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

 

  혼자 고요히 산을 올랐다가 고요히 산을 내려오는 사람. 그들은 그렇게 혼자라 보기 좋다. 나 또한 가끔은 혼자 산에 오른다. 사람들과 산에 오를 경우는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거나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어김없이 술을 마셔야 해서 번거롭지만 혼자서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오르는 산과 남들과 같이 오르는 산은 그런 면에서 분명히 다르다.

 

  두 사람이 고요히 산을 올랐다가 고요히 산을 내려오는 모습도 가만히 보기 좋을 때가 있다. 산에 익숙하지 않은 연인끼리 오르는 모습에서도, 부부가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산에 오르는 모습에서도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건 나무숲길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이 언제 봐도 뭉클해서다.

  또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산에 오르는 모습도 보기 좋아서 자꾸 훔쳐 보게 된다. 일요일이면 아들과 아버지가 어울려 목욕탕엘 갔던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이는 아버지와 산에 올랐던 순간을 오래 기억할 것이고 세상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산길에서 획득할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산의 길은 성실한 길이다. 어떤 산길이라도 가볍거나 호락호락한 길은 없으며,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무색무취의 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맨송맨송한 상태에 있거나 그 상태로 세상 먼지에 휩쓸려버린다면 그 사람은 산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딴 데 다녀온 것일 것이다.

  산은 어렵다. 쉬운 것에 가닿으려면 산은 아니다. 쉬운 인생을 살려는 사람에게 산은 아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우리가 산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쉽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쉽지 않은 것이 우리를 달라지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산에 오르는지 모른다. 이 추측은 작게나마 진실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 중)

 

 

요 며칠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흔들리며 내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들의 연한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좋아서 한참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출렁거리며 춤을 추는 것도 같고, 자꾸 어딘가로 가자고 나를 불러내는 것도 같았다.

바람이 부는 게 좋다. 이시인님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시인의 말이여서가 아니라 나도 바람이 부는 게 좋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마냥 좋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뿐 어디로든 떠나질 못하고 늘 내 자리로 돌아온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기보다 막상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는 마음때문인 것 같다.

 

작년 늦은 봄부터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 거의 매일 산에 올랐다. 아이들 일어나기 한시간 전에 집 뒤의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잠깐 산바람을 맞으며 새소리를 듣다가 내려왔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너무나 좋아서 비가 오는 아침이면 어쩌지 못하고 우울해했다. 산에 올라가서 크게 숨 들이마시며 산공기를 폐에 가득 담아오고나서야 살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아무 생각도 느낌도 중요하지 않았고 산이 그곳에 있고, 내가 산을 오르고, 땀이 온 몸을 적시고, 숨이 차오르는 그 순간이 있어서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과 다정히 산에 올랐다가 반대편 등산로로 내려가기도 하고 남편이 바쁜 날엔 아이 둘과 함께 산에 오르기도 했었다. 작년 가을 무수히 많았던 도토리를 주워다가 친정엄마 드렸더니 도토리묵을 쑤어 맛있게 먹기까지 했었다.

 

'혼자 고요히 산을 올랐다가 고요히 산을 내려오는' 일을 올 해에도 어김없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한 해의 중반으로 접어들어가는 시점이다. 여태 산을 오르지 못했다. 마음은 벌써 산을 오른 것도 같은데, 아니 산이라도 올라야 살 것 같은데 그리워만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만 먹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내일은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마음에 산이 담겼으니 곧 오르긴 할 것 같다. 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긴 하다. 우리 집 뒤에 산이 있어서 정말 좋다. 언제든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어서 정말 좋다. 특별한 날과 시간을 내려고 하지 않아도 문득 오르고 싶을때 언제든 오를 수 있는 산이 우리 집에 뒤에 있어서 정말 좋다. 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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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 뒤가 바로 산이라니 꿈같은 이야기에요~ 매일 그 산을 오른다는 건 더 꿈같은 일이구요 ㅎㅎ 녹음이 더 짙어지기 전에 다시 아침 산행 시작하시길요^^

꿈꾸는섬 2016-05-16 22:43   좋아요 2 | URL
ㅎㅎ꿈같은 곳에 제가 살고 있나봐요. 허리를 다치며 빡빡했던 일정을 줄였어요. 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아직은 무리일 것 같아 망설이는 중이에요. 곧 산에 가야죠.ㅎ 갈거에요. 아마, 곧.

순오기 2016-05-1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고요?^^

젊은 연인, 혹은 중년 부부가 산을 오르는 모습은 보기 좋고 아름답지만
노부부가 산을 오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을 듯...

이젠 나에겐 등산은 허락되지 않아요. 무릎을 아껴야 해서...ㅠ
그래도 날마다 공원에서 아이들과 거닐며 노는 것으로 족한답니다~^^

꿈꾸는섬 2016-05-17 06:46   좋아요 1 | URL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는 이병률 시인의 글이에요. 전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거의 매일 산에 갔었는데 노부부가 한손에 스틱들고 때때로 손맞잡고 오르내리시더라구요.
저희 동네 산이 중턱까지는 오를만한 곳이라 그랬을 것 같아요.
순오기님 날마다 공원에서 아이들과 걷고 노니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실 것 같아요.
강아지와 함께 오르던 어르신들도 꽤 많았는데 아침마다 걔네들 만나면 엄청 반갑더라구요.ㅎㅎ
이른 아침 고요한 산이 좋아서 곧 다시 다니려구요.^^

단발머리 2016-05-17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 뒤가 산이거든요. 3분 안에 등산길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도 먼 산행~~ 아니 산책^^
꿈섬님 글 읽다보니까 저도 폐 가득히 산공기를 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정말 부지런하세요. 아이들 일어나기 한 시간 전이라면 저는 꿈나라거든요.
하루의 시작을 산행과 함께라면 정말 좋을것 같기는 해요.
너무 멋지십니다요~~~

꿈꾸는섬 2016-05-17 17:0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도 꿈의 동네에 사시네요. 언제든 도전하기 쉽겠어요.^^
정말 부지런하다는 말을 듣기 민망해요.ㅜㅜ 제가 좋아하는 일만 열심이라 다른건 나몰라라 할때 많거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