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소설이라면 믿고 본다. <7년의 밤>을 읽었을때 그녀의 소설에 완전 반했었다. 섬뜩하고 무서웠지만 읽는내내 흠뻑 빠져 들어 읽었었다. 이후 <28>을 읽었을때에도 그녀의 소설이 좋았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지만 읽는내내 이야기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열심히 읽었었다.기다려왔던 건 아니지만 (요새는 뭔가를 특별히 기다리지 않는 것 같다) 오랜만의 출간 소식에 우선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을 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펼쳐보지 않았다. 바로 읽을 것도 아닌 책을 주문해놓고 한참을 그 자리에 놓아두고는 읽을 시간을 만들어야했다.<종의 기원>을 단숨에 읽지 못했다. 책을 읽는 속도도 느려졌고 중간중간 중단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몇가지 있었지만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설마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들어 맞는 것이 무서웠다고 해야할지,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해야할지 어쨌든 전작들보다 더 좋지는 않았다.살인에 관한 것은 특히 존속살인은 할말을 잃게 만든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 사회를 생각하는 것만도 끔찍하다. 최근 여러건의 살인관련 기사들을 보면 존속살인이 많았다. 그런 기사를 보는 것만도 괴로운데 이 소설은 정말 한 인간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게 사실 너무 무서웠다.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감시와 관리가 이해되는 지점도 있었지만 `설마 그것도 네가`라고 생각하는 부문이 계속 예측되니 반전이나 흥미의 긴장감은 조금 떨어진 듯 하다.그런데 난 왜 이렇게 잘 반하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 유진을 머리 속으로 그리며 훤칠하니 멋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영선수였다니 더 멋졌겠다. 남들과 쉽게 섞이지 않으니 더 멋있어 보였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도덕적양심이 부재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규칙도 규범도 내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은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로지 공부에 매달리고 어른들은 오로지 돈을 쫓으며 살다보니 사람의 도리는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시절이 아닌가 생각한다.아이를 관리 감독 통제하는 헬리콥터맘이 요새는 대세라는데 스스로 설 수 있는 아이를 자꾸 붙잡아두는 행위가 아이를 망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과연 유진을 옭아맸던 엄마와 이모의 행동은 정당한가를 묻고 싶다. 아이에게 그 어떠한 설명도 없이 약을 복용하게 하고 그 부작용을 고스란히 견뎌내라는 것 또한 폭력이었다고 본다. 유진을 괴물로 만든 것은 누구란 말인가? 타고난 본성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결국 신탁대로 아버지를 죽였다. 과연 그가 아버지인줄 알았다면 아버지를 죽였을까? 문제의 본질을 덮어 두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드러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상처가 된다해도 상처는 치유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두려움에 감춘 것들은 그 어느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없다.소설을 읽으며 답답했다. 소통하지않는 어머니와 아들, 당사자는 모르는 당사자의 상황, 통제할 수 없는 다 큰 아들을 통제하려 드는 어머니, 어머니는 당연히 모를거야라고 생각하며 저지른 아들의 행동 등 이건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만한 이야기라는 생각만으로도 갑갑했던 것 같다.예측가능한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긴장감을 떨어뜨렸지만 디테일한 묘사나 인물의 섬세한 심리는 단연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이라 소름끼치도록 무섭지만 읽는동안 무서움이나 두려움보다는 현실이 서글프게 생각되었다. 슬픈 현실이다. 그게 무섭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