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많은 나는 버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TV나 인터넷에서 깨끗하게 잘 정돈된 집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집기들과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교체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다보니 지금은 불필요한 것들도 나중에 필요할까봐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사는데 정말 유용하게 매일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 아닌 것들도 많아 베란다 선반에 쌓아있다.


김혜진의 [중앙역]을 읽으면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여든걸까?  예전에 봤던 노숙자들이 한편 떠오르며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거뭇거뭇 더러운 얼굴과 새까맣게 떼가 낀 손톱, 악취가 나고, 절대 그들 옆에 갈 수 없고 그들이 옆으로 오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어느날에는 역사에 있던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강탈당한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나를 그곳에 버릴 수 있을까? 악취와 오물이 뒤덮인 보호받을 수 없는 그곳에 자신을 그곳에 버려둔 사람들, 그들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자신을 버렸을까. 작은 물건하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잠시 만났다. 몇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자주 연락 하지 못하고, 서로가 사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니 더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토요일에는 어쩌다보니 상담이 1건이었다. 상담 하나 하러 먼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비합리적이지만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나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서로 쏟아놓지만 친구는 아이들 학원가는 시간, 인강들어야 하는 시간 등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친구는 요새 시간이 아까워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한다. 일본어 원서 읽기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하루 3~4시간 밖에 잠을 안 잔다는 친구, 하루종일 직장에 있다가 돌아와서 밤 12시 이후에나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 친구는 시간이 너무 없고,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다시한번 더 말했다. 


친구는 최근에 읽은 책을 얘기하며 김호연 작가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불편한 편의점] [망원동 브라더스]를 찾아봐야겠다고 기억해두었다.

경춘선 숲길을 함께 걸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햇빛이 좋았고, 길가에 핀 꽃들이 예쁜 곳이었다. 더이상 경춘선 기차가 달리지 않는 선로를 사람들의 산책길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 만나기가 쉽지 않고, 점점 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서 만나고 돌아오며 우리는 과거로부터 연결되어 온 끊어지지 않은 끈이었음을 생각한다. 무수히 만나고 스쳐갔던 많은 인연의 끈들을 모두 다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남겨두는 게 아닌가. 친구를 만나 속 얘기를 꺼내놓고, 그렇게 돌아설땐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 같다.

친구는 최근에 다시 블루레이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택배를 받으면 잔소리가 심하다며 택배기사님을 만나자 그것을 찾아달라고 한다. 모아두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사모은다는 친구, 버리고 모으기를 반복하며 일상을 조율한다. 


삶에 기대가 많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기대하고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어떠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은 특히 더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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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진짜 산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며
‘문학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강법은 없을까‘ ˝우리는 왜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까˝하는 고민에서 편집된 소설집이다.

70~80년대의 오래된 노동 문학이 아니라 현재 우리 일상이 담긴 노동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생겨난 신종 직업, 크리에이터를 다룬 김혜진 [어비] - 내가 그토록 못 마땅해하는 먹방, 가짜 블로거 마케팅 직원을 다룬 김세희 [가만한 나날] - 거짓이 만연한 사회, 리뷰 보고 주로 인터넷 쇼핑하는데 ㅠㅠ, 청년 실업을 다룬 김애란 [기도] - 9급 공무원 고시생, 취준생, 50대 설문조사원, 일하는 여성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함을 다룬 서유미[저건 사람도 아니다]- 정체성을 잃게 될까 너무 두려웠다. 감정노동자를 다룬 구병모 [어디까지를 묻다] - 비대면, 여성노동자의 일상의 폭력에 공감하며 일단 책을 덮고 출근 준비를 한다. 나도 감정노동자,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하지만 감정을 억합하고 표현하지 못하기보다 나를 자꾸 들여다보며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이주노동자를 다룬 김재영 [코끼리], 산업재해 은폐를 다룬 윤고은 [P], 알바생 이야기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도 이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설들이다.

