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소리의 주인은 바람이었다. 어제는 눈발이 나리기도 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일까. 기지개를 켜는 마음을 옹송그린다. 뜨거운 커피를 오래 마실 수 있는 보온병을 곁에 두고 싶다. 이런 날에는 시간이 지나도 온기를 지닌 커피처럼 우리에겐 그런 말과 글도 필요하다. 업무적으로 걸려온 전화나 사무적인 메일이라도 안부를 건넬 수 있는 말과 글에 기분이 달라지니까. 그러니 우리를 둘러싼 글, 우리 주변을 맴도는 말이 참 중요하구나 싶다.

 

언젠가 나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녹음을 해서 들은 내 목소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들렸다. 그것이 나의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다정한 목소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말에 담긴 감정을 떠올린 건 엄지혜의 『태도의 말들』 때문이다. 책은 업무상 만나는 다양한 저자와의 인터뷰 내용과 함께 일상의 사유를 담았다.

 

언제나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감각이 합해져 한 사람의 태도를 만들고 언어를 탄생시키니까.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의 일상은 모두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로 채워지니까. 진심을 전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책이다. 100개의 문장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을 통해 나는 그것들에 대해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는 일. 혼자가 아닌 같이의 사회를 살기에 우리에겐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키워야 한다. 습관처럼 ‘다 알아, 나도 그래’라는 건성의 말의 아니라 진심의 태도 말이다. 특히 이런 문장은 나를 더 꽉 붙잡았다. 사람과의 관계, 타인이었다가 지인이었다가 나의 특정인으로 변한 사이에 필요한 마음이다.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인데 마음이라는 게 영원하겠는가. 영원하도록 어루만지고 지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서로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변하기 마련인 마음을 붙잡고 서로를 토닥거리며 끌어당길 때, 우리의 첫 마음은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알듯 그도 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써 봤으니까.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기에 똑같은 하루가 지겨울 때가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하루가 정말 감사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금세 잃어버려서 탈이지만. 하루하루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그 하루를 헤어려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날은 무슨 무슨 날로 체크한 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 이렇게 중요한 날을 살고 있으니 그 날들이 쌓이면 얼마나 멋진 인생일까.

 

하루를 산다”는 말, 예전에는 곱게 들리지 않았다. 고민 없는 인생이구나, 걱정 없는 인생이구나,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인생이구나 싶어 혀를 찼다. 하나 지금의 나는 잘 산 하루하루가 내일을 만든다는 진리를 몸소 깨치고 있다. 내일은 오늘을 잘 산 사람에게 오는 선물이니까. 내일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이니까.

 

글이 주는 위로, 글의 힘을 아로새긴다. 허은실의 에세이 『그날 내게 당신이 말을 걸어서』도 그런 태도를 발견한다. 시인의 에세이라서 그런지 시처럼 다가오는 글이 많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 이 봄에 안부를 전하는 문자에 담아 함께 보내고 싶은 글이 많았다. 말과 글에 탐닉하는 시간이었다.

 

나라도 나를 안아주어야 할 때 우리는 무릎을 껴안습니다. 내 눈물을 내가 받아주어야 할 때 무릎 위에 얼굴을 묻습니다. 무릎은 그런 곳. 무릎은, 그렇게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무릎」중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혼자만의 감정을 다스려야 할 때, 나를 잡아주는 무릎. 이런 문장을 읽노라면 저절로 무릎을 바라고고 슬며시 어루만진다. 허은실의 책에는 가만히 다가오는 말들이 있다. 돌아보니 그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친구같은 말들. 딱딱하고 굳은 말들이 아니라 보드라운 말들이 있다. 쉽게 쓰고 지나치는 말들이 내게로 온 것처럼 반갑게 웃어주고 있다고 할까. 그러니까 표정이 있는 말이었다. 힘들 때 이런 말이 필요하지?, 기쁠 때는 이런 말을 해 봐, 그런 표정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을 다 끌어안아주는 말, 그냥의 헐렁함, 그냥의 너그러움, 그냥의 싱거움, 그냥의 무의미. 그러니까 그냥 읽는 책, 그냥 재미로 하는 일. 그리고 그냥 통하는 사람. 우리에겐 좀 더 많은 그냥이 필요합니다. (「그냥」중에서)

 

태도란 말을 마음에 품고 허은실의 『그날 내게 당신이 말을 걸어서』을 손으로 매만지는 봄날 속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한다. 꽃을 피우는 봄처럼, 차갑게 언 땅속에서 간직하고 있다가 얼굴을 내미는 새싹처럼, 다정한 말과 포근한 글이 있어 위안을 얻고 살아가는 날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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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3-14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것들이 어느 날에는 무척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요즘 가끔씩 느낍니다.
매일 매일 좋은 것들을 사소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꽃샘추위라고 해서 조금 차가운 날씨예요.
자목련님, 따뜻한 밤 되세요.^^

자목련 2019-03-15 13:55   좋아요 1 | URL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진짜 중요한 거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과 다르게 말이에요.
주말까지 쌀쌀할 것 같아요. 서니데이 님,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