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시는 쓰려고 앉아 있을 때만 써지지 않지오로지 시를 생각할 때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물을 데우고물을 따르는 사이고양이가 창문 밖으로 휙 하니 지나가고그 자리 뒤로 무언가 피어오르는 듯할 때그때조용할 때만 오지도 않지냉장고가 용도를 멈출 때저녁 바람이 몇 단으로 가격할 때시는 어느 좋은 먼 데를 보려다과거에 넋을 놓고그러던 도중 그만 하는빛에 눈이 찔리고 말아둥그스름하게 부어오른 눈언저리를 터뜨려야겨우 쏟아지는지도쓰지 않으려 할 때도 시는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잡지어디에 쓰자고 문 앞에 매달아 둘 것도 아니며무엇이라도 되라고 등불 아래 펴놓는 것도 아니며저기 먼 끝 어딘가에 이름 없는 별 하나 맺히는 것으로부시럭거리자는 것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는 세상 어느 골짜기에다종소리를 쏟아 붓겠다는 건지도시는 나아가려 할 때만 들이치는 게 아니어서멀거니 멈출 때흘린 것을 감아올릴 때그것을 움푹한 처소에 담아둘 때그때------------------------------------------어느 날엔가 시를 써 보겠다고 모여 앉아 있던 야나문이 그리울 때가 있다. 부암동을 떠올리면 야나문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문득 떠오르는 부암동의 골목길, 북카페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끔 그게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그곳에 가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어느새 월말, 수업, 시험, 일상의 반복이 지루할 틈도 없이 지나가고, 시를 써보겠다고 덤벼들었던 그 시간들은 색바랜 나뭇잎처럼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그래도 반가운 시집을 만나고, 시를 읽고, 옮겨 적어보는 이 시간이 있어서 오늘은 다행스럽기만 하다.바다는 잘 있습니다.꿈꾸는섬도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