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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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할 때 드라이브는 괜찮은 일이다. 직접 운전하지 않더라도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단순하게 비워준다. 어쩌면 욘 포세의 장편소설 『샤이닝』 속 남자도 그런 걸 바랐을지도 모른다. 초겨울 차갑고 날카로운 공기를 가르며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 지루함이 사라질 거라고. 그러나 그는 깊은 숲속 눈밭에 갇히고 말았다. 처박힌 차를 꺼낼 수가 없었다. 차를 꺼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를 도와줄 누군가 말이다. 모든 게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이 숲에서 나가야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생각하다 길을 되짚어 나가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고 어딘가 마을이 있으지 모른다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점점 어두워지는 숲을 헤매는 기분을 상상하자니 나에게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제발 이 남자가 숲을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야생동물의 위협을 피하고 조난이 아닌 생존으로 끝나기를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묘하다. 아니 욘 포세의 글이 묘하다고 하는 게 맞다. 쉼표로만 길게 이어진 문장으로 독백이나 다름없던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느꼈던 것처럼. 소설을 이끄는 한 남자, 그는 마치 연극 무대에 올라서 배우 같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고, 거기에 몽환적인 눈 내리는 숲 속이라니. 알 수 없는 흰빛과 우연하게 발견한 바위에 앉은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고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는 어떤 편안을 발견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고요함의 소리를 듣고 싶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주 조용히 서 있다. 사방이 완전하고 고요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고요함의 소리를 듣고 싶다. 침묵 속에서는 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누군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내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 나는 들을 수 있다. (59쪽)







더 놀라운 건 홀로 있던 숲속에 느닷없이 등장한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노부부다. 분명 이건 환영이어야 맞다. 심지어 노부부는 남자의 부모였다. 그렇다면 신이 그를 구하기 위해 그들을 보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어떤 감격이나 기쁨을 보이지 않는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 죽음이 따라온다. 그가 맞이한 세계는 죽음이 아닐까. 사실, 이 소설은 뭔가 해석하기보다는 욘 포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그의 문장에 물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정말 그것은 가능할까. 그럼에도 부단히 나를 찾기 위해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게 생이라는 사실.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반짝이던 그 존재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지금 그 존재는 더이상 순백색 빛을 발하지 않지만, 그렇다, 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있다, 반짝인다는 말, 순백색이라는 말, 빛을 발한다는 말의 의미도 사라진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의미라는 것, 그렇다, 의미라는 것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것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다, (79~80쪽)


우리는 맨발로 무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한 숨 또 한 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반짝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 (80~81쪽)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고 한 편의 웅장한 시 같은 소설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욘 포세의 문장에 빠져들고 그 숲에 혼자 남은 그 남자는 곧 나 자신은 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 가만히 눈을 갚고 순백색이란 뜻의 원제(kvitleik)를 떠올리며 숲속을 그리게 될 것이다. 내게는 무대의 막이 내리고 배우가 퇴장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소설. 우리의 인생에서 산다는 것과 죽음이야말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책에 수록된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침묵의 언어>를 통해 욘 포세가 추구하는 소설에 대해 만나고 나면 『샤이닝』을 다시 읽고 싶을 것이다. 두 번 읽는다고 더 쉽게 다가오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글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가 듣고자 하는 게 무언인지, 나는 무엇을 듣고자 노력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불가해한 것으로 채워진 삶을.


내게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일입니다. 글을 쓸 때 나는 결코 사전에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듣기만 할 뿐입니다. (95쪽)


그리고 고요를 생각한다. 묵연한 그것. 어쩌면 순백일지도 모를 그것을 생각한다. 80쪽의 짧은 소설이 품은 웅장하고 깊은 고요를, 오직 고요함만이 낼 수 있는 신비로운 소리를 마주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고요를, 이제껏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고요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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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3-22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그리고 저녁>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욘 포세의 소설을 읽으면 왠지 북유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소설 속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아요^^

자목련 2024-03-25 13:28   좋아요 1 | URL
네,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까요.
눈으로 가득한 숲 속의 명징한 차가움, 말씀처럼 북유럽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딸기와 책,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딸기가 금값이라고 하니 금을 먹는 기분이다. 붉고 단 맛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진한 딸기향이 좋았다. 마트에서 구매를 할 때부터 향이 좋았는데 냉장고에서 보관하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달달한 향이 퍼져 나오는 게 기분이 좋다. 딸기처럼 달콤한 소설을 기대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이니 아직 모른다.