막연한 진로와 직업 선택의 기로에서 특별한, 전문적인 직업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막상 원하는 직업을 구했다고 해서 만족스러울까?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사회의 진짜를 만날 수 있는 소설들이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꼭 읽게 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들을 선별하여 묶어낸 선생님들의 노고와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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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시간을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너무 속상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나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았지만, 누구에게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오는 내내 전의 일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일지와 종결보고서를 작성하고 일찌감치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누웠지만 계속해서 오후의 일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어떤 일에 대해 미련스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 곱씹으며 나를 괴롭히는 사람......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또 그리는 사람......나의 어떤 점이 신뢰를 주지 못했을까, 나는 그녀에게 잘 응대한 걸까......조금 천천히 온 몸이 쑤셔오면서 급 피곤함이 몰려왔다. 잠을 잤지만 개운함이 없다. 

그래도 오늘 쉬는 날이라 한편 홀가분하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아이가 오늘 잘 놀았나요?" 아이가 잘 놀았는가 하는 궁금증의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의 놀이를 설명했다.

"선생님 아이가 다른 수업에서는 안 그러는데 놀이치료는 즐거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물어본 거에요."

3번째 만나는 날이었고, 아이 엄마는 아이가 놀이치료실만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치료 수업은 매우 즐거워하는데 나의 수업만 즐거워하지 않는다며 예전에 1년동안 놀이치료를 했었는데 거기랑 너무 비교가 된다며 물론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고 잘 하시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여가며 정중하게 사람 속을 후벼파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마치 아이와 놀이를 하는 치료실을 직접 봤다는 듯이, 내 아이가 즐거워하지 않을 때 보이는 반응을 보인다며 즐거워하지 않는 놀이치료를 내가 왜 해야 하는가, 하고 내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수용하고 버텨주어야 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았고, 속상한 마음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나를 계속해서 괴롭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깔끔하지 못하게 이렇게 그녀의 이야기를 여기에 풀며 나를 지키려 애쓰는 나를 발견한다. 안쓰럽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도 나를 괴롭히고 소진시킨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기 위해 전공서적들을 읽고 또 읽었는데 오늘은 가볍게 소설책을 읽고 싶었다. 최근에 읽었던 [딸에 대하여]가 여운이 있어 도서관에 가서 3권의 책을 빌려왔다.

소설을 읽으며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잠시 잊고 싶었다. 














이 중 가장 얇은 [항구의 사랑]을 먼저 읽었다. 잠시 소설 속에 빠져 과거를 회상한다.

어딘가 묻어두었던 그림자를 펼쳐드는 느낌이었다. 

여고 시절 '팬픽 이반'이라는 동성애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공감되진 않았으나, 그 시절의 아련한 환상과 모호한 현실의 경계의 아찔함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그 시절의 어리석음도 함께 떠올랐다. 최선의 선택은 늘 최악의 선택이 되었고,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리숙했다. 아는 것이 없었음에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세상을 넓게 볼 줄 몰랐고, 그런 안목조차 없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지금 생각하니 당연한데, 내가 몰랐다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6년간 본 것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p.153)


