진 않지요.

 

책에선 한꺼번에 발라 오븐에 굽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답니다.

저는 소금 뿌리지 않고 들기름만 살짝 발라 구웠어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4.jpg" width="500px" /></a></div><p>책을 펴놓고 요리하다보면 꼭 책이 덮어지더라구요. 

아딱밥상은 퍼제본으로 만들어져 180도로 펼쳐진대로 고정이 되니 요리하면서 보기 참 편하답니다. 

원하는 페이지에서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서 편하게 보세요~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5.jpg" width="500px" /></a></div><p><03> 아이와 함께먹기 좋은 일품 요리 중에서 만들어본 불고기,

 

넉넉하게 만들어서 불고기베이크가지 만들면 1석이조 ㅎㅎ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44880106/5593341"><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44880106756726.jpg" width="500px" /></a></div><p><07>  아이 기 살려주는 도시락,파티음식 메뉴 속에서 

건과일쿠키를 만들었어요. 

요즘 새로운 간식에 눈을 뜬 아들이 쿠키류를 무척 좋아해요. 

 

 

아이가 조금 더 어릴 땐 냉동실에 저장해둘 수 있어서 편한

 돈가스나 미트볼 같은 비상식량들이 유용했는데

요즘엔 아이와 함께먹을 수 있는 한그릇음식들이 눈에 더 들어오네요. 

점점 더 더워지면서는 우유빙수, 스무디, 에이드같은 홈메이드 디저트를 만들고 있겠지요.

 

 

깨알같은 정보와 레시피가 가득한 맘들의 필수품,

 2~11세 아이가 있는 집에 딱좋은 가족밥상

요리책을 뒤적이는 엄마를 따라 아들도 요리책을 한 장씩 넘겨보며 와~~ 합니다.

말문이 트이면 이거 해달라 저거해달라 요구사항도 늘어나겠죠? 

아이가 크는 만큼 지저분해질 이 책, 앞으로 9년은 족히 끼고 있을거예요.

 

파워 육아블로거 김정미님의 책, 1,2탄 두 권만 있으면 

이유식, 유아식으로 고민하는 엄마들은 이제 보기 어렵겠어요. 

 


 
</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1/10/cover150/89963472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347256</link></image></item><item><author>된장</author><category>사진책</category><title>사진인가, 철학인가, 예술인가 -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title><link>http://blog.aladin.co.kr/hbooks/5594994</link><pubDate>Mon, 30 Apr 2012 1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books/55949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2918&TPaperId=559499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4/10/coveroff/89591329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2918&TPaperId=55949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김아타, 인디아 스케치</a><br/>김아타 지음 / 예담 / 2008년 03월<br/></td></tr></table><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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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nbsp;사진인가, 철학인가, 예술인가<BR>&nbsp;[찾아 읽는 사진책 91] 김아타,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
&nbsp;
<BR>&nbsp; 김아타 님 사진책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를 읽습니다. 맨 마지막 쪽에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님 글이 붙습니다. 이주향 교수님은 김아타 님 책에 “김아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입니다(222쪽).” 하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쟁이’가 아니었군요. 그렇다고 ‘예술쟁이’도 아니었어요. 김아타 님은 바로 ‘철학쟁이’나 ‘철학꾼’이나 ‘철학가’, 쉽게 말하자면 ‘생각쟁이’나 ‘생각돌이’나 ‘생각꾼’이었어요.
<BR>&nbsp;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다(31쪽).” 하고 말하면서 사진을 넣지 않습니다. 그래요, 김아타 님으로서는 당신 생각을 북돋우려고 사진기를 들었을 뿐이니까요. “하얀 보따리가 두 개 있다(53쪽).” 하고 글을 쓰면서 하얀 보따리 둘 있는 사진을 넣습니다. 김아타 님은 하얀 보따리 둘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느끼고 싶었으니까요. “많다. 복잡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61쪽).” 하고 말하며 사진을 또 안 넣습니다. 참말 아무 생각이 없으니 사진기를 들어, 날마다 1만 장씩 찍었다 하더라도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멈춘 순간, 골목이 맑다(111쪽).” 하고 말하지만, 시간이 멈춘 때는 없습니다.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추었다고 생각한 때가 있을 뿐입니다. 곧,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춘 때가 맑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때에 골목을 바라보면 골목이 맑다고 여깁니다. 이때에 아가씨를 보았으면 아가씨 얼굴이 맑다고 여길 테고, 이때에 들판을 바라보았으면 들판이 맑다고 여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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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nbsp;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얻으려고 인도로 나들이를 다닙니다.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불러일으키려고 네팔이나 티벳이나 스리랑카나 모잠비크나 파키스탄이나 그리스나 칠레나 아르헨티나를 떠돕니다. 모두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어느 곳으로도 나들이를 다니지 않더라도 ‘시간이 멈춘 한때’를 늘 느낍니다. 이를테면,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김을 매며 늘 느낍니다. 구부정한 허리가 모질게 아프다가는 아예 구부정하게 굳은 채 걷고 자고 먹고 일어나고 눕고 하는 나날을 이으며 언제나 느낍니다. 또는, 책을 읽으며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느끼기도 합니다. 늙은 어버이 이마 주름을 쓰다듬다가 느끼기도 합니다.
<BR>&nbsp; “뭄바이 시내 고가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뭄바이는 내가 만난 세상 중 가장 시끄러운 곳이지만 사진에는 소리가 없다(135쪽).” 하고 말합니다. 김아타 님은 스스로 사진에 소리가 없다고 느끼기에 이 사진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 이곳에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몹시 시끄러웠다고 여겼으면, 그분 그 사진에는 시끄러운 사진이 담깁니다.
<BR>&nbsp;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빚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이루는 사진입니다.
&nbsp;


 
<BR>&nbsp; 김아타 님은 사진기라는 틀을 빌려 당신 생각을 가꾸어 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을 수없이 찍고 다시 찍으면서 당신 생각이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고 싶은 삶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BR>&nbsp;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만 사진책이 아닙니다. 이주향 교수님 말대로 철학책입니다. 철학을 하고 싶어 사진을 빌 뿐입니다. 거꾸로,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철학을 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영화를 빌곤 합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그리고 싶어 만화를 빌기도 해요.
<BR>&nbsp; 글 하나는 시도 되고 수필도 되며 소설도 됩니다. 글이라는 틀을 빌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쓰며 소설도 씁니다. 어떤 글은 시와 같지만 편지입니다. 어떤 글은 편지와 같지만 소설입니다. 어떤 글은 소설과 같지만 희곡입니다.
<BR>&nbsp; 어떤 사진은 사진으로 보이지만 사진이 아닌 ‘그림’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겉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진이 아닌 ‘철학’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옷을 걸치지만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nbsp;


 
<BR>&nbsp; 사진기를 쓰기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쓰며 글을 쓰는 이가 있습니다. 사진기를 빌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기를 빌어 예술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를 뭉뚱그려 ‘사진을 한다’거나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BR>&nbsp;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이로구나 좋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반갑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마주하며 철학이로구나 괜찮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즐겁습니다. 스스로 껍데기를 벗으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스스로 허울을 내려놓으면 사랑이 태어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188쪽).” 하는 말마디처럼, 봄바람을 생각하면 봄바람을 느낍니다. 봄볕을 생각하면 봄볕이 내 온몸으로 샅샅이 스며듭니다. (4345.4.30.달.ㅎㄲㅅㄱ)
&nbsp;
<BR>―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 (김아타 글·사진,예담 펴냄,2008.3.25./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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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4/10/cover150/895913291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2918</link></image></item><item><author>분홍신</author><category>조카의 서재</category><title>나는 모험을 하고 싶어요 - [마법의 빨간 수레]</title><link>http://blog.aladin.co.kr/751501146/5595977</link><pubDate>Mon, 30 Apr 2012 19: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51501146/55959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22478&TPaperId=559597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10/13/coveroff/89966224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22478&TPaperId=55959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법의 빨간 수레</a><br/>레나타 리우스카 글.그림, 김혜진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04월<br/></td></tr></table><br/>햇살도 따스한 4월의 어느 날, 걸음마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는 조카가 처음으로 걸어서 놀이터엘 갔다. 그런데 요녀석은 희안하게도 놀이터보다는 그 옆 주차장에 더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놀이기구를 만지는 듯 하다가도 흘깃 주차장을 바라보고, 주차장에 차만 들어오면 아예 넋을 잃고 그 쪽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결국 할머니 손을 잡아 끌며 주차장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nbsp;
아장아장, 뒤뚱뒤뚱...
주차장에 도착한 조카는 그곳에 정렬되어 있는 수많은 차들, 배달부의 오토바이들, 그리고 한쪽 구석의 자전거 보관소까지 유심히 바라보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드디어 어느 차 앞에, 정확히 말해 차 바퀴 앞에 선다. 도대체 바퀴가 뭐 그리 신기한 것인지...차례차례 각종 탈 것들을 순례하며 바퀴를 바라보는 폼이 마치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애호가인 듯하다. 엇, 그런데 요녀석이 바퀴를 만지려고 한다! 함께 나간 어른들이 입을 모아 말렸더니 갑자기 내 손을 척 낚아채 바퀴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것의 의미인 즉, 바퀴를 돌려 차를 움직여보라는 지시이다(조카는 늘 바퀴 자체를 돌려 장난감 차를 굴리고 논다). 이런, 이모를 무슨 차력사로 아는 건지, 나는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그 때, 주차장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간다. 조카의 시선도 냉큼 움직이는 차를 쫓는다. 그리고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자기 앞에 정지해 있는 차 바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nbsp;
조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멈춰있는 바퀴와 움직이는 바퀴 사이에서 수많은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힘이 센 어른이 되어 주차장에 있는 모든 차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카의 상상 속에 루시의 빨간 수레 이야기를 슬며시 밀어 넣어주고 싶었다. 수레뿐만 아니라 마차, 기차, 우주선까지 총 출동하는 이 모험을 통해 바퀴달린 탈 것들도 실컷 보고, 상상의 세계를 두 다리로 누비며 신나게 달려보라고. 그리고 물론, 앞으로 더 자라서 심부름도 잘 하라고.
&nbsp;
자, 이제 루시와 수레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표지를 열면 아기 여우 루시가 빨간 수레에 누워 책을 보고 있다. 루시에게 수레란 그저 물건을 실어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침대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친구인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라면 가기 싫은 심부름길도 멋진 이야기로 채워갈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엄마도 참...수레를 선물 받자마자 심부름부터 시키시다니!
&nbsp;

&nbsp;
<BR>루시가 심부름길을 떠나는 순간,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이것은 어쩌면 빨간 수레가 루시를 위해 발휘한 첫 번째 마법일지도 모른다. 빨간 수레의 마법인지, 아니면 정말 친구들이 따라온 것인지,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이미 수레는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법도 더 가득 실렸다. 마법의 수레가 아니였다면 한 차례의 소나기와 따가운 햇살을 만났을 루시와 친구들은 거센 홍수를 건너 사막을 횡단하는 카우보이가 된다. 씩씩한 보안관 루시가 끌고 가는 것도 더이상 수레가 아니라 늠름한 마차다. 마법의 수레라더니, 정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 같다.
&nbsp;


&nbsp;
&nbsp;
와! 시장이다. 어찌나 즐거운지 서커스 축제의 환상 마저 펼쳐진다. 루시와 친구들은 어느새 서커스 단원이 되어 묘기를 부리고 나팔을 불고 흥겹게 시장을 거닌다. 만일 루시 혼자 시장에 왔더라면 엄마가 주신 목록만 열심히 살피느라 장보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겠지?&nbsp; 이토록&nbsp;재미난 것이 시장이라면 먼 길을 걸어 심부름을 와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야채를 실어나르니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기만하다. 루시의 마음을 아는지, 수레도 어느새 기차가 되었다. 이런, 변신로봇보다도 더 굉장한 수레의 마법인걸? 함께 온 친구들과 수레가 정말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이제 야채를 가득 싣고 집으로 가는 길, 그러나 또 한 번의 난관에 부딪히고, 수레는 얼른 마법을 뿅~! 루시와 친구들은 갑자기 야채 행성들이 운행하는 기이한 우주의 세계로 빠져든다. 물론, 우주선은 빨간 수레다. 
&nbsp;


<BR>
&nbsp;
단지 시장에 한 번 갔다왔을 뿐인데 탱탱하게 묶여있던 리본은 엉망이 되고 루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고맙다며 이제 수레를 가지고 놀라고 하셨지만 루시는 그만 수레 안에 쏘옥 들어가 잠이 들고 만다. 하긴, 수레의 마법에 완전히 빠져 엄청난 모험의 세계를 지나왔으니 피곤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하지만 위대한 모험가 루시는 꿈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누비며&nbsp;수레의 마법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nbsp;여기서 눈치챘겠지만 수레가 가진 마법의 비밀은 루시의 상상력에 있다. 가기 싫은 심부름을 즐겁게, 책임감있게 해내는 방법을 루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lt;마법의 빨간 수레&gt;는 심부름길을 떠난 아기 여우 루시를 통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꿔내는 지혜를 보여주고, 아이 다운 모험심을 한껏 펼쳐주며, 수레라는 넉넉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탈 것을 통해 다양한 변신으로 상상력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깜찍한 이야기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가기에 바뻐 심부름 갈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어디를 가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발걸음만은 항상 경쾌했으면 좋겠다. 
&nbsp; 

&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0/13/cover150/899662247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22478</link></image></item><item><author>순오기</author><category>이달의당선작&amp;우수리뷰</category><title>아빠, 온몸으로 놀아주세요!</title><link>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link><pubDate>Mon, 30 Apr 2012 23: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73.jpg" width="500px" /></a></div><p>아빠와 유치원 딸내미의 역할을 바꾸기?
아빠와 딸이 역할을 바꾼다는 설정은 충분히 호기심이 발동할 소재다.
그림책에 워크북과 뽀로로 미니 색연필까지 있어 초등생들도 좋아했다.

작가님도 성장기에 자기 맘을 몰라 주는 부모님과 역할을 바꿔보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녀를 키우며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어릴 때, 엄마랑 아빠처럼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단 생각을 다들 하지 않았을까?^^
어른만 되면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도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ㅠ</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67.jpg" width="500px" /></a></div><p>비오는 날, 우산이 뒤집힌 민이는 무엇이든 척척 해결하는 아빠가 부럽다.
아빠는 놀기만 하는 민이가 부럽고...

놀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민이와
뭐든지 척척 잘하는 건 아니라는 아빠는 의기투합,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새끼 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0.jpg" width="500px" /></a></div><p>마트에 간 아빠와 민이,
민이는 카트에 장난감만 한가득 실었는데
아빠는 '넥타이'를 사달라고 조른다.
민이는 "안 돼요!"라는 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 주었고...^^

어쩌면 아빠가 된 민이는 '안돼!'라는 말을 제일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성장기에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자주 듣는 말이니까.
"안돼, 하지마!"
민이는 통쾌하게 한 마디를 날리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렸을 거 같다.ㅋㅋ
민이가 된 아빠는, 꼼짝없이 넥타이를 포기해야 했고...</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1.jpg" width="500px" /></a></div><p>자~ 아빠가 된 민이는 이제 아빠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한다.
아빠의 커다란 구두도 신어보고 안경이랑 양복도 입어 본다.
요렇게 아빠가 되어 보는 게 얼마나 신 날까?^^</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4.jpg" width="500px" /></a></div><p>아빠가 된 민이의 표정을 관찰하며 회사에서 일은 잘하는지 따라가 보자.
큼지막한 아빠의 자켓을 걸치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
바쁜 출근길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도 재미있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5.jpg" width="500px" /></a></div><p>민이가 아빠 회사에서 한 일은 '자기 얼굴 복사하기'!
하하~~ 우리 아들 같은 녀석이 여기도 있네.ㅋㅋ
우리아들도 초등학교 때, 복사기에 자기 얼굴 집어 넣고 출력시켰는데,
불빛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 두 눈 꼭 감은채 얼굴 사진이 나왔더라~
자기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 엄청 궁금했다는데
애들이 궁금해하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어른들은 짐작이나 할까?^^</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6.jpg" width="500px" /></a></div><p>민이는 아빠 자리에 앉아 게임만 하고, 
빙글빙글 회전의자를 굴려 여기저기로 씽씽 바람처럼 달리는 게 신난다.
글쎄~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 놀아도 되나?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구만...^^</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7.jpg" width="500px" /></a></div><p>사무실에 혼자 남아 야근하는 민이 
"으악, 귀신이다!"
용감무쌍하던 민이는 간이 콩알만해졌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8.jpg" width="500px" /></a></div><p>온종일 민이를 몰래 따라 다니며 지켜보는 아빠는
"오늘도 무사히!"
라는 구호가 저절로 새어나왔을 거다.
긴장하는 중에도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곰돌이와 달팽이.^^</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79.jpg" width="500px" /></a></div><p>퇴근하는 길, 
거인국에 온 소인처럼, 민이는 덩치 큰 어른들 사이에 갇혔다.
아빠가 되려면 방귀가 나와도 꼭 참아야 해.
아빠는 뭐든지 척척 잘하니까~~~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80.jpg" width="500px" /></a></div><p>휴~~ 지하철에서 내린 민이는, 다시 세발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휴~~ 아빠는 민이가 다칠까봐 노심초사!
여기서 끝이라면 말이 안되지~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7381.jpg" width="500px" /></a></div><p>집에 돌아와 아빠의 군복을 발견한 민이~~ 
저벅저벅 행진을 하고, 주르륵 밧줄 타기도 성공이다.
씨이잉~ 전투기 조종도 해보고,비행기와 탱크도 몰아 보자.</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63.jpg" width="500px" /></a></div><p>깨알같은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다. 
곰돌이와 달팽이의 찬조 출연!^^</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62.jpg" width="500px" /></a></div><p>민이가 된 아빠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다.
와우~ 민이의 유치원 친구들을 불러다 즐기는 물놀이니!ㅋㅋ</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61.jpg" width="500px" /></a></div><p>민이는 부러움이 가득하지만, 
아빠 체면에 친구들이랑 물놀이를 할 수도 없고~ 어쩜 좋아!ㅜㅜ</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60.jpg" width="500px" /></a></div><p>주말에 놀이 공원에 간 아빠(민이)는 드디어 복수의 순간을 맞는다.
세상에~~사자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빠가 바이킹을 무서워 하다니!ㅋㅋㅋ</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9.jpg" width="500px" /></a></div><p>놀라운 반전은 바로 여기!^^
누가 누구를 잃어버리고 찾는 건지~ ㅋㅋㅋ
"아이를 찾습니다. 이름은 김철우, 나이는 36세."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8.jpg" width="500px" /></a></div><p>집으로 돌아온 아빠 민이는 집안일 정리로 바쁘다.
고칠 것도 많고....</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7.jpg" width="500px" /></a></div><p>전구를 갈려고 의자 위에서 까치발로 손을 뻗는 순간~~~~</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6.jpg" width="500px" /></a></div><p>'아빠노릇은 너무 힘들어~~~~~ ㅜㅜ'
민이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지만, 아빠한테 도로 바꾸자고 먼저 말할 수는 없다.
도로 바꾸자는 아빠 말에 못 이기는 척 얼른 제자리를 찾은 민이.ㅋㅋ
역시 입장을 바꿔 봐야 얼마나 힘드는지 알 수 있겠지.^^</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5.jpg" width="500px" /></a></div><p>역할바꾸기를 끝낸 민이와 아빠는 행복한 낮잠시간~
소파에서 잠든 부녀, 그 머리 위쪽에 가족 사진이 보인다.
이 책을 보는내내 왜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지 혹시 엄마가 없는 걸까 궁금했는데...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라면> 책이 따로 있기 때문인 듯.</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4.jpg" width="500px" /></a></div><p>온몸으로 놀아주는 아빠는 아이의 뇌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전문가의 조언.
우리 아빠는 몸으로 놀아주는 아빠인가?
이 책을 본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기 아빠를 평가 할 것이다.
자녀의 평가에 자신 없는 아빠라면...
엄마처럼 자꾸 무언가 가르치려 들지 말고 무조건 함께 몸으로 놀아주시라~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68.jpg" width="500px" /></a></div><p>우리 삼남매는 어릴 때 아빠와 잘 놀았다.
아빠가 퇴근하면 현관에서 쓩쓩~ 안아주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부터
아빠는 체구가 커서 기운도 좋아 붕붕~~ 비행기는 기본이고.
우유팩 블럭을 쌓아 배치기로 무너뜨리거나 씨름한다고 같이 뒹굴며 놀아줬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53.jpg" width="500px" /></a></div><p>워크북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활동지가 다양하다.
2학년 *빈이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어떻게 활동했을지 기대된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714960143/5596434"><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14960143758470.jpg" width="500px" /></a></div><p>초등생들은 차례를 기다려 이 책을 읽고, 역할을 바꾸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 아빠, 동생, 친구, 선생님 등 줄줄이 읊었다.
엄마가 돼서 동생을 야단치고 싶다는 아이와
선생님이 되어 심술쟁이 짝꿍을 혼내고 싶다는 의견에도 공감을 표했다.^^</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61/50/cover150/893953249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53249X</link></image></item><item><author>마노아</author><category>그 밖에...다른 장르</category><title>패션 그 이상의 드레스</title><link>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link><pubDate>Mon, 30 Apr 2012 2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guid><description><![CDATA[<br/><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26.jpg" width="500px" /></a></div><p>코코 샤넬의 저지 플래퍼 드레스, 1926년경
남성 우월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연연하지 않고 다리를 드러냈다. 
플래퍼 드레스는 여성의 몸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고 드레스를 입는 데 걸리던 시간도 크게 줄여 주었다. 
허리를 조이고 무거운 원단을 사용하던 기존 디자인에서 벗어나 저지 원단으로 만든 코코 샤넬의 옷은 실용적이고 활동적이었다. 
옷의 태도 근사하지만,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사실 신발이었다. 발에 착 감기는 느낌으로 맞춤형 신발로 보인다. 굽도 안정적이면서 적당히 높다. 모자도 아주 마음에 든다.^^

마들렌 비오네의 가데스 드레스, 1931년
제목처럼 여신 포스가 가득한 아주 여성적인 느낌의 드레스다. 
몸의 곡선을 잘 살려내었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핏이 매력적이다.

멩보쉐, 윌리스 심프슨의 웨딩드레스, 1937년
왕좌를 버리고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한 에드워드 8세, 곧 윈저 공의 결혼식 장면이다. 
30년대에 이렇게 심플한 디자인의 웨딩 드레스를 입었다니, 놀랍다. 마네킹에 입혀놓은 옷을 보아도 우아함의 극치를 달린다. 이 옷은 영화 '가비'에서 김소연이 소화했던 옷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랫배에 엄청난 힘을 쏟아야 할 디자인이지만, 입어보고 싶은 옷이기도 하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27.jpg" width="500px" /></a></div><p>노먼 하트넬, 엘리자베스2세의 대관식 드레스, 1953년
편안하고 착용감이 좋으면서, 종교의식이나 왕실 행사에도 어울리는 의상을 만들라는 임무를, 디자이너 노먼 하트넬은 제대로 완수했다.
왕실스럽게 화려하고, 대관식에 어울리게 장엄함도 보여준다. 그래도 왕관이 더 고급스러운 거겠지?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 임마누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웨딩드레스, 1981년
뭐랄까. 이미 30년이나 지났으니 솔직히 내 눈에는 다소 촌스럽게 보이건만, 당시 이 결혼식을 지켜보던 세계의 여성들은 '공주 드레스'의 로망을 제대로 보여주는 옷이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을 듯하다. 
왼쪽에 작은 사진을 보면 면사포가 아주아주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것 또한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한다. 
수줍으면서도 우아한 미소를 보인 다이애나비, 이때는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행복했다고 믿고 싶다.

크리스티나 스탐볼리안, 블랙 플리츠 시폰 드레스, 1994년
찰스 왕세자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불륜을 인정했던 순간, 다이애나비는 동정에 호소하기보다 어깨를 펴고 과감한 드레스로 시선을 끌었다.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구두 또한 마놀로 블라닉! '복수의 드레스'라고 불린 이 원피스 한벌에 못된 찰스의 망언은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았다. 나쁜 찰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28.jpg" width="500px" /></a></div><p>윌리엄 트래빌라, 메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 드레스, 1955년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누구라도 알법한 메릴린 먼로의 지하철 통풍구 드레스 장면이다. 책에서 영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려주어서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멋진 장면을 보고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가 이 옷을 입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버렸다. 하하하^^

코코 샤넬, 샤넬 수트, 1950년대 후반
내가 좋아하는 샤넬 스타일의 트위드 자켓이다. 오늘날 샤넬옷은 명품 소릴 들으며 엄청 고가에 팔리지만, 이 원단은 당시 노동자 계급이 입는 옷에 주로 사용되던 값싼 트위드 원단이었다고 한다. 오, 획기적인 걸! 그나저나 모델이 오드리 헵번을 닮았다. 콧구멍도 닮았는데 진짜 오드리인지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세번째 사진은 분명 오드리 헵번!
위베르 드 지방시, 리틀 블랙 드레스,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역시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도도한 옷차림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세실 비튼 사진전에서 보았던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진들이 떠오른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29.jpg" width="500px" /></a></div><p>이브 생 로랑, 몬드리안 드레스, 1965년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를 보았을 때 이 드레스에서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가! 게다가 순수 창작이 아니라 회화의 아름다움을 옷감 위에 옮겨 놓은 그 센스가 감탄스러웠다. 직각의 선과 어우러진 모델의 어느 정도 무표정한 얼굴이 조화롭기만 하다.

