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유한하다.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다 알지만 모두 다 자주 잊고 사는 진실이다. 주어진 일상이 영원할 거라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가기도 한다. 지나온 어제처럼 당연하게 오늘을 맞이하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해서야 일상에 대해서 돌아본다. 가령 내 부주의가 아닌 상대의 잘못에 의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다든지, 가벼운 통증을 무시하다 사라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거나 느닷없는 집주인의 전화에 보통의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 순간 평범했던 일상에서 일탈한다. 아니 이때부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내게로 다가올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의 순간은 어떻게든 지워나가고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때때로 그건 너무 고통스럽고 비루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탈을 시도한다. 한 방을 꿈꾸며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로또복권을 사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거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거나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내 일상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 잠시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소설 속 삶이 현실의 일상과 더 가까워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상의 표정은 다양하다. 모두가 꿈꾸는 평온한 일상, 걱정과 근심으로 채워진 불안의 일상, 거대한 슬픔을 겪고 감사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김이설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2016)를 다시 꺼냈다. 이 안에는 일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인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상을 살지 않는다고.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무섭고도 잔혹한 일상이 소설 속에 가득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그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렇게 살지 말고 다른 일상을 살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대를 이어 행해지는 가정폭력을 다룬 미끼, 품격과 권위의 삶을 사는 겉모습과 다르게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진짜 모습이 역겨운 부고, 친절하게 독촉하는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흉몽. 그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었다. 어떤 모습은 너무 닮아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리의 일상은 어느 순간 비일상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부당한 일에 대해 부당하고 말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파업의 대가로 돌아온 건 손해배상 청구와 남편의 자살을 다룬아름다운 것들을 읽다 보면 그런 일상이라면 누구라도 포기를 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안다. 나의 일상을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89)란 말을 나와 당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린다는걸. 그 뻔한 말이 우리가 유일하게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일상을 산다는 건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일상을 지킨다는 것이다. 일상을 지키는 건 견고한 성을 쌓고 지키는 일처럼 어렵다. 그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내 일상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혼밥, 혼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삶이 확장되지만 그들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고 작은 사회의 일원이다. 때문에 나의 일상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마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2018) 속 인물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난 과거는 잊고 현실에 충실하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번 불안이 찾아오면 일상은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 겨우 지난 사건을 잠재우고 새로운 책을 펴냈지만 여전히 3년 전 인터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불안한 남자 인터뷰, 친구가 자기 애인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 속 푸른 코드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남편일 거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여자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며 새벽마다 창문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 무리가 제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남자 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반복성은 망상을 키운다. 그리고 망상은 불안을 키운다. 일상은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테고 불안은 일상의 그림자가 되어 뫼비우스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동료나 이웃에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

 

 때로는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잘 알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느라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IMF를 경험한 세대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까 불안하다. 꼰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후배와 아이들을 상대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그뿐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력이 유전되어 나도 똑같이 아플까 봐 겁이 난다. 불안이라는 건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 잠식한다. 안다는 것이 더 무섭다. 불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우리 일상을 맴돌며 지켜본다. 어느 시절에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이벤트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바란다. 새해에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거대한 다짐을 하고 연말에는 후회를 하는 보통의 일상 말이다. 적당한 비가 내리고 적당한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일상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짧은 이별의 눈 맞춤도 허락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다 끝내 친구나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니까. 우리 일상에 희로애락의 조각들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으로 인한 경험은 피하고만 싶다. 상실의 자리는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애도의 끝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점차 받아들인다. 때문에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이 함께 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책과 함께 일상을 지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일은 힘들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시간을 견디고 그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와 함께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넘치도록 차오르는 눈물과 슬픔으로 어떻게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건네는 조언이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하기에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도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일,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지나 회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일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고통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다.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문득 문학이야말로 유일하게자신만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문학은 애도의 일상을 산다. 작가는 죽고, 그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은 독자도 계속해서 바뀌고 사라진다. 문학은 그렇게 자신을 이 세상에 남긴 이를, 그리고 읽고 스쳐 지나간 이들을 애도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동시에 문학은 자신을 새로 읽고 스쳐 지나갈 이들을 기다리는 작별의 일상을 마다하지 않는다.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
     
 창밖으로 눈 내린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워서 황홀할 지경이다.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생이 그러한 것처럼. 생은 그러한 일상이 모인 풍경이다.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일상은 무의미하다.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일상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과 마주하거나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불안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살아있음을 우리는 때로는 비일상으로써 획득하고, 불안으로써 체감하며, 죽음으로써 견딘다는 것을. 결국 일상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여정,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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