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 - 누구나 쉽게 배워 제대로 써먹는 그래픽 입문서 맛있는 디자인 시리즈
박정아(빨간고래) 지음 / 한빛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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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CC2019, 빨간고래 지음, 한빛미디어, 2019

일반 내근직으로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주로 엑셀로 숫자를 다루고, 워드나 파워포인트로 보고서를 만든다. 파워포인트의 경우도 보고 내용은 텍스트 중심이기는 하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체계도 등은 도형을 이용한 디자인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가끔은 도표나 차트를 넣기 위한 디자인 작업도 한다. 이때 파워포인트의 디자인 메뉴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곡선을 자유자재로 만들기 어렵고, 선도 매끄럽게 맞추기가 무척어렵다. 그래서 포기하고 적당히(?) 맞춰 표현하는 게 전부다.

요즘은 인포그래픽이 유행하다보니 사업의 내용 등을 메일로 안내할 때 인포그래픽처럼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는 파워포인트로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인포그래픽을 많이 본다고 저절로 실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매끄러운 선을 표현하고, 곡선을 조금더 자유자재로 다루고, 인포그래픽을 위한 디자인을 위해서는 일러스트레이터 사용을 권하지만, 쉽게 도전하기는 어려웠다. 파워포인트나 포토샵이 비트맵 방식으로 점을 찍 듯 표현하는 것이라면, 일러스트레이터는 좌표값을 사용하는 벡터 방식이라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 있어 접근 방식이 달라보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저항감으로 작용해 도전하길 꺼리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를 보고 입문자로써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 도전하게 되었다.

맛보기에 제시된 디자인들이 그동안 파워포인트를 통해서는 구현이 안되어 고민하던 부분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왠지 깔끔한 PPT를 넘어 인포그래픽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20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 기능만 다져두면 무척 쉬운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 한다. ‘20년간 실무에서 다져온 노하우와 학생들을 가르쳐온 배경으로 쉽게 마스터 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고 한다.

첫째, 컴맹도 따라 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
둘째, 필수 기능을 콕콕 찍어서 빠르게 익힐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혼자서 따라 하더라도 지치지 않도록 재미있어야 한다.
넷째,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실전 노하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다섯째, 책을 다 보더라도 항상 옆에 두고 찾아볼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저자 서문)

저자의 이야기처럼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책이 없더라도 책상 주변에 세월 둘 수 있는 단축키 모음은 정말 유용하다. ‘파일 관리에 유용한 단축키’, ‘화면 보기에 유용한 단축키’, ‘오브젝트 편집에 유용한 단축키삼면으로 인쇄되어 명패처럼 책상위에 올려놓고 쉽게 찾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기능 꼼꼼 익히기를 통해서 해당 기능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었다. 모든 기능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업을 하며 응용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 CC 2019> 에서 가장 재미있게 따라한 예제는 3D 입체 건물 그리기와 역동적인 느낌의 타이포그래피 만들기였다. 포토샵, 파워포인트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인데, 일러스트레이터를 이용하니 정말 너무 간편하게 작업할 수 있어 놀라웠다. 역동적인 느낌의 타이포그래피는 인포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모든 기능을 마스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디자인 작업이 필요할 때, 일러스트레이터로 표현하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렵고 복잡하다는 편견과 디자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내 스스로의 편견을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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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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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권석천 지음, 창비, 2019

재판은 사실을 다투는 것으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닐 수 있다. 드러난 사실보다는 감춰진 사실들이 많은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판사의 몫이기 때문에 판사는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판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거래하고, 행정관료화된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재판의 결과로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계산했다. 재판을 하라고 했더니 정치를 한 꼴이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양승태, 박병대, 임종헌 등 판사 개인의 일탈은 더더욱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역사의 시계는 반드시 거꾸로 흐른다. 우리는 반민특위를 통해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어떻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지 보아왔다. 이명박근혜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허점이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도 보았다.


사법농단에 대해서 보도되는 기사는 많으나, 기계적 균형에 빠져 일방의 주장과 반론을 나열하는 보도에 머무르고 있다. 사법농단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는 법무부장관 임명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어, 사법농단에 대한 기사는 단신정도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한 가운데 <두 얼굴의 법원>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척하다라는 부제처럼 현재의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의 전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법농단으로 비로소 드러난 우리가 몰랐던 법원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두 얼굴의 법원
하나는 국민 앞에서 자유, 평등, 정의라는 공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법원.
다른 하나는 대법원장을 받들고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의 법원(5)


분리 통치(divide and rule)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같은 조직 사람들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부당한 일이 맡겨져도 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62)


대한민국 헌법은 법원의 주인은 주권자인 시민이라고 말한다.
판사들은 대법원장을 주인으로 예유해서는 안 된다.
수사적 표현이라도 주인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오로지 주권자인 시민을 법원의 주인으로 받들며 재판해야 한다.(103)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제대로 재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존재다.
사법행정을 자기 뜻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독립하여 재판하는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아가야 한다.(103)


사법농단이 우리에게 알려진 건 이탄희 판사의 사표였다. <두 얼굴의 법원>20172월이탄희 판사가 사표를 쓰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한다.


