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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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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지키는 빛이 퍼져나가는 광경을 직접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조해진에 대한 애정이 많지만 그것이 더 커지고 오래될 것 같은 완벽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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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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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절망의 근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삶을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규정과 시스템의 변화로 이제껏 살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삶을 배정받기도 한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사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럴 때 한 줌의 빛은 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글이라는 걸 안다. 이 모든 게 조해진의 소설집 『빛의 호위』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당신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표제작 「빛의 호위」는 단연 돋보이는 소설이다. 잡지사 기자인 ‘나’는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권은을 인터뷰하면서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반장이 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는 중요한 말을 권은에게 들었지만 그게 자신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소설은 권은과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권은이 나에게 들려주는 사진기자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권은의 카메라와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 속 알마 마이어의 악보에 대한 기억과 의미라 할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살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좋겠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작고 추운 방에서 기다리던 권은에게 도움을 주려고 반장은 아버지의 카메라를 훔쳤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당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마이어 지하 창고에 숨겨 주고 장은 음식과 함께 악보 한장씩을 넣어주었다. 권은의 세상에 카메라는 빛이었고 알마 마이어에게는 악보가 그러했다.

 

 마치 두사람을 태운 전혀 다른 두척의 배가 똑같은 섬에서, 똑같은 풍랑을 견디며 잠시 표류한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빛의 호위」, 14쪽)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러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의 호위」, 31쪽)

 

 권은과 알마 마이어의 사연을 통해 ‘나’이전과 다른 삶을 바라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내일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일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 빛이 되는 삶, 그 빛의 호위를 받으며 사는 삶 같은 것 말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빛을 전한다. 숨어 있는,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빛의 힘을 꺼내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저마다의 생을 살기에 급급하다. 모르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불운한 시대에 놓여 역사적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말이다. 결국 개인의 생이 모이고 엮여 역사가 만들어지니까. 독신으로 살다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고모의 첫사랑인 재일조선인 유학생 ‘서군’에 대한 이야기 「사물과의 작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모는 서군이 자신에게 맡긴 원고 때문에 서군이 유학생 간첩으로 몰렸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모도 서군도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이며 희생자였다. 생의 기억이 전부 사라지는 생에서도 고모에게 붙잡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은 서군이며 그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원한다.

 

 특별한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기억은 연극과도 같아서 기억 속 장면들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인위적인 무대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 기억의 주체는 감정적이고 과잉되기 마련이고, 때때로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물과의 작별」, 31쪽)

 

 이처럼 어떤 기억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어떤 기억은 삶을 갉아먹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철학 강사를 했던 「산책자의 행복」속 홍미영의 기억이 그러하다. 철학과는 인문학부로 통폐합되고 어머니의 병원비로 개인파산에 이르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철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독일로 유학을 간 제자 메이린은 메일로 안부를 묻는다. 과거 메이린이 친구의 죽음으로 힘들어했을 때 자신에게 해준 말이 의미를 새기며 살아간다고. 그것은 메이린을 살게 했고 마음 한편으로 삶의 부재를 바라는 현재의 홍미영에게도 그러하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는 게 두려운 누군가에게도 말이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자의 행복」, 31쪽)

 

