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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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고독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의 시선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것, 무심한 익명이 된다는 것, 군중 속의 하찮은 돌멩이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264쪽)

 

 나만 알고 싶은 일들이 있다. 나만 간직하고 싶은 감정도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부모나 형제라도 그것에 대해 알려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에 대해 대충 둘러대고 살짝 거짓을 대응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것. 쓰고 보니 그것은 비상금 같은 것 같다. 때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어떤 상태, 어떤 결과에 대해 말을 하다 보면 그전의 감정들, 혹은 사건들, 그것의 원인에 대해 듣고 캐묻는 이들도 있고 그것은 몹시 힘들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 나의 그것, 아델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욕망, 사랑, 충동, 우울, 권태로 다가온다. 『달콤한 노래』2016년 공쿠르상 수상한 레일라 슬리마니의 데뷔작 『그녀, 아델』은 파격적인 소설이다. 서른다섯 살의 아델은 아름답고 멋진 여성이다. 의사 남편 리샤르와 세 살 난 아들 뤼시앙이 있고 신문사 기자로 일한다. 누가 봐도 단란하고 완벽한 삶을 영위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여자, 항상 불안하고 초초하다.

 

 아들을 돌보는 일도 너무 힘들다. 뜨거운 모성애과 사랑, 안타까움도 없다. 둘째를 갖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파리를 떠나 전원생활을 하자는 제안도 자꾸만 미룬다. 술과 담배, 마약, 그리고 남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행보는 두려울 거라고 전혀 없는 것처럼 당당하다.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두 개, 알라비이를 만들어 줄 친구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남편이 알아차릴까 두렵고 조심스럽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바깥의 공기가 침입할까 전전긍긍이다. 이쯤 되면 진정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의문이 든다. 이혼을 하고 혼자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아델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 보면 괜스레 내가 조바심이 난다. 모임이나 파티가 있는 곳, 심지어 출장지에서도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지속적인 관계는 없다. 그저 그때뿐이다. 아델이 찾는 건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순간의 쾌락 같다. 아델의 우울과 권태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거칠 것 없이 제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혼자서 골목길을 걷지도 못한다. 이대로 그녀는 정말 괜찮을 걸까?   

 

 아델은 자신이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어떤 욕망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갈망했던 건 그들의 살갗이 아니라 상황 자체였다. 장악당하는 것. 쾌락에 빠진 남자들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167쪽)

 

 어떤 일이든 끝은 있고 비밀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상대가 남편의 동료 자비에가 아니었다면 달라졌을까? 운명처럼 자비에의 부탁으로 당직을 서던 시간 자비에와 아델은 만남을 갖는다. 귀갓길에 리샤르는 사고를 당하고 아델은 매일 병실을 지킨다. 리샤르를 돌보는 정성은 찾을 수 없다. 퇴원 후에도 자비에를 만나고 리샤르는 모든 걸 알아버린다. 리샤르와 아델은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고 당연히 회복은 불가능한 상태. 그런데 왜 리샤르는 아델을 버리지 않았던 것일까. 시골로 이사를 오고 둘은 편안한 사이처럼 보인다. 리샤르는 아델을 감시하며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다. 아델은 삶의 의욕과 욕망을 잃어버린 시든 식물 같다. 리샤르가 아델을 의심하면서도 곁에 두는 건 어떤 마음일까. 과거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균열이 생긴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 영향을 받을 것일까. 아델의 부모도 원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리샤르와 아델도 어느 순간에는 서로를 사랑했을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과 방향이 달랐을 뿐. 누군가는 아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때까지 아델이 얼마나 스스로를 망가뜨릴지 두렵기까지 하다. 『달콤한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도 인물의 내면 묘사가 놀랍도록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에 감탄하는 만큼 괜찮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직은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온다면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아델은 꼼짝하지 않는다. 타일 바닥에 길게 뻗은 채로 아주 서서히 호흡을 되찾는다. 뒷덜미가 흠씬 젖어 한기가 밀려들면서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진다. 가슴께로 무릎을 가져와 모은다. 서서히, 그녀가 흐느낀다. 노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눈물에 일그러지고 전날 밤의 화장으로 얼룩진 피부에 줄을 그린다. 그녀를 포기한, 혐오스러운 이 몸뚱이를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어본다. 혓바닥 끝으로 입 천장에 달라붙은 음식 찌꺼기가 느껴진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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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16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표지는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카나코>가 생각나게 합니다. 많이 다른데도요.
비가 조금씩 내리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자목련님, 편안한 일요일 밤 되세요.^^

자목련 2018-09-17 11:20   좋아요 1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비슷한 분위가 나네요. 서니데이 님,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일교차 심하니 감기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