장편소설 한 권과 단편집 한 권이다. 책을 고르는 일, 신중하게 하려고 그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나름 만족스럽다. 집중해서 읽으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딸기만큼 아니 이 봄의 나를 설레게 하는 책들, 소설이다.






지넷 윈터슨 장편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얀마텔의 에세이를 읽고 궁금했던 책이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민음사 모던 클래식 개정판으로 나왔다. 이 기회에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이 책 때문에 오렌지와 책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나 냉장고 오렌지는 없었다.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은 장편으로만 만난 문지혁의 단편을 만나보고 싶어서 구매했다. 단편도 장편에서 느낀 분위기와 감성이 전해질 것 같은 게 고잉 홈이라는 제목이 한몫 거들었다. 김윤아의 노래 Going Home을 좋아하기도 해서 같은 제목이라 더 끌린 이유도 있다.


강원도에 내린 폭설을 스케치한 뉴스를 보면서 그곳은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은 봄의 절기인데 봄이 아닌 겨울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겠구나 생각한다. 봄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삶의 시간표를 작성했을 이들의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한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 단순하게 살려고 해도 복잡할 수밖에 없는 삶이 돼버렸을 것 같다. 그러니 가장 단순한 것들,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건 눈의 늪에 빠진 것 같은 누군가의 바람이 아니라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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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2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딸기 아주 맛나 보입니다^^ 오렌지책 저도 궁금하던데, 자목련님 즐거운 독서 하세요!

자목련 2024-03-22 08:32   좋아요 1 | URL
딸기 맛있었어요~ 아껴서먹느라 더 달콤했다는...
오렌지는 기대하고 있고요!

거리의화가 2024-03-2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 코스트* 갔다가 딸기를 사 와서 먹었답니다. 비싸서 그런지 먹을 때 아껴먹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순삭했지만 딸기를 먹는 순간은 역시 행복하다 싶었습니다. 두 책 모두 즐독하셔요^^

자목련 2024-03-22 08:33   좋아요 1 | URL
가격 생각하지않고 많이 사서 많이 먹고 싶은 딸기입니다 ㅎ
화가 님, 금빛 같은 금요일 보내세요^^

은하수 2024-03-22 15:42   좋아요 1 | URL
저두요~~~
코스트코 딸기 향이 정말 장난 아녔어요.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지 뭐예요^^

자목련 2024-03-25 13:29   좋아요 0 | URL
진한 딸기 향, 먹고 있어도 딸기가 그립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03-2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의 모클 시리즈가 다 죽을 줄
알았는데 열심히 표지 갈이해서 다
시 내고 있어서 신기하더라구요.

새 책은 내지 않고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까요.

저도 책이 궁금하긴 한데, 마침
집에 오렌지가 있으니 ㅋㅋ
근데 책이 없네요.

자목련 2024-03-27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과거 표지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책은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매냐 님 베란다의 튤립은 피었을까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예술가의 삶은 짧고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예술가의 일』에 이어 조성준의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오래 기억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언론에 주목받지 못한 삶, 생전에는 얻지 못한 작품의 가치, 재능만 탐할 뿐 예술가를 돌보지 않은 세상. 음악, 미술, 영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5명의 예술가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25명의 예술가를 5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목록을 살피고 끌리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를 먼저 읽어도 충분하다. <차별과 편견을 넘다>란 주제는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과거 정권에서 등장했던 블랙리스트. 예술이 전부인 그들은 소리 없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그러했다.




1950년대 초반 유대인이었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던 그도 정부의 사상 검증 대상이었다. 직접 심문 받지는 않았지만 방송국 출연 자리를 잃었고 이유 없이 여권 갱신도 거절당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에게 출국 금지라니. 너무도 치사하다. 번스타인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진술서를 쓴다. 아,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흑인 인권 운동 단체를 후원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로 인해 FBI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랫동안 감시당했다. 예술가 얼마나 깊고 강하게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감시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번스타인은 언제나 경청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자기가 하는 음악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존중했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야 할 때 떠났다. 그 이후로도 음악을 누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다. (47쪽)


<존 케이지와 굴다처럼>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는 천재 혹은 괴짜로 불리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 프리드리히 굴다, 완벽주의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한국의 거장 김기영 감독이 있다. 김기영 감독과 함께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이 생각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에 대해 몰랐다.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 의대에 진학하고 연극 활동을 했다.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부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부업으로 <대한 뉴스> 제작했다니. 그것을 계기로 의사는 관두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술도 하지 않고 영화인과의 교류도 없이 오직 영화만 생각한 감독. 완벽한 콘티 없이는 영화 촬영을 하지 않았다니.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은 김기영 감독 그 자체였다.


