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귀가가 두렵다

 

요코야마 후사오(40대)는 퇴근 후 곧장 집에 가지 않는다. 벌써 10년째다. 28세 때 직장에서 5세 연하의 여성을 만나 결혼했는데 1년 후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내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푸념이 늘고 육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게 싫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거나 동료와 술을 마시거나 갓 시작한 골프에 재미를 들여 연습장에서 기분 전환한 후에야 귀가하게 됐다.

손해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요코야마는 순조롭게 경력을 쌓았다. 다만 아내와의 소통은 늘 어딘가 불안했다. 아내의 푸념은 결혼 이래 계속됐고 예전의 사소한 일까지 들먹이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데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결혼 후 잔소리가 많은 성격으로 바뀌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혼할 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집안일과 육아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떠맡긴 처지라 타박할 수도 없었다. 요코야마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고 여름휴가나 연휴 때는 가족 여행을 했다. 아내의 생일에는 고급 브랜드 제품을 선물하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는 남편 역할에 충실하다고 자부했다. 수입도 또래의 남성보다 훨씬 많아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1년 전부터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내는 딸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온갖 짜증을 자신에게 쏟아냈다. 딸이 지방의 일류 대학에 합격했는데,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아내의 짜증은 더욱 심해졌다. 요코야마가 늦게 퇴근하면 늦은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고, 딸의 입시에 전혀 협력하지 않은 그를 질책했다.

 

“당신은 늘 집안일은 나 몰라라 했잖아”, “왜 매일 늦는지 모르겠어”로 시작해 몇 년 전에 있었던 집안 친척 모임에서 기분 나빴던 일들까지 들먹이며 잔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요코야마는 가능한 한 아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무 말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 일이 한동안 계속되던 어느 날, 친척 장례식장에서 일이 터졌다. 친척 모임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내지만 시댁이 지방 유지라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는데 기차를 갈아타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 일로 집안 어른들이 잔소리를 하자 아내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대체 당신네 집안일로 왜 내가 매번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아내를 미처 붙잡지 못하는 바람에 아내의 주먹이 그대로 벽에 부딪쳤다. 요코야마는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를 의자에 앉히면서 아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갱년기인 걸까, 아니면 요즘 화제가 되는 인격장애가 아닐까. 집에 돌아가면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내가 이상해요. 저는 전혀 문제없는데.”

요코야마가 병원을 찾은 건 친척 장례식을 마치고 6개월 후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아내에게 “불안정하고 이상하니까 병원에 가보는 게 좋다”고 말했는데 아내는 화를 내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하고 되받아쳤다. 한동안 먼저 말하지도 않고 이쪽에서 말을 걸어도 무시하는 생활이 계속됐고 자연스럽게 귀가 시간이 늦어졌는데, 하루는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가방으로 그를 마구 때렸다. “왜 불안정하고 폭력적인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말해도 “당신은 늘 얕보듯 말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딸이 대학에 합격해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아내에게 파트타임으로 일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는데 그 일을 운운하며 자신을 얕보고 지시한다는 것이었다. 근처 치과에서 접수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런 건 괜찮지 않냐”고 권한 게 기분 상했던 모양이다. 그는 완전히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요코야마 자신은 심료내과에서 상담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관리직을 대상으로 개최한 정신건강 강연회에서 나와 우연히 명함을 교환한 걸 계기로 병원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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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6-10-2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 , 상황등이 이렇게 와닿는 그림이 될줄야
 

[3회]

평가와 자존심 사이에서

 