메리 퀀트, 미니 드레스, 1965년
디자이너의 포즈와 생김새마저도 윤복희를 떠올리게 한다. 미니 스커트를 유행시켰던 그 때와 시기도 겹치지 않던가? 옷 자체는 왼쪽의 작은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파코 라반, 메탈 디스크 드레스, 1966년
책에는 온갖 소재의 드레스가 등장한다. 종이 드레스도 인상 깊었지만, 미관상 더 아름다웠던 것은 바로 메탈 디스크 드레스였다. 그야말로 하의실종 패션이어서 또, 일상생활에서 소화할 법한 옷은 아니지만, 여하튼 간에 무척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옷이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30.jpg" width="500px" /></a></div><p>오씨 클라크와 세리아 버트웰, 플로럴 프린트 드레스, 1970년
문양이 눈길을 확 끌었다. 완전 좋아하는 꽃무늬! 올봄엔 추위가 늦게 가고 더위는 지나치게 일찍 와버려서 꽃무늬 자켓도, 스커트도 입지 못했다. 안타까워라. 그 아쉬움을 이 사진으로 대신한다. 마네킹이 아니라 모델이 입고 있었다면 손의 모습이 더 우아했을 것 같다.

빌깁, 보이프렌드 LA 시사회에서 선보인 트위기의 의상, 1971년
흑백 사진인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데에 부족함은 없었다.
언뜻 삐삐가 떠올랐다. 그 자유분방한 느낌, 도도하고 당당한 느낌 말이다. 엄청난 공임이 들어갔을 법한 드레스인데, 상의 자켓이 특히 마음에 들고, 허리 부분의 주름도 아주 근사하다. 심지어 모자까지도! 완벽한 아름다움이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31.jpg" width="500px" /></a></div><p>루디 건릭, 토플리스 드레스, 1970년
당당한 페미니즘인지, 혹은 그를 가장한 남성들의 눈요기인지...

밥 매키, 쉐어의 오스카 시상식 드레스, 1988년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시상식에선 제 색깔을 과감히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을까. 육감이라는 말 그 자체인 드레스였다. 어쩐지 인어를 연상시키는 비늘 닮은 드레스이기도...

지아니 베르사체, 안전핀 드레스, 1994년
엘리자베스 헐리는 휴 그랜트와 사랑에 빠진 뒤 오래도록 단역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1994년 연인인 휴 그랜트가 출연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시사회에서 과감한 안전핀 드레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진만 보면 휴 그랜트가 조연 중의 조연으로 보인다.
</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32.jpg" width="500px" /></a></div><p>에르베 레제, 밴디지 드레스, 1989년
아,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그라데이션 먹힌 의상의 색감도, 모델의 지방기라곤 전혀 없는 저 각선미와 쇄골 선까지! 

도나텔라 베르사체, 그린 실크 뱀부 프린트 드레스, 2000년
2000년 답다는 느낌이다. 저 대나무 숲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청정함이 느껴진다. 대단히 야하고 섹시한데 그러면서도 에덴 동산의 이브 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기만 하다.

알렉산더 맥퀸, 사무라이 드레스, 2001년
보자마자 김연아가 떠올랐다. 포즈도 그렇거니와 꽃무늬 바탕의 피부색 옷감 때문에 더 그랬다. 사무라이보다 치파오 느낌이 더 들긴 하지만, 여하튼... 아름다운 옷이다.</p><div class="photobox"><a href="http://blog.aladin.co.kr/manoa/5596465"><img src="http://image.aladin.co.kr/Community/photoreview/photo_787603133757333.jpg" width="500px" /></a></div><p>알베르 엘바즈, 킹피셔 블루 실크 파유 벌룬 드레스, 2005년
오, 보는 순간 가장 입어보고 싶은 옷이었다. 이 정도면 가장 대중적인 디자인이 아닌가. 소재도. 노출도. 그런데 옷을 입은 모델은 옷의 느낌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 

롤랑 뮤레, 갤럭시 드레스, 2005년
뭔가 포스가 강한 전문직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오른쪽 큰 사진보다 왼쪽의 작은 사진의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든다. 무릎이 저 정도로 붙으면 활동성은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아한 걸음걸이를 재촉할 것만 같다.

후세인 살라얀, LED드레스, 2007년
마지막 사진이다. 어떤 소재든 패션으로 소화할 수 있는 마당이니 LED도 놀라운 것은 아니다. 다만 저 영롱한 오로라빛이 아름다워서 시선을 잡아 끈다. 패션의 진화와 새로운 도전은 끝이 없을 모양이다. 기대하고, 기다리게 된다. 뭐... 내가 입을 옷이 아니라 할지라도...^^

세상을 바꾼 50가지 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드레스' 책이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신발' 편도 궁금해진다. 그곳에도 내가 신기는 어려울 테지만, 궁금해 마땅한 신세계가 가득 펼쳐져 있을 테니까.</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47/91/cover150/899394122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4122X</link></image></item><item><author>메리포핀스</author><category>일기써매워달아셔</category><title>♪나물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title><link>http://blog.aladin.co.kr/7979/5593041</link><pubDate>Sat, 28 Apr 2012 2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979/55930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7068X&TPaperId=55930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8/44/coveroff/898937068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70620&TPaperId=55930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52/80/coveroff/898937062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나물캐는 처녀
&nbsp;
푸른 잔디 풀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ㅡ 
어여쁘다 그 손목<BR><BR>소먹이던 목동이 손목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오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ㅡㅡㅡ
어여쁘다 그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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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수요일, 비
4월 26일 목요일, 갬


싱그러움 그 자체
목요일이 시작이다. 수요일에 종일 비가 내린 덕분이겠지.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우와우~~~~~ 티끌 하나 없는 공기가 느껴진다. 그 싱그러운 냄새, 냄새, 냄새! 숨을 쉰다는 게 짜릿할만큼 황홀한 공기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 들어 사진부터 찍었다. 뭐라도 해야했다. 그냥 감탄사만으로는 너무 부족한 경치다. 아 좋다. 


사진에 냄새까지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정말 좋다. 이 냄새, 어디 담아가지고 다닐 수 없을까. 
아, 진짜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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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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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피고<BR>진달래 피는 곳에 내~마음도 피어<BR>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BR>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BR><BR>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BR>종달새 우는 곳에 내~마음도 울어<BR>나물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BR>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nbsp;
&nbsp;
&nbsp;
그리하여 나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장바구니에 작은 칼 하나 옆에 차고
앞 동산에 올라가 
나물 캐는 처자를 자처하였다.
&nbsp;
목, 금 이틀은 쑥만 캤다.
쑥된장찌개는 이미 맛을 보았고
올해는 쑥개떡까지 도전한다.
으하하.






&nbsp;
쑥을 캐다가 마타리(라고 추측되는 나물)을 보았다.&nbsp;
옛날에 엄마한테 배운 몇 가지 나물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한테 바로 물어볼 수가 없다.
아! 그렇지! 영상통화!
아! 아니지! 엄마 전화는 영상통화 안되지..&nbsp;잉..
방법이 있지! 책을 보면 되지!
그래서 들춰본 책, 『주머니 속 나물 도감』.
 
아.. 
이 책 보면 안되는데,
더구나 봄에! 
으..
못견딜텐데..
크..
역시..

접힌 부분 펼치기 ▼ 


&nbsp;
 
『주머니 속 나물 도감』은 휴대용으로 나와서 사진이 작다. 
그래서 나는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도&nbsp;사고 말았다.
두 책은&nbsp;저자(이영득)도 같고 출판사(황소걸음)도 같다. 
내용도 거의 같다. 
다만, 『주머니 속 나물 도감』은 2009년 3월에 초판을 찍었고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는 2010년 3월에 초판을 찍어서 나중에 나온『산나물 들나물 대백과』에 사진이 몇 장 더 많은 경우는 있다. 나물 종류도 몇 가지 더 추가되었고.. 그러나 큰 차이는 책의 크기, 즉 사진의 크기다. 『주머니 속 나물 도감』으로 볼 땐 긴가민가했던&nbsp;것도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로 보면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그야말로 하나는 휴대용, 하나는 확인용이다. 특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풀 중에도 독이 든 것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확신하지 말고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nbsp;
 
펼친 부분 접기 ▲
 
역시나, 마타리만 찾아서 확인해보고 그만 봐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계~~~속, 읽는다.
그래서 나 오늘, 결국은 또 한 번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장바구니에 작은 칼 옆에 차고 앞 동산에 올라
나물을 캔다.
&nbsp;
마타리, 개망초, 씀바귀는 데쳐서 저녁 반찬 해 먹고,
등골나물은 데쳐서 찬 물에 담궈 놓았다.


&nbsp;『주머니 속 나물 도감』137p. 등골나물


 (반찬 해 먹은&nbsp;사진은 없다. 다 먹어치움;;)
&nbsp;
이번에 독 있는 나물을 두 가지나 확인했다.
꼭&nbsp;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생겼길래 나물해왔더니
‘독이 있는 식물’ 편 제일 첫번째 사진에 그게 나오지 뭔가! 크으..
내가 해 온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미국자리공’이다.


 
또 하나는 원추리인줄 알고 해 왔는데 책에서 원추리를 찾아 비교해보니 전혀 다르다.
혹시나 하고 ‘독이 있는 식물’ 편을 살펴보니 역시나.. 흰여로라는 식물과 비슷하다.


 
책이 아니었으면 누구한테 이걸 확인해보겠나 말이다.
나물 이름 물어보자고 울산에서 용인까지 달려갈 수도 없고 말이지.
&nbsp;
나물 해서 쏟아놓고 티를 고르며 분류했다.
그러고 나서 하나 하나 책을 찾아 보며 확인 작업!


 


 
아무튼 오늘은 나물 하느라 너무 진을 뺐다.
주말 수영 연습도 빼먹고.. 흐유.
&nbsp;
그런데 왜 이리 뿌듯하지?
스스로 왜 이리 기특할까?
하하하.
&nbsp;
오늘 밤은 정말 푹- 잘 수 있겠구나!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52/80/cover150/898937062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70620</link></image></item><item><author>소이진</author><category>　　끄적끄적...</category><title>나무 불꽃...</title><link>http://blog.aladin.co.kr/kang55se/5593072</link><pubDate>Sat, 28 Apr 2012 2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kang55se/55930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598&TPaperId=559307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0/1/coveroff/893643359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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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비는 드세게 내렸다. 구멍 난 하늘이 땅 속과 통하는 길을 뚫으려는 듯 강하게 빗방울이 하강했다. 하루 종일, 터질 듯 한 회색구름은 가만히 하늘을 뒤덮고는 미동하지 않았다. 땅과 구름 새는 잿빛으로 물들었다. 구름에 의해서 지구는 쥐가 뭉쳐있는 듯 한 거대한 회색 공처럼 보였다. 그런 재색의 공간을 해는 꿋꿋이 비춰댔다. 땅에, 사람에, 건물에 자신의 빛이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구름을 물릴 능력도, 구름을 뚫고 빛을 쏘아댈 힘도 없었다. 자승자박인 셈이었다. 앞길을 막은 구름떼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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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모든 것은 그 날로부터였다. 4월엔 꼭 이상 문학상 수상작을&nbsp;읽겠다는 다짐을 생각해낸 나는 그 날 아침, 작품집 하나를 꺼내들었다. 나에겐 세 권의 - 권여선과 박민규와 한강이 대상을 수상한 -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있었다. 그 중 한강의 이름이 박힌 것을 골라&nbsp;빼었다. 이름부터 믿음이 가는 작가였기에 - 이상 문학상인데 그렇지 않은 작가가 어디있겠냐만은 - 또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lt;몽고반점&gt;. 현대문학상 후보작인 &lt;왼손&gt;이라는 작품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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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학교로 가져와 일단은 뒤표지를 읽었는데 약간 당황했다. "처제와 형부의 정사라는 다소 도발적인 소재를, 존재의 시원으로 향한 작가의 강령한 예술혼으로……" 하는 소개문구가 적혀있었다. 어쩜 요새는 읽으려 하는 책마다 이런 내용이니 감히 학교에서 읽기가 힘들다. 잘못해서 책을 엎어두고 밥을 먹으러 간 참에 누군가가 읽기라도 한다면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어쨌든 마음을 추스르고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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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책을 덮고나서 나는 충격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lt;왼손&gt;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비슷하기만 했지 달랐다. &lt;왼손&gt;은 기이하고도 조용하고 고요했는데 &lt;몽고반점&gt;은 정반대였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읽는 동안 누군가 머릿속에 작은 폭죽들을 끊임없이 터트리고 있는 듯했다. 화려했고, 관능적이었고, 눈을 뗄 수 없는 문장들을 겸비했다. 대상 수상작답다, 하는 게 머릿속을 정리한&nbsp;뒤 처음&nbsp;한 생각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가 처제를 탐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매우 매혹적이었고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문장은 너무도 단단하여 자세한, 언뜻 보면 민망할 듯도 한 묘사들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신경숙의 말을 빌려보자면 너무 치밀하게 짜여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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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전작을 읽기 위해 &lt;채식주의자&gt;를 구매했다. 알고 보니 연작소설이었다. 총 세편의 작품이 이어져 있는데 영혜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인 &lt;채식주의자&gt;는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된 계기와 사건을, 두 번째는 &lt;몽고반점&gt;으로 영혜와 형부의 사건,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lt;나무 불꽃&gt;으로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해버린 남편을 잃은 여자와 영혜의 치열하고도 기이한 사투를 그려내고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작품들을 읽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한강을 알게 된 것 자체가 기뻤다. 이런 작가가 나와 동시대에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nbsp;다만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작품 내내 이어지는 육중한 무게감과 우울 감을 감당해 내기가 힘들었다. 치열하고도 굉장한 동물성과 식물성의 교차, 또 식물성이 내포하는 깊은 의미, 등장인물들의 행동들, 다 좋았는데 아직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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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영혜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산에서 길을 잃고 그녀는 한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고깃덩어리가 천장에 걸려있었다. 그녀는 그곳을 나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어떻게든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에 숨 쉬고 있던 살육의 광기를 깨달아버렸다. 그 후로 그녀는 조금의 육식도 하지 않았다. 육 고기는 물론 어류, 우유 등도 입에 대지 않았다. 채식으로 인해 주위의 시선도,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지자 그녀의 아버지는 강제로 영혜에게 육식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가족 모임 날, 고기 한 점을 억지로 입에 물린 것이다. 영혜는 고기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며 칼을 들었다. 그리고는 손목을 그었다.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예 자신을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채식뿐 아니라 옷을 홀랑 벗고는 광합성을 하려는 듯 햇볕을 쬐었다. 가족들은 일종의 착란증상이라고 치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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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점점 나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때 형부가 개입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녀의 몸에 꽃을 그리고 촬영한다. 처음에는 모델이었던 처제의 몸에 그는 흥분하기 시작한다. 끝내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고야 만다. 짐승 같은 형부 탓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몸에 그려진 꽃을 보고서였을까 영혜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음식을 거부했고, 물구나무를 서서 땅의 정기를 받고 나무와 소통하려 했다. 정신병원에서마저 그녀를 포기한 상태. 그녀는 먹지 않아 살 한 점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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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나, 내장이 다 퇴화됐다고 그러지, 그치.
&nbsp;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영혜의 여원 얼굴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nbsp;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 밥 같은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nbsp;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정말 나무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식물이 어떻게 말을 하니. 어떻게 생각을 해.
&nbsp; 영혜는 눈을 빛냈다. 불가사의한 미소가 영혜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nbsp; 언니 말이 맞아……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nbsp; 영예는 큭큭, 웃음을 터뜨리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nbsp; 정말 금방이야. 조금만 기다려, 언니.&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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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식물이 된다는 것. 동물과 멀어진다는 것. 식물성. 한강이 말하고자 하는 식물성은 대체 무얼까. 정말 그 의미 그대로의 동물성과 반대인 여성을 상징하는 것뿐일까. 아니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녀는 계속 자연과, 식물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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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 이번 일주일은 한강에 미쳐 지냈다. 한 주 동안 그녀의 단편만 세 편을 읽었고, 그녀의 감성을 느꼈고, 문체를 파악했다. 한 작가의 문체를 파악한다는 것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른 단편들에는 두려워 손을 쉬이 댈 수 없다. 한강이라는 거대한 벽과 선입견이 내 마음 둘레로 쌓여져 있는 이상 그 벽을 넘을만한 작가를 그리 빨리는 찾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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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나는 아동이 학대당하고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기보단 내가 나서서 보살펴주는 게 낫다고 했고, 그 친구는 신고가 절대적으로 우선이라고 했다. 나는 감성파라면 그 친구는 현실파였다. 싸움의 원인은 &lt;마더&gt;라는 드라마였다. 사진의 아이는 부모에게 늘 학대받으며 살아왔다. 허리띠로 맞고, 성희롱 당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심지어는 쓰레기 봉투에 넣어져 쓰레기장에 버려지기까지 했다. 우연히 쓰레기장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 담임교사는 참지 못한 채 그녀를 유괴한다. 나는 이 담임교사에 감정이입을 한 셈이고, 그 친구는 그렇지 않은 셈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게 그 친구는 경찰에 대한 신뢰성이 엄청나다는 거다. 나는 저번 수원 살인사건 일도 그렇고 그 일이 아니라도 경찰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 늘 맞으며 학대당하고 세뇌당하던 아이가 경찰의 몇 마디에 술술 자신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성인과 아이를 대하는 데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할게다. (그 친구는 아동 심리학자까지도 동원되어 수사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SOS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분명 그렇게 한다만 실제로도 과연 그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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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어쨌든 &lt;마더&gt;라는 드라마는 참 좋다. 일본 드라마라서 그런지 배경이 참 아름답다. 아름다운 배경위에서는 상처많은 아이를 데리고 떠나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담임교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담임교사(나오)도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였다. 두 버림받은 여자의 이야기(?). 보고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고, 눈물이 절로난다. 맞으면서도 늘 웃고, 밝은 츠구미의 모습과 쓰레기 봉지 안에 쓰러져 있는 츠구미의 모습을 겹쳐 볼 때면 주저 앉아 울고 싶고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오는 엄마라 부르며, 피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 어리지만 성숙한 츠구미의 모습을 보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드라마를 보며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내가 이 드라마 2화만에 엉엉 울어버렸다. 츠구미의 눈물 연기는 압권이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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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드라마지만 이 두사람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시험이라는 압박만 없었어도 더 편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츠구미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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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오늘 두 통의 전화가 이어서 왔다. 전화를 딱 받았는데 서툰 한국말이 들려왔다. 알아듣지 못해 여러번 "네?"하고 외치며 내가 간신히 알아들을 말은 "사장님 죄송해요. 사장님 죄송해요"였다. 내가 떨리는 가슴을 감추며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발 마사지요. 베트남사람."이라며 답을 했다. 나는 더이상 들을 수가 없어 끊었는데,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좀 더 한국말에 익숙한 사람이 건 듯 했다. 내용은 아까 그 여자와 같았다. 잘못 거셨습니다,라는 말을 알아들은 것에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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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전화 받을때는 귀찮게 뭐야, 했는데 끊고나니 갑자기 울컥한 감정이 치솟았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돈과 노동을 떼이고 있구나. 그 사장이라는 녀석은 어떤 짓을 했기에 이 두 여자가 전화를 하며 죄송하다고 외쳐야만 했을까.&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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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이모저모로 참 무거운 한 주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0/1/cover150/893643359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598</link></image></item><item><author>만치</author><category>책을 읽다 문득...</category><title>여자, 책 속에서 답을 찾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chrestomanci/5591953</link><pubDate>Sat, 28 Apr 2012 09: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hrestomanci/559195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42619&TPaperId=559195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1/37/coveroff/890114261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nbsp; (책에서 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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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죽음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온 3년. 달아나는 삶으로는 언니의 죽음이 던진 고통과 슬픔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니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책에서 얻기로 했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nbsp;사람들이 그렇듯 니나 상코비치는 책과 함께 자라났고 '평생 책을 통해 지혜와 구원을 얻고 도피를 해왔다.' 그녀는 1년간 일을 쉬고 대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결심 한다(일요일은 추리소설을 읽는 날이다!). 1년 간의 전업 책읽기에서 그녀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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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nbsp;책 사는데 까다로운 편이다.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서점에서 살펴 보고 정말 마음에 들어야만 사는터라 미리보기만하고서 책을 사는&nbsp;일은 거의 없는데, 이 책만은 목차와 그녀가 택한 한 권의 책때문에 덜컥 주문했다. 그리고 잔뜩 포스트 잇을 붙여 놓은 채로 언제나 옆에 놓아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 눈에 반한 책이라고나 할까.
&nbsp;
이 책의 매력적인 목차(의 일부)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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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의 첫 도서 대출기
&nbsp;&nbsp;&nbsp;&nbsp; 지금도 그 책을 갖고 있다 침실 책장,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물건들 옆에 말이다. 난 그 책이 너무 좋아서, 반납일자가 되었는데도 돌려주지 않았다.
&nbsp;
2장 친구는 떠나도 책은 남아있다
&nbsp;&nbsp;&nbsp;&nbsp;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nbsp;
3장 꼭 한 번 보물같은 순간
&nbsp;&nbsp;&nbsp;&nbsp; 산다는 건 힘들어, 불공평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삶은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아름다움과 기쁨과 사랑과 수용과 황홀의 순간들도 틀림없이 가져다주지.
&nbsp;
5장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 것
&nbsp;&nbsp;&nbsp;&nbsp; 나는 변화무쌍하고 예상불가능하지만, 풍요롭게 경이로운 괴상한 세계에 산다. 난 이 두가지를 모두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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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종이로 슬픔을 흡수하는 법
&nbsp;&nbsp;&nbsp;&nbsp; 기억은 과거가 우리와 항상 함께있도록 보장해준다. 나쁜 순간들만이 아니라 매우 좋았던 순간들도 함께 남아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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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선물 받은 책의 딜레마
&nbsp;&nbsp;&nbsp;&nbsp; 나는 그녀가 권한 책을 바보 같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바보 같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준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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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남의 이야기로 복습하는 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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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의자에 앉아서 세계 여행하기
&nbsp;&nbsp;&nbsp;&nbsp;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회복능력의 대가이자 증거라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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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유부녀의 로맨스 소설 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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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집안일과 책 일기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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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나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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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여름마다 추리소설을 읽어야 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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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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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소설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참&nbsp;좋았던 책이다. 니나 상코비치가 이 책에서 [고슴도치의 우아함]과 인생에서 '아름다움'의 중요성에&nbsp;대해 언급했을 때부터 - 빨강머리 앤 스타일로 말하자면 - 그는 나와 '동족'이 되었다. 그녀는 3장, &lt;꼭 한 번 보물 같은 순간&gt;에서 [고슴도치의 우아함]에 대해, 그리고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 관해 얘기한다.

