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주세요

올해의 독서계획 중 하나는 세계문학 읽기였다. 이번 달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책장에 꽂혀 있는 세계문학 중 두 권이 눈에 띄었는데 그 중 한 권이었을 뿐.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뭔가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형제의 결혼으로 가족이 된 사람이었고 스치듯 두어 번 만났을 뿐이라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들은 바로는 그는 생에 대한 열망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여러 일이 겹쳐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날들을 보냈다. 읽다 멈추길 반복하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거리를 나갔더니 태양이 뜨거웠다. 곧 여름이 올 것이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함께 고민했던 책은 <이방인>이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선 <이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죽음을 만난 후 죽음에 관한 문장을 접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가 가족과 영원히 이별한 다음 날은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가족이 된 날이었다. 어느 봄날, 누군가에게 슬픔의 날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기쁨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여름을 생각하니 작년에 읽은 <2011년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김유진의 「여름」이 떠오른다.

 

Y는 조심스레 실내화를 벗고 욕실 앞 발판 위로 올라섰다.

 

 

 

지금 내 곁엔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킬리만자로의 눈>, <욕망해도 괜찮아> 등이 곁에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 문장은 이렇다.

 

“놀라운 점은 통증이 사라졌다는 거야.”

 

 

 

 

 

 

 

 

이번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지난 회들에 비해 표지가 발랄하다. 7편의 소설 중 2편은 이미 만났고 5편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전자제품 상점의 판매원이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없는 매장을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넘어졌다.

 

눈에 띄는 건 대상작인 손보미의 「폭우」였다. 아마도 태양의 계절이자 비의 계절인 여름이 원인일 것이다.

 

봄과 여름 사이, 아직은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금껏 봄을 기다린 적은 있지만, 여름을 기다려본 적은 없다. 여름은 늘 갑자기 왔다. 올해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이번 여름은 좀 특별한 여름을 기대하고 싶다. 찬란한 초록과 함께.    

 

 

 

 



 
 
프레이야 2012-05-19 12:52   댓글달기 | URL
빨간바나나님, 첫 문장들 너무너무 좋아요. 선물 같아서 참 고마워요.
'이방인'이 '이인'으로 문학동네에서요? 민음사 것 있지만 이것도 탐나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강렬한 첫 문장이에요. 담아갑니다^^

빨간바나나 2012-05-19 16:46   URL
첫 문장들은 확실히 강렬한 것 같아요.
기록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기회를 빌어 기록해볼까 싶어요. 기억도 하고.
저야말로 좋은 문장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퓨어 1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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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현재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대부분 밝지 않다.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대폭발 이후 ‘돔’ 안의 세계와 ‘돔’ 바깥의 세계로 분리된, 암흑의 미래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퓨어(pure)’는 ‘돔’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돔’ 바깥 세계의 사람들은 대폭발의 후유증으로 땅, 동물, 플라스틱 그리고 가족과 융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 프레시아 역시 한 손이 인형과 융합되어 있다. 그녀는 현재 열여섯 살로 길러준 할아버지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살고 있다. ‘돔’ 바깥 세계에선 열여섯 살이 되면 혁명군에게 끌려가 살인을 배우거나 새와 융합된 브래드웰처럼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다.

 

‘돔’의 바깥 세계에서 보면 선택받은 자들만이 사는 ‘돔’ 안의 세계는 완벽한 세계지만, ‘돔’ 안의 세계에도 문제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것이 ‘돔’의 세계였다. 아이를 낳은 것조차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패트리지를 비롯한 ‘돔’ 안 세계의 아이들은 허락받은 내용만 교육받았고, 통제를 잘 받기 위해 코딩시술을 받아야 했다. 프레시아에게 부모와 가족은 미지의 존재였고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패트리지에게 아버지는 권력자일 뿐이었다. 패트리지의 완벽한 형이었던 세지는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빈부의 차로 인해 공립학교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하늘 가까이 치솟은 최첨단 고층건물이 존재하는가 하면 재개발이 중단된 이후 폐허로 변한, 아예 재개발 논의에서 배제되어 버려진 마을도 존재한다. ‘돔’ 안의 세계는 고층건물로 대표되는 건설과 첨단과학의 세계와 연결되었고, ‘돔’ 바깥의 세계는 현실의 최소한의 인권조차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와 연결되었다. 아름다움과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몇몇 특정인들의 욕망이 숨겨져 있음을, 갖지 못한 자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기에 『퓨어』의 세계가 소설 속 허구의 세계로만 읽히지 않았다.

 

브래드웰은 대폭발이 조작됐다고 생각했다. 진실이 조작됐음을 알면서도 현실의 버거움은 침묵하게 한다. 하지만 브래드웰의 말처럼 ‘잊고 싶은 일들이라고 해도,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후대에 전해야’만 한다. 진실만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기에. 다만 보이는 것 모두를 진실이라고 믿는 착각은 위험하다.