그는 사람들이 직면하기 싫은 주제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장하고, 뒤틀고, 기이하게 표현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이상한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 안에 당시 사회 병폐를 집어넣었다. 기이한 영화로 흥행까지 거머쥔 김기영의 존재는 라이벌들과 비교해 독보적이었다. (101쪽)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란 주제에서 만난 예술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하나같이 애처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다. 대중은 천상의 노래, 매력적인 재능, 놀라운 연기력을 사랑하지만 무대와 공연장, 스크린 밖에서는 그들을 외면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를 보고 감탄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더러운 검둥이' 취급하며 차별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은 정말 가련하고 가여웠다.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했던 에이미를 세상이 알아봤다. 사랑에 빠진 남자로 인해 약물에 중독되고 그가 떠난 후 상처를 노래했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 재활원을 찾기도 한 에이미 곁에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타의 사생활을 깨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세상이 아니라 회복하기를 기다려주는 대중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노래하는 에이미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캡틴, 마이 캡틴>과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에서는 예술을 위해 전부를 던진 이들의 삶을 들려준다. 연기하는 인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히스 레저, 패션이고 명품이었던 코코 샤넬, 전 세계 영화감독이 이탈리아를 찾게 만든 모리코네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25명의 예술가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우리의 곁에 살아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볼 때 그들의 삶의 겹쳐 보일 것이다.


모리코네는 떠났다. 그래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위대한 영화는 계속 탄생할 테도, 아름다운 영화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석양이 저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역사가 하나의 책이라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297쪽)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예술가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월북화가 이쾌대, 김환기와 백남준의 생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떤 환경에 있었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난 후 작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려 노력할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한 예술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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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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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빠르면 편하다. 하지만 눈치가 느리다고 불편해할 일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각자 행동의 속도가 다르듯 이해의 속도도 그렇다. 상대의 농담이나 유머에 즉각 반응하는 이가 있으면 한참 지나야 그 숨을 뜻을 알고 혼자 웃거나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속도는 왜 아니 그렇겠는가. 삶의 시차를 인정하는 순간 눈치 없음에 대해 불평할 일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의도를 파악하고 알아차리는 게 모두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 권여선의 작품이 대상을 수상한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어떤 의도를 파악하는 일, 말하지 않은 말들과 숨겨진 뜻에 대해 생각한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의 사정이나 미뤄두어야 했을 말들에 대해서도.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슴벌레식 문답」은 다시 읽어도 좋다. 아니 읽을수록 소설의 진위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든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친구, 서로를 위한다고 여겼지만 결국 내 삶을 살기에 급급한 현실에 오해하고 상처 주는 일은 소설 속 네 명의 친구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30년 전 대학을 입학하면서 같은 하숙집을 시작으로 서로의 청춘을 응원하고 조언하며 지낸 그들. 한 친구의 생일을 맞아 떠난 여행지에서 민박집에 들어온 사슴벌레를 보며 나누던 대화는 ‘사슴벌레식 문답’이 되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 방황과 좌절 때문인지 죽음을 선택한 한 친구의 20주기 추모 모임에 남은 셋 중 홀로 참석한 화자는 ‘사슴벌레식 문답’ 속에 숨겨진 의도를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고 지키고 싶었던 신념의 형태도 달라지고 점차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는 것을.


어디로든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 「사슴벌레식 문답」 중에서)


화자처럼 어떤 일은 뒤늦게 해답을 안겨준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 같은 일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오해가 쌓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일이 생긴다. 그럼에도 그 시절 함께했던 순간은 맨 처음 나누던 ‘사슴벌레식 문답’의 그리움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기억의 내용은 동일해도 그 뉘앙스는 바뀐지 오래인데 말이다. 사슴벌레 문답처럼.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어디로 들어와 이렇게 갇혔어?

어디로든 들어와 이렇게 갇혔어. 어디로든 나갈 수가 없어. 어디로든……

갇힌 기억 속의 내 옆에 쌍둥이처럼 갇힌 지금의 내가 웅크리고 있다. ( 「사슴벌레식 문답」 중에서)


사슴벌레식 문답을 아는 이를 만나면 반가울 것이고 좋아질 것이다. 그는 권여선의 이 단편을 읽었다는 것이니까.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혼잣말로 중얼거릴 것 같다. 어디로든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최진영의 「썸머의 마술과학」 은 열여섯 언니 이봄과 아홉 살 동생 이여름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봄과 여름이 화자가 되어 시를 쓰는 모임에 나가는 엄마와 해장을 위한 모임에 나가는 아빠. 아빠의 주식 투자로 생긴 빚 문제로 아파트를 두고 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를 피해 근처 할머니 댁에서 비공식 모임을 하는 자매. 자신을 여름이 아닌 썸머라 불러달라는 사랑스러운 썸머는 환경에 관심이 많다. 배우는 대로 흡수하고 실천하려는 어린이다. 지구와 미래를 걱정하는 썸머를 보고 있자니 어른인 나는 심히 부끄럽다. 그런 썸머를 보는 봄의 마음과 믿음을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것이다.