절망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있다. 장래에 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안다. ... 그런 순간들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계속 유지되어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세상이 친절하고 용서하는&nbsp;곳일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피어나게 한다.&nbsp;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움이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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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1년간의 독서는 삶의 균형을 찾아주고 회복을 가져다 주는 휴식이었다. 그녀는&nbsp;책을 통해&nbsp;"나의 상실과 혼란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두렵고 피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절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느꼈고, 사랑이란 죽음을 넘어서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슬픔에 대한 유일한 답은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배웠다. 
우리가 책에서 얻는 답이 꼭&nbsp;그녀의&nbsp;답과 같을 필요는 없다(사실 그녀는 너무 바른 생활 타입이라 그녀의 답도 심하게 모범 답안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한&nbsp;유일한 불만이다).&nbsp;그리고&nbsp;어떤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도 책을 읽으면서, 또 책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얻고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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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에게 책 얘기를 하는 것, 책을 권해주는 것은 사실 모험이다. 예전에 참 좋아하던&nbsp;친구를 가끔씩 만날 때마다 나는&nbsp; 책 한두권을 선물하곤 했었다. 사실 그 사람이 자주 읽는 책과는 거리가 먼 종류였지만 나는 아마 그 책을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알라딘에서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권해주는 것은 사실 얼마나&nbsp;무모할 수도 있는 일인지. 이 책 9장 &lt;선물 받은 책의 딜레마&gt;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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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건네줄 때, 그런 행동은 그들 영혼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가 좋아하며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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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책을 권할 때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책을 권하는 것은 손을 내미는 것이고, 저편이 손을 잡아주지 않아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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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리기는 가물에 콩 나듯하면서도 내가 알라딘에 남아있는 이유는 맘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 같이 열광할 사람이, 책수다를&nbsp;떨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또 '용감하게' 책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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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는.. 사실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슬픔, 지조, 책임감, 돈, 종교, 만취에 대한 걱정, 섹스, 세탁물, 그 외 온갖 것을 대하는 우리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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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려주기의 공식이 가진 양면,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두려움을 경험한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과&nbsp;진실과 아름다움과 지혜와 죽음으로부터의 위안을 공유하는 우리는 얼마나 용감한가! 그 우정의 끈이 책이 주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게 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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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알라디너들에게 내미는 손이자, 올 봄의&nbsp;추천 도서라 할 수 있겠다. 
음.. 모든 분들이 나와 책 취향이 비슷할 리가 없으니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할 대상이라면,
1. 책을 좋아함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
2. [서재 결혼시키기]를 재밌게 읽은 사람
3. 요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책은 왜 읽는지 회의를 가지게 된 사람<BR>4. 만치가 좋다는 책이라면 괜히 혹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등이 되시겠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81/37/cover150/890114261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42619</link></image></item><item><author>여의</author><category>자기 앞의 생</category><title>죄와 벌, 백치 - 사랑과 구원이라는 테마</title><link>http://blog.aladin.co.kr/novelpia/5588084</link><pubDate>Thu, 26 Apr 2012 03: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novelpia/558808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296&TPaperId=55880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8/22/coveroff/89329092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288&TPaperId=55880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8/22/coveroff/89329092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164&TPaperId=55880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9/13/coveroff/89329091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156&TPaperId=55880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9/13/coveroff/893290915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소냐 언니를 사랑하니?"<br>"저는 언니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요!"<br>뽈랴는 이상스러울 만치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br>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진지해졌다.<br>"나도 사랑해 주겠니?<br>…뽈랴, 나는 로지온이라고 한단다. 언제든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다오.<br>당신의 종인 로지온도 용서하소서라고. 더 이상은 필요 없어."<br>"제가 평생토록 아저씨를 위해 기도할게요." 『죄와 벌』 중사랑과 구원은 양립 가능한 개념일까. 나는 『죄와 벌』과 『백치』를 읽으면서 내내 기독교적 구원과 사랑이라는 테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구원'이라는 소실점을 향한 집중만큼이나 여러 인물과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의미들도 흥미로웠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백치』에서 연민이야말로 모든 인간 감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법칙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민과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 또한 사랑과 구원의 관계는 어떤 식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br><br>『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는 사랑받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의 주위에는 그의 기독교적 부활을 믿는 소냐와 무조건적인 애정을 베풀어주는 어머니와 두냐, 열렬하지만 이성적인 우정을 지니고 있는 라주미힌, 그의 가능성을 드높게 여기는 뽀르삐리가 있다. '위대한 권리'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범죄자 라스꼴리니꼬프의 양심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었다.<br><br>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만약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br><br>범죄의 근원이 자신에 대한 존재증명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라스꼴리니꼬프를 제일 처음 움직인 것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었다. 다만 그는 세상의 부조리가 하나의 악을 제거하는 일을 정당화해준다고 믿었을 따름이다. 그는 관념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내면의 인간적 감정이 열렬히 끓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당포 노파와 그의 동생을 살해한 잔인성의 이면에는 가진 것을 서슴없이 털어서 남김없이 베푸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냐는 뭇사람을 연민하면서 바로 그 자신은 연민하지 못했던 까닭 때문에 그를 '불행한 사람'이라 부른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그 이름이 상징하고 있듯 내적 분열형 인물이다. 그는 소냐를 통해 끊임없이 구원에 대해 기대하지만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소냐는 그에게 있어 가차없는 판결,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소냐는 그의 관념이 궁극적으로 헛되었다는 점을 자신의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절대로 언제까지나, 그 어느 곳에서도 그를 버리지 않고 그를 따라가는 존재이다. 소냐는 유형 생활을 하는 그를 신앙으로 괴롭히거나 복음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즉 그를 끝까지 믿으며 그의 부활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의심치 않는 가장 큰 사랑을 베푸는 존재인 것이다.<br><br>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불현듯 무언가 그를 사로잡아서 그녀의 발에 몸을 던지게 한 것 같았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안았다. …그녀는 이해했다. 그녀는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가 그녀를 무한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그 순간에 도래했다는 것을….<br><br>라스꼴리니꼬프는 드디어 '갱생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의 갱생에는 그 자신의 노력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애정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악마적 분신인 스비드리가일로프가 파멸해가는 모습을 보면 훨씬 도식적으로 보인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서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인간적 회의를 제거하고 니힐리스트적 범죄 행각을 덧붙인 존재이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양심적 회의가 눈곱만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구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구원'은 기독교적 갱생이 아니라 다만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하는 일이며, 내키는 대로의 자선으로 발 밑에 꿇어앉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이다. 더구나 그는 두냐의 고귀한 성품을 파악하여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구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 한다.<br><br>당신 누이는 마침내 나를 가엾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사람이 가여워진 거지요. 아가씨의 마음에 가엾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구원해 주고 싶어지니까요. 이성을 되찾게 해주고, 재기시키고, 더 고귀한 목적을 이루라고 이끌어 주고, 새로운 삶과 활동을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겁니다.<br><br>그러나 오빠의 범죄를 빌미로 한 협박은 그녀를 절대 타협할 수 없게 만들며, 자신의 열렬한 사랑조차 추악한 정념의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한다. 그에게 권총을 들이댄 순간, 이제까지의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던 두냐는 그가 끝내 얻을 수 없었던 구원에 대한 표상이다. 두냐에게 결코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심장은 아프게 죄어든다.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 아무도 없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죽음 외에는 어떤 선택도 남아 있지 않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죄를 지었으나 이를 괴로워하는 '벌'을 받고 갱생하였으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끝내 회개할 자격조차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br><br>『백치』에서 구원의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백치』에서도 『죄와 벌』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랑의 양상이 드러난다. 그러나 나스따시야를 사이에 둔 미쉬낀 공작과 로고진, 공작을 사이에 둔 나스따시야와 아글라야의 구도를 단선적으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라스꼴리니꼬프가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은 진심어린 사랑과는 달리 『백치』에 등장하는 사랑은 하나 같이 왜곡되어 있다.<br>로고진은 거상의 아들이자 거세파 교도의 후예이며, 천박한 니힐리스트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정념의 소유자는 단연코 로고진이다. 나스따시야를 향한 로고진의 집념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러 사건 속에서 쉼 없이 작용한다. 그런데 로고진이 매료되어 있는 이단 종교처럼, 나스따시야를 향한 사랑은 광신적인 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은 나스따시야에 대한 믿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향한 소유욕과 걷잡을 수 없는 열정에서 비롯된다. 로고진은 돈으로 그녀를 사거나 그녀의 원망(願望)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형태로 사랑을 증명하는 수 밖에 없다.<br><br>로고진과 나스따시야는 서로 수모를 주고 받으며 고통을 배가시키는 관계이다.나스따시야는 그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로고진은 자신의 고통과 수치심을 대변해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로고진과 함께 있는 한 그녀는 천박하고 속물적인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녀는 그를 한껏 조롱하고 무시하고 그에게서 끊임없이 도망치는 방식으로 사랑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로고진은 나스따시야를 여왕처럼 고귀하게 대접하려 하지만, 그녀는 여왕과 동시에 학대 받는 하녀 역할을 자청한다. 로고진은 그가 갖는 가공할 정열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는 고작 절망적인 경멸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그는 그녀가 얼마나 나를 깔보았으면, 원한조차 가지지 않을까라고 토로한다. 용서해주지 않고 결혼해주지 않으면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라는 로고진의 서슬 퍼런 협박에도 나스따시야는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며 그를 조소할 따름이다.<br><br>그렇다면 왜 나스따시야는 세상을 바꿀 만한 미모를 지니고도 세상을 피해 암흑 속으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는가. 나스따시야는 어린 시절 대부호이자 호색한인 또쯔끼의 눈에 띄어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또쯔끼는 십대인 그녀를 농락하고도 귀족적인 속물주의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려 하는 자다. 뛰어난 지성과 더불어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니힐리즘을 지니고 독단적인 처사를 일삼는 그녀는 또쯔끼에게 점차 위협적인 대상이 된다. 심지어 또쯔끼는 그녀를 두려워하여 그녀에게 부유한 생활을 보장하며 환심을 사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물욕에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예빤친 장군의 장녀와 결혼하려던 또쯔끼는 나스따시야가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지참금을 주어 서둘러 가브릴라와 그녀를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물욕도, 애정에 대한 욕구도 없는 나스따시야는 로고진과 가브릴라에 의해 자신의 몸값이 흥정되는 상황을 가학적인 쾌감으로 지켜보기까지 한다.<br><br>그런데 이때 등장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현현'이며 '가난한 기사', '백치'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미쉬낀 공작이다. 공작은 한 순간에 나스따시야의 절망적인 영혼을 알아보았으며, 그녀 에게 크나큰 연민을 느낀다. 나스따시야 역시 이 우스꽝스러운 '백치'의 등장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의 순진무구한 영혼을 꿰뚫어본다. 그녀는 공작이 일생에서 최초로 마음을 맡길 만한,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 단언한다. 그러면서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달려 있는 유희적인 인생의 결정을 공작에게 위임한다. 그런데 공작은 광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br><br>나스따시야, 나는 로고진의 여자가 아닌 성스런 당신을 데려가는거요.…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리고 본 것도 없어요.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내가 당신에게가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영광을 베풀어주는 겁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은 고통을 받아 왔고 그런 지옥 속에서도 순결한 몸으로 빠져나왔어요. 그건 대단히 많은 걸 의미합니다. …나스따시야, 나는…당신을…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누구도 당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당신의 삶이 완전히 파멸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무엇 때문에 당신은 그런 사실에 연연해 합니까? …당신에게는 많은 배려가 필요합니다. 내가 당신을 돌봐드리겠어요. 나는 아까 당신의 얼굴을 보고 당신이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나는 당신을 평생 존경하며 살겠습니다.<br><br>공작의 이러한 선언은 무엇보다도 나스따시야의 영혼에 깊은 각인을 남긴다. 그러나 나스따시야는 공작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나스따시야는 공작이 자신과 결혼하면 인생을 파멸시켰다는 원망을 하리라고 장담하며, 아무 것도 믿지 않으니 맹세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작이야말로 그녀의 몽상 속에서 언제나 꿈꿔왔던, 그녀를 존중하며 진정으로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뿐, 나스따시야는 공작을 외면하고 로고진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난다. 모스끄바로 간 나스따시야는 막상 로고진과 결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자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그에게서 도망쳐 공작에게 간다. 그러나 그녀는 로고진보다 공작을 더욱 두려워하여 공작에게서도 역시 도망쳐버리고 만다.<br><br>공작은 수선스런 일련의 사건 뒤에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오면서 예빤친 장군의 막내딸인 아글라야에게 편지를 쓴다. 나스따시야에 대한 공작의 사랑 고백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글라야와 공작과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br><br>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분, 가장 필요한 분은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입니다.<br><br>나스따시야의 경우, 공작은 자신이 그녀를 돌볼 책임이 있으며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아글라야의 경우는 공작이 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아글라야와 나스따시야는 동전의 양면처럼 매우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드높은 자존심과 남다른 지성을 가졌다는 점, 천방지축인 '어린아이'와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녔다는 점,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을 지녔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아글라야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부모와 형제의 틈 속에서 곱게 자란 '귀족 아가씨'지만, 나스따시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리의 여자'였다. 이 점이 결정적으로 나스따시야와 아글라야를 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스따시야에게 있어 공작이 '그리스도'라면, 아글라야에게는 '가난한 기사'다.<br><br>그 남자는 한번 이상을 세우면 그것을 믿고, 또 그 이상을 믿게 되면 평생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만한 사람이예요. …자기의 숙녀가 누구이든 또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이 가난한 기사는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한 그 기사는 자기가 그녀를 택했다는 것과 그녀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믿어 영원히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에 만족한다는 거지요. …나는 처음엔 이해도 못 하면서 웃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가난한 기사를 사랑해요. 무엇보다도 그의 공적을 찬양해요.<br><br>가난한 기사, 라는 칭호에는 이미 아글라야가 연적으로서 나스따시야를 의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아글라야는 공작이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고상하고, 훌륭하고, 선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자부심이 없음을 심하게 질타하며, 그와는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공작이 그녀에게 청혼할 의사가 없었다고 밝히는데, 이것은 그녀를 향한 존경심 때문이었지 결코 그녀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아글라야가 감히 '자신과 같은 남자'를 사랑해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아글라야는 공작의 이러한 태도가 나스따시야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이 무렵의 공작에게 나스따시야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지,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음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아글라야는 나스따시야가 그에게 그렇게 했듯, 재산이나 직업 등의 속물적 조건들을 가늠하며 자신에게 청혼할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공작은 그가 '필요로 하는' 아글라야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거의 환희에 가득차서 받아들인다. 그는 이번에는 아글라야를 사랑한다는, 열정에 가득찬 고백을 한다. 그러나 아글라야는 고슴도치를 선물이랍시고 보내는 등 공작을 조롱하며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아글라야는 공작의 마음 속에 크나큰 연민의 대상인 나스따시야가 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에는 나스따시야의 심술궂음을 흉내냄으로서 공작의 연민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당신은 나의 거친 언사를 나무라지 않을 건가요. 언젠가…먼 훗날에라도." 라고 묻는 아글라야는 이미 공작을 향한 솔직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br><br>공작은 로고진을 찾아가 나스따시야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해명하려 한다. 이제까지 로고진과 나스따시야의 결혼을 반대하던 그의 입장과는 조금 모순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로고진은 절망에 가득차서 나스따시야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공작일 뿐이며, 그녀가 아글라야에게 수도 없이 편지를 했다고 전해준다. 나스따시야는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존재인 공작―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믿을 수 있는―이 아글라야와 결혼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오직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이는 공작이 아글라야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복하냐고 물었던 것과도 연결된다. 사랑하는 사람―그들에게 있어 상대의 행복이란 자신의 불행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나스따시야가 마지막이라며 공작을 찾아와 '당신은 행복해? 내게 한 마디만 해 줘 봐. 당신 지금 행복해? 오늘, 지금 말야?' 라고 묻는 장면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글라야는 다만 나스따시야를 옹호하는 공작의 태도를 더 이상 인정할 수 없을 뿐이었다.<br><br>그 불행한 여인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가장 죄가 많다고 깊이 믿고 있어요.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마세요. …내가 그와 같은 암흑을 그녀에게서 몰아내려고 시도했을 때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어요. …그 여인이 내게서 떠난 이유를 아시나요? 그녀가 저급한 여인이라는 것을 나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예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의 수치를 의식하는 배경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무서운 쾌감이 스며 있을 거예요. …나의 청혼에 대해 그녀는 누구에게도 오만한 연민이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만큼이나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기 따위는 거절한다고 선언했어요.<br><br>결국 아글라야는 공작과 함께 나스따시야를 찾아간다. 그녀의 긍지는 자신의 눈 앞에서 공작이 나스따시야를 외면하는 모습을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아글라야는 나스따시야에게 당신은 다만 자신의 수치를 사랑하고, 자기가 창피를 당하며 끊임없이 모욕에 시달리고 있다는 비뚤어진 생각 밖에 사랑할 줄 몰라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나스따시야가 공작과 자기 사이에 끼여들 아무런 권리도 없음을 주장하며, 악의적으로 나스따시야의 타락을 비난한다. 급기야 공작은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해야 하는 여자 사이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최대의 위기에 몰린다.<br><br>"이런 일이 결국 벌이지고 말았군요! 이 사람은…몹시 불행한 여자잖아요!"<br><br>아글라야는 동요하는 공작의 모습을 한순간도 견뎌 낼 수 없었다. 공작은 결국 나스따시야를 선택했다. 공작은 그리스도로 남게 된 것이다. 나스따시야는 공작과 결혼하기를 희망하지만 결국 그녀는 공작에게서 또다시 도망친다. 결혼식을 한 시간 앞두고 그녀는 군중 속에 있던 로고진에게 소리친다.<br><br>"살려 줘! 날 데려가! 어디든 원하는 대로, 지금 당장에!"<br><br>왜 나스따시야는 외롭고 긴 줄다리기 끝에 얻게 된 공작의 사랑을 또다시 길바닥에 내던져버릴 수 밖에 없던 것인가. 더구나 그녀는 로고진에게로 가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죽음을 예상하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br><br>나스따시야의 세상이란 협잡꾼들과 난봉꾼들이 드글거리는 도박판과도 같았으며, 그녀의 삶도 바로 도박과 마찬가지였다. 아글라야가 일갈했듯이 나스따시야에게 있어 증오하는 대상이 없는 삶이란 수치스러움을 안고 사는 삶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공작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녀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의미다. 나스따시야에게는 육체의 죽음이 영혼의 죽음보다 덜 괴로웠던 것일까. '누구든 죄가 없으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녀는 단호하게 뿌리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으며 동시에 구차한 구원을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는 극단적인 니힐리즘 때문인 것이다.<br><br>『백치』는 『죄와 벌』과는 달리 그 누구도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지 못한, 어찌 보면 매우 비관적인 작품이다. 미쉬낀 공작은 진정한 '가난한 기사'도, '그리스도'도 되지 못했으며 결국 처음의 백치 상태로 돌아갔을 따름이다. 그는 사랑하는 일도, 사랑받는 일에서도 실패하였으며, 어쩌면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연민과 사랑을 혼동하는 공작, 사랑을 뛰어넘는 불온한 증오를 지닌 로고진, 질투심에 사로잡혀 사랑을 농락하는 아글라야, 불행한 운명을 조롱하며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간 나스따시야는 모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에게 평생토록 기도해주겠다는 꼴랴의 모습은 궁극적인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의미심장한 암시이다. 물론 미쉬낀 공작의 연민은 꼴랴 못지 않은 순도 높은 믿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실패하였는데 그 까닭은 의심과 증오, 불온한 열정이 지배하는 니힐리즘적 풍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여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다리를 놓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백치)가 홀바인의 그림처럼 사실적인 패배자로 남아 다시 죽음(無)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고통스러운 시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br><br>그러나 사랑만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의 화신인 라스꼴리니꼬프도 끝내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정신이 아니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99/13/cover150/89329091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156</link></image></item><item><author>단발머리</author><category>2012년</category><title>당신의 한 마디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영원히 입을 다물겠습니다. </title><link>http://blog.aladin.co.kr/798187174/5582366</link><pubDate>Mon, 23 Apr 2012 1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98187174/55823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102&TPaperId=55823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2/40/coveroff/89374611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99&TPaperId=55823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2/40/coveroff/89374610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55823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off/89374608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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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혼의 계절, 청첩장의 계절이 왔다. 얼마 전, 연예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호텔 예식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만만찮은, 정확히는 엄청난 액수의 결혼 예식 비용이 회자되더니, 요즘은 전지현의 결혼식이 단연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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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런 드레스 입어봤으면 하는 소망,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아 달라. 여자에게 웨딩드레스는 결혼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고, 이미 결혼은 했지만, 예쁜 드레스 또 입고 싶은 맘 매우 간절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결혼의 전제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물론, 요즘 결혼 당사자간의 애정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더 중시하는 풍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혼의 전제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800년대의 영국은 결혼이 성사될 때에, 조건이, 그 중에서도 경제적 조건이 가장 중시되던 시대였다. 형제간에 비교적 동등하게 재산이 분배되던 대륙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장남에게 아버지의 재산 대부분이 상속되었다. 차남들은 수입이 안정적인 목사나 군인이 되는 것이 상례였다. (‘오만과 편견’, 옮긴이의 말, 535쪽) 
여자들은?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딸들만 주르르 있는 집안의 경우, 인척 중 남자가 재산을 상속받는데, 이것이 ‘한정상속’이다. 즉, 아버지 사후, 인척이 집에서 나가달라 요청하면, 그 딸들은 눈 번히 뜨고,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여성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오직 ‘결혼’ 뿐이다. 늦게까지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는 오빠나 남동생, 이모부나 고모부의 도움으로 생활하거나, 하녀에 다름없는 가정 교사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낭만적 사랑’이 존재할 이유도, 자리도 없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도 어렸을 때에는 ‘예쁘고, 활달한 모습’으로 사교계에 진출하여, 결혼하기 위해, 누군가의 청혼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인이 스무살 되던 해, 청혼하리라 생각했던 톰 르프로이가 제인보다 재산이나 배경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랬던 남자 쪽 집안의 방해로 청혼을 포기하자, 제인은 크게 상심한다. 
이후, 제인 오스틴이 27살 때, 친구의 오빠로서 많은 재산의 상속자인 해리스 비그위더의 청혼을 받아 결혼을 결심하지만 매력이나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그와는 결혼할 수 없었기에, 그 다음날 아침 청혼 수락을 번복한다. 그녀는 사랑없는 결혼을 할 수 없었고,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했다. 그녀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제인 오스틴의 삶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보다 더 현대적이라고 여겨진다. 결혼을 해야만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막이 될 가정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을 기다렸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제인 스스로도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했을만큼, 이 소설은 밝고 명랑하다. 전체적으로는 둘째딸 엘리자베스가 전해주는 생기와 발랄함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가 영화를 보게 됐는데, 엘리자베스역을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 때문에 더 행복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져 더 좋았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랑과 결혼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네버필드 파크에 외부인이 입주한다는 소문에 베넷 가족은 모두 큰 기대를 품는다. 새로 이사온 이웃은 미스터 빙리, 그의 누이 그리고 미스터 다아시. 연회가 열리고, 젊은이들은 유쾌한 춤을 추고, 이야기도 나눈다. 이 때 중요하다. 의례적인 인사와 대화, 눈빛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야 한다. 그가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녀가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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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그녀의 감정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 남자는 청혼을 한다. 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게 00과 얘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 단둘이요.” 
이 얘기만 들어도 사람들은 모두 안다. 아, 이 남자가 이 여자에게 청혼을 하려고 하는구나. 여자는 청혼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이것은 베넷 가의 첫째딸 베넷 양의 경우다. 
여기, 조금 더 복잡한 사례가 있다. 말이 적고, 새로운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미스터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마음에 들지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용기를 내어 마차에 오르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미스터 다아시의 손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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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절부절, 어찌할 바 모르던 미스터 다아시는 자신의 사랑을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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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다아시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 뿐 아니라, 자신이 그녀에게 청혼하기 전,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자세히 말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더욱 더 화나게 만든다. 
왜 저를 불쾌하게 하고 저에게 모욕이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자신의 이성에 반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인격까지 거슬러 가면서 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거죠? 
엘리자베스도, 미스터 다아시도 알고 있듯이, 그녀와 언니 제인을 제외한 베넷 가족의 품위없는 행동은 미스터 다아시로 하여금 청혼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더라도 직접 그 얘기를 들은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히 청혼을 거절한다. 
자신의 청혼이 받아들여지리라고 200% 확신하고 있던 다아시는 당황한 정도가 아니라,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모른다. 나보다 낮은 신분의 네가, 지참금도 가져오지 못하는 처지의 네가, 감히 내 청혼을 거절해? 네 정도가 감히? 화가 난 다아시는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버린다. 　
제가 당신 집안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으십니까? 저보다 신분이 확실하게 낮은 사람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고 춤이라도 출 줄 아셨나요? (273쪽)　
불 났는데, 기름 확 부어버리고 있다. 미스터 다아시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기는 구애를 하고 있는 거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당신도 나를 사랑해 달라고, 내 사랑에 응답해 달라고, 내 손을 잡아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뭐야?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이미 당신의 태도를 보고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미스터 다아시 제정신이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엘리자베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세상 어떤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당신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다음날,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 미스터 다아시의 장문의 편지를 읽은 후,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혐오한 도덕적 결점 대부분이 미스터 다아시가 아니라, 그녀가 호감을 가지고 대했던 위컴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우연히 다아시의 저택에 가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전에 없던 친절과 호의에 미스터 다아시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아름답고 웅장한 저택을 본 후, 다아시에 대한 호감이 급증!!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으나, 소설에서는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켜주는 모습에서 엘리자베스가 크게 감동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엘리자베스의 철없는 동생 리디아는 위컴과 함께 다른 주로 도망을 가 버려, 베넷 가족에게 큰 슬픔과 낙담을 안겨주는데, 이 일에 미스터 다아시가 나서서 큰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미스터 다아시에게 고마움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저쪽은 지난번 청혼이 거절된 것에 깊이 상처를 받았을테고, 똑같은 사람에게 두 번 청혼하는 바보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을테니, 이제 애가 타는 쪽은 엘리자베스 쪽이다. 
미스터 빙리와 함께 네버필드로 돌아온 미스터 다아시에게 리디아의 일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엘리자베스. 그녀에게 미스터 다아시는 의외의 말을 한다. 
그렇게 한 데에는 다른 동기도 있었습니다만,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리려는 소망이 거기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걸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족은 제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들을 무척 존경은 합니다만, 저는 당신만을 생각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너무나 당황하여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미스터 다아시는 이렇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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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그러운 분이니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겠지요. 당신의 감정이 지난 4월 그대로라면 당장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애정과 소망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당신의 한마디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구히 입을 다물겠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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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지금은 그가 한 말을 고맙고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이제는 행복해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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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에도, 5년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게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내게 최고의 책은 언제나 “제인 에어”다. 비슷한 시대적 상황과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제인 에어”와 이제 막 만난 “오만과 편견”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음산한 분위기에 장엄한 톤의 “제인 에어”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밝은 햇살 아래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오만과 편견”도 좋아하게 됐다. 어머나, 너무 늦었나? 
마지막으로, 영화 감상에 큰 도움 준 여자주인공&nbsp;사진 하나 올린다. 아, 이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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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150/893746088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공</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인간을 잠식하는 중독 증후군, 안드로이드</title><link>http://blog.aladin.co.kr/746104135/5584261</link><pubDate>Tue, 24 Apr 2012 0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46104135/55842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838216&TPaperId=55842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23/12/coveroff/89938382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3662&TPaperId=55842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49/71/coveroff/893783366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792155&TPaperId=55842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38/62/coveroff/899479215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0468&TPaperId=55842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44/46/coveroff/895276046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303127&TPaperId=55842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0/47/coveroff/8960303127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746104135/5584261'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nbsp;요즘 악성코드니 바이러스니 하는 것 때문에 정말 불필요한 시간들을 허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몇 일 전 불청객으로 고생을 했건만 또 같은 현상으로 애를 먹고 있다. 컴퓨터의 진화 과정을 나름대로 지켜본 사람으로 간과할 없는 것이 또한 바이러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발전이라는 메커니즘에는 그 반대급부인 부정적 파생품이 꼭 따라다닌다. 트로이 목마라는 바이러스가 전국을 동시에 강타한 적이 있었다. 트로이 목마로 피해를 본 것은 트로이만이 아니었다. 국내의 컴퓨터 유저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복구비용으로 수 십 만원을 들였지만 파일들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사라진 업무자료들을 수작업하여 입력하는 엄청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그 상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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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걸맞는 바이러스도 만들어졌다. 컴퓨터가 진화하면 덩달아 바이러스도 진화했다. 더욱 강력한 방화벽및 항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또 그 방화벽이나 안티바이러스를 여지없이 관통하는 보다 강력한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마치 서로 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도 같은 이론이 이곳에서도 작동하는 모양이다.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누가 이기나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아... 유용한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그 꼴을 못 보겠다는 듯이 반대급부의 그 무엇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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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컴의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질병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치료법을 개발하고 나면 또 다른 알 수없는 강력한 질병이 인간을 괴롭힌다. 수퍼바이러스라는 녀석이 요즘 조용한데, 얼마 전까지 유럽을 공포의 도기니로 몰아 넣은 녀석이다. 흔히 약이 없는 바이러스가 수퍼바이러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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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못지 않은 중독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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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컴 바이러스나 인간의 질병인자인 수퍼바이러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강국을 목표로 한다고 공표한 적이 있다. 전국에 광 케이블을 깔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를 각 가정으로 연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업들은 그 목표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고 초고속망을 이루어 냈다. 초고속이라는 엄청난 속도 덕분에 PC방이 생기고 온라인 게임의 장이 마련되었다. 매체에서는 프로 게이머들의 대결 이벤트를 마련하는가하면 방송으로 직접 내보내기도 했다. 한 때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공언하던 학생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은 온라인 게임의 천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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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 망으로의 진화는&nbsp;주변에 PC방을 생성시키는&nbsp;결정적 요인되었다. 하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이 음침한 피시방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법제도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린이와 성인들이 옆자리에서 함께 게임에 몰두했다. 법제도는 늘 이런식이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불야불야 대책을 강구한다는....그 결과 어른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어린 고사리 같은 초등학생들의 폐부 속으로 여과없이 들어갔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때는 이미 상당수의 피해 아동들이 양산된 후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청소년들은&nbsp;서서히 인터넷 증후군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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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여하튼 이렇게 대한민국은 IT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의 IT 산업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우리들의 청소년들을 희생시켜야 했다. 드디어 인터넷 중독현상을 보이는 젊은이들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마치 컴퓨터가 진화할수록 유저들에게 침투하는 바이러스처럼 사회에 쟁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매체에서는 인터넷 중독현상을 파악하는 여러 가지 지표들을 방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의 첨단기기로도 검색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수퍼 바이러스가 우리들의 청소년들은 감염시켜가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무엇인가가 새로이 진화를 한 후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nbsp;반대급부, 바로 그것은 아닐까...&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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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하는 인터넷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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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TV에서는 인터넷 중독현상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팁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신문 혹은 TV의 뉴스가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다가 쓰러져 사망하는 기사들을 내보낼 정도로 그 심각한 폐해가 드러났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중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가 큰 화제 거리였다. 각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중독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터넷 채팅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났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은 가십거리였다. 대한민국이 인터넷을 타고 전파되는 바이러스에 단단히 결려들어 아파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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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nbsp;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앓고있는데도 불구하고&nbsp;요즘은 인터넷 중독 현상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알라딘의 검색창에서 검색되는 관련도서의 수는 당면한 사회적 현상에 비한다면 턱없이 조명받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인터넷 중독이 사라져서가 절대 아니다.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지만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탓이다. 사회는 인터넷 중독현상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무뎌진 것일까... 우리 사회는 어쩌면 인터넷 중독을 우리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흔하다보니 이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더더욱 심각한 현상이 아니던가...&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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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증후군이 주목받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이 최근 부상했는데,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쉽게 말해 안드로이드 폰 덕분에 인터넷 증후군은 뒤로 밀려난 이슈가 된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 중독은 기사나 보도거리가 되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분명 인터넷 중독으로 점점 더 병들어가고 있지만 매체는 한물간 인터넷 중독을 기사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매체 자체가 뒤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쩍 이야긴데...하고 말이다. 인터넷 중독현상은 어쩌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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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강자, 스마트폰 증후군,&nbsp;그리고 소외&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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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증후군을 밀쳐내고 등극한 강력한 증후군은 바로 스마트폰 증후군이다. 어쩌면 안드로이드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근접한 표혀일지도 모르겠다. 버스나 전철을 타보면 이 현상이 그 얼마나 생각해볼 만한 것인지 감지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신문을 읽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미처 신문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옆 사람의 신문을 슬쩍 넘겨보는 장면이나 옆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피로에 지쳐 잠든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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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의 지하철 모습은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 같은 친구끼리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어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기회가 거의 없다. 스마트폰으로 그 무엇인가를 하느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단절된 것이다. 이는 지하철에서 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가정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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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TV가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TV를 보느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TV는 상대가 되지 않는 가족 단절 요인이 나타났으니 바로 안드로이드의 출현이다. 저마다 한 대씩 스마트폰으로 또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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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TV를 경계하는 도서가 있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 께서는 한 번 쯤 필독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전문가는 TV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그리고 부모로서의 생각과 함께 정리를 해본다면 아마도 더 없이 좋은 결론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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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카오톡이 되려 가족 간의 대화를 여는 기회가 되어주었노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nbsp; 그동안 그 얼마나 가족간의 유대감을 상실하고 있었으면 카카오톡으로 그 연대감을 회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또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과연 그러한 경우가 몇이나 될까... 자못 의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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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은 이제 자신의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을 나타내는 그 안드로이드 말이다. 눈앞에 없는 그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기위해서 정작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안드로이드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이다. 