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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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로 성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남긴 것일까? 그렇다면 <절규>를 그림 화가 뭉크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절규’란 단어를 듣자마자 떠올리는 건 그의 그림이니까. 노르웨이의 국민작가 뭉크를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만났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무엇이 그를 불안으로 이끌었는지 유성혜가 들려주는 뭉크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인생.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기억이란 감정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기억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이 화가의 뜻대로 ‘해석’되고 ‘편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뭉크의 그림이 바로 그러했다. <절규>에서 배와 난간, 후경의 두 사람이 단순히 ‘보이는 것’이라면, 역동적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듯한 자연 풍경과 공포에 떠는 중심인물은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강렬한 기억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화가로서 그는 한발 물러선 관찰자가 아니라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였다. (13~14쪽)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란 말은 뭉크의 그림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그것은 뭉크가 무엇을 본 것일까, 상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병약했던 뭉크는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 정물이나 창밖 풍경을 그렸다. 어쩌면 이때 느꼈던 고독과 외로움이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된 건 아닐까 싶다. 뭉크의 예술을 완성시킨 노르웨이의 자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노르웨이, 그 차가움 속에서 뭉크를 만나는 일은 그곳을 여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저자 유성혜는 뭉크가 살았던 노르웨이의 도시를 이동하면서 뭉크가 영향을 받은 이들을 언급하고 그가 사랑한 여인에 대해 들려준다. 점점 화가로 인정받고 성장하는 뭉크의 예술의 세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했을 때 달라지는 모습, 그림을 그릴 당시 뭉크의 심리적 상황까지 말이. 독자는 뭉크의 그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과 함께 뭉크가 노트에 기록한 글을 소개하고 있어 더욱더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무슨 본질을 신경 써야 하나,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힘없는 움직임이다. 떨리는 눈꺼풀, 속삭이는 듯한 입술, 그녀는 숨을 들이쉰다. 마치 살고 싶다고 말하듯. -뭉크의 노트(MM T 2771, 1890~1891)

 

 뭉크가 살던 시대에는 화가들이 그림에 담을 모티브, 주제, 화풍, 기법에 집중했을 뿐 그림을 어떻게 전시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뭉크는 그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림 하나하나가 모여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어떻게 배치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도를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뭉크는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과 디자인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 (223쪽)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림들을 그릴 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뭉크의 노트(MM N 46, 1930~1931)

 

 뭉크의 그림과 인생에 대해 읽노라니 자꾸만 고흐가 어른거렸다.(저자도 언급했지만) 비슷한 세대에 활동한 화가라 그랬을까. 사랑에 대한 갈증, 연인에 대한 상처, 고독,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닮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뭉크가 어머니와 일찍 이별하지 않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랬다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을까. 화가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의사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뭉크의 많은 그림를 마주할 수 있어 즐겁고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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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뭉크 하면 절규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그것 말고도 많은 그림을 그렸을 텐데... 절규는 참 어두운 느낌이에요 제목부터 그렇군요 어머니가 일찍 죽고 아버지는 자기 슬픔에만 빠졌다니... 아버지라도 뭉크와 다른 아이를 잘 돌봤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머니가 일찍 죽지 않았다 해도... 벌써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지요 어린시절에는 그림을 그리고 쓸쓸함을 달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자목련 2019-02-15 17:14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그랬어요. 이 책을 통해 뭉크의 다야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이 예술로 확장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무척 안타까운 건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