사랑에 목 마른 아이들, 놀이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늘 관심과 보살핌, 무한한 애정과 수용을 갈구한다. 나는 그 아이들을 수용해주고, 버텨주고, 기다려준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기다리지 못하고 담아주지 못한 것들을 담아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준다. 너를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아. 물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어. 하고 아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해준다. 가만히 그 아이들의 행동을 살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한 편안하고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는 아이의 요구와 지시를 수용해주며 따라가주며 너는 이런 아이야, 너는 이런 걸 하고 싶어해. 너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아이야. 너 이렇게 하는 게 좋구나. 지금 너가 이럴 때 화가나는구나. 화가날 때 너는 이렇게 하는 구나.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어. 하고 다독거려주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아이 스스로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스스로 선택하고, 선택한 것에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가 놀이치료실만 즐거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대해 결국, 나에게 귀결하는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었다. 속상해할 필요도 없었다. 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말에서 그녀가 나를 밀어내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다. 그저, 그녀를 받아주었어야 했다. 그녀의 불안을 함께 견뎌줘야 했다. 놀이치료를 통해서 이 아이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가 부족한 엄마의 불안을 안아주었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부족하고, 문제되는 것들을 놀면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개입으로 가르쳐야 하고, 가르쳐서 나아지는 것은 작은 변화라도 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놀이하면서 변화되는 것은 조급하게 기다린다고해서 그 변화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에 불안해한다는 것을 이해했어야 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말해도 그녀는 그녀의 생각이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것조차도 이해했어야 했다. 그녀는 나를 공격하려고 한 말이 아니고, 자신의 불안을, 믿지 못함을 표현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공격으로 상처로 받아들였으니, 여전히 소양이 부족하다는 반성으로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나는 나를 볼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나의 마음을 자꾸 헤아린다. 속상한 나의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며, 내가 왜 속상해했는가를 생각한다. 나의 자존감이 높았다면, 그녀의 말이 그녀의 불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아차렸을텐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만두겠다고 말할까봐 두려운 나의 마음도 알아차렸다. 이제 시작하는 아이인데, 그냥 그만두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던 나의 불안도 함께 본다.

다음주에 그녀를 만나면 좀 더 다독여줘야겠다. 그만두고 오지 않는다면 못 보게 되겠지만......설마, 그냥 그만두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를 다시 무장해야겠다. 전공서적을 펼쳐든다. 열공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그래도 가끔 소설책 읽으며 머리를 식힐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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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4-05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 속상한 일 있으면 친한 친구한테 전화해서 막 이야기해요 그래야 속상한 거 풀려요. 얼추 풀리고 맛있는 거 드시고 맛난 커피 마시고 소설 읽어요 그럼 싸악 풀릴 거에요, 좋아하는 일 하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요! 과정이니까 넘기면 더 좋은 일 있을 거예요!!

2022-04-05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05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05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4-05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같아도 속 상할 것 같습니다.
계속 맴돌고, 기분이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푸시고, 전공서를 찾아 읽고 다시 심호흡 하시는 모습 본받고 싶습니다.
상황이 원만히 잘 해결되어 더 강한 섬님이 되어 있으시길요^^

꿈꾸는섬 2022-04-05 21:14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감사해요.
이곳은 여전히 따뜻하네요.
응원에 힘이 나네요.^^

mini74 2022-04-0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겠어요. 그럼에도 비난하는 듯한 그 엄마의 마음이 불안에서 비롯됨을 아시고 그 불안을 함깨 해줘야겠다니 섬님 참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아마 섬님의 마음, 다음엔 그분도 아실꺼라 믿습니다 ~ 편한 밤 보내세요 ~

꿈꾸는섬 2022-04-05 21:17   좋아요 1 | URL
부족한 저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네요. 저도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 좀 더 여유있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다음에는 좀 더 편히 만나야겠어요.
따뜻한 댓글 감사해요.

2022-04-21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25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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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딸로서, 엄마로서,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 책을 내려놓고도 오래 지속되었다.

삶에 정답은 없는데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엉퀴어 버리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너무 먼 미래를 지금부터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젠을 통해 들여다 본 삶의 허무함에 지금부터 무기력해지고 싶지는 않다.

딸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딸이라도 충분히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수용해줄 수 있으나 비인간적인 처사는 눈감아주거나 침묵하지 말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더 생겨난 듯 하다.

