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보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읽지 않았던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소재가 비슷했던 소설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많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전생에 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호기심으로 전생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생이 있다면, 혹은 환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전의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까?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은 후의 생각이다.


 소설은 기이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화자라 할 수 있는 오사나이 앞에 죽은 딸의 기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아이와 어머니가 있다.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사나이의 과거로 이어진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아내 고즈에와 딸 ‘루리​’의 이야기.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린 건 루리가 일곱 살 되던 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후 건강을 찾는 루리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인형에게 남자 이름을 붙여주고 동요가 아닌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가장 중요한 것 딸의 눈빛이다. 아내는 딸을 걱정했지만 오사나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시작은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즈에가 딸에 대해 걱정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혼자 남은 오사나이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와 지내던 중 딸이 남긴 그림을 발견한다.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모녀가 바로 또 다른 루리와 어머니다.

 

 같은 이름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여자아이와 그림 속 남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놀라웠다. ​소설은 이제 더욱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림 속 남자 미스미의 사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작소설인 것처럼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집중시킨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미스미와 유부녀 루리의 만남은 사랑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 미스미와 루리는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무기력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루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묘한 말을 남긴다.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택할 거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미스미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리고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죽은 루리가 환생하여 미스미를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그와 닿기를 원했던 안타까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환생한 루리는 모두 오사나이의 딸이 겪은 과정을 겪는다. 일곱 살에 열병을 앓고 다른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차례대로 청의 미스미, 중년의 미스미를 만나기를 원한다. 만약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죽은 가족이나 연인이 다른 몸으로 환생하여 내 앞에 나타나 있다면 말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환생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소설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며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명으로 이어진 끊을 수 없는 고리 같은 것. ​지극히 뻔한 소재와 진부한 결말이 아닌 놀라운 감동을 선물한다.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루리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182쪽)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고 난 후 누군가는 주변을 둘러볼지도 모른다. 영원한 이별을 한 누군가가 다시 내 곁을 맴도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달의 영휴』에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에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렵지 않는 사랑을 만난다.  미리 살짝 힌트를 주자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달의 영휴』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편지다.

 1년 후의 나에게 보낸 편지가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다. 재혼을 앞두고 친한 아빠 연습을 하는 아빠의 제안으로 쓴 편지가 현재가 아닌 과거 1982년 은유에게 배달된 것이다. 2016년, 미래에서 보낸 편지를 받은 은유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열다섯 은유에게 답장을 한다. 마법처럼 과거에서 온 편지는 아빠의 재혼 후 독립을 꿈꾸는 언니 은유에게 도착한다. 신기한 건 과거의 은유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현재의 은유의 것은 천천히 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미래의 은유가 언니였지만 나중에는 과거의 은유가 언니가 되는 것이다. 편지로 인해 미래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가 알지 못하는 사건을 알려주고 아빠의 재혼으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미래의 은유는 엄마의 존재를 모르며 아무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아빠는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처음에 사춘기 소녀의 반항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 과거의 은유는 어린 은유를 달래며 자신도 항상 언니와 비교당하며 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점차 은유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과거에서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은유의 엄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것. 은유 아빠의 인적 사항을 통해 과거의 은유가 아빠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드디어 만난 은유의 아빠는 자신과 동갑이었고 어린 은유의 말처럼 무뚝뚝하고 무서운 사람이 아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과거의 은유는 적극적으로 은유 아빠의 주변을 맴돌며 은유의 엄마가 될 것 같은 여자를 주시한다. 그리고 과거의 은유를 통해 은유는 조금씩 아빠를 알아가고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랑 내가 같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달려와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219쪽)

 

 편지가 오가면서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은유의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빠가 왜 엄마의 이야기를 함구하는지 알 수 있을까. 누가 은유의 엄마일까, 미래의 은유와 과거의 은유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건 편지라는 아날로그의 소통 방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진심을 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은유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도 역시나 편지였으니까. 사랑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신이 죽음과 맞바꾼 귀한 생명, 엄마와 딸.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맹세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 맹세가 얼마나 연약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오직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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