다구치 요시오(40대)는 중견 식품회사의 영업팀에서 일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지금 직장에 입사해 19년간 일했다. 입사 후에는 조금씩이지만 월급도 올랐는데 리먼 사태 이후 회사의 실적 악화로 인건비가 삭감되고 신입사원 채용이 보류되면서 계약직이 증가했다. 다구치는 자사의 제품을 좋아했지만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고 중견 간부로 승진할 시기라서 지금이 승부처라는 생각도 있어요.” 그는 결혼해 세 살짜리 아이가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무리하며 빡빡한 스케줄의 출장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평가는 입사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ABC 세 단계 중 대부분 B로 평가받았다. 이전까지는 평가가 마음에 영향을 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인건비 삭감 방침이 적용되면서 상사와의 면담과 보고서 제출, 자기평가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1년 6개월 전부터는 6개월에 한 번 꼴로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무평가도 했다.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일본의 정권이 바뀌면서 경기 호전이 예측되는 가운데 그의 회사는 엔화(円貨) 가치 하락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었던 다구치는 평가에서 C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평가 제도는 S, A, B, C, D의 다섯 단계로 되어 있는데 S는 뛰어나다, 모범이 된다, A는 아쉽다, 기대 이상이다, B는 기대 수준이다, C는 조금 부족하다, 기대치에 못 미친다, D는 기대를 크게 밑돈다는 평가였다. 다구치는 자신은 A이거나 못 받아도 B일 거라 예상했던 만큼 기대 이하라는 평가에 어이가 없었다. C를 받은 이유를 상사에게 물었더니 “출장도 다니고 열심히 일한 줄 알지만 움직인 것에 비해 실적이 모자라다. 보고 상황도 그렇고, 영업처의 피드백 분석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망하긴 했지만 그는 스스로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6개월간 영업처의 의견을 모아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영업 실적을 생각해 열심히 뛰었고 결과도 좋았다. 이번에는 A일 거라 믿었는데 결과는 똑같이 C였다.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고 목 저 밑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오르더니 온몸의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다구치는 냉철함을 가장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상사에게 이유를 물었다. 상사는 “영업 실적도 좋고, 분석도 잘했지만 동료와의 관계나 계약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조금……”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순간, 안 되겠다 싶었죠.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 이유를 붙여 끌어내리니까. 그전까지는 동료와의 관계 같은 말은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C 평가를 근거로 연말 보너스도 전년과 동일하게 지급됐다. 그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아내에게 회사가 어려워 전 직원 보너스 동결이라 말했지만 속으로는 상실감이 컸다.

 

“열심히 일한 내가 바보 같고 모든 상황이 어이없어 서글펐어요.”

 

다구치는 그 무렵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게 부쩍 힘들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 4시면 거짓말처럼 잠에서 깼다. 주말이면 더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도 개운치 않고 아침부터 피곤했다. 이전에는 주말이면 가족과 나들이도 가고 아내와 일주일치 장도 봤는데 이제는 몸이 무거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월요일이 되면 마음을 다잡고 무리를 하면서 출근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다. 동료 중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어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억지로 웃어 보이고 밝은 척 행동했다. 그 때문에 주위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업무에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일의 진행이 늦어졌고 적당히 하다보니 평가 점수가 떨어졌다. 다구치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

 

그때 상사가 혼잣말처럼 흘린 “무능하다”는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강한 말투도 아니고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한 말도 아니었다. 상사가 허공을 향해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그날 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는데 직장의 연간 보너스 순위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약회사인 오츠카제약이 370만 엔으로 1위였다. 충격이 컸다. 대학 동기가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다구치는 억울함과 비참함과 한심함으로 마음속이 요동쳤다. 그런 기분을 가족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약한 자신이 남자로서 패배자로 느껴졌다. 울고 싶었지만 목이 메었다.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그는 다음 날 병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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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6-10-2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일한 내가 바보 같고 모든 상황이 어이없어 서글펐어요.”에서 공감하며 울컥하네요
 

잘나가 보이는데 알고 보니 매일 술에 의존한다. 힘들다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아내는 늘 화가 나 있다…

지치고 아픈 남자들에게 건네는 여성 심료내과 전문의의 따뜻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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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술에 취한 엘리트

 

다케무라 고이치(40대)는 심한 두드러기로 같은 건물에 있는 내 병원을 방문했다.

연일 계속된 야근 때문에 맨 마지막에 퇴근해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수개월간 계속했다. 그렇다고 그의 직장이 요즘 문제가 되는 악덕 회사는 아니었다. 그는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의 팀을 꾸리고 있는 리더로, 최근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껏 건실하게 성과를 올린 덕분에 직장에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일은 힘들지만 성과를 냈을 때의 만족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야근과 수면 부족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빠른 승진으로 프로젝트 리더가 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한 후 회사는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바람에 다케무라도 리더가 됐지만 동료와의 교류는 크게 줄었다. 그전까지 전문 자격증을 가진 리더 밑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각자 다른 팀을 이끌게 되면서 경쟁 상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다케무라는 동기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자신의 프로젝트에만 전념했다.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했지만 가끔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가 신경 쓰는 건 일을 분담하고 있는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였다. 몇몇 분야에서 담당자를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다른 회사나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도 리더인 그가 책임져야 했다. 수개월 전부터 야근을 하며 맨 마지막에 퇴근하는 이유도 모두 다른 분야 담당자의 실수 때문이었다.

 

“불합리했습니다. ‘내가 왜 사과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났어요. 하지만 실수한 담당자의 사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결국 뒷수습은 전부 제 몫이라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담당자에게 화를 내는 것도 쿨하지 못하잖아요.”