이탄희 판사의 법원행정처 발령 à 판사 뒷조사 파일 존재 확인 à 사표 à 사표번복à 양승태 코트의 1차 조사 à 김명수 코트의 2차 조사 à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 à 양승태, 임종헌 구속과 재판까지를 그동안 언론이 단편적으로 다룬 부분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사법농단 전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은 그럼 법원행정처는 왜 판사들 뒷조사 파일을 만들고, 행정부와 재판거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었는데, 말미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통해 법원행정처가 작동한 방식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했는데,
열심히 다른 일을 해서 상황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이 닥치면 결국은 내가 가진 역량을 동원해서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하겠구나,
나 자신이 주체가 돼서 결정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 그 모습이 객관화돼서 보였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상황의 노예처럼 느껴졌다.
-
이탄희 (68)


우리는 유능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유능함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유능해야 할 때 유능해야 하는데, 무능해야 할 때 유능할 때가 많다.(76)


조직의 이익-실제로는 고위 조직원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존재이유에 등을 돌렸다.
존재 이유를 잊은 조직은 흉기보다 위험하다.
존재 이유 때문에 받게 된 권한을 자신들을 위해 휘두르면
그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이 입는다.(81)


문제는 그 믿음이 무엇이냐다.
과정상의 문제쯤은 무시해도 그 믿음은 유지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자신이 말하던 믿음을 이뤘을 때
그 믿음의 내용은 달려져 있는 것 아닌가.
절차적 정의를 지키지 않는 정의는 일그러진다.(104)


진상규명을 책임진 자는 야차와 같은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오직 사실만을 추구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누가 그 칼에 베이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156)


많은 이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했지만,
젊은 판사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이상은 보다 본질적인 것이었다.
법원이 바뀌어야만 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그대로 맞출 수는 없어도 이제는 정말 달라졌구나,
하는 신뢰를 받으며 재판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제까지의 노력이 의미있을 것 같았다.(285)


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
외형과 실질이 다르면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탄희 (286)


(양승태)그가 법관으로 살았던 42년간, 형사법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유신시대, 잔혹하게 고문당한 이들이 판사 양승태의 법정에 들어와
억울함을 호소할 때 그는 어떻게 판결했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심했을 소설 같은 공소장으로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나,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직접 피고인이 되고서야 뒤늦게 검찰 수사의 진면목을 알게 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검사들에 의해 기소돼 자신에게 재판을 받았던
숱한 피고인들이 느꼈을 고통에 대해서도 한마디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29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일동포 김동휘 씨 사건 등 4건의 간첮조작 사건에서는 배석판로, 강희철 씨, 오재선 씨 간첩조작 사건에서는 재판장으로 재판을 했다. 6건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오재선 씨의 경우 1심 재판에서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라고 호소했으나 재판장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은 오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내게 유죄가 선고되는 것은 곧 법원에 유죄가 선고되는 것이다.’
법원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던 조직논리를 다시 스스로를 지킬 방패로 삼고 있다.(292)


재판소 구성원들이 정신적 노예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 수 있겠는가?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을 거의 대부분 박탈당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과 시민의 기본적 인권을 지킬 수 있겠는가?
- 30
년 경력의 재판관 출신 일본인 교수, 세기 히로시(319)


시급한 것은 시민사회가 법원을 감시하는 일이다.
대법원이 사법행정을 어떻게 하는지, 사법이 권력화되지 않는지 시민사회가 주시해야 한다.
판결문의 팩트와 논리가 맞는지 파헤치고 따져야 한다.
법정에 들어가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판사들이 변하고 검사들이 바뀐다.(320)


대법원 판결로 일본 기업들이 내야 할 배상금 규모가 크다는 게
왜 국가에 손해가 될까.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한다고 해서
잘못된 판결인 걸까.(344)


임종헌 차장이 직접 작성한 문건에는
사법부가 국정운영에 협조해온 사례가 제시된다.(
)
기업, 국공립대, 은행권에 이익이 되는 것이 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것인가.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고, 국공립대 학생들이 기성회비를 돌려받고,
중소기업이 이기는 건 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이러한 사고의 밑바닥에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여기는
상당수 법관들의 통념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345)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 권력이 민사소송에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들 간의 분쟁인 민사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대법원(법원행정처)-외교부의 삼각 협의체가 3년 넘게 돌아갔다.(365)


청와대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사건이 매우 중요 사건이나
대법원 입장에서 많은 사건 중의 하나에 불과하므로
양 측에 윈윈(양쪽 모두에 유리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재항고를 인용함이 상당하다.
- 2014.12
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문건 (373)


적어도 영향 받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얘기를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해서는 안 된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영향을 미쳐놓고
왜 영향을 받았느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도덕적 비난을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게 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379)


판사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서 법원 전체가 비난받게 된다고
그 판결을 어떻게 나쁜 판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난받지 않는 판결을 하겠다는 것은 재판하는 자들의 자기부정 아닌가.(380)


한국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조직논리에 기대 움직이는 가부장제의 연합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걸까.
사법행정권 남용에 자꾸 이상한 프레임들을 갖다대려는 시도들에서
그들의 위기감이 느껴진다.(
)
사법농단은() 사법부와 판사들이 자기들끼리 허공에서 벌인 일이 아니다.
청와대 권력, 정부 권력, 국회 권력, 언론 권력

