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인은 종종 다툰다. 사소한 싸움으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기도 한다. 보통의 연인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지나치게 사소한 것에 자주 화를 내고 집착이 심해지면 둘의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감싸 안아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짓이다. 그러니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괜찮을 거야, 내가 더 이해하면 괜찮을 거야 믿으며 만남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강화길의 소설을 읽고 확신했다. 강화길의 단편집 『괜찮은 사람』과 장편소설『다른 사람』은 폭력(데이트 폭력, 왕따, 온라인 댓글 폭력)을 다룬다. 

 

 강화길의 단편에서 공포는 부드럽게 조성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남자친구(「호수-다른 사람」), 모두가 선망하는 유치원(「니꼴라 유치원- 귀한 사람」, 완벽한 연인(「괜찮은 사람)」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처음엔 그들의 삶에 합류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과 교류하여 그들과 같은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호수-다른 사람」속 민영을 끔찍하게 챙기며 사랑하는 그의 남자친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호숫가에서 민영이를 해친 범인이 남긴 단서를 함께 찾아보자고 진영에게 그곳에 가자고 했을 때 진영은 완강히 거부해야만 했다. 그에게 전해지는 섬뜩함과 두려움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건 진영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진영뿐 아니라 강화길의 소설 인물이 대체로 그러했다. 답답할 정도로 상대의 말을 믿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타인의 평판이 중요하기도 했다. 매일 만나는 사랑하는 이가 한순간 공포의 존재가 된다는 걸 믿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것이 나름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 이야기할 때면 몸의 어딘가에 난 깊고 붉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쓰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는 느낌.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는 모르는, 나도 모르게 몸에 박힌 상처를 발견하는 기분. 그래서였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털어놓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호수 - 다른 사람」, 19쪽)

 

 그래서 진영은 말을 아꼈던 건 아닐까.「니꼴라 유치원- 귀한 사람」속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지만 유치원 원장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유치원만 졸업하면 아이의 미래가 밝고도 환한데, 대기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으니까. 

 

 뒤늦은 후회를 했을 때 우리는 되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걸 놓치고 만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인다. 결혼 예정인 「괜찮은 사람」의 ‘나’처럼 말이다. ​약혼자와 함께 그가 사 둔 집을 보러 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 소설에서 민주는 내세울 게 없는 존재다. 약혼자에게 비하면 그렇다. 그래서 그와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의 폭력과 공격은 감싸 안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빈약하고 허름한 트랙에서조차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불안은 순식간에 번지는 곰팡이와 같아서 쉽게 눈에 띄었고, 그러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과 정말로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건, 굉장한 차이였으니까. (「괜찮은 사람」, 88쪽)

 

 그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괴기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 내부도 그렇다.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그가 설명하지 않는 이유가, 아니면 별일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더럽고 흉물스러운 풍경, 고약한 냄새, 어느 하나 산뜻하지 않다. 정말 그가 그토록 바랐던 집이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돌아가자고 말해야 했지만, 말하지 못한다. 알면서도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민주는 계속해서 괜찮은 척한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소설 속 인물은 뻔히 보이는 결말을 향해 걸어간다. 두렵다고, 싫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않거나 그곳에 계속 머문다. 어쩌면 그건 강화길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폭력, 일상이 된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의 떨림을 알아채야 한다고. 더이상 괜찮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그에 비하면 장편소설 『다른 사람』에서 강화길은 작정하고 끔찍한 폭력을 들려준다. 직장 상사인 남자친구에게 다섯 번째 폭력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한 진아. 사건이 언론이 알려지고 회사를 관둔 진아의 삶은 온전할 리 없었다. 피해자인 진아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아가 온라인 댓글을 보고 과거 누군가를 떠올리고 소설은 확장된다. 그러니까 진아 혼자만이 아닌 단아, 유리, 수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화길은 진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회 전반의 폭력을 다룬다.

 

 서울의 대학으로 편입을 하기 전 진아가 다녔던 지방의 대학교, 그리고 진아의 친구들. 그들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잊고 있었다고 믿었던 상처, 시간이 지났으니까 괜찮아졌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시절. 폭력을 행사하며 피해의식이 있다고 말하는 나쁜 남자. 아무렇지 않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자.피해자였음에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진아, 유리, 수진의 고통.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감을 갖고 만나 사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예상했지만 폭력을 묘사하고 고통받은 일상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배운 여자애들.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여자애들. (59쪽)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228쪽)

 

 그렇지 않은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 그렇게 대단하지도 엄청나지도 않는 사건. 그러나 어넺나 존재해왔던 살마. 이것이 나의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끝없이 편지를 쓰는 것, 혼자 책 속에 파묻히는 것,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때때로 그 모든 것은 날조된 기록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당신 일을 서술할 때가 아니다. 내가 저지른 일을 적어나갈 때다. 나는 여러 버전의 기억들을 쓰고 또 쓴다. 왜냐면 클리세는 문을 닫고 나오는 것까지만 나올 뿐이니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 혹은 문들 다시 닫아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쓰기도 한다. (332~333쪽)

 

 나는 어떻게 자랐는가. 지금의 나는 조카나, 후배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가슴이 답답했지만 『다른 사람』속 진아, 단아, 수진은 더이상 수동적 삶에서 벗어나려 한다. 리베카 솔닛의 글을 빌리자면 침묵하지 않는다. 두렵고 무서워서 스스로를 가둔 방에서 무수한 질타와 시선을 감내하며 나오는 중이다. 리베카 솔닛의 문장에서 언어 대신 소설을 넣어 읽어보았다. 강화길의 소설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언어가 추구할 가장 진실 되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상을 또렷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잘 보도록 돕는 것이다. 언어와 그가 반대로 쓰였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곤란에 처했고 어쩌면 무언가 은폐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중에서)

 

 강한 흡입력으로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구성과 전개, 앞으로 어떤 결말이 나올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떤 결말을 만들어야 할까. 피해자가 숨지 않는, 혼자만의 방법으로 고통과 싸우지 않는, 따뜻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결말은 과연 올까. 그들이 원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대답할 수 없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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