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색칠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촬.

엄마의 몸 속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난다.
처음엔 아무런 징조를 느끼지 못한채 몇주후 아주 아주 작은 생명체가 몸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기하기만 했었다.
일정한 기간동안 내원하며 초음파로 뱃속의 아기가 잘 자라는지 확인하며 가슴 설레했던 날들이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간다.
빠른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함께 두근거리고 초음파 사진 한장 산모수첩에 붙여두고 매일 들여다보고 기도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큰아이는 초보엄마라 서툴렀지만 작은아이는 수월하게 키웠던 것 같다. 덜 신경 쓴 작은아이는 실수도 잦고, 사고뭉치라 나를 자꾸 버럭하게 한다. 그래도 딸아이 특유의 애교로 마음을 살살 녹여주니 사랑스럽기만 하다. 특히 아빠는 요샛말로 딸바보다.
오늘 아들은 내게 의미심장한 말로 일침을 가했다. 엄마는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나는 물론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게 좋다. 하지만 그것만 좋은 건 아니다라고 했지만 아들 보기에 엄마는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보였던가보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야 네가 맛난 것도 먹고 사고 싶은 것도 하고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을 하는 걸하고 말하니, 그래도 아빠가 너무 힘들 것 같으니 자신은 원하는 것들을 참을 수 있단다.
아들이 다 컸다는 생각이 들어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 서글프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들에게 이제 남자들의 세계가 보이는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에게 희생하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남자의 관점이 생겨난 것 같다.
저녁밥상에서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주니 남편은 코끝이 찡하다며 아들의 고운 마음을 받았다.

어느 날은 엄마는 이제 내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싫어! 네 일은 내 일이기도 하다고!했더니 엄마의 간섭이 싫단다. 그래서 그럼 백만년동안 말 하지 말자!하고 내가 먼저 삐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로 웃고 떠들고 한다.

아이가 자랐다. 다시 뱃속으로 돌려보낼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사고도 커버렸다.
어른들의 잘잘못이 눈에 보이고 비판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느 새 생겨났다. 이제 나의 좋은 시절이 끝나가는 것 같다. 품안에 품지 못할 만큼 아이는 어느새 자라났다.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다. 좀 늦게 와도 좋으련만.
그렇게 나도 아이도 또 성장통을 겪어야할 것 같다.
의연하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베란다 한 가득 쌓아둔 추억소품들을 들여다보며 자꾸만 회상하고 추억하고 기억해내야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는지 말이다.

아이는 그냥 어른이 될 수 없다.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할 일들을 겪어야만 한다. 나도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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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8-06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이랑 딸의 사춘기는 다르게 온다고..
저도 듣기만했어요. 저희 아들은 출생후부터 일관되게 제 말을 잘 안 듣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닌것 같구요.
꿈섬님 아들 아주 대견하네요. 벌써부터 아빠 생각하고 아빠 걱정하고....
든든하시겠어요^^

꿈꾸는섬 2016-08-06 23:18   좋아요 0 | URL
너무 일찍 철이 드는 것 같아 한편으론 짠한데, 아빠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떤 의도의 말일지 모르지만 남자가 힘들게 일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같아요. 엄마의 노동은 소비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구요.
아빠는 돈을 벌고 그 돈은 늘 엄마 맘대로 쓰는 것처럼 보이는가봐요.ㅜㅜ
조금 걱정돼요.

2016-08-07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