종업원이 뜨거운 우동 두 그릇을 내온다. 수저통을 뒤져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딸애의 얼굴은 조금 지친 것 같기도, 마른 것 같기도, 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 P7

이유 없이 몸이 아프면 무병이라고 하잖아요.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 그걸 하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면 자식에게 대물림될 거라고 말하잖아요.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제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겠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가 다 받기로 하는 거겠죠. - P17

제 부모를 요양원에 맡겨 두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식은 드물다. 그걸 알면서도 교수 부인은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예 없는 거랑은 틀리지. 정말 몇 년씩 저렇게 혼자 있는 걸 보면 참 딱해. 그러니까 지금 힘들어도 애들 잘 키워. 그게 재산이고 보험이야. - P19

청년들은 젠이 여기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하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만나러 온 젠은 이곳에 없다. 그러면 여기 있는 젠은 젠이 아닌가? 이들은 젠에게 벌을 주러 온 것일까? 존경받아 마땅한 젊은 날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어졌는지, 지금 네 꼴이 어떤지 보라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는 걸까? - P28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 P30

문득 삶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딸애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 P33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 P37

아니. 어쩌면 겁을 먹은 사람.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깊이 빠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입은 옷을,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사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걸까. 그러나 지금 딸애에게 어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P69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따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렷따.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P97

왜 낲면이나 자식만 가족이 되는 건데? 엄마, 레인은 내 가족이야. 친구가 아니고,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정말 가족처럼 지냈어. 가족이 뭔데? 힘이 되고 곁에 있고 그런 거 아냐? 왜 이건 가족이고 저건 가족이 아닌데? - P105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러려니 봐 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뭐 세세하게 다 이해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건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삳 예외인 건데! - P106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사민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 P162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의 수고로움.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는 것의 지난함. 실은 나는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이런 일의 끔직함과 가혹함을 딸애와 그 애에게 알려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애들이 다만 책에서 읽거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뒤, 20년 뒤, 나를 이렇게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ㄴ 이 애들이 자신들의 노년을 젊은 날에는 어떻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그때를, 그렇지만 반드시 찾아고야 마는 그 순간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하고 싶다. - P184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죠, 나중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거에요. 교사로서 학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 나는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순진하고 어리석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아이는 점점 더 엇나가고 멀어질 거라고. 어떻게 해도 부모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그럼에도 연전히 그 아이는 내 자식이고 나는 그애의 부모이고, 그 사릴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줘야 했을까.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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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3-25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오랜만에 리뷰 반가워요 ^^
늙어버린, 아직도 마음은 소녀같은 엄마의 맏딸로서 두 딸들의 엄마로서 인용문장에 공감되네요. 어찌 지내셨나요 와락~

2022-03-2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 교과서 - 아이랑 엄마랑 함께 행복해지는 육아
박경순 지음 / 비룡소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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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1일, 12일, 19일, 20일 19시-21시 대상관계 이론 교육, 강사: 박경순 교수님.


대상관계 이론 강의가 너무 좋아서 교수님이 집필하신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였다. 

‘부모 됨‘이란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완전한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 없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그 성숙의 거름이 되는 것을 ‘갈등‘이라고 보았다. 자녀와의 갈등 속에서 비로소 부모로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생기고, 그 갈등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간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녀와의 갈등은 자신이 완전한 부모가 아니라는 수치스러운 증거가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긴 여정이라는 점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 P10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나선형, 즉 나사를 돌리듯 들여다보는 것이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보는 깊이가 달라진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느 ㄴ정신분석적 방법이기도 하다. - P15

‘나르시시즘‘이란 한마디로 나 스스로 ‘내가 잘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유아 발달과정에 꼭 필요한 영양소이다. - P18

자녀 문제가 부모 잘못이라고 질책한다면, 그것은 참 억울한 일이다.(중략) 자녀 문제가 절대 부모의 잘못은 아니다.(중략) 아이들은 불편함을 표현할 뿐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풀 능력이 없고, 그 숙제는 고스란히 부모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 다른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은 한번 참으면 그만이고,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녀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외면할수록 눈앞에 서있고, 피할수록 파고든다. 이것이 부모가 갖는 딜레마이다. - P23