 조해진의 소설은 대체로 무겁고 우울하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파고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존재에 대한 사유도 함께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알바생, 유학생, 이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입양아)의 등장도 그렇다. 그들이 타고난 유목민의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힘을 지니지 못한 사회적 약자이거나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다.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이들 가운데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이는 많지 않다.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선을 긋고 싶은 게 본연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해진은 그런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겨울의 빛은 점차 옅어진다. 온기를 품은 바람이 불고 매화는 새침한 꽃봉오리를 지녔다. 긴 기다림의 끝에 맞이하는 봄의 기쁨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날들이다. 봄을 나누는 동안 이 소설집도 함께 한다면 봄빛이 더 넓고 환하게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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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3-0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가까워오고 있어요.
자목련님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시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7-03-06 10:28   좋아요 0 | URL
점점 봄 기운이 느껴져요.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고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2017-03-0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0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2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0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2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텔 프린스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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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물건이나 공간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은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테마 소설집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작가의 소설과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왠지 특별하고 화려한 삶이 숨어 있을 것 같은 호텔이라는 공간의 이야기 『호텔 프린스』엔 삶이 있었다. 누군가는 집처럼 호텔을 드나들지만 누군가는 일생에 단 한 번도 호텔에 가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호텔은 여행이나 휴가 혹은 일탈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김미월의 단편 「프라자 호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이 떠오른 이유도 그러하다. 아쉬운 점은 호텔리어의 삶은 그린 소설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방향이나 에피소드와의 조우가 당연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호텔에 들어온 모녀를 다룬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 아내를 찾아 하와이에 온 남자의 이야기 「해피 아워」,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호텔에 투숙하며 병원을 오가는 부부의 복잡한 심리를 잘 보여주는 「때아닌 꽃가 인상에 남는다.  황현진의 소설은 처음이었고 서진과 전석순의 단편도 처음이었다. 장편소설로 만났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고 단편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엄마와 딸은 서로의 방식대로 상대를 대한다. 그러니까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인 것이다. 소설은 갑자기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엄마와의 통화로 시작한다. 딸은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고 엄마와 통화하느라 매장 밖으로 옷을 들고 나온 줄도 몰랐다. 직원은 절도라며 20배의 배상금을 주장한다. 있는 돈으로 일부를 결재하고 엄마를 만난 딸은 집이 아닌 호텔로 데리고 온다. 군대에 있는 애인의 방문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안 되는 애인과 자꾸만 연락을 하는 매장 직원 때문에 불안한 딸과는 다르데 엄마는 이유도 모른 채 호텔에 온 게 마냥 좋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호텔은 지옥 같은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겨진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 내용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 성구는 아내 미라를 찾아 하와이에 도착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서 온 것이다. 여유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성구는 불안하다. 아내와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우연히 발견한 훌라 교습 학원 영수증을 찾지 못했더라면 아내가 훌라를 배우고 학원 원장과 친구처럼 지낸 것도 몰랐을 것이다. 원장은 미라가 하와이로 떠났을 거라는 말을 듣고 성구는 이곳에 왔다. 하지만 어디서 미라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미라가 원했다고 믿는 하와이의 호텔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처럼 호텔은 떠나온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혜나의 「민달팽이」에 등장하는 호텔은 화가의 작업실이자 집이다. 청결하고 안락한 호텔방이 아니라 전산실, 기계실이 있는 어둡고 습한 지하. 사방에 유화물감이 가득한 그곳에서 스물둘의 ‘나’는 마흔이 넘은 화가와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그런 상대는 아니다. 아빠의 외도 현장을 엄마와 함께 목격한 후 나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후로 이혼한 엄마는 지루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호텔이 등장하지만 호텔의 기능은 상실한 공간이다. 김혜나는 호텔을 부모의 이혼으로 기능을 잃은 ‘나’의 집과 마음을 대변하는 장치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의미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 알아봤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마치 이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그저 잠시 잠만 자고 나가면 그뿐, 이곳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민달팽이」, 155~156쪽)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모르는 사이 서로의 삶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될 수 있는 공간, 이전의 나를 버리고 다른 나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 작가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실이 되는 공간, 그런 호텔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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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시인선 90
허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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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이라는 이유로 더 궁금했던 시집이다. 허은실이라는 시인을 모르고 이전에 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없는데 어떤 끌림이 있었다. 그건 『나는 잠깐 설웁다』란 제목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같은 제목의 시는 없다. 고단한 일상이 시집에 있었다. 아니, 그것을 견디는 몸짓이 있었다. 태생부터 이어져 온 외로움과 슬픔, 오늘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어떤 힘 같은 것이랄까.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도 많았다. 이상하게도 시가 안겨준 건 그리움이 아닌 아련한 통증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시는 커다랗고 강한 풍경으로 박힌다. 삼삼오오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나 공기를 하던 늦여름의 저녁이 떠오르기도 했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감긴 눈을 비비며 집으로 들어서던 젊은 엄마가 겹쳐지기도 했다.