그것은 안드로이드 증후군이 아니라 인간과의 끈임 없는 연대감을 주는 새로운 방식에 불과할 뿐이고 그 방식이 새로워졌으니 그에 적응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진화의 능력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나, 이는&nbsp;안드로이드를 통해 그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신을 단절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소외와 단절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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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만약 어느 순간, 나에게 안드로이드 폰이 사라지는 그 순간...나는 그 누구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안드로이드 없이도 그 공허감이나 고립감, 그 철저한 단절로 인한 인간 소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끝없는 절망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존재이기에 혼자라는 느낌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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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심각성은 개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단절은 결국 사회로 확산되게 마련이다. 점점 사회는 건조해지고 일시적인 관계를 형성해갈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 이는 지속적인 인간관계의 핵심이 신뢰라는 덕목을 망각하게 할 수가 있다. 순간적으로 불쾌해진 상대방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훨씬 미약해질 수 밖에 없다. 연락을 안 하면 그만이니까... 서로 부딪히고 몸으로 충돌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는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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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적 불신 현상이 확산 될 때, 안드로이드 내에서의 신뢰감은 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nbsp;일종의 악순환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것이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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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nbsp;스마트폰 없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있다. 꿈도 꾸지 말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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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딱히 TV를 열심히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TV는 늘 켜져 있는 것이다. TV가 꺼져있으면 왠지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냥 켜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 해당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TV증후군을 가진 분이다. 자신의 고립감, 단절의식을 망각하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TV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폰이 없으면 매우 불안해지다. 이 강도는 TV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안드로이드 폰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이고 TV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둘 수 있으며 훨씬 그 용도가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타자와 연결시켜주는 필수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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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고립감을 위로받는 경우보다&nbsp;안드로이드에 더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의존도가 클 수록 단절의식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 초조함과 불안감, 철저한 단절의식을 느껴보신 분이라면 스마트폰 증후군을 가진 분이다. 물론 이는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화가 더 난다거나, 초초 및 불안, 손에 땀이 나는 분이라면 심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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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스마트폰 증후군에 대한 매체의 반응은 크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증상이 커갈 수록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것이고 그 탈출 방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제작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시기적으로 늦어버린 다는 것이다. 환자의 병증이 이미 깊어진 후에나 제대로 된 인식이 형성되고 치료제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혼을 잠식당하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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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문명이 진화할수록 그 편익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 놓아야 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내가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은 걸어가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이 가있고,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이 가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동차가 오는 것도 모른다. 양재천을 걷다가 자전거를 혼자 타고 가던 여성이 사고가 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렇게도 혼자서도 사고가 나네 싶었다. 거리가 가까워 알게된 것인데 그녀는 양재천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스마트폰을 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넘어진 상태에서 아픈 다리를 손으로 만지면서도 눈은 스마트폰에 가있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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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거리에서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은 마치 무슨 바이러스에 걸려있는 듯 보인다. 컴바이러스는 알약으로 잡으면 그만이고, 컴을 영 못쓰게 되었으면 다시 사면 그만이다. 컴은 단순한 도구이자 기계가 아니던가... 그러나 영혼을 잠식당한 인간 사회는 치료할 방법이 없다. 통신사에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완전한 단절과 고립을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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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54/85/cover150/899230949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0949X</link></image></item><item><author>readersu</author><category>readersu book</category><title>깡패단의 방문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비슷하면서 다른!</title><link>http://blog.aladin.co.kr/readersu/5577946</link><pubDate>Fri, 20 Apr 2012 1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readersu/557794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08381&TPaperId=55779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3/28/coveroff/89637083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786&TPaperId=55779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2/46/coveroff/895461778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작년에 문학상을 받은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2011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과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깡패단의 방문》을 먼저 읽었는데 분량이 만만찮았다. 또 공간과 시간이 비규칙적이어서 가끔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해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문학상치고는 꽤나 얇은데다 초반 몰입도가 높아 잡자마자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하길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과 같이 책 대 책으로 엮어보면 좋겠다, 했더랬다. 두 권의 책, 비슷하면서 다르다. 한데 역시 문학상을 받을만한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제니퍼 이건의 서사적인 이야기도, 줄리언 반스, 역량 있는 그의 글도 너무나 훌륭했다. 이런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던 독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nbsp;&nbsp;&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시간, 삶, 기억. 두 권의 책이 가진 공통점이다. 제니퍼 이건의 책은 제목에서부터 '시간'을 말한다. 깡패=시간, 어떻게 이런 공식이? 일단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또 두 권의 책에는 개개인의 '삶'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삶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삶을 지배하는 '기억'들이다. 좋거나 나쁜 추억, 그리고 잊었거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하나둘 씩 터져 나온다. 과거,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나의 삶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두 권의 책을 감히 비교하지는 못한다. 그저 내 식대로 일부분들만 주절거린다. 삶에 관해. 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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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시점도 다르다. 또한 공간과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처음엔 뭐지? 헷갈린다. 하지만 매 장이 독립된 이야기처럼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탄탄하다. 모두 열세 장으로 된 이야기의 중심은 레이블 대표 베니와 그의 비서 사샤의 인간관계로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부조리나 깨달음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잘 살아온 것일까, 혹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와 같은 회환과 희망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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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세월을 보낸 분들은 알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청춘에겐 얼마나 더디고,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청춘일 때는 이 시간만 지나면 뭐든지 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삶이 존재하리라곤 그땐 생각을 못한다. 또한 언제나 그 청춘일 것만 같은 삶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은, 그저 그때보다 조금 나은 여유만 생겨날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끼게 되는 씁쓸한 느낌은 《깡패단의 방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마치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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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토니의 삶은 어떤가? 잘 살아온 것일까? 토니는 그렇다고 처음엔 여긴다. 비록 이혼을 한 상태지만 딸과의 교류도 있고 헤어진 아내와도 친구로서 지속적으로 만남을 유지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있어 여유롭진 않지만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과거를 돌아볼 사건(!)이 터진다. 지나가버린 시간, 이젠 까마득하여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때의 일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토니에겐 과거를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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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왔다고 반추하는 토니가 알게 되는 사실들은 우리가 그동안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 위주로 왜곡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자신의 기억이 왜곡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으면서도 그는 계속 의문과 질문을 던지며 변명 같은 말로 ‘삶의 본연’을 예감하지 못하지만 과거 자신이 던진 말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그 말로 인해 두 사람의 미래가 무시무시한 결말로 치닫게 되어버린 일을 알게 된 후 그가 가지는 삶의 무게는 과연 평범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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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은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아오는 동안 잘못한 일은 무엇인가? 적어도 그걸 생각할 정도의 시간은 모두 가지길 바랄 것이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게 될지언정. 파노라마처럼&nbsp;내 인생이 머릿속에 지나갈 때&nbsp;무얼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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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다.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패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을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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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면 좋고 안 주면 어쩔 수 없지'다. &nbsp;명예랑 상관있는 것 같진 않고 적립금 들어온건 웬지 배부르달까. 리뷰가 아니라 페이퍼에도 적립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페이퍼형 아치답게 열심히 썼는데도 당선이 안 되면 좀 서운하긴 하고 신간평가단이 당선 많이 되던데 혹시 그쪽만 밀어주나 싶기도 하지만 적립금 주는거야 알라딘 마음인데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만한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돈 모아서 공정하게 심사해 당선시키는게 아니라 알라딘 맘대로 선정하는 것이니 말이다.&nbsp;<br> <br>&nbsp;<br><br><br><br><br><br><br><br><br><br>* 알라딘에서 내가 맨 처음 페이퍼나 리뷰를 올리는 책은 드물다. 내가 무슨 책에 대해 얘기하는건 거의 뒷북이다. 신간보다 구간을 손에 넣기 쉬운 단순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누군가 소개를 했겠지 했는데 웬걸. 내가 처음이다. 흴랄라~ 영화와 다르게 영상미학을 논하기 힘든 텔레비전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영상을 표현해낸 PD. 7인의 사무라이를 따라한 듯한 제목은 멋쩍었지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물론 읽기 시작할 때는 우려가 됐다. 보편화된 영상 문법과 메시지를 줘야하는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상 색다른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웬걸. 알차고 재미지다.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이 1이라면 99는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라던가 연기술에 따라 연기를 잘 할 수는 있지만 덜어내는 연기를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 현장에서는 내가 성취하고자하는 바와 사람들에게 밀어붙일 수 있는 사이의 긴장이 있고 그걸 잘 풀어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까지.&nbsp;<br>&nbsp;인터뷰집이 간혹 산으로 가거나 인터뷰어가 인터뷰하는 부분에 문외한이거나 별로 연관성을 갖지 못해 겉도는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슬슬 지루해진다. 일단 인터뷰이가 같잖게 인터뷰어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자신도 잘 모르는 얘기들을 횡설수설하는 경우는 더더욱. 최근에 읽었던 몇몇 인터뷰집은 그런 면에서 꽝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뷰어가 자신이 잘 아는 부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도 별로. 그런 면에서 조민준씨는 현명하고 똑부러지게 인터뷰를 한다. 오랫동안 시민 비평가와 칼럼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인터뷰에 도움이 됐다. 군더더기 없고 핵심을 짚는 인터뷰어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커졌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nbsp;* 인터뷰집은 아닌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혹시 제주? 하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며 그렇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무방하다. 처음에 사회적 관계망이 대단한 사람만 제주도에 내려갈 수 있나 염려되었지만 읽다보니 가족끼리 생활터전을 꾸려나가는 사람도 상관없는거였다. 금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현명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언어와 삶이 '제주이민' 아래 모아진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 기락의 솜씨도 남다르다. 억지로 문장을 만들거나 애써 극적인 장치 만든 기색 하나 없으니 재미있게 읽힌다. 막연하게 제주이민과 여행을 생각하다 제주는 작으니까 저끝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다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nbsp;<br>&nbsp;그래서 제주의 긴축 끝점을 네이버 길찾기로 해봤더니 차로만 5시간 넘게 걸린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제주도가 군산처럼 자전거 하나로 다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섬으로 알았던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한걸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br>&nbsp;아무튼 이 책을 소개해주신 치니님 고맙습니다. (급마무리)<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nbsp;* &nbsp;여섯시에 일을 마치고 돌봄교실이 끝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온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한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청소를 하고 간혹 빨래도 한다. 퇴근하고 혼자여서 심심하다고 징징대던 아치는 요새 풀가동되고 있다. 옥찌들과 함께여서 좋지만 가끔은 a랑 b도 같이 했으면, 퇴근 후에 뭘 배우러다닌다던가 하는 호사를 누릴 때 누군가 아이들과 함께였으면, 갑자기 늦게까지 일하게 될 때 007작전을 짜느라 머리가 하얘지지 않았으면, 아이들에게 여유를 갖고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줬으면 하는 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더했을 것이다.<br>&nbsp;이모된 주제에 엄마인척하는거 맞지만 정말 엄마라면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답이 안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엄마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선택'으로 보는 시각. 하지만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는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 둘을 병행할 수 없을 때 어렵게 내리는 '선택'이 정말 그녀들 맘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마냥 치부하면 안 된다. 출산 거부가 왜 일어나는지, 보조금으로만으로는 왜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할 수 없는지 여성들의 입장에 서봐야 한다.<br>&nbsp;인터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엄기호 방식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자기 식으로 재단해서 속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깨닫고 자기 역시 공부하며 여전히 진행중인 질문을 던지는 것 말이다. 육아전쟁에선 비교적 평이한 결론을 담고 있다. 가사를 돕지 않는 남편, 고용주의 &nbsp;육아를 바라보는 편견보다 더 바뀌어야하는건 국가의 정책이라고 말이다. 책에선 미국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어떻게 육아와 직장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는지, 유럽의 육아 친화적 정책이 엄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다. 아울러&nbsp;육아의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묻는 미국의 방식이 개선되어야할 것도 주문한다. 미국의 무관심한 육아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갈길이 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는 사람의 보모화로 겨우 지탱되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nbsp;<br>&nbsp;저출산을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뻔해서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장은 없을 것이다. 저출산은 왜 여자들이 출산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은채 예측 가능한 일반론에만 기대는 실무자의 불성실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결국 가장 잘 먹히는 당사자 비난으로 손쉽게 면피하려는 것이다. 어제 음캠에서 임진모가 말한 것처럼 고시원 월세를 내야하는 처지에서 창의성이니 젊은이의 패기를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br>&nbsp;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격양됐지. 혹시 격양아치]]></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2/9/cover150/897182164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21647</link></image></item><item><author>헤르메스</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어제와 오늘의 아프리카, 제대로 바라보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748481184/5574645</link><pubDate>Wed, 18 Apr 2012 2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48481184/557464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3470&TPaperId=55746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34/44/coveroff/895862347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TPaperId=55746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37/coveroff/895276498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395478&TPaperId=55746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1/64/coveroff/897139547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182&TPaperId=55746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65/19/coveroff/89546171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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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아프리카는 오래도록 역사의 변방에&nbsp;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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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마치&nbsp;그 거대한 대륙 전체가&nbsp;어둠의 장막이라도 둘러쓰고 있는 것 처럼 아프리카는 세계사에서 &nbsp;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nbsp;오죽하면 우리들 조차 세계사 시간에 근대에 이르도록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곳은 단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근대까지 그 뜨겁고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오는 동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아프리카는 오로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최초의 인류 화석이 발견 된 지명으로서의 아프리카말고는&nbsp;없었습니다.&nbsp;&nbsp;그 정도로 아프리카에 있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듯 했고 그렇게 늘 변함없이 태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흔히들 1989년 부터 1999년까지의 아프리카를 '아프리카의 과도기'라 부릅니다. 89년 냉전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양극화 체제에서&nbsp;다극화체제로 서서히 옮겨가자 당시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해 외부로 부터 지배를 받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체제를 만들어가려 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소련의 개입으로 일어난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의&nbsp;전쟁도 끝이나고 많은 나라들이 이제는 자신들만의 체제를 추구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이었던 아라파트헤이트도 폐지되는등 처음으로&nbsp;변화의 기운이 아프리카에 가득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과도기 조차 찻잔 속의 폭풍일 뿐 이었습니다.&nbsp;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죠. 오늘까지도&nbsp;여전히 아프리카 하면 우리들이 세렝게티나 가혹한 굶주림만을 떠올리듯이 말입니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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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그런데 2011년 1월. 아프리카를 달리 보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23년간 튀니지를 독재했던&nbsp;밴 앨런 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혁명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결국엔 42년간이나 리비아를 독재했던 카다피 정권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이 혁명이 그 어떤&nbsp;외부의 개입이나 원조 없이 오로지 아프리카인들이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nbsp;혁명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혁명이 그 때까지&nbsp;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이&nbsp;여전히 미개하며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nbsp;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운동이 지금처럼&nbsp;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도움이 그만큼 절실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nbsp;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는 그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다는 그러한 우리의 편견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스민 혁명은&nbsp;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들 역시&nbsp;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기꺼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우리와 똑같은&nbsp;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nbsp;그제서야 아프리카가 가진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아프리카가 왜 그토록 세계사에 있어서 가리워져 있었고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nbsp;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중 하나를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책은 세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담고 있고 언제든 우리들에게 그 진실을 들려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 만큼은 에코가 책에 대해 부여했던 그 의미가 그대로 진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책들을 통하여 왜 아프리카가 재스민 혁명으로 달리보게 될 때까지 그동안 우리들에게 그렇게 나쁜 이미지로만 인식되어 왔는지&nbsp;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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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우리는 그것을 수잔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에서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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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수전 벅모스의 책은 우리들이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서양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펴나갔던 그 시기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는데 사실은 무력에 의한 정복이었지만&nbsp;그렇게 말하면 식민지 건설의 명분이 없으니까 야만을 문명으로 계몽한다라고 미화시키는 것이 보편적 행태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문명화'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들이 정복하는 땅의 주인들이 한없이 미개하고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다고 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도 여기에 있어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바로 서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놓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고 그들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내었던&nbsp;편견이 아직도 강하게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이죠. 수전 벅모스는 하지만 이러한 편견들이&nbsp;위정자나 자본가들 뿐만 아니라 이성을 찬양하고&nbsp;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부르짖었던&nbsp;당시의 철학자들 역시도 공유했던&nbsp;관념임을 밝힙니다. 특히나 헤겔을 통해서죠.&nbsp;구체적으로 수잔은 우리도 익히 알고있는 헤겔의 저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당시 서유럽을 놀래켰던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소상히 밝혀줍니다. 하지만 헤겔 그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고 아이티인들의 혁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당시의 지배적 관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nbsp;적극적으로 그 편견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nbsp; 오히려 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높은 사고를 할 수 없고 그래서 아프리카는 무지로 어두운 장막이 짙게 드리운 곳으로만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헤겔은 진정한 아프리카를 짐짓 모른 척 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서구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자기들 외부에 대해&nbsp;의도적 배제 위에&nbsp;흘러왔음을 수전은 책을 통해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태는 비단&nbsp;그 당시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역시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수전은 그걸 바로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헤겔 연구가들에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통해 나타냅니다. 이렇게 수전이 아무리 아이티 혁명과 헤겔의 상호영향 관계를 밝혀도 지금 헤겔학파 사람들 그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두거나 연구하려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헤겔이 아프리카의 진실된 모습을 짐짓 모른 척 했듯이 지금의 헤겔학파 또한 헤겔이 그 아프리카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짓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 수전은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로 인해 타자의 역사들이 멋대로 왜곡되어지는 형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바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nbsp;역사가 이제는 보편사로 나아가야&nbsp;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보편사란&nbsp;패권을 가진 중심부에서 멋대로&nbsp;자르고&nbsp;왜곡하는 현재의&nbsp;역사가 아니라 그 외부의 타자들이 타자들 자체로서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그들을 대변토록 하는 그런 역사를 말합니다. 그렇게 대등한 타자들이 서로 자신의 존재를 다채롭게 드러내는 역사. 그것이 바로 보편사인 것이죠.&nbsp;수전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는 바로 수전이 지향하는 보편사가 어떤&nbsp;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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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러한 오히려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해지는 학문의 영역에서 조차&nbsp;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이해관계로 인해 아프리카는 멋대로 왜곡되어 버렸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비단&nbsp;수잔 벅모스의 주장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nbsp;또 하나의 저작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틴 버넬의 '블랙 아테나'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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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마틴 버넬은 먼저 그리스 신화가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단지 상징과 은유의 형태로 기록한 것임을 상세히 밝힙니다. 그렇게 버넬은 그리스 신화를 역사로 볼 것을 주장하는데&nbsp;얼른 우리는 이것이 참 바보같이만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버넬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수전 벅모스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팽배한 아프리카에 대한 서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단순한 신화로 날조한 데 있다고&nbsp;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면 무엇보다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바로 이집트로 대표되는 아프리카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당시 아프리카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미개한 열등 인종인 아프리카인들을 계몽한다는 명분이 더이상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문에&nbsp;당시의 서유럽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종주의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 문명의 기원을 이집트나 페니키아가 아니라 같은 서양인 미케네 문명을 그 기원으로 날조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날조가 지배적인 견해가 되어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음을 버넬은 '블랙 아테나'를 통해 아주 상세히 밝혀줍니다. 여기서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왜곡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를 복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구 제국주의에 형성된 그 같은 왜곡된 편견들은 많은 부분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기&nbsp;때문에 이것은 그대로 우리가 가진&nbsp;덧칠된 편견들을 걷어내고 그 진실한 참모습을 새로이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nbsp;바로 이 때문에 에코가 말했던 책의 의미는 하나의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nbsp;아프리카의 왜곡된 이미지와 역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동안 세상이 가리고 있는 진실이&nbsp;이렇게 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똑똑히&nbsp;깨닫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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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렇게 과거의 아프리카가 가진 왜곡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면 이제 현재의 아프리카를 바라보던 인식 역시도 달라지게 되겠지요. 그동안의 굶주림과 미개함 그리고 수동성으로 가득한 땅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과 역사를 위해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가는&nbsp;적극성과 가능성의 땅으로 말이죠.&nbsp;현재 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은 바로 이 같은&nbsp;아프리카가 가진 현재의 모습을 변화된 새로운 시각으로 정말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현지 아프리카의 경험까지 더해져 정말 생생한 아프리카의&nbsp;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책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전반에서 아프리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곤경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nbsp;그 외부적 시각이 아니라 바로 아프리카 내부의 시각으로써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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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 책이 아프리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프리카 내부라는 미시적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하고 펴낸 '르몽드 세계사 2편', '세계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은 세계 전체라는 거시적 시야에서 아프리카가 가진 의미와&nbsp;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점점 다극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현재에 있어 서서히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와 삶 그리고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가 거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nbsp;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와 이 '르몽드 세계사 2'는 아프리카를 그 내부와 외부에서 고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병행해서 보면 참 좋은 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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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여기까지 어제의 아프리카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진실되게 바라보게 해 줄 책들을&nbsp;추천해 보고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역사와 현재에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당장은 우리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하지만&nbsp;앞에서도 이미 말했습니다만&nbsp;아프리카의 경우에도 드러나듯이 결국 타자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걸어온 역사적 경로와 우리가 걸어온&nbsp;경로도&nbsp;다르지 않으면 더욱 그렇겠지요.&nbsp;그런데 우리 역시 그들 만큼이나 역사에 있어선 주변부였고 그들이 지배당했던 만큼 우리도 역시 식민지 지배를 거쳤으며 모든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 여전히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이만큼이나 과거와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nbsp;때문에 그들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가는 건 서구에 의해 우리 자신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프리카를 진실되게 이해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고유하고도 진실된 모습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는 것입니다.&nbsp;그런 의미에서라도&nbsp;어제와 오늘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 줄 이 책들을 꼭 벗해보실 것을&nbsp;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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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65/19/cover150/895461718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182</link></image></item><item><author>후와</author><category>오후 4시의 풍경</category><title>여행에 실패하는 방법</title><link>http://blog.aladin.co.kr/musil1/5568670</link><pubDate>Mon, 16 Apr 2012 0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musil1/55686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36248&TPaperId=55686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67/coveroff/89920362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9045&TPaperId=55686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77/34/coveroff/893201904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StartFra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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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삶은 흔히 여행에 비유되곤 하는데, 이런 비유는 내겐 좀 혼란스럽다. 대체 어떤 여행이 삶과 닮았다는 것인지. 가령 사업차 떠나는 비즈니스 여행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순례 여행인지, 그도 아니면 정처 없이 떠나는 방랑 여행인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 즐겨 하지도 않아서인지 들을 때마다 좀처럼 이거다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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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하지만 어떤 유형의 여행기를 접하면 여행을 삶과 비교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가령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 1990) 같은 여행기는 짧은 삶의 기록처럼 여겨지기도 하니까. 여름휴가를 맞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뒤 대구에 가서 장정일을 만나고 돌아온 일을 적고 있는데, 햇빛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건짜증을 부리는 저자의 얼굴이 절로 상상되는 여행기다. 여러모로 내가 하는 여행과 닮았다. 떠나는 순간부터 후회하는 여행. 매 순간 더 나아가기도 싫고 돌아가기도 싫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행. 이런 부분이 삶과 닮았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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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삶을 굳이 여행에 비유한다면 나는 이런 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짐을 싸서 떠났다가 옆집으로 돌아오는 여행. 다시 떠났다가 그 옆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떠났다가 또 그 옆집으로 돌아오는 여행. 이런 여행이라면 삶과 비교될 수 있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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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사뮈엘 베케트의 『몰로이』(김경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8)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김성곤 옮김, 비채, 2006)는 여러모로 삶과 여행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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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몰로이』는 늙고 병든 데다 불구가 된 몸으로 역시 늙어서 더 이상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몰로이의 여행과, 몰로이를 쫓으라는 의뢰를 받고 떠났다가 부상을 당한 채 맥없이 돌아오는 자크 모랑의 여행기를 각각 1부와 2부로 나누어 적은 소설이다. 1부의 이야기와 2부의 이야기가 서로의 타자처럼 느껴질 정도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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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몰로이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횡설수설인 반면(어머니가 살고 있으며 자신 또한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그의 여행처럼), 모랑의 이야기는 비교적 논리정연한 편이다. 한편 마을의 이름조차 잊고 해변가와 숲 속을 헤매는 몰로이의 경우는 마치 목적지(어머니의 집)가 너무도 분명하여 일부러 그 주변을 맴도는 것처럼 여겨지는 반면, 모랑의 경우는 자신이 왜 몰로이를 쫓아야 하는지는 물론 몰로이를 찾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분명치 않지만 그가 있는 곳을 향하는 여정은 직선적이면서 비교적 분명하다. 하지만 모랑은 결국 중간에서 다리를 다쳐 집으로 돌아오고 마는데,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는 모랑의 모습은 흡사 목발을 짚고 헤매는 몰로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의 첫 문장을 다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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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1부와 2부의 공통점이라면 무릎 이야기가 아닐까. 몰로이는 불구가 된 자신의 다리에 대해 묘사하면서 느닷없이 자신의 무릎이 매우 크다고 말하는데, 2부에서 모랑은 무릎을 다친 뒤 끊임없이 무릎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소한 이 대목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무릎과 무릎 사이의 이야기인 셈이다. 무릎과 무릎 사이라. 흥미롭다.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또한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여행 중에 아내와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고는 물속에다 사정을 하자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정액을 가르며 떠내려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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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떠내려와 흩어진 내 정액 사이로 들어갔다. 그것은 눈이 강철처럼 뻣뻣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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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 소설에서 ‘미국의 송어낚시’는 줄곧 저항이나 평화, 생명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다루어지는데, 물속에 흩뿌려진 정액과 그 사이를 가르며 유영해오는 죽은 물고기는 결국 이 여행기가 실패의 이야기임을 상징한다. 성공과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은 실패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달까. 하여 성과와 성공을 추문으로 만드는 것. 사업차 떠난 여행에서 소기의 목성을 달성하고 돌아온 자가 가방을 들고 옆집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그가 이룬 성과를 추문으로 만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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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두 소설가는 아마도 완성도 높은 성공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는 태도야말로 성과나 성공을 지향하는 사회와 짝패를 이룬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하여 그들이 택한 소재는 여행기이고 방법은 여행의 의미를 지우는 작업이다. 그것은 브라우티건이 옮긴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읽은 다음 즉시 던져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는 문장, 즉 자체취소(self-cancelling)적인 문장”을 쓰는 것인데, 여기서 취소의 대상은 문장 그 자체라기보다 문장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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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어떻게 써야 여행의 의미를 지우는 여행기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시간의 의미를 지우는 글쓰기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순서에 의미를 두지 않거나(『미국의 송어낚시』), 쓸데없는 것과 쓸데있는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묘사와 함께 늘 다시 시작하는 구조를 갖거나(『몰로이』). 말하자면 중요한 계약을 위해 여행했다가 엉뚱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엉뚱한 풍경 묘사와 심리 묘사로만 일관하는 여행기. 게다가 그 여행기가 중간에서 맥없이 끝나버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고 보니 카프카의 『성』이야말로 삶과 빼닮은 여행 이야기인 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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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77/34/cover150/893201904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9045</link></image></item><item><author>마녀고양이</author><category>책, 영화, 음악 그리고</category><title>인형의 공허감은 누구 소유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757611146/5569250</link><pubDate>Mon, 16 Apr 2012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57611146/556925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3424&TPaperId=556925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13/62/coveroff/895975342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0840&TPaperId=556925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9/75/coveroff/89597508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3084&TPaperId=556925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72/10/coveroff/895975308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85987&TPaperId=556925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8/3/coveroff/89907859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85901&TPaperId=556925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21/coveroff/8990785901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757611146/556925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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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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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감을 극복하려는 뇌에 많은 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기 위하여 피부와 내장 쪽으로 뻗은 혈관을 좁혀 뇌와 심장으로 피가 많이 흐르도록 합니다. 또 동공을 확대시키고 승모근을 수축시켜 털을 곤두서게 합니다. 털이 일어서는 현상은 개와 고양이처럼 온 몸이 털로 덮여있는 동물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즉 적을 공격하거나 위협을 받을 경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의 짧고 가는 털밖에 없는 피부에서는 승모근이 수축하지만 곤두설 긴 털이 없기 때문에 털구멍만 밖으로 약간씩 솟아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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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um 지식 RPSS311님 답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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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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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살갗이 소스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서면서 어두운 창을 홀끔홀끔 바라보게 된다. 딸아이는 곤히 자고 있다. 새벽 한시에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기분 전환을 위하여 저녁에 펴든 책을 차마 놓지 못 하니 어쩌랴.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며 신랑을 기다린다. 화장실을 갈 수 없다. 화장실에 걸린 거울에 무엇이 비칠까 무섭다, 화장실의 욕조에서 피묻은 손이라도 하나 나올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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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괴담이 생각난다. 어느 학교에나 있던 괴담들이다.
12반 옆에 13반이 하나 더 있는데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밤 12시에 문이 열린대... 학교 운동장 단상 밑에는 시체가 수십구 묻혀 있대.. 정말.. 이 학교가 30년이 넘은 학교잖아 전쟁 때 묻힌 시체래.. 밤 12시에 유관순 누나 사진 앞에서 촛불을 비치면 다른 얼굴이 보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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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학교는 괴담 없어...? 저녁 무렵 넌지시 곁에 앉은 코알라에게 물어본다, 
아우, 엄마 읽는 그 책 무서운 책이지! 표지도 엄청 무서워! 말하지마! 질색하는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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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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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을 &lt;아야츠지 유키토&gt;에게서 받을 줄이야. 
&nbsp;
일본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lt;관 시리즈&gt;를 한번쯤 접해봤을 법 하다. &lt;관 시리즈&gt;라고 해서 드라큐라 백작이 낮잠을 자던 그 관인줄 알았는데, 실은 집 관館을 의미한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lt;관 시리즈&gt;는 다소 고풍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지만, 현실에 기초하며 (그런 짓을 하는 인간 심리는 설명 불가지만) 사건 자체는 설명 가능한 추리물이다. 약간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나는 명탐정 코난을 연상시키는 전개의 아야츠지 유키토 작품을 좋아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들과 이중 삼중의 트릭으로 독자를 후려치는 매력, 엽기적 성향의 건축가 작품이 배경이라는 일관성, 그리고 최후의 쉼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집을 일순간에 밀폐된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착안까지, 지적 유희를 즐기는데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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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암흑관 살인 사건 1,2,3&gt;, &lt;미로관의 살인&gt;, &lt;시계관의 살인&gt;, &lt;십각관의 살인&gt;, 그리고 최근에 나온 &lt;수차관의 살인&gt;까지 모두 그렇다. 아마 곧 &lt;인형관의 살인&gt;과 &lt;흑묘관의 살인&gt;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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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방심했을까.
이제까지 지적 유희만을 즐기게 만들던 작가라고 생각했기에, 
유전적으로 깊숙히 각인된 본능적 두려움을 건드릴 줄 몰랐고, 그렇기에 더욱 무서웠던 &lt;어나더&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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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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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3반은 '있는' 해가 있고 '없는' 해가 있다, 26년 동안. '있는' 해에는 3학년 3반의 학생이나 직계 가족이 죽음을 당한다. 한두명이 아니라 한달에 두어명 꼴로. '있는' 해에 해당 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머리를 모으고 방안을 모색한다. 모호함은 인간의 긴장감을 더해간다. 무엇이 있는건지, 무엇이 없는건지, 눈먼 이가 코끼리 뒷다리를 더듬거리는 느낌으로 헤매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그렇다, 지적인 사람일수록, 완벽성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일수록, 권력 욕구가 있는 사람일수록 가장 큰 욕구는 '통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인간 세계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현상은 인간으로써의 나약함을 절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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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돋은 소름을 다시 한번 쓰다듬는다. 시커먼 베란다 유리창 너머를 한번 더 홀긋 본다.
&nbsp;
또다른 누군가를 가리키는 Another란 제목이 진정 어울리는 작품으로,
온다 리쿠의 미지에 대한 두려움 어린 호기심과 여고괴담의 싸늘한 공포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다.
&nbsp;

