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의 만남, 보통의 일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났기에 순간순간 방점을 찍어야만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사연은 많고도 길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삶에 집중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는 세월을 건너 만났고 늙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저녁을 먹고 다시 주스를 마셨다. 사이사이에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낯선 길을 다녔다. 처음 보는 봄이었고 처음 보는 삶이었다. 그 길을 돌고 돌아서 공간을 이동하면서 서로에게 집중했다. 꼬박 열 시간. 피곤함을 몰아낼 우리의 의지에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까?

 

지난 삶을 돌아보기도 했고 슬픔을 꺼내놓기도 했고 맘껏 웃음을 터트렸고 쏟아지는 울음을 막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간의 날들, 숨겨둔 비밀을 꺼냈다. 그러나 서로에게 강요는 없었다. 그저 말을 할 뿐이고 들을 뿐이다. 내 비밀을 말했으니 네 비밀도 말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비밀을 강요한다. 막역하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그러니까 내 비밀을 상대에게 전함과 동시에 상대도 그럴 거라 믿는다. 어쩌면 그건 암묵적인 폭력이다. 그것은 감정에 상처를 입힌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과 그 결정이 온전히 나의 것이듯 상대도 그렇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잃어버린다. 그래서 실수한다.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모른다. 말이 되어 나오려는 순간, 말은 사라지기도 하고 말이 되어서 나오는 순간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놓친다.

 

말은 강하면서도 약하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으로 길들여진 관계는 깊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 소리 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이,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정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무엇이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믿음을 키우는 일, 말을 고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을 고르는 일, 정성을 들여 말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깊은 밤 나를 안아주고 친구는 떠났다. 잘 도착했다는 문자나 통화는 서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날을 살아가고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 서로를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집을 꺼냈다.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 나희덕의 시선집 『그녀에게』.  두 시집의 제목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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