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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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은 달콤한 맛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쓴맛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에도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설을 하나의 맛으로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함정임의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을 아린 맛이라 말하고 싶다. 그건 단편집 전반에 드리운 상실과 부재,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를 언급하지 않은 채 추모하는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뿐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들려주는 아련한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 양부모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주인공이 연인과 이별 후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엔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언급된다. 나머지 단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어디 소설뿐이랴. 따지고 보면 우리 앞에 펼쳐질 생은 이별의 반복일 뿐이다.

 

 결혼식 사흘 전에 사라진 약혼자가 십 년 뒤 남긴 유품의 수첩에 적힌 프랑스 호텔을 여행하며 그와 온전히 이별하는 나미의 여정「어떤 여름」, 결혼과 동시에 멕시코로 떠난 U와의 만남을 통해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꽃 핀 언덕」,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나 가슴에 새긴 한 소녀의 죽음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는 남자의 이야기 「오후의 기별」엔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기질을 만날 수 있다. 함정임은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러니 계획된 일상을 뒤로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거나 히말라야로 향하는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 불편하기는커녕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불안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끌린다. 「어떤 여름」에서 나미와 충동적으로 동행하는 장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모험보다는 모험 이후의 어떤 흐름, 인생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의 모든 것.’ (「어떤 여름」, 98쪽)

 

 그러나 여전히 이별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구두의 기원」속 이명을 앓고 삶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힘겨운 소설가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일요일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소설가의 독백처럼 말이다.

 

 늙은 엄마에게 손자처럼 자란 너는 늙어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순리를 비교적 일찍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치를 비교적 늦게까지 깨닫지 못했다.’ (「구두의 기원」, 134쪽)

 

 그러니 예전 편집자 J를 찾아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심정을 함부로 탓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구두 한 짝은 상실을 채우는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구두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반대로 매일 마주했던 구두가 사라지면서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엄정한 사실에서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삶의 단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구두가 아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이 정말 구두였는지, 그렇다면 누구의 것이었는지, 또한 그것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 너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물감의 흔적을 또렷이 새겨놓았고, 이물감이란 소용돌이치며 타오르는 생명력이었다.’ (「구두의 기원」, 139쪽)
 

 반복되는 유산으로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견뎌야 하는 「밤의 관조」속 화자와 「구두의 기원」의 소설가는 가슴 깊숙하게 안기는 인물이다. 사라진 존재가 삶의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만 한다.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가장 완벽한 애도다.

 

‘나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계에 걸쳐 서 있었다. 경쾌한 소리, 투박한 소리, 엉기는 소리, 육중한 소리. 그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소음은 걷는 것, 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밤의 관조」,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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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5-05-1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15-05-12 06:53   좋아요 0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