권력들이 손에 손 잡고벌인 일이다.(389)


한국의 보수가 군인들이 지배하던 안보 보수에서
머니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시장 보수로 변화했다.(
)
문제는 한국의 보수가 안보와 성장, 즉 북한과 돈 외에는
세상을 보는 다른 프레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
정치컨설팅그룹 박성민 대표(390~391)


여전히 양승태, 임종헌은 재판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구속으로 사법농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일탈로 몰아서 개인을 처벌하면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으로 언론도 호도하고, 시민들도 그렇게 믿는 경향이 있으나,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반드시 재발하게 되어있다. 재발할 때는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소위 엘리트들의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오만을 깨야 한다. 엘리트 사회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그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해쳐모일 뿐이다. MBC 이용마 기자가 검찰, 기획재정부, 외교부를 출입하며 느낀점을 언급했다는 글이 가슴 깊이 남는다. 이탄희 판사의 말처럼 사회는 절대로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며,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흐르게 하거나, 엘리트 독재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들의 조직논리는 이미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
엘리트들은 평생 자기 조직에만 갇혀 살았고,
그 밖으로 나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엘리트로 인정해주고
자기들끼리 보상해주며 살았다.
조직논리를 흔드는 외부의 침입이 감지되면
똘똘 뭉쳐 조직을 보호했다.
지극히 편협한 조직논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이 절대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양 큰소리친다.

- MBC 이용마 기자(391)


저는 세상이 저절로 잘될 거라는 식으로 낙관하지 않아요.
그건 저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
미루지 말고 제때 선택하고, 그후의 상황에 끈질기게 대응하고,
또 마지막에 저의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전부 다 필요했던 일이에요.(
)
희망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서 나오는 거예요.
-
이탄희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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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소속감 - 슬기로운 조직 문화를 위한 위트 있는 반격
김응준 지음 / 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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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소속감, 김응준 지음, 김영사, 2019


<그놈의 소속감>은 시작부터 놀라웠다. 책표지 책날개를 보고 놀란 건 <그놈의 소속감>이 처음이었다. 표지에 적힌 <그놈의 소속감>, 김응준을 보고 실명인가 싶었다. 부제가 슬기로운 조직 문화를 위한 위트 있는 반격이기에 가명일 것이라 생각했다. 실명이라면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든 조직생활을 경험한 컨설턴트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책표지를 보는 순간 놀라게 되었다.


김응준
쓰는 내내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너무 신경 쓰였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5
급 공무원, 어느덧 4년 차다.(책표지 날개)


현직 공무원이었다. 주제의 흥미로움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 현직 공무원이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그것도 실명으로 써도 괜찮나?’ 싶었다. 물론 이러한 걱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조직에 대한 자기검열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어느 조직이든 조직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눈치 보지 않고 공무원이어서 하지 못했던 말, 공무원이라 하고 싶은 말을 썼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눈치 보는 거, 딱 질색이다.
각자의 생각, 환경, 생활 방식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소속감과 사명감은 알아서 길러볼 계획이다.(채표지 날개)


원래 속에 있는 말을 잘 참지 못한다.
이제 와 후회되는 일도 많지만 그것은 타고난 성격이다.
속으로 엎치락뒤치락 고민하는 대신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을 선택했다.
공무원이어서 하지 못했던 말, 공무원이라 하고 싶은 말을 썼다.(7)


<그놈의 소속감>은 부제 슬기로운 조직 문화를 위한 위트 있는 반격이라는 말처럼, 저자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은 조직문화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조직에 있든 누구나 겪는 상황이지만 앞에서는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겪는 답답함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공무원 조직은 폐쇄적인 곳이다.
흐르는 물보다는 고인 물에 가까운 조직이라
매일 보는 사람과 꽤 오래 부딪쳐야 한다.
실제 정년까지 다니게 되면 한 동료와
세 번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입사하자마자부터 들었다.
소셜한 조직이라 트러블이 생기면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일만 잘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란 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으며 출근한다.(29)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누군들 좋은 의견을 내고 빠르게 회의를 끝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말하면 내 일이 되고 그걸 돕거나 보호해주거나 끝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이다.(33)


아무리 편한 상사라도 상사는 상사다.
동료나 동기만큼 편할 리 없다.
나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앞서가는 사람이야
나는 부하 직원들과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상사야
나는 신문에서 구글의 조직 문화를 배우고 익힌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다시 한번 검토해주시면 좋겠다.(
)
억지로 소통하려고 하면 오히려 소통이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사람이 몰린다.(35)


성과 보상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조직에는 특징이 있다.
조직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새로운 일부터 벌이고 보기를 택한다는 점이다.
일의 성공 가능성이나 현실성은 차후의 문제다.
특히 국가가 하는 일은 그 일의 실제 효과를 검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63)


