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산책 아닌 산책을 한다. 제법 고요한 시각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화단을 지나 단지를 도는 게 전부다. 말 그대로 천천히 걷는다. 맑은 새소리와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난다. 벚나무는 꽃 대신 이파리가 왕성하고 붉은 동백은 피거나 진다. 수수꽃다리의 향은 감미롭고 그늘에 서 있던 목련 나무는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침대에 누워서는 알 수 없는 것들, 아침만이 들려주는 소리며 보여주는 색이다. 비슷한 시각에 집을 나서니 주인을 따라 나온 작고 검은 강아지와 두 번 만났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조금 붉게 상기된 얼굴로 시작하는 하루다. 커피를 마시고 성경을 읽고 짧은 기도를 드린다.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이들, 한국에 없는 너를, 생일인 조카를 생각하고 병원 검사를 앞둔 오빠를 생각하며 4월에 관련된 노래를 들으며 4월을 보내고 있다. 4월의 계획은 지켜지고 있는가...

 

 읽어야 할 책 대신 이승우와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이승우의 소설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김훈의 소설은 삶에 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손 닿는 침대와 책상, 소파에는 이런 책들이 있다. 공지영과 구효서의 단편집은 계획에 없던 주문이다. 공지영의 신간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읽으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고통은 소설이 된다’는 문구에 홀린 것이다. 그리고 시집을 샀다. 기다렸던 유희경의 시집, 제목에 반해 구매한 안미옥와 한인준의 첫 시집. 유희경의 시집은 판형도 작고 아주 얇다.

 

 

 

 

 

 

 

 

 

 

 세 권의 시집을 나란히 두고 한 권의 시집에서 하루에 하나의 시를 읽어도 괜찮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끌리는 제목대로 목차에 상관없이 그렇게 읽는다. 그리하여 선택된 오늘의 시는 이렇다.  내일은 내일의 시가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내일은 다른 내일이 된다.

 


 

 저기, 저기로 가도 저기를 여기라고 부르고 말 거야. 우

리는 자주 여기에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승강장에

앉아 있는 널 일으켜본다. 함께한 새벽마다


 각자 돌아갈 집이 생각나. 가자. 내일이 오면 다시 출발

할 거야. 그런데


 도착하긴 하는 걸까. 드러누운 침대 위로 실패한 다짐

들만 가득해지는데. 캄캄한 강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밤

마다


 우리는 확신하게 위해 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두

들 어디서 내렸을까. 움직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잘못 나온 지하철 출구로 다시 들어가면 우리가 보였다.

나는 우는 너에게 팔 벌려 정작 나를 두껍게 껴안지


 내 등을 흔들었다 「위로」, 전문 - 한인준

 

 

 

 

 

 

 

 

 

 

 

 

 기린과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 도마 위에는 화살표들을

쏟아놓고, 오래 신은 발을 일부러 놓쳐볼 것. 다른 곳에는

다른 것이 있다고 믿겠지. (…) 다른 것은 이곳에 있다. 낡

은 수첩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어제 입은 옷을 세탁기

에 집어넣을 때. 아픈 팔을 기어코 어깨에 달고 있을 때. 그

림자를 자주 보고, 뜀틀에 손을 짚고 두번, 세번 만에 넘어

볼 때. 혹은 넘지 못할 때. 사과의 맛을 구별해낼 때. 누군

가에게는 괜찮다는 말, 익숙한 것들을 실제로 말해볼 때.

(…) 불 꺼진 복도에 불을 켜고, 고개를 돌린 사람과 마주

보게 되고. 시계, 침대, 문, 계단이 열리면. 이곳에는 다른

것이 있다고 믿겠지. 시작은 언제든지 시작된다. 바보들이

니까.  「나를 위한 편지」, 전문 - 안미옥

 

 

 

 

 

 

 

 

 

 

 

나에겐 화분이 몇 개 있다 그 화분들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어쩌면 따박따박 잊지 않고 잎 위에 내려앉은 햇빛이 그들의 본

명일지도 모르지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젖

을 정도로 부어주는 물도 그들의 이름일 테지 흠뻑 젖고 아래로

쏟아낸 물을 다시 부어주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발을 보았다 거실의 부분, 환하다 「화분」, 전문 - 유희경

 

 

 

 

 

 

 

 

 

 

 

 

 조금씩 달라지는 아침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일, 산책이다. 시를 가까이 두는 일, 시집을 읽는 것이다. 아침을 만지는 산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의지력은 약하고 게으름은 언제나 강하니까. 이파리가 자라는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 산책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4-20 14:3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4 17:23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