"뭉크의 그림은 흔히 오해받는데, 그 그림 속에서 절규하는 건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주위에 있는 세계야. 그 남자는 그 절규에 전율해서 귀를 막고 있는거야." -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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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규하고 있다는 말보다
내가 세상의 절규에 미치도록 괴로와서 귀를 막고 있다는 대화가 절절히 다가온다.
다들 쉽게 생각하지만, 실은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행위란 극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균형을 중요시 여기고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차라리 귀를 막고 침묵하는 쪽이 속 편하지, 나는 이렇다 라고 세상을 향해 악에 받쳐 지랄을 하기가 쉽겠는가. &lt;어나더&gt;의 등장 인물 역시 대의를 위해 소수 사람의 희생을 종용하며 침묵 속에 동조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와 별개로 절규하고 또 절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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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lt;절규&gt;는 전부 네 점이 제작되었어.
"아, 그 얘기는 들은 적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그림이야. 붉은 하늘 빛이 가장 무시무시해서 당장이라도 피가 쏟아져 내릴 것 같거든."
"흐음, 하지만 그런 그림은 무섭다고 할까. 보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
"불안이라, 그렇네. 모든 것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기분을 폭로해주는 듯한 그림. 그래서 좋아해."
"불안해지기 때문에 좋다고?"
"불안이란 건 안 그런 척해봐야 소용없잖아. 너도 그렇잖아? 다들 분명 그럴거야." -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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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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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이 풍부한 비(192p)' 라는 문장이 왜 그렇게 끌렸는지 모르겠다. 
이 문장 하나로 나를 감싸고 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달까. 건물, 자연, 지식, 시스템처럼 이성적으로 손에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담긴 다른 뜻이나 느낌, 숨겨진 의미, 감각으로 알 수 없으나 직감으로 느껴지는, 결코 세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여러가지를 한마디에 담을 수 있을 것같은 바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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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감이 너무나 짙어.. 라는 중얼거림.
누구에게 호소하기 어려우나 혼자 숨막혀 헉헉대는 그런 것들에 대한 절묘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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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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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쇼핑 샵 - dollbom 사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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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짙은 질감의 불안정한 긴장 속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은유는 구체 관절 인형이다. 팔년 전에 홍대 근처에는 구체 관절 인형 가게가 있었다. 십년 넘게 그 지역에서 살던 나는, 가끔 딸아이를 데리고 나섰던 산책길에 그 인형 가게 앞으로 서성거리곤 했다. 구체 관절 인형, 수십만원, 수백만원 대의 구체 관절 인형을 본 적이 있는지. 그것은 너무 아름다와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모습이다. 길고 가녀린 팔 다리와 호소력 짙은 눈동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옷은 세월이 가도 변치않을- 영원한 젊음에 대한 그리움처럼 다가오고, 때로는 인간의 욕망이 절절하여 두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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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공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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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공허해. 몸도 마음도 아주 공허하지. 텅 비었어. 그건 죽음으로도 이어지는 공허야. 공허한 존재들은 그 공허를 뭔가로 메우고 싶어해. 이렇게 닫힌 공간에 이런 식으로 놓여 있으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까 이곳에 있으면 뭔가 빨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자신의 내부에서, 다양한 것이." - 1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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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은유에는 '거울'이란 대상이 있다. 영원히 반대편에 서 있는 내가 아닌 나.
&lt;어나더&gt;를 읽으면서 '인형'이란 대상 역시 함축적이구나 싶어진다. 대상 관계 심리학에서 '중간 대상'이라는 용어가 있다. 중간 대상은 현실과 내면을 이어주는 중간 매개체를 의미하며, 가장 대표적인 애착물로 인형이나 담요를 들 수 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인형에 투사하고 다시 돌려받는다. 인형은 위안의 존재이기도 하고 단절의 존재이기도 하며 두려움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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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생 완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걸작 코믹스 &lt;파이브 스타 스토리&gt; 역시 매혹적인 파티마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들은 기사의 힘이 되어주는 요정과 같은 존재로써 일종의 Doll이다. 이들은 기사가 늙고 추한 꼴을 보여도 결코 한번 맺어진 인연을 끊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충성을 다한다. 바로.............. 우리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대상처럼. 나는 이 만화를 보면, 구체 관절 인형이 생각난다. 인간의 공허감을 그대로 투영하는 존재, 영원한 그리움을 삼키는 존재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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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파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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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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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어나더&gt;의 완결은 분명 완결이라 할 수 있지만, 
일회성이고 단기성 완결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결코 완결되지 않는 것처럼 이 소설도 완전한 완결이 아닌 하나의 단락을 지을 뿐이다. 호러물은 그런 면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작품인거 같아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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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 산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원히 망각되는 것. 그것을 극복하고자 온갖 몸부림을 치는 처절함이랄까. &lt;어나더&gt;의 전체는 분명 그리 외치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줘. 나를 잊지 말아줘. 이를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기에 책장을 덮고도 계속 두렵고 슬퍼진다. 죽으면, 잊어달라고,&nbsp;감히 나는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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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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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10/82/cover150/895975393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3939</link></image></item><item><author>한사람</author><category>2012_0106</category><title>...나는 오늘도 조선일보를 읽는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23614123/5562444</link><pubDate>Thu, 12 Apr 2012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23614123/55624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12124X&TPaperId=55624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71/67/coveroff/899612124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49468&TPaperId=55624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0/53/coveroff/899394946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2125&TPaperId=55624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2/74/coveroff/896051212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8782&TPaperId=55624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8/39/coveroff/8971848782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26&TPaperId=55624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46/99/coveroff/896596012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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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인생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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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일보를 꼼꼼히 챙기는 독자다. 내가 조선일보를 애독하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 것이다. 그러니까 햇수로만 해도 30년이 넘었다. 그땐 흑백 신문의 반이 한자였고 내가 아는 한자는 韓자, 國자, 民자, 愛자 정도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신 후 보는 것이라 늘 종이 질은 구겨진 상태였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맨 처음 넘겨보고 싶어 아버지가 보기 전에 종이를 넘겨보았다. 종이 한 장이 넘어 갈 때 흩날리는 인쇄소 냄새가 좋았다. 그 시절 나는 버스가 지나가고 난 뒤 그려지던 휘발유 냄새와 소독차가 지나간 뒤 남겨지던 지독한 가스향이 좋았었다. 조선일보 맨 뒷면엔 항상 TV 란이 있었고 그 밑에 독자투고란이 있었다. 유일하게 TV소개만 한자가 없었다. 가끔 故 정영일의 영화평론과 다른 유명한 분(한자를 몰라서 ㅠ)의 방송 평론을 읽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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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내가 고등학생 때 같은 나이의 '김혜수'라는 배우가 성인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연소자인 우리들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고교생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고교생이 볼 수 없는지 따지는 글을 엽서에 적어 조선일보에 보냈다. 그랬더니 며칠 후 독자투고란에 서울시 무슨 동의 몇 살 누구라며(서울시 **동 16세, ***, 이런 식으로) 내 이름이 신문에 새겨지는 일이 발생했다. 내용을 읽으며 스스로 참 잘 썼군, 미소를 지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친척들은 조선일보만 보는 것인지 그날 우리 집 전화에 불통이 났다. 이모, 고모, 삼촌, 사촌 오빠 할 것 없이 그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고 죄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웃긴 건 서울 무슨 동에 사는 열여섯 살 ***가 나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학교까지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들 하셨는지는 - 주로 고 녀석 당돌하군 식이었을듯 -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내용도 모르고 으쓱해 하셨다. 그때 나는 조선일보가 참 공정한(?) 신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우월감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그 우월감에 도취되어 김혜수 영화가 나중에 망했다는 사실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문제제기이후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짧은 글을 세상 사람들이 다 읽었구나 하는 야릇한 기분만 간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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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상남도 출신 부모님을 두었고 김대중을 빨갱이라 생각하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제사 때 모이기만 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속은 사례를 말씀하셨고 YS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주장하셨다. 내 친척 분들은 주로 대구, 진주, 부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말 대거 서울로 이주하셨다. 나를 포함한 내 사촌들은 모두 8학군의 학교를 나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 부모님을 포함한 그분들은 70년대 말 강남이 논두렁 밭두렁일 때부터 자리를 잡으셨고 지금은 분당, 용인 권에서 거주하신다. 그들 중엔 장관출신도 있고 대기업 임원, 대학교 총장, 국가 연구소 소장도 있다. 그분들의 자제, 내 사촌들 역시 대부분 대기업, 국가 연구소에 취직했다. 사촌들과 결혼한 배우자 역시 거의 경상도 출신의 대기업 프레임 속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나를 뺀 친척 대다수는 탄탄한 상류 혹은 중산층,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다.(나도 몇 년 전까진 그랬으니 그들을 뭐라 할 자격은 없다) 이들은 모두 조선일보만 본다. 쭉 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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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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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자정 넘어 그들로부터 몇 개의 문자를 받았다. 이번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안좋아 잠을 못 이루고 있던 차에 꼭 거봐, 니들은 안돼 하는 조롱으로 들렸달까. 어르신들 막말 싫어하는 거 모르냐고, 노무현을 왜 싫어했는데, 등의 문자를 받고 이명박 잘 숨겨줘서 좋으냐 보낼까 하다가 그냥 부질없어서 꺼버렸다. 그리고 잠이 안와 다시 SNS를 확인해보니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새벽녘에 이외수 작가만 모든 원망 이해한다며 죄송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고 애써 아무도 말 안하는 듯 보였다. 아침에 보니 출판사와 마케터들은 상관없는 책 소개나 울지 말라는 식의 은유적인 시들만 올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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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니 이번 야권의 참패를 김용민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오만이 부른 참사, 국민 상식에 무릎꿇다, 나꼼수의 착각등등. 두 번 죽이기는 시작되었고 이참에 확실히 밟아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나는 조선일보를 한 장 한 장 다 읽어보며 넘기기 때문에 그들이 상징적으로 빗댄 인사가 누구이며 무얼 비난하려고 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나는 내 친척들과 같은 보수층이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할지 더 잘 안다. - 참고로 노무현 시절, 그가 검사와 맞짱 뜨자고 했을 때 조선일보 읽은 (나를 포함한)보수들은 모두 거보라고 자질 안 되는 사람을 뽑은 꼴 좋다고 떠들었다. 막말 프레임은 보수가 가장 싫어하면서 열광하는 아젠다이다. 왜? 그래야 자기들하고 수준이 틀린 저질좌파를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 나는 이번 선거의 패인을 분석할 주제는 못된다. 그런 건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할 터이다.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보수층이라는 엄청나게 두껍고 단단한 절벽에 대한 절망의 심경이다. 그들은 책도 꼭 김진명 소설과 몇 년 째 이해인 수녀님 시집만 읽는다. 알라딘 서재같은 온라인 서재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책값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책 살 일이 없으므로 당연히 아이디도 없다. 그들도 나름 바쁘고 열심히 살기 때문에 왜 여기서 책 안사냐 뭐라 할 순 없는 일이다. 내 생각이지만 지방은 더 심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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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선 자기 보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만 맞다고 생각하며 그걸 대세라 착각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조선일보는 그걸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가 누가 실수라도 하면 제까닥 일초만에 대서특필한다. 예를 들어 이외수 새누리당 지지, 공지영 또 거짓말, 이런 식으로. SNS는 실시간이고 정보 확산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과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의 과정이 노출되기 때문에 나중에 수정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이런 속성을 잘 아는 보수들은 절대 SNS를 안한다. 출세하려면 어떤 종류라도 생각의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은 불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고로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언론에서 SNS를 무슨 종북 좌파들의 수다장소로 연일 떠들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멀리한다. 그러니까 SNS에서 그들의 생각은 절대로 알 수가 없고 - 반대로 저들은 우리 생각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고 - 우리끼리 우리 좋은 말만 허구헌 날 주고 받고 할 뿐인 것이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땐 서울이니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보수 성향의 알라디너가 이곳에 글을 쓸 리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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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앞날의 동반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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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대한민국 보수들의 조용한 조롱과 냉소가 피부로 절절하게 와 닿는 오늘이다. 박근혜라는 붉은 지도의 화신을 넘는 일은 애초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근혜는 준비를 오래 해온 인물이기 때문에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하루종일 박근혜만큼 애국하고 나라걱정만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내가 아는 보수층들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 새마을 운동 노래에 맞춰 새벽 다섯 시부터 집 앞을 쓸었던 사람들이다. 독재가 무엇인지 민주화가 왜 필요한지 그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라는 일념으로 이 한 몸 부숴져라 일터에 던져온 분들이다. 나는 &lt;강남몽&gt;에서 내 부모님을 보았고 &lt;허수아비춤&gt;에서 내 사촌들을 보았다. 그분들은 전쟁 속에서 빨갱이가 당신들의 친척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고 열여덟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입대를 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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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해온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독자가 무엇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나는 오늘도 조선일보를 읽었다. 나는 조선일보 블로그에도 조선일보 욕하는 리뷰를 올린다. 그러면 조선일보는 제까닥 공정한척 뉴스에 띠워준다. 조선일보가 주는 떡밥을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구독료를 내었기 때문에 당당하다. 그런데 같은 글을 올렸을 때 알라딘과 예스 같은 온라인 서점에선 주기자의 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만 조선일보는 싸늘하다. 심지어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같다는 댓글도 달아준다. 조선일보가 열렬히 반응하는 건 ‘난설헌’같은 이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순수문학이다. 난설헌 리뷰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조선일보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 보수들의 청정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성향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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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조선일보의 승리다. 이 승리를 정당화 하기 위해 나꼼수 죽이기는 더 꼼꼼하게 계속될 것이다. 진보는 드럽고 추악해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말한다. 나는 반대다. 드럽고 치사하고 치밀한 계획정신을 똑바로 확인하고 알리고자 그들을 넘겨본다. 싸워서 이길 수 없을 땐 아예 싸우지 말라고, 손자병법 서문에 나와 있다. 한비자에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딱 하나, 자신에게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싸워서 이득이 생기지 않고 생기더라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판단했을 땐 과감히 다음을 기다리는 것도 용기라고, 그렇기 때문에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도록만 완벽하게 준비하고 연구해서 달려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일단 싸우기 시작했으면 되돌아 갈수 없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한다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싸우는 기술만 몇 십년 연구한 손자가 말하더라. 누가 생각나는가. 나는 딱 한사람, 박근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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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가. 
손자병법을 해석한 저자는 하필 MBN에서 TV조선으로 가셨구나.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조선일보로 이직한 것을 비난하긴 싫다. 다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를 알고 싶어 읽어봤다. 이 책의 결론은 손자병법이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안 싸우는 기술이라는데 있다. 싸우는 상대인 경쟁자를 존중하고 동반자로 생각하자는 공존의 철학, 그것이 저자가 마흔에 해석한 손자병법이다. 이 생각은 언뜻 진보적이고 훌륭하고 옳기도 하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미 이겼고 이긴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항상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기에 너그럽게 경쟁자를 감싸안을 수 있다. 경쟁자가 자기를 이기게 하는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이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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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보수들이 완전 좋아하는 테마이다. 우리 사회엔 보수들이 좋아하면 확실한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많다. 이들은 빼앗겨온 입장에서 공존과 공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 이기고 나 가진 다음 나머지로 나누는 선심에 가깝다. 어제 이 책을 덮었을때 공교롭게도 김용민 낙선유력이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조선일보에서 무더기로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 중에 어려운 시집이 하나 있었다. 아침에 울적한 마음에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그에게 드리고 싶은 시가 있어 옮겨 놓을까 한다. 3월에 꽃피는 봄이 오길 바랐던 그와 나꼼수 멤버들에게 이&nbsp;시를 바친다. 그리고 나와 같이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분들에게도 마음으로 전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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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젊고 젊지 않더라도 생각만은 젊다. 그러나, 생각이 젊은 건 그다지 이길 승산이 없는 패라고 손자가 가르쳐주더라. 더 꼼꼼하고 더 치사하고 더 속일 수 있어야 더 비겁해야 이긴다고, 그들은 말하더라. 일단 이겨야 공존이고 공생이고 철학이고 떠들 수 있다고 웃더라. 나는 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꼼꼼해지기 위해서라도 조선일보를 읽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그렇게 적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보려면 냉철한 시선만이 필요하다고, 손자병법같은 비법은 한 수백권 오래전에 떼고도 남았을 박근혜의 시선이, 그녀의 미소를 일면에 장식해준 조선일보가, 그렇게 말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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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 (落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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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혈관도 그렇게 한번 무너지고 싶었겠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의 꽃사태처럼 너는 
뇌출혈로 무너져 의식을 잃었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졌을 때처럼
황홀한 기억의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그 잎사귀들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아직은 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때
가로등 불빛 속으로 
불콰한 얼굴들이 낯빛을 들이밀듯
펄럭이던 눈발, 색색의
현기증들, 오 그렇게
너와 함께 무너지고 싶었던
3월의 폭설, 낙상이란 말의 행복한 눈사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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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국 &lt;파묻힌 얼굴&gt;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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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의 추억을 잊지말자. 그건 3월의 폭설일 뿐이었다. 
이상기후가 닥쳐도 봄은 온다. 
지진이 와도 꽃은 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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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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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nbsp;다음의 책을 안 읽으신 분들은 
비록 지져분하지만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글 남겨주시는 세대에 맞춰 다른 책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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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46/99/cover150/896596012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26</link></image></item><item><author>네오</author><category>경제</category><title>소리없는 아우성 Sounds From Nowheresville</title><link>http://blog.aladin.co.kr/neoratm/5563158</link><pubDate>Thu, 12 Apr 2012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neoratm/55631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56151&TPaperId=55631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89/coveroff/893495615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26924&TPaperId=55631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01/55/coveroff/894752692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3046X&TPaperId=55631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70/75/coveroff/896263046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86487981&TPaperId=55631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0/57/coveroff/15864879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61005&TPaperId=55631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04/46/coveroff/8977661005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neoratm/5563158'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사건의 발단은 이렇다.<br><br> 올해 제니퍼 이건의 놀랍고도 새로운 소설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녀의 소설을 차례차례 순서적으로 읽을 생각으로 그녀의 이력을 구글에서 마구잡이로 검색하고 있었는데, 나의 눈에 이 소설의 홍보문구중 2011년 퓰리처상 소설 수상작이라는 글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열심히 맹렬하게 퓰리쳐상 역대소설수상작들을 뒤지고 있었는데, 예전에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모으며 나의 책장을 장식하고 있었던 논픽션과 역사부분이 다시금 새로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까지만 해도 &nbsp;아마존을 통하여 2000년대의 역사부분을 거침없이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표현을 바치고 있었던 열혈청춘의 그 시절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한국어로 번역한 미국사가 제대로 소개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몹시도 가슴아퍼하는 사람이다. 사실 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도 못한 신생국가가 지금은 강력한 파워군단을 지니며 여러 분야에서 극렬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외교사는&nbsp;<br><br> 한마디로 옴베르트 에코의 표현을 빌려 궁극의 리스트이다. 햇수로 2005년 시점에서 교보문고에서 바로 구입한 책인데 아직도 어김없이 나의 베스트목록을 차지하고 있는 도서이고 보면 상단한 메리트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나는 헨리 키신저가 열심히 그가 존경하는 인물의 정책에서 배웠고 흉내내던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대해서 띠끌하나없이 그를 흠모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후배에게 헨리 키신저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는데 그는 상당한 미국무부내에서도 비주류라고 단언한다. 물론 그가 미국무부에 들어설때는 확실히 관료라는 이미지보다는 학자의 품격을 지닌 서생이라는 오해를 받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현상파악이다. 그만큼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외교를 다스리던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을만 한데, 지금 얼핏 생각하기에는 부시때 활약하던 콜린 파웰과 콘돌리자 라이스가 불현듯 생각난다. 하지만 그들의 정책는 도널드 럼스펠트의 펜타곤에 위해서 수시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아마도 미외교사에 대해서 추후의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br>아무튼 지금 역대 퓰리쳐상 역사부분을 보면서, 물론 번역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느낀점이 상당히 부드럽게 소설처럼 역사서를 잘쓴다는 점이다. &nbsp;미국책들이 유려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책을 원본이든 번역서이든 당연하게도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치 못하고 지나칠때가 너무 많다데에 나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매번 나는 이럴때마다 그냥 스킵하면 지나쳐가는 아쉬움이 진하게 베인다. 그래서 미국사들을 살펴보자면,&nbsp;<br>  뒤에 두권은 굉장히 유명한 옥스퍼드 역사서시리즈인데 모든 미국사를 연대기적으로 이렇게 세세하게도 잘 설명한 책이 없다고 자평하고 싶다는 정도이다. 이 책들은 미국의 남북전쟁전후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풀어쓴 분석서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역사부분을 과도할 정도로 유럽사에 편중한 부분이 많은데 미국사를 들쳐보고 있으면 어느정도의 우리역사와 매치컷업기법으로 씽크로율의 흐름이 비슷하게 꾸며나가는 것이 눈에 띠기도 하다. 특히 1810년부터 1848년까지의 미국부흥의 시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해방이후의 정국을 본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역사는 어떠한 시각을 지니고 있는냐에 따라 어러가지의 해석방법이 달라지는데 그래도 어떤 공통분모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면 우리들은 정확하게 그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br>그리고 2010년도 퓰리쳐상 역사부분 수상작과 2009년 파이낸셜타임즈와 골드만 삭스의 올해의 책이 공동수상한 책이 있는데 바로<br> 금융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가 저술한 금융사인데 대공황이전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앙은행에 대한 정책에 성공과 좌절을 다루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 부분에 대한 최고의 책은 이미 1970년대에 밀턴 프리드만과 안나 슈워츠가 공동저술한 &lt;대공황, 1929~1933년&gt;이 있다. &nbsp;이책을 관심갖게 된것은 내가 폴 사뮤엘슨에 대해서 사무러칠정도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던 시절에 유일하게 그의 반대진영에서 줄기차게 화폐정책의 우수성과 재정정책에 대한 무력성을 멋지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분은 상당히 매력적인 분인데 거의 모든 시카고대 출신들에 노벨상수상자들은 이분에 얽힌 일화들은 책으로 쓰고도 남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포트폴리오이론으로 유명한 해리 마코위츠의 논문심사를 할때 다른 교수들이 그에게 혹독한 비평을 가할때 다른 교수들과 달리 그에게 다른 면모를 봤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교수였다. 물론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유명한 로버트 루카스2세(아마도 현존하는 경제학자중에서 내가 닮고 싶어하는 유일한 이분, 결국에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것이라는 불길한 저주같은 숙명)의 지도교수로도 유명하다.<br>파이내셜타임즈와 골드만 삭스의 올해의책 역대 수상작을 들쳐보면<br>   지금 대기중에 있는 도서들인데 정말로 기대가 저절로 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이 경제분야에서도 관심을 갖지 못하면 저절로 도태가 되는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읽어야 한다고 나만의 착각에 빠져있다. 여기서 중요한 책은 2011년 mit 경제학과 교수 아비히지트 베너리지와 에스더 듀플러가 공동 저술한 (2011)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배웠던 경제학이론이 왜 현실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 밣히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굉장히 쇼킹한 책이다. 특히 에스더 듀플러는 내가 알기로는 어떠한 경제학자들보다도 천재중에 천재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녀가 누구도 감히 누구나 수상하고 싶지만 함부로 수여하지 않은 신성불가침적상 40대 이하 경제학자에게만 수여하는 존 클라크 베이츠상을 이미 수여했기 때문이고, 초대수상자가 1947년에 수상한 폴 샤무엘슨이다. 이분에 대해서 짧게 언급하자면 솔직히 이분이 경제학에 이룩한 업적이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중들은 경제학하면 케인즈만을 기억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에 못지않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특히 그는 25살때 박사논문으로 &lt;경제분석의 기초&gt;(1947)를 작성하였는데, 처음 이 책을 보고 그 놀라움을 이루 묘사할수가 절대적으로 없었다. 어떻게 25살에 이런 대단한 책을 만들었을까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모든 경제학적 사고를 뒤집으면서 새롭게 수리적으로 증명할때는 그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마트 듀플러는 학문의 집필실에만 머무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3세계에 가난한 동네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모든 현상을 분석하는 열혈행동가이다. 사실 그녀가 이 상을 봤을때 처음기사를 보고 &nbsp;의아했다. &nbsp;내가 알기로는 계발경제학의 대가는 같은 대학의 대론 에이스모굴라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에이스 모굴라의 경제성장학 책 일장을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 '미라클'이라면서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이 있다. 물론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로버트 루카스 2세이다. 눈여겨볼 지점이 아닐수 없다.&nbsp;<br><br>그리고 또 한권의 책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2003년에 매경이코노미스트를 통한 기사로 &nbsp;처음접하고 무려 10년 동안 내가 그녀의 사랑을 아무조건없이 바라보며 아낌없이 지치지않고 나의 사랑이 완성하기를 바랬던 심정으로 기다려왔던&nbsp;<br> 대니얼 카네만, 이분의 처음 생각을 접하고 내가 그동안 배웠던 경제학을 떼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화끈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웠던 그분이다. &nbsp;그러니깐 인간의 사고가 합리적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다시 한번 우리들의 인지오류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는 것인데 예전에 경제학에 대해서 신나게 토론했던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도 경제학의 기본개념은 인간은 나름대로의 합리적 사고를 하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점이다. 그러니깐 나도 합리적 기대학파와 행동경제학 그 영역을 서로 왕복하며 기웃거리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명쾌한 결론은 아직도 요연한 편이다. 나의 경제학 출발점은 항상 인간은 언제나 우수하다라는 합리적 기대이론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금융시장의 귀결도 결국에는 효율적시장에서의 합리적 판단이 아니게느냐가가 나의 지금 생각이다.&nbsp;<br>아마도 이달은 이책들을 읽으면서 희희낙락하고 읽을 나를 발견하니 매우 기쁘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82/46/cover150/8954617786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7786</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생각많은 어린이</category><title>당신의 욕망을 욕망하는 일</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56834</link><pubDate>Mon, 09 Apr 2012 1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568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52063&TPaperId=55568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38/60/coveroff/89258520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005886&TPaperId=55568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1/41/coveroff/600000588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999009&TPaperId=55568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9/28/coveroff/89879990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16475054&TPaperId=55568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56/28/coveroff/371243098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다른 삶. 어떤 삶이요? 어째서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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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다면 누구 하나는 묻지 않았을까. 강물이 흐르듯&nbsp;흘러가는 게 삶인데, 다른 삶을 살라니, 나는 내 삶조차 정의내리기 혼란스러운데, 대체 당신이 얘기하는&nbsp;다른 삶이란 무엇인가요. 언젠가, 미이라의 전복된 이미지를 설파하는 프리젠테이션 발표자에게 질의자로 예정된 내가 질문했다. 미이라의 왜곡된 이미지를 탓하려면 일단 미이라의 원 이미지를 먼저 다수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미이라의 원 이미지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결국, 아무 것도 '원(original)'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설 &lt;은교&gt;에서 이적요는 제자 서지우에게 밤하늘의 별이 반짝인다는 것마저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고정된 이미지일 뿐이라며, 전복되지 못하는 사고(생각)로는 어떠한 시적 번뜩임도 찾을 수 없다는 강의록으로, 시, 나아가 문학의 한정된 둘레와 보수적 문학계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결국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독자, 아니 그보다 더 큰, 세상에 고하는 일침이 된다. 별빛이 반짝인다는 사실마저도 당신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허상, 고정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면서. 문학에서는 허상과 실질의 괴리만이 대상을 빛나게 한다. 언어도, 이미지도, 메시지도. 아마 다른 어떤 대상에 대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안정을 원하는 동시에 변화를 추구한다. 욕망과 열정, 변화와 괴리는 맹물에 뿌려진 달콤한 설탕 아니면 소금 같은 것이다. 어느 하나만 있거나 둘 다 흔들리거나 하는 한, 갈대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정과 경직된 결혼생활, 고정된 인간관계와 환경 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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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과 변화의 어디쯤. 그것만이 삶을 가능케 한다. 결국 부서질 어떤 삶도,&nbsp;반짝임이 눈부셔&nbsp;외려 어두운 어떤 절망도, 침잠하는 고요의 찰나에도 나만 다른 삶을 살아도 될까요, 하는 의문을 품는다. 사랑, 일, 사회, 사상, 신조, 신앙, 가치관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nbsp;여전히 허락되지 않은, 찢어발겨진 허무의 삶을 나는 이 영화 &lt;이민자&gt;에서 본다. 지독히 열망할 수록 그림자는 훨씬 더 짙은 법. 욕망이 원칙을 능가하는 세상은 아름다운가. 아님 반대가 평화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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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보고 영화에 꽂힌 건 오랜만이다. 잡지 표지모델 같은 두 남녀의 깊은 포옹과 입맞춤(입맞춤이 깊었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 수 없..). 여자는 조막만하게, 허리는 더 잘록하게, 허리를 감싼 남자의 손은 의도적으로 더 크게 표현하면서 깊어지는 욕망과 열정의 강도를 표현했다. 사진은 정말로 모든 걸 품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가졌다. 적어도 갖고 싶어하는 걸로 보인다. 욕망을 욕망하고, 욕망하는 욕망을 더불어 욕망하면서 점점 내가 당신을 원하는지,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내가 당신을 욕망하는 나 혹은 당신의 욕망을 원하는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면서 달리는 방향이 어긋난다. 여자의 안에서 갓 나온 남자가 그러하듯 욕망이 제대로 분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은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일방의 욕망이 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므로&nbsp;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1930년에 나온 브뉘엘의 &lt;황금시대&gt;는 지독히 매력적이다. 필모그래피 전체가 적절한 성욕분출을 허용하는 작품들이므로, 황홀이 극에 달한다.&nbsp;한때 내가 베르니니와 클림트를 보며 느꼈던 엑스터시가&nbsp;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사망한 이 감독에 의해 철저히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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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것도, 누이를 사랑하는 남자도, 아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어린 여자도, 한낱 성욕으로 여자를 범해 아이를 잉태한 억세게 운 좋은 남자도, 사랑하는 행위와 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 사랑하고자 하는 자연적 육욕과 좀 더 고결하다 믿는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 않는다. 버려진 삶을 책임지는 일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여자에게 자신의 몸과 몸안에 잉태된 아이까지 모조리 책임지라는 건 얼마나 모질고 가혹한가. 아버지의 아이를 배고 사산하고 낳은 여자라는 말로 이 여자의 벅차고 고된 삶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어째서 하루에&nbsp;두 끼 이상, 최소한의 잠, 추위,더위를 느끼는 감각, 짐승 같은 짓으로도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까. 오빠나 남동생에게 시집가고,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고, 자매가 한 남자에게 안기는 일련의 일들과 아버지가 딸을 범하는 행위는 동급이다. 이것조차 이적요의 말로 이해하면 고정된 이미지, 만들어진 이성일 뿐 본능의 도덕성은 아닐거란 사실이다. 신은 대체 왜. 인간을 어떻게 믿고 이 모든 걸 허락하셨나.&nbsp;오늘날 욕망이 도덕을 이겨 비극을 낳은 경우, 아무리 예쁘고 건강하고 소중하더라도&nbsp;생명이 꿈틀거리지 않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더러 했다.&nbsp;도덕적이지 못하게 태어났대서 태어남을 비난한다면, 기회의 평등을 빼앗는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장 현대화되고 제일 이성화된 현 사회는 이 모든 폭력을 묵인한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 행위를 단지 형벌로 처벌할 수 있는가. 형벌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되갚아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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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원하는 행위가&nbsp;자연스럽듯,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를 품고픈 나이든 이들의 욕망도 자연스러워서, 그건 이성으로 통제될 뿐이지, 자연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학 속에서 너나할 것 없이 설파하고, 실제로도 왕왕 벌어지는 이 '짐승 같은' 일들이 단지&nbsp;꿈인 게 아닌 걸 보면, 욕망은 내재되어 있지만 욕망을 찍어눌러 억제한다는 이론이 그 반대보다는 더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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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욕망하는 아버지는&nbsp;실제로도 존재한다. 당연히 문학으로도 존재할 밖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이&nbsp;여자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는 일과는 별개로, 여자의 삶은 이해되어야 한다. 어릴 땐, 아빠나 오빠, 동생에게 꽁꽁 숨겨진 몸을 언제부터 가까웠는지도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는 보일 수 있다는, 평생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낳아준 이는 갖지도 얻지도 못하는 몸을 타인에게는 허락한다는 사실이 비이성적이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많은 것에 의문을 품었으니까. 알을 낳고 품는 인고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로 잉태되는, 고귀한 존재의 삶이 늘 불공평하다 여겼다. 책임이 사라진 생명잉태가 가능하게 하려면, 태어난 즉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해체되어야만 한다. 어떤 동물들처럼.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고리는 바로 이게 아니었을까. 끊어낼 수 없는 천륜의 관계가 허락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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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물 받은 전자책은 역시, 가끔 프린트용 자료로, 대부분 예상대로 만화책 보는 일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싸돌아다니는데 재미 들려서, 나는 지금, 놀러간다. 데이트 하러 ^_____________^]]></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56/28/cover150/3712430987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16475054</link></image></item><item><author>댈러웨이</author><category>상념의 주크박스</category><title>존 업다이크의 래빗 사랑 40년, [달려라, 토끼]</title><link>http://blog.aladin.co.kr/711575116/5559160</link><pubDate>Tue, 10 Apr 2012 1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1575116/55591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849010331&TPaperId=555916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05/85/coveroff/184901033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316183873&TPaperId=555916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44/21/coveroff/03161838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375842209&TPaperId=555916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7/66/coveroff/03758422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679444599&TPaperId=555916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4/59/coveroff/06794445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39447273X&TPaperId=555916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04/1/coveroff/039447273x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711575116/555916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nbsp;<?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nbsp;</o:p>
누구나 책방을 갈 때 마다 손에서 들었다 놨다 하는 책들이 항상 있기 마련일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책방 보더스(Borders)를&nbsp;참새가 방앗간 그냥&nbsp;못 지나치듯 수시로 드나들던 시절 존 업다이크의 래빗 연작 4권이 내게는 그중 하나였다. 업다이크에게는 어설프게나마 항상 빚진 마음 같은 것(내가 뭐라고?), 그러니까 그의 작품을 한 두 권 정도는 제대로 읽어줘야 하는데, 와 같은&nbsp;마음이 늘 있었다. 그런데도&nbsp;보더스가 매장을 정리하면서 펭귄에서 발행한 4권의 연작을 반값에 처리를&nbsp;할 때&nbsp;책장들이 너무 누렇고 표지가 긁혔다는 말도 되지 않는 구실로 나는 구입을 하지 않았었다.&nbsp;사실 당시에는 공부를 하고&nbsp;있었던지라 몇 날 며칠이 될지, 그러다 몇달이 될지 모를 시간을 달려들어 그 두꺼운 4권의 책들을 읽을&nbsp;엄두도, 또 그럴 심적&nbsp;여유도 없었다는 말이&nbsp;더 솔직한 이유였을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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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에서 펴낸 [Marry Me]라는 책을 통해서 존 업다이크를 처음&nbsp;접하게 됐다.&nbsp;당시 버지니아 울프의&nbsp;어느 책 한 권을 읽다가 울프의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밀도 높은 의식의 흐름, 그 문장을 쫒아가지 못해&nbsp;거의 망연자실해 있던 차에 집어든 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nbsp;업다이크 역시도&nbsp;시선이 포착하는&nbsp;사물, 외관에 대한&nbsp;묘사같은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지치지 않는 내면 풍경 묘사를&nbsp;뺨 치는 것이어서 만만히 볼 작가가 아니었을텐데도, 어쨌거나 나는&nbsp;점심시간마다 그 책을 들고 나가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구구거리며 모이를 쪼거나&nbsp;벌써부터 일에 지친 회사원들이 그들의 간소한 점심을 펼쳐 말없이 먹던 공원에서 두 부부의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내 기준에서는)&nbsp;얘기를 한참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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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o:p>문학동네에서 정영목 번역가의 번역으로 연작 중 제1권인 [달려라, 토끼]가 발행됐다는 것을 근간에 알게 됐다. 나는 반가워서 주문을 했고 존 업다이크의 그칠 줄 모르는 수려한 언어의 흐름과&nbsp;실타래처럼 풀어지는 이야기에 지루한 줄을 모르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우리의 래빗이라는 긍휼한 인물을 향해 쏟아지는 웃음과 한숨을&nbsp;동시에 뱉아가며&nbsp;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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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청춘-래빗은 결혼을 했으나 그를 포함한 그 주변 인물들은 여전히 철도 들지 않은 청춘인 것이다-들의 대책없는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살면 안되지’라고 중간중간 나는 혀를 끌끌 차거나, 도대체 남자라는 동물들은 정말 이렇게 생겨먹은 것인가 새삼 놀라워도 해 보다가, 존 업다이크가 1960년부터 대략 10년 간격으로 나이 들어가는 래빗에 관한 연작들을 펴냈으니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찾게 될거라는 생각’ 으로 마냥 현실에서 달아나기만 하려는 이 26세의 래빗이라는 인물이 36세가 되고 46세가 되고 56세가 되어서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 변모 과정이 정말 궁금해졌다. 일단 제1권을 읽었으면 나머지&nbsp;연작들을 읽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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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연작 제1권을 읽고 나니 존 업다이크라는 이름에&nbsp;빚진 무거운 마음같은 것도 얼마는 덜은 기분이라 홀가분하기도 하다. 각각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3권과 제4권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nbsp;갖게 하기&nbsp;위해서라도 어서 나머지 책들도 번역되어 나왔음 하는 마음이다. 연작 전 4권을 한 권으로 묶어서&nbsp;발행한 [Rabbit Angstrom]도 있지만, 워낙&nbsp;활자를 작게&nbsp;찍는 펭귄이나 타 출판사들의 책을&nbsp;고려했을 때 읽기가 많이 힘들지 않을까 싶다.&nbsp;커버는 펭귄에서 나온 것도&nbsp;괜찮은데, 보아하니 알라딘에는 없는 듯.&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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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의 왕성한 문학/비평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라는 것이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인지,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 번역된 책들은 꽤 되는 것 같은데도 그의 존재감은 미미한 듯 해서 좀 아쉽기도 한 것은 어쩐 오지랖인지. 같은 번역가가 계속해서 래빗 연작을 번역할지, 또는 연작이 번역이 되어서 나오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읽는 책들 중 우연하게도 정영목 번역가의 번역작이 많은 것 또한, 사족을 달자면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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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래빗 연작의 사실상 완결은 2001년 단편 소설집 [The Licks of Love]에 수록된 'Rabbit Remembered'<RABBIT Remembered></o:p><o:p><RABBIT Remembered><RABBIT Remembered><RABBIT Remembered>에서 마무리된다.</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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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구글 검색을 안 할 수가 없다. (하긴 책 뿐 만이 아니라 뭘 하든 구글 검색이란 이제&nbsp;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지 싶다.)&nbsp;&nbsp;존 업다이크가 문학/예술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내세운 기본 5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그 겸양스러운 규칙들이라는 것이 날을 세우고 덤벼드는 작금의 비평가들에 비하면 참 인간적인 예의를 갖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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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책들에서 이러저러한 음악가들이나 작가들을 한 번씩 언급하면 그 이들이 새삼 조명을 받는 것으로도 알고 있는데, 그의 오래된 수필집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1968년 동경 상경의 봄날을 회상하는 &lt;존 업다이크 책을 한 권 들고 상경하던 날&gt;이라는 에세이 한 꼭지를 실었다.&nbsp;에세이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기에 쉽게 찾아서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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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아무래도&nbsp;래빗의 다음 얘기가 궁금해져 나머지 책들을 사야겠다는 심사로 비좁고 어두워서 갑갑한, 그러나 이제는 보더스도 사라지고 없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네 디믹스(Dymocks) 체인점을 방문했지만 그곳에는 존 업다이크의 그 많은 작품들 중 단 한 권도&nbsp;비치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놀라워라.) 
&nbsp;&nbsp;
어찌됐든, 없는 존 업다이크의 책들 대신에 나는&nbsp;노벨상을 수상했으나 호주라는 변방의 나라 작가라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고 패트릭 와잇(Patrick White)의 미발표 유작 신간&nbsp;[The Hanging Garden]과, 세 권을 두 권 값에 살 수 있는 행사 덕분으로 그간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던 엠마 도너휴의 [Room],&nbsp; 마커스 주삭의 [The Book Thief], 제니퍼 이건의 [A Visit from the Goon Squad] 를 구입했다. 목에 걸린 가시를 제대로 제거하려면 읽기까지 곧 마쳐야 할터인데, 어디 두고 볼 일이다.&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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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84/39/cover150/895461565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5651</link></image></item><item><author>꿈꾸는섬</author><category>주저리기</category><title>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redmhk/5559778</link><pubDate>Tue, 10 Apr 2012 2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redmhk/55597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1644&TPaperId=555977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2/90/coveroff/895913164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5031&TPaperId=555977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67/47/coveroff/895461503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681&TPaperId=555977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24/24/coveroff/89392066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2012년 들어서 좀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권의 책을 읽었고(사실 기억이 가물거린다)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lt;꿈꾸는 자 잡혀간다&gt;를 집어든 건 벌써 두어달 전의 일이다.
 