제 식구를 부르는 새들

부리가 숲을 들어올린다


저녁빛 속을 떠도는 허밍

다녀왔니

뒷목에 와 닿는 숨결

돌아보면

다시 너는 없고

주저앉아 뼈를 추리는 사람처럼

나는 획을 모은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속으로만 부르는 것들은


네 이름이 내 심장을 죄어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도요라든가 저어라든가

새들도 떠난 물가에서

나는 부른다

검은 물 어둠에다 대고

이름을 부른다


돌멩이처럼 날아오는

내 이름을 내가 맞고서

엎드려 간다 가마

묻는다

묻지 못한다


쭈그리고 앉아

마른세수를 하는 사람아

지난 계절 조그맣게 울던

풀벌레들은 어디로 갔는가

거미줄에 빛나던 물방울들

물방울에 맺혔던 얼굴들은


바다는 다시 저물어

저녁에는

이름을 부른다 - 「저녁의 호명」전문

 

 

 분명 지나온 시절이지만 아득하게 먼 기억들, 어쩌면 너무 아파서 잊고 싶었던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성장하는 몸처럼 우리네 생도 성장하면 좋겠지만 성장통보다 아픈 통증을 몰고 온다.  그 끝에서 한층 단단해진 시간과 마주하고 싶지만 여전히 벅차다. ‘완전히 절망하지도 / 온전히 희망하지도 / 미안하지만 나의 모자여 /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  「목 없는 나날」일부, ‘식탁을 사이에 두고 / 한 고통과 다른 고통이 마주보고 있다’ - 「데칼코마니」일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의 전체가 아니더라도 여름날의 나무그늘이나 겨울의 손 난로 정도의 언덕만 있어도 좋을 텐데. 참고 또 참으며 살아야 하는 게 서럽고 서러워 혼자서 울었던 밤, 그 밤을 헤아리는 시인의 시가 고맙고 따뜻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위안이 되면 좋겠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 「이마」전문



 길고 긴 위안으로 남아 설운 마음은 아주 잠깐이면 좋겠다. 그러나 곧 이런 시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만다. 어쩜 이렇게 내 이야기 같을까, 하는 이는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월 말이면 보이지 않는 갈퀴손이 돈을 쓸어가고 한숨만 남는 통장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울적하다.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기대는 너무 멀리 있고 시들어가는 몸이 서럽다.



 심장을 말릴 시간이에요, 알람이 운다, 달력은 그물로 지

은 구멍, 버스 안에서 나는 잔액이 부족합니다, 길은 컨베이

어벨트, 달려도 달려도 줄어들지 않아, 눈알을 빼줄까요 입

술을 줄까요, 구멍의 공포가 나를 살게 합니다, 태초의 천

진한 목젖, 식구와 총구 앞에서 우리는 저열하거나 비열하

다, 발설과 배설을 위한 주름에서 이데올로기가 자라고, 목

줄을 매야 들어갈 수 있는 문에서 나는 기록된다, 아이디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와 동일하지 않다, 경보 창이 깜

빡이고, 시스템 오류입니다, 나는 집 밖에 감금된다, 도난

경보 장치가 사냥개처럼 짖는다, 숭숭 자라는 골다공의

를 향해 우리는 멍멍, 냉장고에는 과태료 고지서가 김치보

다 오래 익어 어떤 집의 전구가 퍽 나간다, 가스 공급 중단

합니다, 교회 종소리에 깜짝 놀라는 여기 죄인이 있다, 털이

바진 늑대가 베란다 귀퉁이에서 흰 울음을 토한다, 발톱이

가렵다, 구파발 구파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어떤 이는 안전선 바깥쪽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늑대는 뒷걸음치지 않는다 - 「나는 잔액이 부족합니다」전문



