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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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절망의 근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삶을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규정과 시스템의 변화로 이제껏 살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삶을 배정받기도 한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사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럴 때 한 줌의 빛은 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글이라는 걸 안다. 이 모든 게 조해진의 소설집 『빛의 호위』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당신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표제작 「빛의 호위」는 단연 돋보이는 소설이다. 잡지사 기자인 ‘나’는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권은을 인터뷰하면서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반장이 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는 중요한 말을 권은에게 들었지만 그게 자신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소설은 권은과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권은이 나에게 들려주는 사진기자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권은의 카메라와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 속 알마 마이어의 악보에 대한 기억과 의미라 할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살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좋겠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작고 추운 방에서 기다리던 권은에게 도움을 주려고 반장은 아버지의 카메라를 훔쳤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당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마이어 지하 창고에 숨겨 주고 장은 음식과 함께 악보 한장씩을 넣어주었다. 권은의 세상에 카메라는 빛이었고 알마 마이어에게는 악보가 그러했다.

 

 마치 두사람을 태운 전혀 다른 두척의 배가 똑같은 섬에서, 똑같은 풍랑을 견디며 잠시 표류한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빛의 호위」, 14쪽)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러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의 호위」, 31쪽)

 

 권은과 알마 마이어의 사연을 통해 ‘나’이전과 다른 삶을 바라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내일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일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 빛이 되는 삶, 그 빛의 호위를 받으며 사는 삶 같은 것 말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빛을 전한다. 숨어 있는,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빛의 힘을 꺼내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저마다의 생을 살기에 급급하다. 모르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불운한 시대에 놓여 역사적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말이다. 결국 개인의 생이 모이고 엮여 역사가 만들어지니까. 독신으로 살다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고모의 첫사랑인 재일조선인 유학생 ‘서군’에 대한 이야기 「사물과의 작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모는 서군이 자신에게 맡긴 원고 때문에 서군이 유학생 간첩으로 몰렸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모도 서군도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이며 희생자였다. 생의 기억이 전부 사라지는 생에서도 고모에게 붙잡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은 서군이며 그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원한다.

 

 특별한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기억은 연극과도 같아서 기억 속 장면들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인위적인 무대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 기억의 주체는 감정적이고 과잉되기 마련이고, 때때로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물과의 작별」, 31쪽)

 

 이처럼 어떤 기억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어떤 기억은 삶을 갉아먹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철학 강사를 했던 「산책자의 행복」속 홍미영의 기억이 그러하다. 철학과는 인문학부로 통폐합되고 어머니의 병원비로 개인파산에 이르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철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독일로 유학을 간 제자 메이린은 메일로 안부를 묻는다. 과거 메이린이 친구의 죽음으로 힘들어했을 때 자신에게 해준 말이 의미를 새기며 살아간다고. 그것은 메이린을 살게 했고 마음 한편으로 삶의 부재를 바라는 현재의 홍미영에게도 그러하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는 게 두려운 누군가에게도 말이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자의 행복」, 31쪽)

 

 조해진의 소설은 대체로 무겁고 우울하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파고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존재에 대한 사유도 함께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알바생, 유학생, 이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입양아)의 등장도 그렇다. 그들이 타고난 유목민의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힘을 지니지 못한 사회적 약자이거나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다.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이들 가운데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이는 많지 않다.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선을 긋고 싶은 게 본연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해진은 그런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겨울의 빛은 점차 옅어진다. 온기를 품은 바람이 불고 매화는 새침한 꽃봉오리를 지녔다. 긴 기다림의 끝에 맞이하는 봄의 기쁨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날들이다. 봄을 나누는 동안 이 소설집도 함께 한다면 봄빛이 더 넓고 환하게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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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3-0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가까워오고 있어요.
자목련님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시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7-03-06 10:28   좋아요 0 | URL
점점 봄 기운이 느껴져요.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고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2017-03-07 09:42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7 10:4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