&nbsp;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락날락거렸다.
&nbsp;머리가 아팠다. 그러면 잠시 책을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한참만에야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nbsp;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nbsp;하지만 읽어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nbsp;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읽을수록 아파서 읽기가 힘들었다고 해야겠다.
처음엔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nbsp;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또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 동시대 사람들의 상처가 나를 자꾸만 후벼대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모른 척 지나쳐버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나다운 것보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내 가족이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nbsp;
1년전부터 남편은 건설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다.&nbsp;이곳에서 일한지 어느새&nbsp;2년이 조금 넘었다.
이곳은 전에 일하던 곳보다 일은 많지만 결제 조건이&nbsp;좋지 않다.
전에 일하던 곳은 한달후 결제라고 해서 일한 다음 달의 말일에 결제를 해주었는데, 지금 일하는 곳은 두달후 결제라 다음 다음 달의 말일에 결제를 해준다. 처음 계약할때부터의 조건이라 우리는 늘 두달 전에 일한 것을 그 달 말일에 돈을 받게 된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은 늘 빚을 지게 되는 상황이다. 두달 후 결제는 말이 두달이지 실제는 세달만에 결제를 받게 된다. 이런 지경이라 결제일을 제때 지키지 않으면 전전긍긍하게 된다.
작년 6월부터 꾸준히 결제일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때문에 늘 전전긍긍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달엔 제때에 지급하기도 했지만 밀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이번달에도 3월말에 결제되어야 할 돈이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3개월을 꼬박 일한 댓가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러면 남편은 원래 건설쪽 관행이야. 하고 말한다.
원래 그렇다는 게 난 사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편 회사의 남편처럼 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20여명 이상인 걸로 안다. 20여명의 결제금은 몇억대가 된다. 그 돈이 개인에겐 얼마 안되지만 모두 합하면 큰 돈이 된다.
유류비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형편이라 모두들 순수익은 많지 않다. 게다가 빚내서 생활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결제가 늦어지면 늦어지는대로 금융권에 불필요한 이자가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화가나고 분통이 터지는 몇몇 사람들은 파업하자고 한다. 남편도 가끔은 파업해야한다고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파업에 동참해야한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다. 파업은 결국&nbsp;나중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다. 늦게 결제되긴 하지만 이미&nbsp;일한 댓가는 언젠가는 받게&nbsp;된다. 파업한다고해도 또다른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 파업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nbsp;
몇달 전 운반비 단가 조정을 위해 사업장과 협의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남편과 머리 맞대고 운반비 단가가 필요한 경우와 단가율을 세부적으로 계산해서 표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단가인상이 아니었기에 사업장에서 제시한 조건보다 낮은 인상율로 타결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남편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결제 문제도 해결하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답안은 없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파업을 선택한다는 것도 온몸을 불사르고 사업장을 휘저어 놓을 수도 없다. 그 어떤 극한의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 우린 사실 두렵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어찌어찌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의 경우에는 파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름을 넣을 수 없어서 차를 세우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 같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차에 기름을 넣어야하는데 카드한도가 이미 꽉 찼고, 카드결제가 되지 않아 리볼빙으로 돌렸는데도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분의 경우를 보면&nbsp;갑자기 오른 전세금도 마련 못해서 월세로 전환까지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정말 사람 살기가 싶지가 않다. 아들 녀석은 휴대폰 이용요금 내달라고 독촉하고, 부인은 월세금 내야한다고 독촉하는 상황이란다.
정말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헛갈린다. 매일 열심히 새벽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곤두박질 치고 있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 같다.
좀 더 생활비를 줄인다고 해도 입으로 들어가야 살고, 어딘가에 누워 잠을 자야 살 수 있지 않는가.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건사해야한다면 더 한 일일 것이다.
두렵다. 어느날 갑자기 살기 싫어졌다고 말할까봐.
난 늘 세상의 밝은 것들을 쫓고 싶어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것, 편안하고 즐거운 것, 행복하고 기쁜 것......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것 하나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잘 사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어떻게해서 그들이 부를 이루었고, 성공하였고, 지금의 그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는지......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성공만을 그들의 부만을 부러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며 키웠던 생각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책에서 제시한 해결책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슬프다.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처럼 온몸에 불을 붙여야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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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달여를 책을 읽지 못했다. 어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큰 아이 학교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황석영의 &lt;낯익은 세상&gt;과 김형경의 &lt;사람풍경&gt;을 빌려왔다.
 