썸머를 생각하면 미래를 무한하게 긍정하고 싶다. 팬데믹, 미세먼지, 전염병, 홍수, 침수, 가뭄, 꺼지지 않는 산불, 식량난, 기후 난민, 토양오염, 해양오염, 종의 멸종처럼 암울한 일들로 가득한 미래가 아니라…… 탄소 중립 실현, 미세먼지 없는 대기, 자연 분해 가능한 플라스틱, 재생 에너지, 수소에너지, 전기자동차, 대체 식품 등으로 채워질 미래를 상상하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는 낯설지만 우리에겐 당연해질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 만들어낼 거라고 믿고 싶다. (「썸머의 마술과학」 중에서)


서유미의 「토요일 아침의 로건」 은 주말마다 스터디 룸에서 영어를 배우는 ‘로건’의 이야기다. 오십 대 남자인 그는 미국지사 발령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 목표에 가까이 왔다고 여긴 시점에 그는 뇌종양 진단을 받는다. 강사인 젤다에게 영어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려 하지만 4주 내내 말하지 못한다. 그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장모님의 생신 모임에서는 오히려 미국 생활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마침내 젤다에게 의사를 전달했을 때에도 젤다 역시 축하할 일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주말마다 마주한 풍경들, 한강공원의 모습들이 로건에겐 어떤 의미일까. 토요일마다 로건이었던 그는 김성호로 살아갈 것이다. 쓸쓸함이 가득 묻어난다. 소설의 마지막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박힌다.


카페 밖으로 나온 뒤 그는 잠시 문 앞에 서 있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그를 지나 자전거도로로 나아갔다. 그는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의 옆모습과 군더더기 없고 날렵한 뒷모습을 보았다. 무언가 그의 앞으로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마음이 아팠다. ( 「토요일 아침의 로건」 중에서)


담담하고 차분한 슬픔은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큰이모의 딸 인주 언니 이야기를 그린 백수린의 「빛이 다가올 때」에서도 비슷하다. 시력을 잃은 큰이모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직업마저 큰이모가 바랐던 교수가 된 인주 언니가 대학생 때 과외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간호사로 해외취업을 한 나는 교환교수로 뉴욕 온 인주 언니와 재회한다. 뉴욕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인주 언니는 큰 존재였지만 자신처럼 누군가 좋아하며 설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마흔 넘은 인주 언니가 스무 살 갓 넘은 남자를 사랑하는 일, 언니의 감정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겼다. 인주 언니의 나이가 되어 과거 사춘기 시절 교생선생님을 사랑했던 자신처럼 인주 언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생각대로 감정을 판단했다는 미안함.


타인이 느꼈던 방식 그대로 세상을 느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얼마나 헛된가. 우리는 오직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대로만 느낄 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렇다. ( 「빛이 다가올 때」 중에서)


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차리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눈치챘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눈치와 상대가 느끼는 눈치가 같다는 보장은 없다. 나머지 세 편의 소설도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재난에 대비하는 과정을 그린 것 같지만 위기 상황에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도와주는 최은미의 「그곳」,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노동의 현실을 그려낸 구병모의 「있을 법한 모든 것」, 아내의 고통을 안다고 여긴 남편의 제안으로 시작된 요트 여행에서 요트 난파로 위험한 상황에 이르고 그 순간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손보미의 「끝없는 밤」.


상대의 모든 말과 행동을 눈치채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보통과 다른 어떤 표정이나 감정을 살피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이 아닌 문자, 쉼표, 이모티콘에 담긴 표정을 읽는 일 어렵지만 노력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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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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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은 매주 복권을 산다. 복권을 살 때 내가 옆에 있으면 그중 하나는 나를 준다. 내 돈 주고 복권을 사지도 않으면서 그 복권이 당첨되었는지 은근 기대를 한다. 혹시나, 혹시라도 하면서 QR코드를 확인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한 번쯤은 그런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바란다. 물론 동생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저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으로 복권을 산다.


