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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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진다. 남은 시간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거나 받기도 하는데, 너무 그런 인사를 쉽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잘 지내라고 말해도 될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주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울한 어떤 날에는 괜찮다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정작 혼자인 날에도 다들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서도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고 너무 깊이 다가오면 한 말 물러나게 되는 톤 텔레헨의 소설 『잘 지내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처럼 말이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작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개미, 하마, 모기 심지어 수달과 사자, 까치, 곰, 말벌, 코끼리 그리고 쥐도 생각하고 있다. 다람쥐는 정말 모든 동물들을 생각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동물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내 생각은 여태껏 누구도……. (7쪽)
 

 안녕 다람쥐야

 잘 지내니? 나는 잘 …… 아니 사실은, 네가 내 생각을 전혀 안 하니까 그다지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아.

 한 번씩 내 생각을 하긴 하니?

 그럼 안녕!                                                       

 ㅡ 부엉이가 (9쪽)

 

 누구나 다람쥐처럼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상대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나만 혼자 그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좋아하는 거라고 단정 짓고 속상해한다. 마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그 내 마음도 보여주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나와 당신도 다람쥐와 부엉이처럼 서로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라는 문자에 바로 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통화하자라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 상대에게 그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 작고 예쁜 소설에는 이처럼 다양한 동물의 고민이 등장한다. 고만고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고민들, 그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렇다. 어느 날 나는 왜 존재하는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왜 그런 때가 있잖은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두렵고, 혼자 있고 싶지만 좋은 일은 함께 축하받고 싶은 마음, 모두 잘 사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마음, 이 복잡 미묘한 마음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어쩜 이렇게 내 마음과 똑같을까, 나도 그랬는데, 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흰개미는 모든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자기 몸마저 버리려고 들어 올려 보았지만, 바닥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자기 사진이 완전히 쓸 데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흰개미는 누워서 위를 쳐다보았다. 햇빛이 비치고 하늘은 파랬다. 태양과 하늘마저도 내다 버리고 싶었다. 너무 쓸모가 없어. 그러나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39~40쪽)

 

 다람쥐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으로 가 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람쥐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생각들을 더 이상 좇을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때도 아닌 거야.” 그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67쪽)

 

 거북이는 오후 내내 덤불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러니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모두 조금씩이라는 거지. 근데 조금이라면 어느 정도인 거야? 때때로 조금 배가 고프거나, 조금 덥거나 하는 게 어떤 건지는 알고 있었다. 조금 덥다는 건 따뜻하다는 거야. 그럼 조금하고 같은 건가? 조금 맛있게 먹었던 시든 민들레와 오래된 자작나무 이파리도 조금 쓰긴 했지. (76쪽)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 아는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히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다. 18개의 짤막한 이야기의 이 책을 두 번 읽게 되었는데 나는 처음에 어떤 부분은 살짝 지루하고 무덤덤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흰개미, 거북이의 마음이 크게 보였다. 존재(쓸모)에 대한 생각과 행복에 대한 욕심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메모하는 문장이 자꾸 늘어났다. 가볍게 생각한 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다정한 마음을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괜히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지는 날,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면서 당신의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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