재미만 기준으로 한다면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있다.
바로 회사 대회의실이다. 대회의실만 들어서면 예능 감각이 간절해진다.
대회의실이 과연 어떤 공간이냐 하면, 모든 공무원 조직에 있는 대형 회의 장소로,
고위직부터 말단까지 어떤 민간인이 들어와서 보더라도
누가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인지 알 만한 대형으로 앉아,
창의적인 생각과 대안을 내놓으세요라며
끊임없이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다.
긴장되고 숨 막혀서, 어떤 발언을 하고는 싶은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76~77)


바쁜 사람은 어느 자리에 가도 바쁘고
안 바쁜 사람은 언제나 안 바쁘다는 점이다.
일이 자리를 따라가야 하는데 사람을 따라다닌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더 바쁜 자리로 옮기고,
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덜 바쁜 자리로 옮긴다.(143)


처음 직장에 들어와 놀란 게 있다.
소속감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면
소속감이란 게 으레 생길 거라 믿는 어른들이 너무 많아서다.
행여나 오해는 마시라. 여기서 말하는 소속감이란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소속감이 아니라
조폭 세계의 상명하복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어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내가 초임 시절에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딱히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39)


저자가 말한 소속감을 가지라는 말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 상사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사기업에서는 로열티라 부른다. 업무 능력 보다는 조직에 대한 순응도를 표현하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사기업에서는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라고도 한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별 저항 없이 사용한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소속감을 가지라는 것처럼 어색한 말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주인이 되는가? 주인 아닌 자의 주인의식은 노예근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다시 <그놈의 소속감>으로 돌아오면 저자는 단지 관료화 된 조직, 조직문화만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이왕 속한 조직에서 나름대로의 소속감과 사명감을 갖고, 불합리해 보이는 모습들을 관례처럼 답습하지 않고자 하는 다짐들도 담겨있다.


내가 혐오했던 사람으로 나 자신이 변해가는 현실만큼 괴로운 일이 있을까.(100)


방구석 여포형 상사는 정말 피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고 있다.
아니면 아니다, 옳으면 옳다고 말하는 대신, 좋은 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
조직생활을 편히 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104)


생각해보니 항상 밝게 떠들며 사무실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고,
퇴근할 때까지 내내 우거지상인 사람도 있다.
밝게 웃는 사람 옆에선 억지로라도 한 번 더 웃게 된다.(
)
나는 직장 동료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는 사람일까.
일단 나부터 노력해서 나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156~157)


단순히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에 갇혀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조직이 원하는 순응하는 인재상과는 별개로,
삶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직장 밖과 안에서 목표를 설정한 다음
꾸준히 점검해보는 것. (166)


자기 만족감을 키워볼까 싶다.
만족감이란 언제나 주관적이다.
같은 일이라도 나만의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167)


인간의 생애주기 중 육체의 최절정기인 청년기, 장년기에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할애하여 빛나는 청춘을 갈아 넣어야 하는 직장생활. 젊음을 바쳐 일하는 만큼 개인의 성장은 물론 행복한 직장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의 삶의 목적은 아니다. 행복한 직장생활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놈의 소속감>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장생활에서의 행복은 일이 아닌 휴식,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쁘게 일하는 동안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하고 난 다음에 오는 휴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간 속에 오는 것 아닐까.(178)


<그놈의 소속감>은 공무원이든 민간기업이든 직장이라는 조직에 속하기 위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이미 속한 조직에서 부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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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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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김경민 지음, 을유문화사, 2019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읽기 전에는 문화재란 당연히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으로써 정체성과도 연결된 가치를 담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조선 말기, 일제 침략기에 반출된 문화재는 당연히 반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약탈된 문화재이니 당연히 돌려줘야 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니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파렴치한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영국박물관을 우리 손안에 있는 세계(The Whole World in Our Hand)”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면서, 영국박물관의 존재를 자랑스러워 한다.
이는 과거 가장 광대한 제국이었던 영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지만,
그 유물들의 원소유국 입장에서 보면 영국은
조상들의 유산을 훔쳐가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적 성과로 자랑하는 파렴치한 국가일 뿐이다.(7)


저자 서문을 보며 이러한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 확신하며, 탈제국주의 시대에 아직도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궁금증을 풀고자 가벼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강대국의 파렴치함(?)만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편견도 깨져 나가며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문화재는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리와 민족의 연속성이 없는 문화재는 인류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크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야 한반도라는 지역에서 한민족으로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지리적으로 민족으로 복잡하지 않은 구조이다보니 당연히 민족주의 관점에서 한반도 문화재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현재의 국경이 고대 문명, 고대 국가의 국경이 아닌 상황에서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문화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한 문화재라는 것이 근대 국가가 생기며 성립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문화재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한정할 수 있는 명확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국가
그 유물이 담고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59)


사물을 분류하는 가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조각들이 상류층의 주요 수집품이었지만,
중세에는 기독교 성인들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뼛조각이
훨씬 더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69)


또한 문화재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과시와 문명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으로 악용되고, 결국 제국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수집하여 제국의 수도에 전시하는 행위는()
과시의 효과를 넘어 식민지의 문명을 유럽의 문명과 비교하여
전 인류의 문화를 하나의 위계질서에 편입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233)


아시리아 사례는 근동지역에서의 문화재 소유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우위를 보여 주고자 했다.(
)
고대 아시리아의 예술과 유럽의 예술을 비교함으로써
서양 문명이 동양 문명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했다.(139)