 
&nbsp;&lt;낯익은 세상&gt;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은 역시, 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전번주에 읽고 반납해버렸더니 세세한 기억은 별로 없다. 꽃섬에 살았던 사람들, 사람들이 쓰다버린 물건을 주워다 팔고 생활하는 그들의 곁에 김서방네가 사는 예전의 평화로운 풍경의 마을이 현실에도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다. 죽음의 이면에 담긴 또다른 삶의 공간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lt;사람풍경&gt;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다. 외국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찾은 심리분석, 나의 유아기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람 사는 일이 또 그렇지, 그러고 있다.
&nbsp;
아주 만화스럽게 스마트폰이 변기 속에 퐁당했다. 바로 전원을 끄고 말렸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2~3시간 뒤에 센터에 다녀왔는데 메인보드가 약간 부식되었지만 사용엔 문제가 없단다. 다행히 돈은 안 들었다. 메인보드가 15만원정도 한다는데......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엄마, 봄비가 오면 꽃이 피겠지?" 하고 딸아이가 내옆에서 말했다. 봄비가 내리고 꽃이 피는 일이 기다려진다. 꽃이 피고나면 우울했던 마음들이 조금 더 밝아질 거라고 기대한다.&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24/24/cover150/893920668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6681</link></image></item><item><author>Shining</author><category>한 장</category><title>이야기 나무를 찾아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752933174/5540613</link><pubDate>Mon, 02 Apr 2012 0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52933174/55406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1635&TPaperId=554061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6/77/coveroff/893783163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1600&TPaperId=554061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6/85/coveroff/89378316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1597&TPaperId=554061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6/85/coveroff/893783159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1236&TPaperId=554061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3/53/coveroff/89378312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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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 스포일성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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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첫 시간, 첫 마디. 얼마나 많은 말을 생각하고 바꿔보고 고치며 고민했을까. 강사의 선택은 세헤라자데였다. 부분부분 젖은 머리칼을 대충 털면서 잠이 완전히 달아나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은 세헤라자데에서 시작해 끝나는구나, 속으로 내심 웃는다.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책에서 소설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지난 번 페이퍼에 쓴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잘못됐다. 글쓰기의 욕망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고 하는 쪽이 옳겠다. 이승우의 책은 세헤라자데로 시작한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뒤는 ‘내일’ 해주겠다고 말하던 그녀. 왕에게 ‘내일’은 없는데, 그는 이야기를 위해 없는 내일을 그녀에게 허용한다. 
&nbsp; 
이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사색하게 힌다.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한다(구원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야기에 의해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그러니까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야기의 부재는 죽음이고, 이야기의 존재는 삶이다. 삶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가 삶을 만드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도 없는 것. -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고 있다
&nbsp; 
나는 언제나 이야기보다는 글을 신뢰했다. 작가의 문장을, 문체를 이야기의 구조보다 더 주목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을 보며 걷다가 가로수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 몇 번,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에 놀란 일, 약속 장소를 지나친 적, 친구가 화장실을 간 사이 책을 꺼낸 적, 기어이 약속을 미루고 만 경험들. 그건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파생한 결과일 것이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는 욕심을 가진 왕, 이야기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세헤라자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우리들. 어서 뒷이야기를 읽고 싶어 친구의 말에도 딴 생각을 하게 되고,&nbsp;읽다보면&nbsp;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하는 나.&nbsp;이야기에 대한 갈애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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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이야기의 나무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한 명의 작가가 있다. 이름은 온다 리쿠. 국내에 이미 많은 책들이 번역되었고 그만큼 고정독자와 팬을 거느리는 유명한 일본 작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생각해보니- 벌써 5년 전, 『밤의 피크닉』에서였다. 우연히 읽은 책이었는데 당시에는 재미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요, 성장소설과 추리소설을 섞어 놓은 오묘한 분위기에 매료되기보단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주목하게 했던 것은 『굽이치는 강가에서』.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으로 읽다가&nbsp;중간에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했는데 이동하는 시간 내내 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 시간을 달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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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장, 단점이 명확하고 덕분에 호불호 또한 극명하게 나뉘는 작가다.&nbsp;장점이라 하면 역시 활발한 작품활동과 다양한 작품의 양.&nbsp;스토리텔링이 자극적이고 개성이 있어 프로모션에 적합하고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춰&nbsp;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있어 가히 최고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 몇 편 되는지라 한 권을 읽으면 절로 다른 가지로 뻗어나갈 수 밖에 없는 가지치기의 장점까지. 그에 반해 단점 역시 치명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모든 글이 용두사미라는 것. 작가의 열의가 줄어든 것인지, 단순한 변심인지 이야기의 구조가 크고 장황한 것에 비해 굵고 탄탄하지 못하고 캐릭터 또한 처음과 끝이 다르다. 때문에 지독한 허무함 내지는 실망감을 표하게 되는 책들이 종종 나오게 된다. 게다가 여러 작품을 한 번에 쓰는 것인지 문장 또한 농담(濃淡)이 제각각이라 전체적으로 얼룩덜룩한 몽타주 같은 인상을 준다. 또 하나는 지나친 미의식. 뭔 놈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답고 신비하다. 처음에는 그 또한 황홀했으나 나중에는 불만스러워지는 현실성 부족한 유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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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독하게 냉정한 독자인 나는 그녀를 쉬이 믿거나 두둔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에서 좋아하는 부분과 아닌 것, 강점과 약점을 냉철하게 찾아내고 때로는 심하게 비판한다. 그런데도&nbsp;그녀의 글을 읽게 되는 것은 분명 어떤 매력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그 매력이 서브컬처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 이야기 나무의 열매를 맛보는 은밀한 달콤함일 것이고. 온다 리쿠의 인물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인물들만큼 수다쟁이다. 대부분 의미없는 때로는 의미가 생기는 말, 말, 말. 그 말들 속에는 분명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있고 작가가 담고자 하는 서브컬처가 있고 캐릭터의 성격과 개성이 있다(타란티노가 그렇듯). 그래서인지 한없이 구술되는 그 수다를 읽다보면 머리가 아프거나 시끄럽다기보다는 귀를 쫑긋 세우며 같이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 권, 이른바 삼월 연작. 이 책만은 누가 뭐래도 뭐가 단점인지 안다고 해도 별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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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다.「기다리는 사람들」은 회장님의 초대로 대저택에서 대단한 애서가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게 되는 고이치의 이야기. 엄청난 책으로 이루어진 저택에서 회장님 이하 그들이&nbsp;찾는 단 한권의 책.「이즈모 야상곡」은 일종의 로드무비. 성격도, 외모도, 나이도, 일하는 출판사의 방향도 다르지만 책 취향이 비슷한 두 여자. 그녀들 역시 그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지금 이 기차는 -아마도- 그 책의 작가로 추정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설정.「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두 소녀의 죽음이라는 결말로 시작해 시작을 추적해가는 과정이며 「회전목마」는 한 작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책의 구상을 서술한 글이다, 라고 한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소설이다. 그렇다면 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어떤 책'의 관점에서 그려보자.&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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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들 사이에서 풍문으로 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책은 저명한 작가의 숨겨진 책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기실 작가의 이름은 물론 성별, 나이, 출신, 심지어 공동저자인지&nbsp;아닌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단 200부만을 자비출판으로 찍어낸 책으로 책을 소유한 사람은 단 하루, 남에게 빌려줄 수 있고 당연히 절대 복사나 유출은 금지. 작가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켜줄 사람들을 신중하게 고른 덕분인지 현재까지도 엄격하게 지켜진 규칙 탓에 암암리에 존재하지 않는 전설처럼 전해진다는 책. 단지 규칙 뿐 아니라 내용마저 오묘하고 신비로워 그 실체를 만질 수 없는, 또는 기억할 뿐인 사람들에 의해 비밀리에 회자된다는 책. 제목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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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야기는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야기의 창조를 진행하는 순간, 책이 탄생하려는 그 순가의 목도(目睹)를 「이즈모 야상곡」은 완성된 책의 흔적을 좇는다.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이제 한 사람에 의해 탄생 될 이야기를 예고하며「회전목마」는 뒤틀리고 불완전한 작가의 의식을 따라 책의 구상되는 실체를 묘사한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고, 쓰고, 고민하고, 쫓는 책은 모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설정. 우리가 들고 있는 바로 이 책이 그들이 찾아 헤매는 글일수도 있고 전설의 책이 될 예정일수도 있다. 그저 우연의 일치에 의한 단행본일지도 모르고 전설의 책의 토대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 단행본을 덮을 때쯤 당신은 아마 몽롱한 마약에 취한 것 같은 여진을 느낄지도 모르고 어딘지 꺼림칙한 기분에 검붉은 책을 떨어트릴지도 모른다. 책 밖으로 이야기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책 밖으로 빠져나온 이야기는 이들만이 아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단행본) 속 「삼월은 붉은 구렁을」(미지의 책) 은 총 사부작으로 되어있다. 그 안에는 네 남녀가 숲 속을 여행하게 되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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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기다리는 사람들」에서 한 인물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제 1부작은 &lt;흑과 다의 환상&gt; 이라고 말한다. 부제는 바람의 이야기, 일종의 로드무비라고. 네 인물의 한가로운 여행. 이웃집 일상을 말하는 소소한 잡담부터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만이 아는 과거에의 공유, 미스터리어스한 경험. 네 명이 각자 돌아가는 안락의자 탐정이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해결(?)이 되는 사건도 있고 그저 그렇다더라, 라고 끝내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참 잘 떠드는 사람들. 한가로운 분위기와 현학적인 대화 덕에 팬층이 두껍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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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이 바로 그 이야기다. 세세한 상황이나 설정은 추가되거나 바뀌었지만 한적한 섬, 대학동창인 네 남녀, 쉴새없이 떠드는 사람들.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미스테리한 사건들, 추억을 빙자한 기억과 진실과의 조우.&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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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무척&nbsp;좋아하지만 사실 이 책이야말로&nbsp;온다 리쿠 단점 3종 세트 같은 책이다. 무너지는 서사와 싱거운 결말, 미남미녀만 등장하는 불안정한 미의식, 수다삼매경까지. 하지만 이 책에는 사람의 오묘한 감정의 곡선을 다루는 예민함이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화자가 바뀜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기보다는 설득력있게 들린다. 특히 마키오는&nbsp;나머지 세 인물과 (어찌보면) 가장 감정적인 관계로 얽힌 남자. 이 남자의 무심함, 이기적임, 본인이 이기적임을 알고 있는 정도의 상냥함, 어른스럽고 관대한 내면에 자리잡은 자멸적 자아 등등이 어쩜 그렇게 찔리는지. 이 책을 읽은 다른 친구조차 너랑 닮았다고 빈정(!)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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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는 「회전목마」에서 튀어나온 이야기다.&nbsp;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택한 작가의 상상 내지는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이 책의 전문이 된 것 같은 인상. 마찬가지로 세부적인 설정이나 대사,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결말 등은 바뀌었지만 줄거리 맥락이 똑같다. 판타지 영화에 등장할법한 호화로운 기숙학원, 출신이 불분명한 아이들, 엄청난 부(富)가 있지만 자유가 없는 공간, 불안정한&nbsp;인물과 수상한 인물, 부유하는 유령들이 등장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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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이 책에는 어떤 농밀함이 넘친다. 비밀, 불안,&nbsp;폐쇄, 금기의 농밀함이나 성적인 긴장감 같은 것. 아마도 이 아이들의 대부분이 매우 가까운(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해하실 가까움) 관계이기 때문일지도. 특히 레이지는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불완전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느껴질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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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소개'는 끝났다. 읽지 않고 보지 않는 사람과 무엇에 대해 말을 나누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은 없다지만 삼월 연작은 유독 심하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과는 무엇이 어떻게 흥미롭게 작용하는지 아무래도 공감하기 어려우니까. 단순히 어떤 내용이 어느 책 속에 담겨있고 어떤 내용은 책 안쪽과 바깥쪽에 동시에 존재하기에 흥미롭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만 해도 메타픽션이라면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훨씬 높게 칠테니까. 가장 재밌는 건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설명하는 내용이나 문체, 특징이 각권의 책과도 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lt;흑과 다의 환상&gt;을 두고 어딘가 어중간한 느낌이 든다, 수수께끼를 말하는데에 체력을 모두 소진한 느낌, 이라고 말하며 '1부는 거의 퇴고가 안 되어 있다, 쓰는 동안 시간이 흐르는 바람에 시작할 때와 끝날 때에 작가가 설정하고 있던 인물상도 미묘하게 다르고, 쓰기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부의 전체의 분위기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변해 버렸어.'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흑과 다의 환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인상이다. 만약 『삼월』이 시기적으로 먼저 쓰인 글이라면 『흑과 다의 환상』의 얼룩덜룩함은 고의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흑과 다의 환상』이 먼저라고 해도 작가의 자기변명이 된다. 이런 식으로 네 권의 책을 샅샅이 읽다보면 여기저기 부비트랩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여기 나왔던 인물이 저쪽에 나오고, 여기서 말했던 힌트가 저기서 다시 쓰이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영원한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약 이것이 모두 작가의 의도였다면, 온다 리쿠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굉장히 작가일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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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좋아했던 것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였고 그 다음은 『흑과 다의 환상』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안에서도 처음엔 「이즈모 야상곡」을 한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을 후에는 「회전목마」의 한 부분을 반복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한 편도 빠짐없이 모든 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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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이 아카네의 이상이었다. 우선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존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픽션.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nbsp; - 이즈모 야상곡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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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본인이 생각했던만큼 하고자 했던만큼 훌륭한 책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삼월 연작의 매력은 그녀 자신의 책에 쓴 말처럼 걸작은 아니지만 묘하게 오래 남는다. 아마도 그건 이 책의 이야기가 이야기 자신을 존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 아닐까. 『삼월』연작을 읽으면 그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을 믿게 된다. 세헤라자데를 살리고 왕의 마음을 바꾼 이야기. 이야기에 대한 하릴없는 욕망. 언젠가는 이야기가 꽃피는 나무를 찾을 수 있겠지, 근거없이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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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은 단행본을, 「」은&nbsp;『』안의&nbsp;에피소드(연작)을 말한다. 가상의 연작은 &lt;&gt;으로 구분한다. &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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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작가가&nbsp;『흑과 다의 환상』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로렌스 더렐의『알렉산드리아 사중주』역시 흥미로운 책. 『흑과 다의 환상』을 처음 읽었을 적만 해도 이 책이 국내 미번역이었는데 몇 년전 다행히 번역되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은 온다 리쿠 팬들이 출판사에 요청을 쇄도한 덕분은 아닐까 지금도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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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는 미즈노 리세 시리즈로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황혼녘 백합의 뼈』를 읽지 않는 쪽이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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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3/53/cover150/893783123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1236</link></image></item><item><author>cyrus</author><category>주저리주저리</category><title>잘못된 공부는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공해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haesung/5542947</link><pubDate>Mon, 02 Apr 2012 2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haesung/55429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96067X&TPaperId=55429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94/99/coveroff/896496067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20551&TPaperId=55429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16/49/coveroff/8963720551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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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학생들을 화나게&nbsp;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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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 있다. 친척에서부터 친구들 그리고 온라인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몇 몇분들&nbsp;또 교수님까지,&nbsp;사진을&nbsp;공유하고&nbsp;상대방의 스토리에 간단한 댓글 또는 문안인사를 남긴다.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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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보니 항상 카카오스토리 어플을 열면 제일 먼저 내가 친구추가했던 사람들이 업데이트한 스토리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매일 카카오스토리에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사촌동생이 있다. 이번에 고등학생에 입학하게 된 여자아이인데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크게 재미&nbsp;들린 모양이다. 
&nbsp;
어느 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nbsp;스토리 업데이트에 5~10분 간격마다 사촌동생의 스토리들이 쭉 올려져 있었다. 나는 장남삼아 카카오스토리 하는 것을 줄이고 공부에 매진하라는&nbsp;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nbsp;차마 거기에&nbsp;댓글을 달 수가 없었다.&nbsp;동생이 쓴 글들이 대부분 짤막하면서도 학교 생활에 대한 불평, 불만을&nbsp;드러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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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나도 입원해서 학교 안갔음 좋겠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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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방과후 진짜 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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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방과후째고싶엉ㅠㅠㅠㅠ 집에가고싶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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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아 학교개짜증나 -- 수학진짜때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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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학교에서 이따구로 가르치면 학교 갈 이유가 없지
&nbsp;아 진심 짜증터진다 자꾸 욕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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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이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게 싫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며칠동안 쭉 사촌동생이 남긴 스토리 글들을 관찰(?)해봤는데 동생이 스토리 글에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와 말이 '불만', '짜증', '화난다', '싫다' 가 제일 많았다. 이런 단어와 말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날 때 사용한다. 그동안 꾹 눌러져왔던&nbsp;불만과 분노의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nbsp;대화 속에서 표출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nbsp;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이런&nbsp;의미상 좋지 않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nbsp;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nbsp;그리고 정확한 뜻도 모르는 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비속어를 청소년들의 입에서 많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 중&nbsp;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다보니 비속어는 단순히 또래에게 하는 장난스러운 말이 아닌, 자신보다 나이가 높은 웃어른에게 반항을 한다거나 분노를 표출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돌발적인 반항심과 분노로 인해 어른 앞에&nbsp;해서는 안 될 비속어를 자신도 통제하지 못한 채 내뱉고 마는 것이다. 결국에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nbsp;스트레스와 분노를 제대로&nbsp;표출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nbsp;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불만 섞인 비속어가 입 밖에 자주 나온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nbsp;않다. 
&nbsp;
하지만 이러한 청소년들의 잘못된 심리상태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이 청소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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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nbsp;명문대, 아니&nbsp;안정된 삶을 위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nbsp;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수능시험 공부에 3년동안 매진해야 한다.&nbsp;3년동안 노력한 공부의 결실은&nbsp;1년 중 단 한&nbsp;번의 시험에 의해서 당락이 결정된다. 자신이 원하는 고득점을 받게 된다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지만 반대로 목표했던 점수에 못 미친다면 3년 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이 너무나 쉽게 와르르 무너지듯이 큰 절망감에 휩싸인다. 여기서 수능시험을 치뤄지고 난 후의 수험생들의 반응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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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은 재수를 선택함으로써&nbsp;비용이 더 들더라도&nbsp;공부 과정을 반복한다.&nbsp;을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점수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려고 한다. 대학의 전공이 자신의 취미에 적합한 지 아닌지는&nbsp;안중에 없다. 어떻게든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nbsp;예전에&nbsp;비해&nbsp;고졸자의 취업 우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nbsp;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수임을 부정할 수&nbsp;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름 듣도 보지 못한&nbsp;지방 변방에 위치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병은 원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자신의 수능점수만으로는 도저히 갈 만한 대학을 찾지&nbsp;못했다.&nbsp;차라리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 몇 년 동안 더 공부하는 것보다는 먼저 직장을 구하는&nbsp;게&nbsp;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nbsp;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고졸자를 채용해주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이렇다보니 병은&nbsp;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정은 앞에서&nbsp;언급한 세 사람에 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nbsp;자신의 인생을&nbsp;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nbsp;생각한다.&nbsp;그리고 자신이 처한&nbsp;상황에 고통스러워하고&nbsp;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인생의 허무함을 견뎌내지 못해&nbsp;옥상 위에서 떨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다음 날에 뉴스에는 수험생의 투신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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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을, 병, 정. 이 네 사람이 취한 삶의 태도와 방식으 서로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경쟁과 성적을&nbsp;강조하는 입시교육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경험에 인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nbsp;행복하지가 않다. 초, 중, 고, 총 12년 동안 '공부'만 해서 정작&nbsp;이들의 손에 쥔 것은 초라한 점수가 적힌&nbsp;수능 성적표일 뿐이다. 그 길고 긴 노력의 과정이 평가받는 것이&nbsp;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허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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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nbsp;불합리한 교육제도 속에서 자라난&nbsp;학생들이 공부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nbsp;것은 당연하다. 공부의 의미도 변질되었다. 단순히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가는 데&nbsp;실용적으로&nbsp;이용할 줄 아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nbsp;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성적을 획득하기 위한&nbsp;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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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nbsp;광주의 모 여고에서 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빠진다는 이유만으로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자퇴서를 강요해&nbsp;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nbsp;피해 학생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한 독서실에서 공부하기를 원해서 담임교사에게 정해진 기간에 자율학습에 불참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사를&nbsp;전화상담을 통해서 피력했다. 