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 보이는데 알고 보니 매일 술에 의존한다. 힘들다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아내는 늘 화가 나 있다…

지치고 아픈 남자들에게 건네는 여성 심료내과 전문의의 따뜻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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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술에 취한 엘리트

 

다케무라 고이치(40대)는 심한 두드러기로 같은 건물에 있는 내 병원을 방문했다.

연일 계속된 야근 때문에 맨 마지막에 퇴근해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수개월간 계속했다. 그렇다고 그의 직장이 요즘 문제가 되는 악덕 회사는 아니었다. 그는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의 팀을 꾸리고 있는 리더로, 최근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껏 건실하게 성과를 올린 덕분에 직장에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일은 힘들지만 성과를 냈을 때의 만족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야근과 수면 부족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빠른 승진으로 프로젝트 리더가 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한 후 회사는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바람에 다케무라도 리더가 됐지만 동료와의 교류는 크게 줄었다. 그전까지 전문 자격증을 가진 리더 밑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각자 다른 팀을 이끌게 되면서 경쟁 상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다케무라는 동기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자신의 프로젝트에만 전념했다.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했지만 가끔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가 신경 쓰는 건 일을 분담하고 있는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였다. 몇몇 분야에서 담당자를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다른 회사나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도 리더인 그가 책임져야 했다. 수개월 전부터 야근을 하며 맨 마지막에 퇴근하는 이유도 모두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 때문이었다.

 

“불합리했습니다. ‘내가 왜 사과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났어요. 하지만 실수한 담당자의 사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결국 뒷수습은 전부 제 몫이라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담당자에게 화를 내는 것도 쿨하지 못하잖아요.”

 

그는 언성을 높이는 상사는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항상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한여름에도 반듯하게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그에게 땀을 흘리거나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가 두드러기 때문에 넥타이도 포기하고 병원을 찾은 건 그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피부과에서 혈액을 채혈해 간기능검사를 한 결과 간 기능 장애가 발견됐다. 최근 불규칙한 생활과 과음까지 한 탓에 심료내과(心療內科, 정신과와 내과를 합친 진료 과목으로, 심신의학적으로 내과 질환을 다룬다-옮긴이) 진찰을 권유받았다. 다케무라 스스로도 최근 음주량 때문에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해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술로 달랬는데 두드러기로 인한 가려움과 불쾌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역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 캔 사서 그 자리에서 하나를 마셔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캔을 다 마시고 집에서는 다시 편의점에서 산 안주와 함께 캔 츄하이(소주에 탄산과 과즙을 넣은 칵테일-옮긴이)를 마신다. 새벽 1시가 넘어 샤워를 하고 취기와 피로로 침대까지 가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간단히 샤워만 하는 이유는 이전에 뜨거운 물을 담은 욕조에서 잠들어 익사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사는데 욕조에서 죽으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라 생각했다. 술 없이는 긴장을 풀 수 없는데 술 때문에 수면의 질이 나빠졌다.

잠을 자긴 하는데 숙면을 이룰 수 없었다. 꿈을 꾸고 가위에 눌리고, 좀 더 자고 싶은데 새벽 3~4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그럼 일 걱정에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이 부족하면 안 되니 가급적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실수한 담당자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예전에는 알코올 의존증과 엘리트 사원은 서로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술에 의존하는 엘리트 남성이 크게 늘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상태임을 자각하고 있다.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니컬러스 케이지가 연기한 알코올 의존증과는 약간 다르다. 낮에는 자기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에 충실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달래느라 밤에는 술 없이 생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엘리트 남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알코올 의존증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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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6-10-2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얘기같지않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