아시아와 이집트, 중동 지역, 인도와 같이 열강이 눈독 들이는 지역에서
문화재를 수집하고 소유하고 전시하는 행위는
경쟁자를 향한 소유권 주장임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 국가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문화재가
초기 역사에서는 타국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과 상징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63)


19세기에 들어 산업화의 성공과 함께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고, 단순하게 물리적인 영토 소유를 넘어 식민지 지배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문화재 수집과 전시는 제국의 지배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제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상징적 기재로 활용되었다.(233)


현재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은 문화민족주의문화국제주의시각이 있으며, 거의 평행을 이뤄 결코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화민족주의는
문화재를 특정 국가의 민족 정신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상징물로 보고,
부당하게 빼앗긴 유물들이 본래 있었던 원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284)


문화국제주의는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향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284)


또한 탈제국주의 시대에 국제법을 통해 문화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협약 이전의일에 대해서는 소급되지 않고, 강제성을 띄지도 않아 여전히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1954<헤이그 협약>) 제국주의 시대가 종결된 후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화재 보호에 관한 법적 기준을
처음으로 성문화한 것으로, 문화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헤이그 협약>은 전시 문화재 보호법이기 때문에
평시의 문화재 보호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252)


<1970 유네스코 협약>은 문화재의 불법적 이동(혹은 매매)의 제재에 관한
국제적 기본 틀을 만든 국제법이다.(
)
80
개국이 넘는 국가가 참여했으나, 강제력이 없는 국제법의 특성상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게는 이 협약을 적용하여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253~254)


<1995 UNIDROIT 협약>은 이전 협약의 한계점인 국내법과 국제 협약의 사법 체계 간 조화를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재를 국가의 정체성과 연결 짓는 개념인 문화민족주의적 시각을 명문화하여 보다 진일보한 국제법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55)


영국에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들은 약탈의 불법성과 비도덕성을 비판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약탈은 불법이지만, 당시 관례에서 전리품 획득은 합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의 국제법 체계상 그것이 합법이었고 관습적으로 이루어진 거이라면, 시대별 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시제법의 원칙에 따라 오늘날에 약탈 행위를 불법이라고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261)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는 과거 불법적으로 약탈한 국가에게는 도덕적 성찰과 원소유국과 그 국민에게 과거사에 대한 치유, 심리적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제법학자인 마이클 리파스는 문화재 반환은
원소유국과 그 국민에게 있어 불편한 과거사에 대한 심리적 승리라고 말한다.(
)
한 국가나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 있는 물건을 돌려받음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씻어 내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는 것(
)
문화재 시장국가들이 합법/불법의 구분을 떠나
과거사에 대한 성철과 반성이라는 윤리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266)


물론 반론으로 국가와 민족의 연속성이 없는 지역에서 이전 국가와 민족의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는 이러한 원산국에 반환하여야 한다는 입장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한다.


2001년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의 4~5세기 불교 유적지인 바미얀 석굴사원을
우상숭배라며 로켓으로 파괴한 사건 또한
이후 문화민족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였다.(294)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는 문화재 원산국과 시장국의 입장이 문화민족주의와 문화국제주의로 팽팽히 맞서지만, 문화국제주의를 주장하는 시장국가들도 문화재를 민족주의 관점으로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는 여전히 제국주의 성과로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문화재가 지는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와
그에 따른 반환 정당성에 대한 정교한 이론 구축 없이,
단순히 현재의 국경과 민족을 가르는 경계선에 근거한 반환 요청은
영국의 견고한 법적/이념적 방어막을 무너뜨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300)


문화재에 대한 민족주의적 관념에 대해서 영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국박물관은 이미 그 자체로 영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일종의 거대한 문화재가 되었다.(
)
영국박물관을 국가 혹은 민족 문화와 동일시하는()
이러한 동일시에는 영국의 문화우월주의가 깔려 있다.(301)


동일한 문화재(나이지리아 베닌 브론즈)에 대해 매각과 대여 거부라는 일련의 결정은
문화재를 대하는 영국의 태도가,
문화국제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오로지 학문적 목적에만 기반하지 않는
영국의 이중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311)


영국 스스로 문화국제주의를 구현하는 보편 박물관이라고 주장하는 영국박물관을
인류 문화가 아닌 유럽 문화의 통일성을 구현하는 장소로 표현한 것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제국주의적 사고를 반영한다(318)


문화재 반환 문제는 공식적인 절차와 법적 소유권의 개념이 아닌
상호 이해를 통한 양보와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335)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통해 깨진 두 번째 편견은 우리도 타국의, 타민족의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말기와 일제 침략기, 한국 전쟁이라는 혼란기에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로써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려주지 않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도 문화재를 반환해 줘야할 입장에서 예외일 수 없다(
)
실크로드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재는
1500여 점에 달하며, 그중 50여 점이 벽화다.
심지어 이 벽화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자랑한다.(
)
슽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일본()
중앙아시아 수집품을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부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컬렉션은 바로 이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로,
일본이 패전으로 조선에서 철수하면서 총독부 박물관에 남기고 간 것을
대한민국 정부가 인수한 것이다.(336)


우리의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소유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문화재부터 돌려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빼앗긴 다 돌려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걸 돌려주지 않는다는 건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한 번 읽었다고 해서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더 많이 남았고, 여전히 정리되지 못하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잘못된 편견을 깰 수 있어서 좋았고, 지속적으로 탐독을 한다면 문화재를 소유권이라는 좁은 분야를 넘어, 문화재를 확보하기 위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상황 등 당시의 시대상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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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냉정 - 난폭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박주경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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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냉정, 박주경 지음, 파람북, 2019


KBS 앵커 박주경이 쓴 <따뜻한 냉정>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언론인 답게 객관적 실체에 접근하겠다는 냉정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도 담겨있다.