형제자매는 필연적으로 파이를 나누어 먹는 사이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헌신하고 사랑을 많이 준다면, 그 파이 조각의 사이즈가 다른 가정보다 좀 클 뿐, 나누어 먹는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파이 나누기에서는 묘한 심리가 작용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조각이 더 커 보인다는 것이다. - P26

칭찬이 독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자,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게 될 때, 우리는 칭찬이 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 용어로 ‘참자기(true self)‘가 아닌 ‘거짓자기(false self)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자크 라캉은 이것을 ‘타자의 욕망‘을 살아가는 삶이라고 표현했고,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2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다. 1차적 나르시시즘과 2차적 나르시시즘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누구나 당연히 거쳐가는 과정이고, 후자는 좌절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좌절을 이론가들은 ‘심리적 대상상실‘이라고 부른다. - P34

엄마가 아이에게 민감하지 못하면, 아이가 엄마에게 민감해진다. - P35

진정한 성숙이란 아주 어린 아이의 모습부터 현재 나이까지의 모습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이들을 적재적소에 표현할 수 있는 융통성을 말한다. - P38

"부모는 유아로 하여금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도널드 W. 위니콧 - P41

아직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무례함이나 공격성을 다룰 때 부모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꾸지람을 들을 때 아이는 부모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낀다. 둘째, 아이는 부모가 화내는 감정과 체벌하는 행동을 배운다는 것이다. - P42

유아에게 엄마의 ‘공감‘은 심리적 생존에 필수적이다. 공감의 상실은 모든 올바른 행동의 상실을 가져오며, 아이를 무능력하게 만든다. -하이즈 코헛- - P48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아주고,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파트너, 즉 대상으로 삼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거나 자기 신체의 일부를 만지작거리며 놀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이란 ‘심리적으로 공갈젖꼭지를 빠는 것‘과 같은 상태로 표현될 수 있다. 심리적 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지만 실제로 채워지는 것은 없는 것, 그저 당장에만 무엇낙 허기가 채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공갈젖꼭지를 빼면 금세 다시 배가 고파지는 그런 것이다. - P53

유아동기 전체를 하나의 산에 비유한다면 이 남근기적 나르시시즘은 그 산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따. 이후부터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중략) 그 희열의 경험이 있어야 아니꼬운 세상도 참아낼 수 있고, 나보다 잘난 친구가 있어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P57

아이의 나르시시즘은 정상발달 과정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의 나르시시즘이다. 부모의 심리적 허기를 자녀를 통해 채우고자 할 때 자녀는 허덕이게 된다. - P59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언어 이전의 메시지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을 위니콧은 ‘모성 본능‘이라고 하였고, 코헛은 ‘공감‘이라고 하였다. - P63

칭찬하면 자만해질까봐 일부러 인색해야 한다고 생각된다면,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먼저 갖는 것이 필요하다. - P65

유아들은 마음을 둘로 나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감당할 수 없는 나쁜 마음은 밖으로 투사한다. 엄마는 아이가 투사한 나쁜 마음을 담아주어야 한다. 엄마가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다시 유아에게 되돌아올 때, 유아는 커다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멜라니 클라인- - P70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양분해놓는 이유가 있다. 간단하다. 좋은 감정 상태는 내 것으로 갖고 있기 편한 반면, 나쁜 감정 상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체적 균형 상태를 깨트리는 상황을 견디기가 어렵다. - P73

어린아이들이 마음을 둘로 나누어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분 나쁜 감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방에 칸막이를 나누어 따로 둔다. 좋은 감정도 보호하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나쁜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게 된다. 대부분 그 감정의 배설물을 내놓는 곳은 엄마이다. - P78

영유아기가 아이의 ‘감정의 회로‘가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아이의 희로애락의 길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슬픔의 길이 많이 만들어진 아이들은 웬만한 일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만족감을 많이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작은 좌절에도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탄력성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 P81

