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을 꿈꾼 적이 있다. 도시인으로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멋지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시골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렸고 무지했다. 생활인으로 도시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일인지 몰랐다. 몸소 경험했기에 도시가 아닌 읍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움직인 삶의 경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도시를 향한 그리움이 사라졌다고 자신할 수 없다.

 

 좋아하는 장소와 꿈꾸는 장소는 다르다. 좋아하는 장소엔 어떤 즐거움과 함께 추억이 있기 마련이고 꿈꾸는 장소엔 비밀처럼 은밀한 무언가가 있다. 어떤 분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니 좋아하는 장소와 꿈꾸는 장소가 같다면 그것은 특별한 무엇이 된다. 그런 곳에서 삶을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박상미의 그런 삶을 영위하는 듯하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뉴욕이란 도시에 부여된 갖가지 이미지가 아닌 오직 박상미만의 감정으로 그려낸 도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지만 부러운 삶이기도 하다. 당신의 도시를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87~88쪽)

 

 누군가는 그녀가 소개하는 뉴욕 설명서를 이 책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나는 뉴욕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가 아닌 박상미에게 스며드는 뉴욕이다. 그러니까 박상미가 바라보는 시선, 그곳에 담긴 뉴욕은 특별하다. 제목 그대로 사적인 도시다. 그러므로 아주 개인적인 감정의 기록으로 남은 뉴욕은 과장된 포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뉴욕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사적인 뉴욕은 우리에게 공적인 도시로 다가온다. 그곳이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을 듣는다는 건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지나온 절망과 고독을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뉴욕 곳곳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죽은 예술가와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제법 근사한 이미지로 연결된다.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간 블로그를 통해 기록된 이야기엔 뉴욕이란 도시와 더불어 어떤 다짐과 고독을 읽을 수 있다. 호퍼의 그림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풍경이라는 슬픔을 만질 수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내게 유일한 에드워드 호퍼의 포트폴리오를 가만히 펼쳐본다.

 

 ‘호퍼의 그림은 구상화이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마저도 내러티브가 절제되어 있다. ​결국 그는 풍경화가가 아니었을까. 코로나 컨스터블과는 다른,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 위에 지어진 집들을 그린. 가끔 그 안팎의 사람들을 그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저 벽에 햇빛을 드리운 집이 서 있는 풍경.’ (137쪽)

 

 책에 수록된 박상미가 보고 읽고 만난 예술 작품은 대부분 생소해서 어색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끌리기도 한다. 남은 인생을 살면서 뉴욕을 갈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뉴욕과 그곳을 산책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 즐겁다.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말을 하건, 나의 마음만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내 키만한 초록색 덤불로 빙 둘러진, 넘볼 수 없는 정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혐오로 치를 떠는 순간조차 나의 마음은 나만의 것이다.’ (254쪽)

 

 [걸어본다] 시리는 아주 괜찮은 기획이다. 보통의 공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든다. 나의 공간을 사랑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서울의 용산, 경주, 뉴욕까지 도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면과 내면을 이어준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했던 이야기와 맞닿으면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는 시간. 잊고 있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단순한 걷기와 산책의 의미 이상으로 자신의 공간을 통해 삶을 통찰하게 만든다고 할까. 나만의 도시, 나만의 공간이 사랑스러운 이유를 찾게 한다. 떠나는 이에게도 머무는 이에게도 그 도시를 꿈꾸게 한다. 마음은 이미 터미널, 기차역, 공항으로 향했지만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도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선 2015-05-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자목련 2015-05-29 11:27   좋아요 1 | URL
<아내를 닮은 도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