그래서 <따뜻한 냉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냉정하고 냉철하게 바라보되, 약자를 위해, 미래세대를 위해 따뜻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 아이들이 계속 살아야 할 세상이()
냉소와 혐오가 시대의 지배 정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비웃기만 하는 사회에 희망이 설 자리는 없으니까요.
희망이 없다면 생은 악몽입니다.
하루하루를 악몽에 시달리는 너와 내가 모여 이 사회를 꾸린다면(
)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희망을 기어이 지켜내야 합니다.
증오의 뜨거움이나 냉소의 차가움이 아닌 희망의 따뜻함,
그 적정 온기가 절실한 시대입니다.(11)


요즘의 삶의 속도는 그야말로 초스피드이다. 빨라진 속도는 정보의 홍수시대를 낳았고, 텍스트 기반에서 영상 기반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면서 최근 가짜 뉴스도 넘쳐나지만 가짜 인지 진짜 인지 구별해낼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시대이다.


뉴스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객관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흔히 미디어의 힘은 보여주는 것에서 나오지 않고, ‘보여주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한다.


언론의 힘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닌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 부조리를 보여 주는 것에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권력화된 언론은 보여주지 않는 것에 열중하는 것 같다. 이들은 사회 혼란이 걱정된다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거나, 국격이 떨어진다며 호들갑을 떨며 비판하며 국격을 떨어트리는 일을 부추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기계적 중립, 기계적 균형을 지키기 위해 과대 편향된 소수 집단의 의견이 반론이라는 이유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정작 약자에게 필요한 권리에 대한 부분은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따뜻한 냉정>의 이야기들은 TV를 통해 전달하지 못한 권력 없는 다수의 약자를 위한 메시지들이 담겨있어 뜨거운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꼰대라는 표현은 일종의 저항용어다.
연령이나 지위 등에서 상대적으로 강자인 사람이 약자 앞에서
군림하는 자세를 취하면 꼰대라는 호칭으로 저항감을 드러내는 것이다.(20)


꼰대질이 무서운 건, 거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갑질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꼰대질과 갑질은 한 끗 차이일 뿐이다.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면 꼰대질이고,
남의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만들었다면 갑질이다.(24)


아프니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28)


참고 견뎠지만 나아지는 게 없더라는 반론도 거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에서
그 잠언 하나가 근본 치유책이 될 수 없음을 체험으로 절감했기 때문이리라(28)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진통제의 효력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통증의 뿌리를 자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통제는 그저 언 발에 오줌 누기정도에 지나지 않는다.(28)


위정자들의 책임 방기와 전문가 집단의 엉뚱한 처방이 사회 문제라는
질환을 더욱 악화시키고 환자를 더 많이 양산한다.
사회적 병리 증세가 확산될 때,
법 제도와 국가 시스템마저 허술하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30)


가뜩이나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자력 성공의 문이 닫히고
출발선부터 다른 이 불공정 경쟁의 시대에,
청년 개개인의 인내심이나 지구력만 강요하는 건 부질없고 무책임하다.(31)


여건이 꽉 막혀 있는데 그저 참다 보면 좋아질 거라는 말은 희망고문에 가깝다.(32)


공감 없는 충고만으로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을 거라 꿈도 꾸지 마라.(32)


이 시대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이른바 금수저 계층에
강력한 저항감을 가지게 된 것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 때문(
)
하나는, 노력과 대가를 치르지 않고 으로 얻는 것들에 대한 반감이다.()
또 하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다.(37~38)


가진 사람이 여유분만큼의 자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걸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깰 때 발생한다.
물려받음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 있는데,
그걸 따르지 않고 회피할 때 문제가 생긴다.(37)


재화의 공유를 기치로 내세운 신사업들이 벌어들인 수익까지도
제대로 공유하는지를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본사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주는 기초 자산들은
결코 그 회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56)


동맥경화가 신체 혈관을 틀어막아 사람을 한순간에 쓰러뜨리듯이
돈맥경화는 사회 혈맥을 꽁꽁 틀어막아 공동체를 일거에 쓰러뜨릴지도 모른다.(63)


시쳇말 가운데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개만 한 사람찾기도 쉽지가 않다.(
)
개만한 사람이란 곧 개만큼 정 넘치고
개만큼 순수하고 개만큼 의리 있는 사람을 말한다.(70)


고통을 상쇄하는 행복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고통은 고통이고 행복은 행복일 뿐.
상쇄는커녕 어쩌면 행복의 경험치가 고통의 체감도를 더 가중할 수도 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행복을 알게 된 뒤 그걸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란
……(73)


