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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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가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쪽)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냥 쓴다는 말이 맞겠다. 컴퓨터를 켤 수 없는 상황에는 핸드폰에 짧은 문장을 쓴다. 최근에 쓴 문장은 이렇다.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은 적이 많지 않았다.’ 아마도 괜찮은 척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으면서 왜 괜찮다고 말했을까. 아마도 그건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대였거나 나를 걱정하는 상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재차 확인하며 걱정하는 마음, 함정임의 에세이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를 통해 그 마음이 되살아났다.

  

 책은 보통의 일상을 기록한 글이다. 62편의 짧은 글에는 부산으로 이동 후 터를 잡고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는 일상,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이미지, 집과 가까운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주말마다 뵙고 돌아오는 길, 유학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 광장에 나가던 주말, 제주도에서 반가운 이와의 재회,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서 만난 잔단, 함께 소설을 공부하고 읽는 모임에 대한 진솔함이 가득했다. 작가로의 일상은 우리의 그것과 달랐고 그 안에는 여행과 책, 영화, 예술이 있었을 뿐이다. 좋아하는 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설을 쓰고 소설을 가르치는 함정임을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책과 연결되고 책의 이야기는 우리는 다른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함정임이 읽은 작가의 고향이거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 그리워한 곳이었다. 한 권의 책이 우리는 그곳으로 인도했고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난 그들은 마치 그곳에서 우리는 기다린 것만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 롤랑 바르트, 로맹 가리, 카뮈, 톨스토이, 보들레르, 등 함정이 그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서 같기도 했다. 문학 여행서,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 혹은 소설 속 그 장면과 만나는 여행 안내서. 나를 홀리는 책을 몇 권 메모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토마스 만의 소설을 담는다. 책은 책으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걸 실감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와 책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듯 함정임에게 여행은 그런 존재인 것 같았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는 동안 누군가와 동행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그러므로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한 여행, 혹은 문학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여행처럼 보였다. 단순하게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체감하다. 책이라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함정임의 책을 통해 나는 이곳이 아닌 그곳을 탐색하고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고 그곳의 쓸쓸한 기운을 감지한다. 활자를 통해 숨 쉬는 함정임의 호흡을 느낀다.

 

 글을 쓰며 사는 삶,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삶이 향한 그곳에는 이야기가 있고 소설 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시대를 읽고 시대를 공감하며 그것을 글로 쓰는 일.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막상 쓸려고 하면 쉽지 않은 게 글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거나 소설가에 대한 언급을 한 부분은 조금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필명을 지었던 에피소드, 윤대녕과 이기호의 소설로 닿는 쌍계사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 나아가 자신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탐색하는 일이다. (202쪽)

 

 소설가란 단 한순간도 쓰지 않으면 사는 데 의미가 없다고 자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작가만의 운명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속성이되, 대부분 쓰지 않을 뿐이다. (278쪽)

 

 쓴다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 괜히 고맙고 감사하다. 작가만이 아니라 모두의 운명이라니. 쓰고 싶은 마음을 키워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써나가라는 격려 같다고 할까. 보통의 날들, 보통의 일상을 기록하는 삶을 사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웃고, 화내고 웃고, 화내고, 싸우고, 그리고 다시 화해하는 반복된 일상, 그 소중함을 전할 시간이다.

 

 때로는 벅차게 용솟음치며 희열을 느끼고, 또 때로는 절망적으로 고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세밑, 나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위한 따뜻하고 강인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가 간절하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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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1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정임 작가도 신간이 나왔나봅니다. 책 제목이 좋네요.
자목련님,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 2018-07-11 18:20   좋아요 1 | URL
말씀처럼 제목이 참 좋아요.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글들이 많았어요.
서니데이 님, 맛있는 저녁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