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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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감정을 읽은 일은 어렵다.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를 제외하고는 웃는 얼굴로도 화를 내는 이가 있으니까. 그럼 얼굴을 전화기 뒤에 숨기고 목소리로만 전달되는 감정은 읽기가 수월할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막말을 하고 화를 내는 이들은 너무나 많다. 목소리를 상대하는 일을 하는 이, 우리는 그들을 감정노동자라 부른다. 김의경의 『콜센터』는 제목 그대로 콜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프랜차이즈 피자 콜센터에서 주문을 받는 일, 명료하고도 단순한 일처럼 보이지만, 콜센터의 세계는 최악의 고객, 진상을 상대하는 일이다. 소설은 스물다섯 동갑내기 다섯 명(용희, 주리, 시현, 형조, 동민) 각자의 시선으로 그곳의 민낯을 보여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기다리고 유학 자금과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을 선택했다.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준비하는 동안 말 그대로 잠깐의 아르바이트로 콜센터는 나쁘지 않았다. 콜센터의 상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업무는 피자에 관한 모든 억지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쉴 틈 없이 걸려오는 전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실장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잠깐 쉬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에게 농담 한 마디를 건네는 게 위로라면 위로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털어놓지 않는다. 자꾸만 면접에서 떨어지는 용희는 취직한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속상하고 대출까지 받아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시현은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불안하다.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가 부담스러운 형조는 공부를 하면서 자꾸만 주리에게 신경이 쓰인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배달 일을 하는 동민은 시현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고 주리는 콜센터에서도 서로를 경쟁하며 비교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난다. 모두 잠깐만 하고 그만두리라 마음먹었지만 콜센터에서 발을 빼기란 쉽지 않았다. 그곳을 벗어나야만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다만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청춘 파산』을 통해 만난 작가는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콜센터의 실상을 그려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고민을 들려준다.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 소설, 독자는 깊게 빠져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마다의 꿈을 위해 애쓰는 모든 청춘들의 마음, 때때로 무너지고 때때로 좌절하면서도 뭔가 해내고 싶은 그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디 콜센터뿐일까? 그곳이 어디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에게 모두 정착역이 아닌 정류장이라는 걸 알고 있다. 어떤 이는 이곳의 정류장에서 다른 곳의 정류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정류장을 거쳐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안타깝다.

 

 형조에게 콜센터는 정류장이었다. 다른 곳에 닿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 다른 곳이란 ‘더 좋은 곳’이었다. 더 좋은 곳에 가려면 정류장에서 머무적거려서는 안 된다. (152쪽)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아마도 나는 그들을 통해 어느 시절의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콜센터와는 반대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신문 구독에 대한 안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화를 내는 이들이 많았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생활 침해였다. 방학 동안만 하는 일이었지만 정말 하기 싫었다. 소설 속 다섯 명의 청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야 하는지, 꿈을 향해 나가야 하는지 말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을 놓아버리면 고단함이 사라질까. 아니다. 언제 그곳에 닿을지 알 수 없어도 목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청춘의 힘은 아닐까. 그 시절의 지나 온 나는 청춘의 나날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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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09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로는 얼굴을 안 봐서 이런저런 말을 쉽게 할까요 전화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안 좋은 말은 안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일 하는 사람 힘들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힘들더라도 살아가야 하겠지요 살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다고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이 없다 해도 그저 자기대로 사는 것만 해도 괜찮지요


희선

자목련 2019-02-12 14:22   좋아요 1 | URL
눈 앞에 상대가 없으니 그런가 싶다가도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싶었어요.
희선 님,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가까운 곳이 봄의 기운이 있는 듯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