노벨 문학상 수장 작가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 을 읽으면서 복권을 사는 마음이 생각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찌질하다고 해야 하나,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 윌헬름 때문에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소설을 발표한 1956년이나 지금이나 사는 게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의 주인공 윌헬름을 마냥 응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44세의 중년 남자 윌헬름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답답하기도 하고 어쩌자고 정신을 못 차리나 싶기도 하다가 오죽하면 저럴까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도 인생이 이리 흘러갈 줄 몰랐을 것이다. 대학 때 배우가 될 줄 알고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그에게 배우란 타이틀은 주어지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결혼생활에 충실했더라면 과거 배우 활동은 멋진 에피소드가 되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도 못하는 상태로 집을 나와 아내에게 두 아들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지금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인도 있다. 아내와 언제 이혼할지 알 수 없는 윌헬름를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줄지 모르지만.


회사를 그만둔 이유만 해도 그렇다. 기대했던 승진을 사장 사위에게 빼앗기고 회사를 나와버린 것이다.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박차고 나오다니. 어쩌면 윌헬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의사인 아버지였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현직에서 물러난 아버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들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는 있겠지만 현재로는 한 푼도 줄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 두 부자 같은 호텔에 머문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의 하루를 잘 알고 누굴 만나는지도 다 안다. 윌헬름는 자신의 경제 상황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을 기회를 엿보는데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부자 사이를 아는 늙은이들의 말을 듣기도 싫고 자신을 아이 대하듯 잔소리하는 아버지도 싫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어울리는 탬킨 박사라는 작자가 영 수상해서 멀리하라고 해도 윌헬름은 통 들어먹지 않는다. 사기꾼이 분명한데 아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 그러나 윌헬름은 탬킨 박사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의 화려한 언변과 확인할 수 없는 과거 이력에 이미 빠져 돈을 맡기고 선물 투자를 시작했다. 그들이 투자한 종목은 하락세를 보여 윌헬름은 돈을 빼고 싶은데 탬킨은 걱정하지 말라고 여유를 부린다. 탬킨 박사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것처럼 보인다. 이 얼마나 공감가는 말인가.


“우리한테 과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미래는 근심 걱정만 가득하고. 진짜는 현재뿐이야. ‘지금 여기 ’뿐이라고. 오늘을 잡아야지” (97쪽)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탬킨이 진짜 사기꾼이면 어쩌냐 싶어서 그의 느긋함이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진짜 잘 아는 게 맞나 싶어서 제발 윌헬름에게 아버지 말을 듣고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한데 설령 말이 전해진다 해도 윌헬름이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의 진심도 모르는 아들이지 않은가. 그렇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나 대신 선택과 결정을 하겠는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예상이 맞아떨아졌다. 탬킨은 사라졌고 윌헬름은 그를 찾아 나선다. 작정하고 달아났다면 어떻게 그를 찾겠는가. 복잡한 뉴욕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탬킨 같은 남자를 따라가다 모르는 이의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한 남자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오열하고 만다. 윌헬름이 무엇을 느꼈을지 알 수 없다. 그가 그 순간 얻은 깨달음을 알 수 없다.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는 윌헬름의 눈앞에서 꽃다발과 불빛이 황홀하게 어우러졌다. 바다처럼 웅장한 음악소리가 귀까지 차올랐다. 그는 눈물이 가져다주는 위대하고 행복한 망각의 힘으로 군중 한복판에 숨어들었지만 음악은 거침없이 그의 내면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윌헬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슬픔보다 더 깊게 가라앉았고, 애끓는 울음을 뚫고 마침내 무엇보다 절실했던 마음의 안식을 찾아 더 깊이 내려갔다. (172쪽)


이 모든 게 단 하루의 일이다. 그렇다면 윌헬름은 오늘을 잡지 못한 것일까. 잡은 것일까. 그가 남은 인생은 진짜 오늘을 잡고 오늘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현재의 오늘을 살아가는 윌헬름에게도 해당된다. 소설 속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오늘의 그것과 닮았고 투자 시장도 다르지 않다. 중년 남자의 고민과 윌헬름이 뉴욕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비슷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오늘을 사는 일, 녹록지 않다는걸. 인생이 그렇다는 걸 거듭 확인한다. 남동생은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복권을 샀을 것이다. 주말까지 확인할 수 없는 기쁨을 기대하고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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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4-03-1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가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아요 ....

자목련 2024-03-13 12:53   좋아요 1 | URL
달자 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나 연극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 모르고 이미 나왔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