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을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의 기본적인 건강 검진이었다.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재고 간단한 문진을 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할 때도 의사가 뭔가를 검사한다고 말했지만 감았던 눈을 뜨고 그 실체를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일주일 뒤 걸려온 안내 전화에서 직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위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지만 다른 과에서 재검을 받으라는 연락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검사 날짜를 잡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힘들었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기다림이었다. 일주일 동안 좋지 않은 결과를 대비해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 통장 잔고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나의 몸은 자꾸만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2년 전에 큰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 작은언니와 나는 스스로를 챙기려 노력한다. 때로 그런 노력은 고통을 참아내는 미련함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올해 작은언니는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이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미루다가 심각한 수준이라 입원을 했고 여전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생활한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더 이상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장기 운전도 힘들어한다. 건강 보조 식품을 챙기기 시작했고 잘 마시지 않았던 우유도 꼬박꼬박 먹으려 한다. 몸이 아프다는 건 속상하고 서러운 일이다. 빠른 회복이 어려운 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일도 그러하다.

 

 내가 사는 인생의 계절은 봄과 여름이 아니다. 매일 젊음과 이별하면서도 그 젊음이 부럽지 않다고 자부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나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건강 검진 재검 후 불쑥 불쑥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해 빠져들곤 한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대가 아니라 유한하며 줄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시골에 살다 보니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면 만나는 분들이 모두 노인들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친구이자 이웃이었기에 언제나 나를 반기시고 예뻐해 주신다. 그분들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활발함과 생기발랄한 청년이 되는 것이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 모습이 보이지 않는 분들은 요양원에 계시거나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

 

 늙음과 죽음은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자꾸 떠올린다. 죽음을 앞둔 삶을 이미 지켜보았다. 때문에 주인공 대드 루이스와 그의 가족과 이웃들의 일상은 소설 그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준비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 그리고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 그 시간이 산다는 것에 있어 무엇이 축복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드 루이스와 아내, 그들의 딸과 이웃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때로 다투고 사소한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하고 서로의 삶에 깊게 개입하지 못한다. 그들 중 하나는 과거의 나였으며 현재의 나였고 미래의 나였다.

 

“8월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대드 루이스는 그날 새벽 세상을 떠났고 이웃집 어린 소녀 앨리스는 저녁에 길을 잃었다가 어둠 속에서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집을 찾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날씨는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졌으며, 겨울이 되자 산맥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홀트 카운티의 고원지대에는 폭풍이 불고 사흘 내리 눈보라가 쳤다.” (462~463)

 

 늙는다는 건 가장 위대한 축복은 아닐까. 하지만 제 기능을 다한 육체를 받아들이는 일도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백세 시대를 살면서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하루가 다르게 증폭한다. 발생하지 않은 일까지 대비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니까. 어떻게 늙어야 할까. 어른들 말씀이 곱게 늙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늙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나로 존재하고 싶은 갈망을 지울 수 없다. 아름다운 노년, 당당한 노년을 살고 싶다.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의 엄마처럼 말이다. 그저 함께 산책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산문집이었는데 노년의 삶이 거기 있었다. 같은 시각에 일어나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는 모습, 일흔의 나이에도 무언가를 배우는 열정은 나도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키운다. 그러다가도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나는 어디쯤 걷고 있는 것일까. 한때는 빨리 뛰어갈 수 있기를 바랐지만 요즘은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그 길에서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단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156)

 

 그러다 보니 노년의 삶을 기록한 소설을 예전보다 더 많이 읽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등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하루하루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혼자 고독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과거에 매몰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여전히 고된 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정은의 소설집아무도 아닌속 인물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고추밭에 고추를 따러 간 하루의 일상을 담은上行에서 고추를 따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다음에 또 오라며,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묻는 노부인이나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연체금 독촉을 하는 여자가 얻은 집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들려주는 누가에선 전에 혼자 조용히 살았던 노인은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명실속 명실의 삶은 어떠한가. 그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를 추억하며 사는 동안 그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 정작 자신의 기억은 놓아버리고 마는 명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이제 기억뿐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억. 가지고 있다고 믿는 기억. 그러나 이것들은 다 없어진다. 나와 더불어서. 나의 죽음과 더불어서 조만간, 아마도 곧…… 아무도 실리를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실리는 영원히 잠길 것이다. 망각으로.” (106)

 

 이렇게 앉아서 몇 번의 겨울을 더 맞게 될까. 몇 번의 봄과 몇 번의 여름을. 그녀는 생각했다. 죽은 뒤에도 실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난처한 상상인가. 얼마나 난처하고 허망한가. 허망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가. 그게 필요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이때. 어둠을 수평선으로 나누는 불빛 같은 것, 저기 그게 있다는 지표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했다. 그녀는 노트에 만년필을 대고 잉크가 흐르기를 기다렸다. 제목을 적고 쉼표를 그리고 그 이름을 적었다.” (110 ~ 111)

 

 작은언니와 나는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에 보내라며 농담처럼 진심을 서로에게 건넨다. 아마도 늙는다는 것에 대해 가장 무서운 건 몹쓸 병에 걸리는 것이리라. 아무도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살아내는 것 말이다. 기미는 짙어지고 주름은 늘어나고 꼬박꼬박 삼시 세 끼를 챙기며 늙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게 싫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날들이 많아진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힘들 지도 모른다.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할 곳이 늘었고 때때로 늙는다는 것에 마음이 요동칠지도 모르니까. 어떤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나 계획을 세우는 대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감사를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고 기록하며 살고 싶다.

 

 늙어간다는 건, 어느 계절쯤에 살고 있다는 걸까? 젊지도 않은 나이,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나이, 하지만 점점 여기저기 아파오는 나이쯤에 살고 있다는 건 봄·여름·가을·겨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만이 느끼는 계절감은 있다. 계절이 바꾸는 걸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싸우고 화해하며 매일매일 늙고 있는 삶이 축복이라는 걸 먼 훗날 나의 실리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내가 사는 계절, 그 어디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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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5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7-12-1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를 추천해드려요 나이듦어 슬퍼하기보다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하길....

자목련 2017-12-15 12:03   좋아요 1 | URL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합니다. 강나루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