그러나 학생에게 돌아오는 것은 요구에 수긍하기는커녕 되려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려면 차라리 자퇴서를 쓰라고 답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광주학생인권조례에도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학습은 강제적으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몇 고등학교에서는 법규의 내용을 피해 강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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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학기 초에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의미로&nbsp;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nbsp;그러나&nbsp;꼭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능시험에서 좋은 점수 받을거라는 보장도 없거니와&nbsp;학생이 원하는 의사대로 독서실에 공부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거리가 없었다. 오히려 인권조례의 사항대로라면 학생의 자율적인 학습권을 보장해줘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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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학교 내, 그것도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교내 규정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교육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가 단일적으로 정해진 시간 규칙은 학생들의 학습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정해진 틀 안에서 공부를 하루 내내, 그것도 3년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해야될 판이니 학교 자체를&nbsp; 하나의 '감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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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교육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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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생들이 공부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은 비단 학교 책임만은 아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데 투자를 하는 부모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말 그대로&nbsp;내부의 적인&nbsp;셈이다. '감옥' 같은 학교에서 하루의 절반을 공부하고 난 뒤에 학생들은 집이 아닌 입시학원으로 향한다. 얼마 안 되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외우고 문제를 푸는 방식만 되풀이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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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유명 강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이범은 절대로 자녀들에게 해서는 안 될 사교육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학원 강사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nbsp;입시전문가답게 그의 세 가지 경고는&nbsp;이제 막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 둔 부모라면 귀 기울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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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초등학생 시기에는 선행 학습을 절대로&nbsp;시키지 말 것. 물론 공부하는 데 있어서 선행학습의 효과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선행학습'의 문제점은 일관적으로 반복하는 데 그치는&nbsp;과정이다. 학원에서&nbsp;선행 학습으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면 반복 효과로 인해 어느 정도&nbsp;효과가 있지만 지나친 선행 학습으로 인한 반복 학습은 오히려&nbsp;학생의 학습 유도를 저하시키게 되는 역효과가 있다.&nbsp;처음에 본 드라마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 드라마를 여러 번 재방송으로 보게 된다면 그 때 봤던 재미와 흥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부하는 내용도 너무 반복되면 공부하는 재미가 떨어진다.&nbsp;그는 이것을 '수동적 학습' , '관광식 공부'라고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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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초등학생 때 선행 학습으로 공부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종합학원에 다니지 말 것. 일반적으로 종합학원은 학생들의 공부 계획을 설정해주고 학생들은 학원의 계획에 맞춰서 수동적으로 학습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학습이 유지된다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형성할 수 없다. 특히 중학생이 되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해지게 되는데 이 시기까지 종합학원에 의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자신이 배우고 있는 학습 내용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된다. 자기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남이 정해준 공부가 더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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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고등학생들은 문제집만 열심히 풀지 말 것. 특히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들을 풀다 보게 되면 항상 처음 접하는 문제들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주도학습 과정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만 치중하게 된다. 특히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시험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답만 찾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매일 한 손에 들고 다니면서 풀고 있는 문제집 뒤에는 정답과 해설집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스스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면 좋은 공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공부 방법이 익숙치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문제집 뒤에 딸려 있는 정답에 먼저 본다. 그러고는 정답 해설집에 소개된 해결 과정을 머릿속에 암기한 채 학습한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이 매년 수능에 등장하게 되는 신유형의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범 씨를 이러한 학습 과정을 '정답 중독증'이라고 비유했는데 말 그대로 학생들은 공부할 때 너무 정답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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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교육은 '보충'의 성격이 강하다.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 '0교시 제도'와 '야간자율학습'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겨진다. 사교육 더 시키기를 경쟁전략으로 선택하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를 무조건 많이 시키게 된다. 이러한 부모들의 강요에 자녀들은 공부에 압박감에 느끼게 된다. 결국 사교육비 지불능력과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교육 본래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돌변한다. 계층 상승의 희망이 아니라 계층 고정이라는 좌절의 빌미로 작용한다.<BR><BR>학생에 대한 관심과 진실한 애정이 결여된 사교육은 대부분 공부 부담만 키울 뿐이다. 선생님은 학생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공부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의욕을 보일 수 있는, 그렇게 정서적으로 격려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자발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교육은 대부분 부모의 대리인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부모는 비싼 돈 들여서 하게 된 사교육인데 효과를 못 보면 본전심리까지 발동해 자녀들에게 더욱 공부에 대한 강요를 가하게 된다. 자신의 의견은 묵살한 채 사교육을 강요당한 자녀는 부모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불만과 원망을 끝내 표출하지 못한 채 방치한다면 폭력 또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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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는 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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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가수로 유명한 홍순관은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닌, 그저&nbsp;삶의 목표만을 위해서 공부밖에 모르고,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nbsp;사회제도는&nbsp;그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공해라고&nbsp;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습득 정도가 아니라 검소한&nbsp;태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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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남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삼갈 거란 말이지. 공부 잘해 출세하려고 선거에 몸을 던진 사람들 약력을 읽어보면 다들 일류대학에 나왔잖아. 그런데 막상 자리에 오르면 하는 짓들이 제 배 채우고, 남 괴롭히고, 나라 망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과정을 밟지. 너무 진부하고 뻔해서 식상할 따름이야. 왜 그럴까? 왜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올까? 그래, 바로 공부라는 공해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공부는 본디 숲처럼 다양하고 푸르고 맑고 신선한 것인데, 오염이 되어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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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홍순관『춤추는 평화』중에서, pp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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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회 교육제도, 아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했던 것 또는 지금도 하고 있는 이 공부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공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미 공부로 인한 공해는 수험생들이 있는 교실에서부터 발생하고 있다. 단지 일류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출세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면 급우의 학습노트를 훔친다거나 심지어 일부러 분실하게 할 정도로&nbsp;교실은 영화 속 '배틀 로열'처럼&nbsp;경쟁의 장이 되어버렸다.&nbsp;이러한 교실 속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nbsp;사회에 나가게 되면&nbsp;겸손, 협력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공부가 만들어버린 공해는 우리의 삶을 비뚤어지게 만들거나 심하면 질식시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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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로 인해서 생긴 사회의 공해를 말끔하게 걷어낼 수는 없지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게 되듯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그리고 실천이 있다면 이전보다 좀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비록 이것이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면 사회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nbsp;기대해본다.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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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16/49/cover150/8963720551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20551</link></image></item><item><author>poptrash</author><category>연신내 style</category><title>티코노프 블라디미르 혹은 나는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title><link>http://blog.aladin.co.kr/poptrash/5544702</link><pubDate>Tue, 03 Apr 2012 1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poptrash/55447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516&TPaperId=554470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20/80/coveroff/898431551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약속했던 원고 마감을 뒤로하고 술을 마신 지난 금요일, 나는 대학시절 선후배를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 시절 이미 고사(枯死)의 길을 걷고 있던 한 대중조직 산하의, 산하에 산하의, 그리고 다시 그 산하의 학생회에서 몇 대 회장이니 집행부니 하며 어울렸던 우리는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이르거나 늦은 군입대를 했고, 복학해 졸업을 했으며, 그저 짐작할 수밖에 없을 각자의 시간을 지나, 이젠 더욱 복잡해진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잘나가는 경제지의 기자가, 전망 없는 학과의 석사 수료생이, 제법 단단한 밥그릇의 공사 직원이, 몇 번의 이직 끝에 중소 건설회사의 인사담당이, 마침내 공무원이 되었단 말이다. 보시다시피 나 또한 이런 글을 붙잡은 채 마감을 밥 먹듯, 아니 술 마시듯 어기며 미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br><br>가벼운 농담과 함께 술잔을 나누던 우리는 이내 취했고, 2차를 갔으며, 다시 3차를 갔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8090’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작은 바. 나는 조금 놀랐다. 한때 유행했던 ‘7080’에 이어 ‘우리’ 또한 어느덧 네 자리 숫자로 호명되는 추억 장사의 고객님이 되었으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하긴, 썩 어울리는 장소이긴 했다. 그날 우리의 안주는 우리가 함께 보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과 기억, 그리고 기억뿐이었으니까. 너무 빨리 쉬어버린 김치처럼 너무 쉬이 추억이 되어버린 어떤 시간들. 몇 가지 사이드 메뉴가 있긴 했다. 부동산과 주식과 갑갑한 직장생활과 도무지 원활하게 굴러가지 않는 가계에 대한 이야기들. 말하자면 ‘현실’ 같은 것. 그건 제법 씁쓸한 맛이었다. <br><br>씁쓸함의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현실이란 대개 씁쓸하게 마련이고, 그것을 살아내며 어느새 변해버린 서로를 바라보는 일 또한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90년대 유행했던 후일담 문학의 기본 정조이기도 하다. 한때 당신과 나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이상을 꿈꾸었지만 불은 꺼졌고 이상은 깨졌으며 우리 모두 꿈에서 깨어난 지금 남은 것은 진탕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처럼 깨질 것 같은 머리와 텁텁한 뒷맛뿐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나날들이라는 비관 또한.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실은 할 수도 없다. 누구도 불꽃처럼 타오르진 않았으니까. 꿈을 꾸지도 않았으니까. 커다란 이상이 사라진 시대에서 우리는, 언제나 코앞에 닥쳐오는 현실, 현실, 현실을 살아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지극히 개인적인) 현실들에 대한 일종의 ‘픽션’인 동시에 박노자의 &lt;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gt;에 대한 서평이 될 예정이다. <br><br>뭐, 계획은 그렇다는 말이다. <br><br><br>현실 하나. 2001년 12월, &lt;당신들의 대한민국&gt;<br><br>스물두 살의 K는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 또한 고민 중이다. 바로 군입대. 동기들은 대부분 군대에 갔거나 곧 갈 예정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있다. 적어도, 누군가 그에게 해주길 바라는 일이 있다. <br><br>K의 한 학번 선배이자 학생회장인 Y가 술국에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K에게 말한다. 다음 학생회를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 네가 필요하다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K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듣는다. 듣기만 한다. 학창시절에 그 흔한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어느 순간 어떤 공명심이 치기가, 정체 모를 의무감이 그를 자극한다. 살면서 누군가 그를 그렇게 원했던 적이 있던가? Y의 호명에 응답할 의무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설마, 그는 생각한다. 형, 생각해 볼게요. 술국에 고기가 채 바닥나기도 전에 그는 자리를 뜬다.<br><br>사실 그에게는 처음부터 그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루초 막스의 농담. “나는 나 같은 인간을 멤버로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입하고 싶지 않다.”) 애당초 멋모르던 신입생 시절 붙잡고 술을 따라주던 선배들과의 친분으로 이어진 활동이다. 술 먹고 서로 싸우는 일을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렇다고 술만 마신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과나 단대 차원의 사업, 혹은 등록금이나 주한미군과 관련한 이런저런 시위에 곧잘 참석하기도 했다. 자신이 맡게 된 하부 조직에 ‘(미제에 심장에 박아버린다) 쇠말뚝’ 같은 몰취향한 이름을 지어놓고 낄낄대기도 했겠지, 아마.<br><br>그렇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분명 선배들이 내세우는 당위는 그 자체로는 옳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모순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논리에도 모순은 있었다. 그들의 태도 또한. 곤란한 질문에는 대개 대답을 얼버무렸으며 때론 윽박질렀고 종내 모두 술에 취해 소리 높여 민가를 합창하는 일로 자리를 마무리하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난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여름농활에 불거졌던, 한 여자동기를 둘러싼 Y와의 삼각관계가 있었다. 대저 피 끓는 청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br><br>하지만 K에게는 군대에 갈 마음 또한 없었다. ‘때마침’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박노자의 첫 책 &lt;당신들의 대한민국&gt;은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제사로 시작하고 있었다. 뉴스와 책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K에게도 생각이 없을 리 없다. 특히 박노자의 책은 그가 그때까지 막연하게 품고 있던 어떤 의혹, 또는 불만들을 비교적 명확하게 사고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K는 총학생회 산하에 있던 여성위원회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것을 독서의 결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그곳의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br><br>이제 현실이 등장할 차례다. 병역이라는 ‘현실’을 거부할 용기도, 신념도 없던 K는 결국 1년 남짓 몸담고 있던 여성위원회를 떠나 입대를 해야 했고, 육군 훈련소에서 6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후 전경으로 차출된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도리 없지만, 2년 남짓한 군생활 동안 K가 학생회나 여성위원회를, 하물며 박노자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여자친구를, 혹은 Y를 선택했던 여자 동기를 생각했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br><br><br>현실 둘. 2009년 6월, &lt;왼쪽으로, 더 왼쪽으로&gt;<br><br>스물아홉의 K는 3년차 직장인이다. 책으로 모든 것을 배우려고 드는 못된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그는 한 인터넷 서점의 인문사회 담당 MD로 일하고 있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책이 아니라 매출이고, 박노자 또한 팔아야 할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몇 년 동안의 모범 회사원 노릇이 그에게 일종의 ‘한국식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내면화하게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br><br style="color: rgb(103, 0, 0);">① 사람은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의로워진다.<br style="color: rgb(103, 0, 0);">② 인간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본에 의하여 기초가 부여된다.<br style="color: rgb(103, 0, 0);">③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별을 배제, 자본 앞에서의 평등- 엄밀하게는 자본을 통한 것만이 권위를 갖는다.<br><br>K 앞에 펼쳐진 현실은 스물두 살의 그것과는, 물론 군대의 그것과도, 다른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지는 신간 도서들, 수없이 오가는 업무 메일들, 보고서들, 기획서들… 이토록 넘쳐나는 활자 속에서 정작 그가 보는 것은, 아니 보아야 할 것은 숫자와 숫자, 그리고 숫자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가뜩이나 피곤한 직장인을 더욱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말하자면 많은 직장인들이 겪는 문제를 K 또한 겪고 있었던 셈이다. 굳이 늘어놓을 것도 없는, 당신도 나도 모두 이미 아는 이야기.<br><br>제대 후 일종의 부채감으로 유지하던 당적도 시끄러웠던 분당 사태 이후 끊어버렸다. 실망도, 분노도, 소위 말하는 환멸도 아니었다. 실은 별 관심 없었으니까. 다만 귀찮았던 것이리라. 대신 자동이체만 시켜두면 별문제 없고, 마음 속 한구석에 존재하는 어떤 죄책감까지 덜어줄 수 있는 해외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K는 일 년에 한 번씩 배달되는 후원아동의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도 배웠다. 물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언가를 사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라는 사실쯤은 깨달은 지 오래였다.<br><br>K는 여전히 이런저런 책들을 읽지만, (자신의 담당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비평서는 읽지 않는다. “그래, 맞아, 그런 문제들이 있지”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도 어느 순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고 내뱉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소수자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고작해야 한숨을 내쉬며 “그래, 그래, 사는 건 참 힘들지. 나 역시 살고 있고, 고로 나도 힘들다.” 같은 소시오패스 적인 삼단논법을 뇌까릴 뿐.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K 본인도 원치 않는 일이었고, 그러니 애당초 보지 않는 편이 편했다.<br><br>그때 박노자의 &lt;왼쪽으로, 더 왼쪽으로&gt;가 출간됐다. 그건 K에게 매출을 뜻했고, 더 많은 매출을 위해 박노자와 이메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물론 충분히 피곤한 K로서는 뭘 또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매출은 중요한 법이다. K는 오랜만에 박노자의 책을 읽고, 일종의 직업윤리를 발휘하여 그의 블로그의 글들과 지난 몇 권의 책 또한 훑어보았으며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박노자는 여전히 박노자였던 것이다. 옳은 말씀이고, 옳은 말씀이다. 좋아, 좋다고. (끄덕끄덕) 근데 나보고 어쩌라고? (차라리 눈물)<br><br>결국 적당한 질문을 찾지 못한 K는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질문지를 보낸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을. <br><br>“조금 바꿔 말하자면,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구현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예술 영화를 보고 고급스러운 전시회를 찾아다니듯, 흔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구입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적이 더 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요?”<br style="color: rgb(103, 0, 0);"><br style="color: rgb(103, 0, 0);">“스스로에게 위 질문을 던졌을 때 단숨에 ‘아니’라는 대답을 할 없었습니다. 아마도, 분야 및 직업의 특성상 너무 오래 그런 책들을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사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는 그저 변명일 뿐인 변명을 하면서. 그렇다면 이 사회에 의문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하지만 생활을 위해 지금 갖고 있는 직업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되는 생활인으로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br><br>돌아온 답은 친절했지만 K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의 책이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말하자면 너무 뻔한 모범답안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답.<br><br>“‘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심’이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지요. 진보적 NGO를 위해 약간의 금전적 기여를 한다든가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는 언론이나 그 언론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항의 전화 하나 건다든가… 작은 일 같지만 수천 명, 수만 명이 같이 하는 작은 일은 바로 큰 일이 됩니다. 그 ‘공동의 관심’의 영역이란 사라지면, 우리가 사회가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는 것은 바쁜 삶 속에서도 가능하지요.”<br><br>하지만 K에게는 자신이 기여를 할 진보적 NGO를 찾아볼 여유도, 항의 전화를 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삶은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고 판단한 것은 다름 아닌 그였으니까. 아마 그가 조금만 덜 피곤했더라면 웹상에 그의 인터뷰를 옮기는 대신, 당장이라도 답장 버튼을 눌러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니까 도무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니까요!”<br><br>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의 덫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 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br><br><br>현실 셋. 2012년 2월, &lt;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gt;<br><br>서른둘의 K는 2년차 프리랜서다. 좋게 말해 그렇다는 거다. 실상은 이런저런 매체에 서평을 파는 비주류 자유기고가일 뿐이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았다. 스물아홉의 현실 중에서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피곤함은 상당 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건 좋은 일일까? 글쎄, 언젠가 벤야민은 이렇게 썼다. <br><br>“피곤함과 함께 다음과 같은 소원도 일어났다. 실컷 늦잠을 잤으면 좋겠다는 소원 말이다. 나는 그러한 소원을 수천 번도 더 빌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소원은 정말로 실현되었다. 그것은 일정한 지위와 안정된 봉급을 받고 싶다는 희망이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에 일어났다. 바로 그때 나의 옛 소원이 실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lt;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베를린 연대기&gt; 59쪽)<br><br>K의 앞에 닥친 현실은 이제 이런 모습이다. 써야할 원고와 읽어야 할 책과 언제나 제자리인 한국어 구사능력과 때마다 돌아오는 각종 공과금과 항상 모자란 술값과 꽁꽁 얼어붙은 통장과 쥐꼬리만 한 고료와 또… 그러니까 당신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해서 지루한 그런 모습. 사실 스물아홉의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조직에서 받는 피곤함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한없이 영에 수렴하는 통장잔고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차지했을 뿐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조지 오웰 에세이집 &lt;나는 왜 쓰는가&gt; 중 ‘어느 서평자의 고백’을 읽기 바란다. 물론 나는 당신이 하나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쪽에 삼천 원을 걸겠다.)<br><br>이런 문제도 있다. 이를테면 박노자의 &lt;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gt;와 같은 책에 서평을 써야 하는 문제. 원고지 수천 매에 달하는 서평을 써왔지만 그건 대부분 소설이나 에세이, 가벼운 교양서에 국한된 것이었다. K를 공감불능 상태로 몰고 갔던 피곤함은 이제 사라졌지만, 습관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K는 책을 읽었다. 책만 읽었다. 물론 여자친구도 만나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지만,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사회비평서라니? 게다가 서평? 그럼에도 K는 쓰기로 한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언젠가 매출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겐 제법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br><br>K는 박노자를 읽는다. 스물두 살에 또는 스물아홉 살에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결코 같지는 않은 방식으로. 이제 그는 순진한 대학생이 아니고, 책을 파는 사람도 아니며, 얼치기 인터뷰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여전히 박노자이고, 그의 입장은 분명하다. K는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다. 끄덕인다. 또 끄덕인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서평을 쓰면 되는 것이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책을 읽는다. 읽는다. 읽는다. 마침내 책장을 덮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br><br>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선배들에게 휘둘리던 대학시절부터, 지치는 일에도 지쳐버린 직장생활을 거쳐, 남의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무언가 잘못된 거 같은데, 누군가 내게 그 이유를 좀 명확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대학생이 “무언가 잘못된 건 맞는데, 그런 걸 생각하기엔 오늘 밤도 이미 늦었고 나는 피곤해”라고 중얼거리던 직장인이 되었고, 이제 “무언가 잘못된 건 분명한데,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문제니 글이나 좀 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저술노동자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K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러니 원고는 작파하고 술이나 마실 수밖에. (아니, 잠깐, 정정해야겠다. 술을 마신 건 나였다. K가 아니다.)<br><br>자, 그렇다면 이제 K의 선택은…?<br><br><br>이쯤에서 내가 가련한 K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 나 역시 서평을 위해 박노자의 &lt;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gt;를 읽었고, 이 글을 썼다. K가 끝내 그 서평을 썼는지 어쨌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나라서 하는 말인데, 이제 슬슬 이 길고도 지루한 글을 끝마칠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br><br>“잠깐!”<br>당신은 물을지도 모른다. <br>“아직 시작도 안한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서평이야?”<br><br>당신이 책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묻는 거라면, 이런저런 매체의 신간 소개란을 참고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미리보기를 통해 김동춘 교수의 추천사와 머리말을 읽어도 좋겠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 또는 효용에 대해 묻는 거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br><br>나는 이 책을 덮은 후 나와 K를 위해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 당원가입을 했다고. 다만 이 글을 쓰느라 아직 가입서를 팩스로 보내지는 못했다고. 나는 여전히 이 책에 대해 논할만한 어떤 입장을 갖지 못했지만, 그런 입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 그건 말하자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다짐에 다름 아니라고. 어떤 책도 내게 그런 마음을 먹도록 만들지는 않았었다고. 그러니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br><br>아마 K에도 그것으로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다.<br><br><br>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330125933&amp;Section=01<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20/80/cover150/898431551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516</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