 나이를 먹을수록 생은 물기가 사라진 감정들로 채워진다. 살아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닌데, 가끔은 망각의 숲으로 가고 싶다. 그래도 겨울 지나 봄이 오고 있으니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기 보이는 봄을 기다리며 시를 읽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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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게 묻고 싶은 한 가지 - 스스로 길을 찾는 자문자답의 힘
켄 콜먼 지음, 김정한 옮김 / 홍익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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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뿐인 인생을 멋지게 사는 유일한 비결이다. (256쪽)

 

 2월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끝과 시작이 맞닿은 느낌이랄까. 유치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모두 2월에 한다. 가을학기에 졸업하는 대학생도 있지만 말이다. 졸업식이 끝나면 누군가는 입학을 하고 누군가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어렵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졸업은 사회라는 문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 문을 열어야 하는 이들에게 어떤 책이 도움이 될까. 개인적으로 자기 계발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문장이 필요하다. 현재의 내가 그렇고 복잡한 마음을 갖고 2월을 사는 누군가에게도 그럴 것이다.

 

 ‘가장 주목받는 팟캐스트’ 1위에 선정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켄 콜먼의내 인생에게 묻고 싶은 한 가지 』는 선택의 길에 놓인 이들에게, 실패의 두려움으로 멈춘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인생에서 성공한 이들 36인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그 가운데 핵심적인 질문 한 가지와 답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 탐스 슈즈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전 위싱턴 DC 교육감 미셀 리,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심리학자 엔소니 로빈스,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까지, 그러니까 멘토와의 대화로 해석해도 좋다. 성공한 이들의 삶이 소위 말하는 금수저의 길은 아니었다. 그들도 실패를 경험하고 비난과 좌절의 소용돌이의 시간을 보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변화했고 도전했다는 것이다.

 

 책은 오늘의 삶은 어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모든 승리자는 최선을 다해 패배를 경험했다, 내 인생 최고의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3가지로 나눠 역할, 소통, 꿈, 기회, 비전, 용기, 실패, 장애물, 인간관계, 용서, 책임, 리더십, 감사, 재도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뻔한 대답을 만날 수도 있다. 이미 성공한 이들의 많은 성공담이 있으니까. 그러나 36가지 질문과 대답 가운데 어떤 것들은 바로 내게로 흡수가 된다.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듯 필요한 조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위치(학생, 리더, 사업가)에서 필요한 질문, 혹은 원하는 답의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어렵고 딱딱하게 접근하면 독자에게 흡수되지 않는다. 켄 콜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적절하게 인터뷰 내용과 연결한다. 그래서 멘토의 가르침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런 조언이 와 닿았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다짐의 반복 효과 같은 것일라고 할까.

 

 바라는 미래와 마음에 품은 비전을 종이에 써가지고 다니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미래와 비전에 관해 그냥 생각하는 것열렬히 꿈꾸는 것은 아주 다른데, 미래와 비전을 종이에 적으면 보다 완벽하고 정확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러한 그림이 미래로 가는 나의 발걸음을 보다 분명한 목표 지점으로 향하게 합니다. (89~90쪽, 앤디 스탠리 목사)

 

 인생에서 뭔가 배울 수 있을 때는 기쁨이 가득하고 안락한 순간이 아니라 비판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들 모두가 겪는 일인데,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여 거기서 교훈을 얻고 더 나아진 삶으로 가느냐, 아니면 더 비참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느냐, 선택은 자유지만,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너무도 분명합니다. (134쪽, 미셀 바크먼 하원의원)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건 자신이다. 한 번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림을 그리는 재료도 저마다 다르다. 지우개로 지울 때도 있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수도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림을 찢어버리는 건 미련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미셀 바크먼 하원의원의 말처럼 받아들이고 어떻게 수정하고 어떻게 그려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그 고민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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