애완에서 반려로 용어 하나만 바꾸었다고 해서
인식이나 문화 자체가 성숙해지는 건 아니다.
애완이든 반려든 생명을 물건으로 여기는 의식 자체가 최우선 해결 과제다.
사람만 동물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동물도 자격 있는 주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75)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줄 거라든지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심화될 거라든지,
다른 여러 우려의 목소리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바로 대면기피현상이다.(79)


무관심은 가장 무서운 사회질환 가운데 하나다.(79)


SNS 같은 걸로는 애당초() ‘진짜 삶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 대 얼굴, 그 오프라인 접촉만이 서로에 대한 진짜 관심과 소통을 가능케 하고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뻗게 해준다.(81)


미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전반이 그렇다.
종업원이라 해서 함부로 오라 가라 하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처럼 종업원들을 어이! 여기!” 이런 식으로
낮잡아 부르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있지만,
왕도 기품 있게 행동해야 왕대접을 받는다.
무례를 권리로 착각하여 행동하다가는
자칫 왕은 커녕 사람 대접받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96~97)


정치인들은 행동하지 않는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심판하지 않는 시민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105)


미국의 유명 TV 진행자인 빌 마허는
방송에서 가짜 평형이라는 개념을 주창
A
라는 저질 정치세력과 B라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정치세력이 있을 때,
A
는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B도 똑같이 나쁘다!” 혹은 “B가 더 나쁘다!” 이렇게 호도한다. 가짜로 평형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의외로 많은 유권자에게 먹혀든다고 지적했다.(
)
특히 A세력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했다.
게으른 사람들은 정치나 정책, 공약 등에 대해
어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양쪽 다 나쁘다는 단정만 되풀이한다.(109)


책임 규명을 소호히 하고 단죄 절차를 건너뛰는 일은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폐습 가운데 하나다.
죄를 묻지(ask) 않고 묻는(bury)데 급급했던 업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113)


단죄란 보복과는 다른 차원이다.
물어야 할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 일이다.
다시는 그런 정의롭지 못한 일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보복이라는 주장은, 책임져야 할 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가장 흔하게 인용하는 레퍼토리다.(114)


2016년 재단(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을 처음 설립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상당수가 그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피해당사자들이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느 날 갑자기 통보를 받았다.
두 나라가 돈을 주고 받고 재단 하나를 설립하는 선에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고 말이다.
당시 정부는 불가역이라는 표현까지 썼다.(115)


피해자는 용서 안 했는데 가해자는 속죄를 선언하는 것,
영화 <밀양>이 생각납니다. 반성에 시효가 있을까요?
상처엔 시효가 없습니다. 수요집회는 그래서 계속되었습니다.”(116)


특이한 것은 그 “Pray for OOO” 물결이
유독 서구권 나라에서 참극이 발생할 때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에서 비극이 발생할 때는
등장하는 걸 보지 못했다.(128)


아랫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도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133)


한 사람 인생에 조언이나 위로를 할 때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진중하게 말을 고르고 고른 뒤에,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참아 확실하게 묵혀야 한다.
그 묵힘 끝에 정제된 언어만이 위로나 조언의 자격을 갖는다.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다면 그냥 자제하는 게 제일 좋다.
모두 카운슬러가 될 필요는 없다.(141)


소위 확신범이라 불리는 부류가 있다.
범죄 용어의 일종이지만 언론계에서도 널리 통용된다.
어떤 사안이나 사회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
자신()만의 섣부른 확신을 정립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
여러 가지 오류나 과실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대로 그것이 잘못인 줄을 끝까지 모른다.(200)


한 때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자기검열과 두려움이 동반된 암울함과 자괴감이 들던 그런 시기였다. 암울한 군사독재 시절이라고? 아니다 불과 3년여 즈음에도 유효했던 이야기다. 자신이 만든 법도 스스로 어기는 작금의 사태를 목도하면서 다시금 3년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가운데 만난 <따뜻한 냉정>은 다시금 시계추를 과거로 돌리거나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기성 세대의 의무감이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항상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아가는 것에 매몰되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일침을 가하듯 삶을 대하는 태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죽음이란 그 어떤 위로도, 관심도, 애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수순이다.
때가 오면 누구나 홀로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살아 있는 것들의 숙명이다.
그 모든 회한과 두려움과 애착을 정면으로 껴안고 맞이하게 될 독존의 죽음 말이다.(272)


어떤 조건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는 것 은 다름 아닌 삶이다.
죽음은 손 안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닿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279)


삶은 나의 역사 그리고 당신의 역사다.()
그러니 삶을 껴안자. 삶을 끝까지 보듬어 안자.
자신이 써 내려가는 역사책의 마지막 장을 섣불리 비관하지 말자.
그 비관으로 집필을 중도 포기하지 말자.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생의 모든 가능성들을 희망과 절망 사이에 덤덤히 열어두자.
마지막 페이지란 결국, 최선을 다한 본문들이 만들어낸 후회 없는 결론이다.
누구에게나 그것이 최선 아니면 차선이었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스스로 정한 목차에 따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부끄럽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279)