아이가 견디기 힘든 감정을 감당해주는 여과기가 없을 때, 아이의 마음은 통합되지 못하고 한쪽만 가지고 살아간다. 동그라미만 가지고 살거나, 가위표만 가지고 살거나, 순둥이가 되든가, 제 고집대로 하든가. 착한 아이로 살거나, 망나니 같은 아이가 되거나, 이렇게 행동이 전혀 다른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결핍‘ 즉, 감정의 여과기가 없었따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 P83

아이의 모든 행동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보내는 중요한 감정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행동에는 부모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한 메시지의 결과일 때도 있다. - P86

공격성은 본능에서 시작해서, 외부로 한 바퀴 돌아 두려움으로 되돌아오는 순환 고리를 갖게 된다.
(중략) 공격성의 역동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된다. - P88

생후 2년이면 공격성이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시기이다.
(중략) ‘무례함‘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다루는 방법은 이것을 놀이로 순화시키는 것이다. - P89

세 살 이후에 보이는 공격성은 좀 더 경쟁구조를 띤다.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사랑받고 싶고, 그것이 좌절되어 나타나는 것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때의 공격성은 우울감과 관련될 경우가 많다. - P90

‘철들지 않은 모습‘은 아이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일생에 어느 순간에도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 P105

아이를 잘 이해하고, 잘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아이였고 우리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07

역동적인 가족 치료사인 보웬이 말하기를 ‘부부는 정신적 성숙도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고, 이것이 자녀에게 대물림 된다‘고 하였따. - P112

성숙이란 흔히 ‘어른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성숙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그 어른스러움이 미성숙을 방어하기 위한 것일 때도 있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무언가를 방어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든가, 지나치게 금욕주의적이라든가.
심리학에서 성숙한 사람이란 유연한 사람이다. 어린아이부터 자신의 나이까지 유연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 P113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며 따라서 누가 뭐라고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서 단단히 무엇으로 감싸려는 태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상처받는 상황에 민감하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고집이 세고, 남의 말에 잘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한다. 약한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성숙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 P114

반성할 줄을 모른다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혹은 욕심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부모들이 설명하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 아이는 없다. 인간이 가장 감정적이고 예민한 시기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이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무언가 내가 최고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아이는 없다. - P115

무의식에 갇혀 있는 것들은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 내가 사랑해야 할 가족 속에서 흐르게 된다. 그러한 부모들의 마음속 방에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배치된다. 이것이 가족의 역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P117

사춘기에 부모와 각을 세우는 것은 정상발달이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가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자리 이동을 한다는 의미이며, 청소년 대상 정신분석학자들은 이 시기를 ‘두 번째 분리-개별화 시기‘라고 한다. 부모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부모를 한 인간으로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갈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 P121

살가움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살가움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느껴보는 일이다. 부모교육이나 이론은 그 다음이다.
살가움이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일차적인 의사소통은 피부접촉이다.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바라보고, 안아주는 느낌을 유아는 피부를 통해서 받아들인다. 그것이 사랑의 경험이며, 건강한 자아, 자존감으로 발전해가는 마음의 핵이 된다. - P122

아이를 키울 때는 삽을 깊게 파는 것이 좋다. 그래야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 마음을 크게 가지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로서 내 마음이 깊어야 한다.
마음이 깊으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P125

신생아의 행복감은 온저히 신체적 만족을 통해서 얻어진다. - P131

신생아의 수면주기도 타고난다.
(중략)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재울 수 잇을 까.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마다 다른 수면 주기를 잘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생후 1년동안 기억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어떤 생활 패턴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조건을 형성하게 된다. - P137

원인이 무엇이든 수면 문제로 아이와 부모가 힘들어지면 복잡한 역동에 얽히게 된다. 밤에 아이가 자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이 밉다. 난감한 것은 이때 미워진 아이에 대한 마음이 잘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 P138

우리가 자주 말하는 ‘자아‘는 거대한 비밀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유아의 사소한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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