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반이 사라졌다. 사라진 건 아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나를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차마 말할 수 없다. 게으름이 게으름을 낳고 미련이 미련을 낳고 주저함이 주저함을 낳고 의미 없음이 의미 없음을 낳았다. 어제가 오늘을 낳았고 오늘은 내일을 낳았으니, 어제가 내일이 된 것이다. 이런 마음을 목사님이 아셨는지 새벽 기도에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한 친구는 집을 계약했고 한 친구는 가을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친한 동생은 내년에 한국을 떠나 먼 곳으로 갈 거라 말했다. 한 친구는 내게 속상함을 토로했고 한 친구는 넋두리처럼 쏟아냈고 동생은 진지한 계획을 들려주었다. 들어주는 일,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일,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이 모두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말을 받아든 짧은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담아두고만 말았다. 작은 언니의 말라위행은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민정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과 이장욱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 나왔다. 시집의 소식은 언제나 반갑고 설렌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쁨이 신선하지 않다. 누군가의 시집을 나는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은희경의 소설집 『중국식 룰렛』을 이번엔 제대로 읽고 싶다. 안대회의 『문장의 품격』,  최영옥의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도 마저 읽어야 한다. 선명한 슬픔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듯했던 『9년 전의 기도』는 좋은 리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와 바람과 우산의 시간으로 채워질 7월의 책이라 할 수 있는 윌리엄 트리버의 『비 온 뒤』도 만나야지. 상자 속 가득했던 뽀얀 감자와 붉은 자두는 자취를 감추고 나는 살이 찌고 있다. 흘리는 땀보다 더 많은 살들이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빨간 여름이 시들해지는 것만 같다. 빨간 여름이 시시해지는 것만 같다. 감자를 더 들여야 하나, 고민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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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7-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엔 비가 오고 있어요.
자목련님 좋은하루되세요.^^

자목련 2016-07-01 16:55   좋아요 1 | URL
이곳도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요.
서니데이 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