 

그는 언성을 높이는 상사는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항상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한여름에도 반듯하게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그에게 땀을 흘리거나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가 두드러기 때문에 넥타이도 포기하고 병원을 찾은 건 그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피부과에서 혈액을 채혈해 간기능검사를 한 결과 간 기능 장애가 발견됐다. 최근 불규칙한 생활과 과음까지 한 탓에 심료내과(心療內科, 정신과와 내과를 합친 진료 과목으로, 심신의학적으로 내과 질환을 다룬다-옮긴이) 진찰을 권유받았다. 다케무라 스스로도 최근 음주량 때문에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해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술로 달랬는데 두드러기로 인한 가려움과 불쾌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역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 캔 사서 그 자리에서 하나를 마셔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캔을 다 마시고 집에서는 다시 편의점에서 산 안주와 함께 캔 츄하이(소주에 탄산과 과즙을 넣은 칵테일-옮긴이)를 마신다. 새벽 1시가 넘어 샤워를 하고 취기와 피로로 침대까지 가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간단히 샤워만 하는 이유는 이전에 뜨거운 물을 담은 욕조에서 잠들어 익사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사는데 욕조에서 죽으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라 생각했다. 술 없이는 긴장을 풀 수 없는데 술 때문에 수면의 질이 나빠졌다.

잠을 자긴 하는데 숙면을 이룰 수 없었다. 꿈을 꾸고 가위에 눌리고, 좀 더 자고 싶은데 새벽 3~4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그럼 일 걱정에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이 부족하면 안 되니 가급적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실수한 담당자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예전에는 알코올 의존증과 엘리트 사원은 서로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술에 의존하는 엘리트 남성이 크게 늘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상태임을 자각하고 있다.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니컬러스 케이지가 연기한 알코올 의존증과는 약간 다르다. 낮에는 자기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에 충실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달래느라 밤에는 술 없이 생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엘리트 남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알코올 의존증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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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6-10-2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얘기같지않네요ㅠ
 

[1회]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까?”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주제로 강연할 기회가 많은데,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저는 병이 들 정도로 일만 해서 나름 성과도 올리고 주위의 신뢰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우울증에 걸려 휴직하면서 모든 걸 잃었어요. 다시 이전처럼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그의 말투는 진지하고 절실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대답 했다.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는 건 일단 멈추라는 절규예요. 이대로는 안 된다고 브레이크를 거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멈추는 데 의미가 있어요. 이제까지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 가족,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재정비하고 보다 활기차게 살기 위한 준비 기간인 거죠. 새로운 자신이 되어 재출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남성의 스트레스를 주제로 책을 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장에서 한계에 부딪힌 남성들의 마음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의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사라지고 인원감축의 돌풍이 불어대는 가운데 유통수단 변화로 기존의 영업 방식과 홍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요인이 넘쳐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살리지 못해 자존심이 무너지거나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다 자신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잃는다.

나는 원래 여성의 스트레스성 질환을 치료해왔다. 1985년 남녀고용균등법이 시행되고 삶의 선택지가 증가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남성은 집 밖, 여성은 집 안’이라는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는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정도 일도 모두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전업주부는 자녀가 성장한 후 정신적육체적 이상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모색했다.

 

그 무렵 남성들은 어땠을까.

 

여성을 통해 본 남성들은 자신의 자리, 즉 일터에서 자리를 지키고 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한 단계 위로 오르기 위한 과정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강제적으로 퇴출되는 일은 없었다.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먹고사는 건 보장됐고,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하지 않는 한 자리를 잃을 염려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남자들은 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스트레스는 술과 담배, 동료와의 푸념으로 달래며 생활을 지켜왔다. 정리해고 역시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웬만한 기분 전환으로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그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무조건 강해야 했다. 힘들다, 괴롭다는 감정과는 거리를 두고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무장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한번 무너지면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되므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강하게 버티기보다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연한 회복력이 필요하며, 예방을 위해 마음의 생활 습관을 다잡는 게 중요하다. 회복력은 그 사람의 성격 유형과 행동 방식, 사물을 보는 유연성, 주위와의 관계가 핵심이며 직장 내 스트레스의 경우 상사나 동료의 성격 유형과 행동 방식, 지원, 직장 환경 등도 관련돼 있다.

 

이 책은 남성의 스트레스 요인을 정체성의 위기로 인식하고 그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제언을 담고 있다. 회복력은 누구나 갖고 있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의식하고 조금씩 바꿔나가면 지금의 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남자는 강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술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회복력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아픔을 부인하지 않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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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아 2016-10-13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