삶은 누구에게나 역사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스토리로 각자의 역사를 써 내려가며 한 생을 살아낸다.
선택 없이 주어진 그 길은 참 두렵기도 하다.
생로병사의 거대한 윤회가 예외 없이 사람을 틀어쥔다.
빠져나갈 길은 없다.
그러니, 그 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어떤 역사를 쓰느냐 만이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발버둥 치든, 받아들이든, 주어진 공책은 단 한 권이다.
그 한 권 위에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는 나만의 역사가 적혀 내려간다.(276)


그러한 삶의 과정에서 나의 마음 바라보기를 통해 인생의 오르막길 보다 힘든 내리막길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고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맞다. 오르막이 내리막보다 오히려 덜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269)


천천히, 조금씩,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단기 과외나 퍼스널 트레이닝 같은 걸로는 섣불리 꿈꿀 수 없다.(
)
적어도 어떤 내공의 경지를 원한다면,
처음부터 조바심 같은 건 문밖에 내다 버려야 할 것이다.(243)


자발적 고독의 좋은 방법으로는 혼술, 혼밥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에 가서 홀로 낯선 거리를 헤매거나 광활한 자연을 내달리다 보면(
)
소위 인간 공해라는 것이 없었고 사람 관계로 부대끼고 고민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소중한 사람들이 더 소중히 느껴지는 계기였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질수록 사람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역설이기도 하다.(246)


마음 바라고기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호심술이다.
호신술만 중요한 게 아니라 호심술도 중요하다.
이 단순한 기술은 비단 화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정적 감정에 대입 가능하다.
시기, 질투, 후회, 불안, 슬픔, 좌절
…… 그 모든 것들을
마치 제3자가 된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핵심이다.(255)


박주경의 <따뜻한 냉정>에는 좋은 인용구도 많다. 읽을수록 의미가 더 깊이 새겨지는 좋은 문구이기에 옮겨 적어본다.


소수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했고 다수는 너무 적게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식량이 모자라 고통을 겪고 있는데,
소수는 남아도는 식량에 묻혀 익사할 지경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36)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기업의 기능이 단순히 돈을 버는 데에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39)


남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들이 되레 억울함을 토로하는 게 대표적인 한국병입니다.
이 병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나라 망합니다.”
-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 (51)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여 받게 되는 형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
플라톤 (108)


백여 가지의 대중음악 장르는 잘 구분하면서
대선 후보 두 사람도 제대로 구분 못 하니
정치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단박에 알 수 있다.”
-
미국 유명 TV진행자 빌 마허(109)


소위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치열한 경쟁과 상하 수직 관계로 인해
일하는 사람 개인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어려운 곳(
)
그런 사회에서는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고,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감성이 아주 무디어질 것
-
김인권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 서울대 졸업식 축사(144~145)


그대들이 함께할 때 어느 정도의 빈 공간이 있도록 하라.
서로 사랑하되 너무 집착하거나 구속하지 마라.
두 사람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가 있고
천국의 바람이 불 정도의 틈과 여백은 있어야 한다.’
-
철학자 칼릴 지브란도 <예언자>(157)


“20년 후에 돌이켜보면 했던일보다 하지 않았던일들을 더 후회하게 될 것이다.”
-
마크 트웨인(167)


확보한 증거보다 마구 앞서 나가거나 확신한다고 외치는 것,
그리고 위험한 추측을 과감히 던지는 것,
지혜와 통찰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가깝다.”
- CSB
변상욱 대기자(201)


골목길로 들어서면 그 길만 보이고 길은 우리를 속인다.
위에서 넓게 보도록 노력하자.”
- CBS
변상욱 대기자(201)


아마 (속한 언론사에 따라) 각자의 한계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언론도 어떤 면에서는 성직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부모나 기회를 만나지 못해
밑바닥에서 참혹하게 눈물을 흘리고 사는 약자가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언론으로서 철학을 가져보잔 말씀입니다.
순도 99.9퍼센트 금은 진보나 보수 누구의 손에 있어도 금입니다.
진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김희중 대주교(210)


 밤은 낮의 적이 아니고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다
-
북아메리카 인디언 노래(233)


아름다움을 아움다움으로 알아보는 건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것도 악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노자 <도덕경>(233)


매일 입을 옷을 고르는 것처럼 생각을 고르는 법도 배워야 해.
인생을 통제하고 싶으면 정신부터 차려
-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52)


법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의 거룩한 침묵을 통해 들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
-
법정 스님, 마지막 법회 인사말(275)


삶이란 바람에 흩어지는 들소의 입김이고
일몰 뒤로 사라지는 그림자 같다
-
아메리카 인디언(277)


인생이란 열린 문틈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백마 한 마리를 보는 것과 같다.”
-
장자 백구지과극”(277)


인생이 무엇을 닮았는지 아는가?
그것은 눈 위에 찍힌 기러기 발자국 같다
우연히 그 흔적을 남기긴 했으나
기러기가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 <설니홍조>(278)


“70년을 살고 깨달았지요, 이 우주에서 인생이란 겨자 소스같은 겁디다.
한순간 톡! 하고 쏘다가 다음 순간 이내 사라져버리지요
-
영화 <덴버> 오프닝 신(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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