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는 단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무가 주는 기쁨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같은 것을 보고 읽고 있었다. 다큐에서는 소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를 다뤘다. 방송을 통해 나무와 숲,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책은 미야시타 나츠의 『양과 강철의 숲』이란 장편소설이다. 한 마디로 말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주인공 도무라가 조율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잔잔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하 열정,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더욱 빛나는 건 잔잔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운 비유와 묘사 때문이다. 피아노를 통해서 보여주는 나무와 숲이라니. 나무와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을 조합처럼 보이지만 무척 잘 어울린다.

 

 ‘건반은 총 여든여덟 개가 있고 각각의 건반에 한 줄부터 세 줄까지 현이 연결되어 있다. 강철 현이 똑바로 뻗고 그 현을 때리는 해머가 마치 목련 봉오리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등이 꼿꼿하게 펴졌다. 조화를 이룬 숲은 아름답다.’ (25쪽)

 

 도무라는 우연하게 학창시절 학교 강당에서 조율사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그는 숲을 떠올리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조율을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일하는 악기점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피아노를 닦고 선배를 따라 피아노 조율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고객와의 응대와 피아노에 대한 것을 배우고 익힌다. 그럼에도 조율사로의 일은 쉽지 않다. 고객과 스스로에게 완벽하면서도 만족한 조율을 하고 싶지만 매번 좌절만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피아노를 잘 모른다. 피아노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연주곡과 어린 시절 다니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 앞을 서성이던 모습만 따라온다. 그리고 연주자인 피아니스트가 전부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조율사는 이상하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소리를 매만지는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소설은 조율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세계로의 여행은 생경하면서도 신비롭다. 어쩌면 주인공 도무라가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피아노를 통해 숲을 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숲을 떠난 온 도무라에게 숲은 언제나 가족이자 그리움이었다. 언제나 그곳에 자리한 나무와 숲.

 

 나무는 나무다. 내가 이름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그곳에 존재하며,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잎이 자라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이윽고 열매가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진다. 어린 시절, 가을날, 숲에서 놀다 보면 사방에서 열매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켰다. 내가 있어도 없어도 나무 열매는 떨어진다.’ (40쪽)

 

 소설은 조금씩 조율사로 성장하는 도무라와 함께 같은 듯 다르게 조율사로 살아가는 이들이 들려주는 조율에 대한 해석과 의미,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고객들의 이야기다. 단순하게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 피아노로 인해 변화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연주가 된다. 하나의 피아노는 연주자의 손을 만났을 때 숨을 쉬고 조율사의 손을 만났을 때 편안하게 노래를 한다. 도무라는 자신이 조율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성장하는 쌍둥이 자매를 통해 더욱 조율이 주는 기쁨과 감동에 다가간다.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에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과 만나는 이에게 이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강한 응원과 격려가 된다. 피아노를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으로 다가온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음악을 들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음악. 가즈네의 지금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계속 이어져온 음악. 짧은 곡을 연주하는 동안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결이 일렁였다. 가즈네의 피아노는 세계와 이어진 샘이어서 마르기는커녕 듣는 사람이 설령 하나도 없었더라도 계속 샘솟아왔다. (197쪽)​

 

 영롱하고 투명한 피아노 연주를 들은 듯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무와 피아노를 다룬 『슈베르트와 나무』가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무 칼럼리스트 고규홍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가 함께 나무를 만나는 이야기다. 나무처럼 편안하고 햇살처럼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본다는 것에 익숙해져서 다른 감각을 잊은 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색다른 자극을 전한다. 고규홍과 김예지는 같은 나무를 보고 느낀다. 안내견 찬미와 함께 매일 걸었던 길에서 만나는 나무와 꽃은 이전의 그것이 아닌 나무로 다가온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귀를 기울인다. 고규홍이 나무에 대해 설명해주면 김예지는 감각에 더해 기억한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꽃이 진 목련나무를 천천히 만난 김예지가 들려주는 말은 철학적이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겨 다른 무엇으로는 확장시키지 못한 사유였다.

 

 ‘나무는 제 향기와 빛깔에 따라 다른 소리를 가진다. 바람이 몰래 다가와 잎을 스쳐 지나는 소리가 나무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또한 분명 다르다.’ (『슈베르트와 나무』, 53쪽)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어요? 뭐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나무의 크기뿐 아니라 나무의 생명 에너지 같은 기운이 분명히 내 주위에 드리워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사람을 압도하는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어요.​” (『슈베르트와 나무』, 254쪽)

 

 두 사람의 나무 체험을 통해 김예지는 눈이 보이지 않아 걸림돌이라 여겨졌던 나무와 음악이 닮았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여정의 끝에 서면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나무가 더 좋아졌고 눈이 아닌 몸으로 나무를 만나고 싶어졌다. 한 번 쯤 눈을 감고 나무를 안아보고 나무 잎사귀를 만져보고 나무 기둥에 코를 대보고 싶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나무를 통해 느낀다. 봄을 품고 있을 나무를 상상하게 만든다. 『양과 강철의 숲』과 『슈베르트와 나무』은 묘하게 닮았다. 행간에 퍼지는 숲의 향기와 피아노 소리를 듣는 순간, 진짜 휴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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