 

『퓨어』의 ‘돔’ 안의 세계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의 세계로, 대폭발 이전의 세계는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세계이자 어머니의 세계로 읽혔다. 패트리지는 어머니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돔’ 밖의 세계로 탈출했다. 그 계획은 어머니가 필요했던 아버지 윌럭스가 세운 함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가진 건 우리의 이야기뿐이야.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지켜주지.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해. 우리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으니까, 알겠니?”(111쪽)

 

아버지의 세계에 살았으나 어머니의 세계를 기억하는 패트리지와 어머니의 세계를 온전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머니가 숨겨둔 단서들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던 프레시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레시아를 사랑하게 된 브래드웰의 협심은 현실은 어두울지라도 다가올 미래는 밝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들’에게 허락받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프레시아를 도왔던 잉거십의 아내 일리아 역시 ‘어머니’였다.

 

동생 헬머트와 융합된 앨 캐피턴은 자신은 동생의 대장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는 때때로 동생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가족이니까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존재했기에 살아갈 힘도 얻었을 것이다. 참혹한 현실이지만 아이들을 믿었던 ‘어머니’와 서로 도와주며 스스로 삶을 결정했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인간은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모순을 저질렀다. 과거를 지우고, 본성을 버리고 사는 삶은 ‘그들’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나’의 유토피아였지 ‘우리’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어머니’ 애리밸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254쪽)'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아야 미래를 꿈꾸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퓨어』는 『퓨즈』와 『번』으로 이어질 3부작 중 첫 번째라고 한다. 아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분명 잘 이겨낼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 『퓨어』1,2 권 통합 리뷰

 

 



 
 
 
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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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수많은 관계의 처음은 가족이다.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지지세력이 되어야 하지만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옥수의 『개 같은 날은 없다』는 폭력으로 점철된 가족이 사랑의 가족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자 어린 시절 가족에게 얻은 상처로 마음의 병을 앓는 인간이 동물의 신호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만나고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강민은 아버지와 형이 있지만, 가족은 찡코뿐이었다. 아버지는 아내 없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삶에 지쳐 있었고, 음악을 하고 싶은 형 강수는 아버지의 반대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아토피를 앓는 동생을 돌봐야 하는 삶에 지쳐 있었다. 아버지의 화는 형에게로, 형의 화는 강민에게로 전이됐다. 강민은 아버지와 형의 폭력으로부터 찡코를 보호하려 했다가 찡코의 공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찡코를 죽이게 되었다.

 

미나는 폭식증에서 벗어나고자 정신병원을 찾았다가 오 원장 책상의 놓인 강아지 사진에서 어떤 신호를 느꼈다. 미나는 강민이 강아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상한 일은 강아지가 미나에게 “그 앨 사랑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나는 어른아이였다. 어린 시절 오빠 민욱은 미나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맞벌이를 했던 어머니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제대로 된 훈육을 하지 못했다. 미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적개심이 남아 있었다. 심리학에서 참된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이가 없는 경우를 '모친상실'이라고 한다. 강민과 강수에겐 어머니가 없었고, 미나와 민욱에겐 어머니가 있었으나 부재했다.

 

TV프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 문제의 근원은 언제나 부모에게 있었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어렵다. 팍팍한 삶의 현실은 감정 통제력을 앗아간다. 교육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실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간단하다. 역할 바꾸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부모도 실수하는 인간임을, 아이는 어린 시절의 아픈 나임을 기억한다면 다시 화목한 가족이 되는 일은 먼일만은 아닐 것이다. 강민이네 가족처럼.

 

두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낸 강민의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오빠에게 용기를 내건 미나였다.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다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부모도, 언니 오빠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자. 중요한 것은 실수에 대해 반성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는 받아주는 것이다. 가족관계뿐 아니라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 같은 날은 없다』는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소설이다. 이 책을 읽고 가족 간 소통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나가 알게 된 진실처럼 혼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일은 몹시 외로운 일이다. 곪아있던 가족의 상처가 터지면 처음엔 아주 힘들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분명 평화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화목한 가족을 꿈꾸지 않는 가족구성원은 없을 테니까. 'perfect family'의 길은 멀지 않다.

 

 

 

 

 



 
 
 
농담 (양장)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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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재미있으라고 던진 말에 상대가 큰 웃음으로 답할 때 성립하는 단어이다. 상대가 재미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 던진 말은, 상처받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알면서 던진 말은 농담의 가치를 상실한다.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으라고 던진 말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말을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언어가 다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이 전집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농담』이다. 루디비크는 어떤 일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떠나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친구 코스티카가 알려준 이발소로 면도하러 갔다가 이발사가 된, 십오 년 전 사랑했던 루치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십오 년이란 시간의 공백은 기억이 지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사람이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십오 년의 시간은 사랑했던 연인을 지우기엔 분명 짧은 시간이다. 그에겐 사랑이었으나 그녀에겐 찰나의 만남이었던 것일까?

 

사랑은 그/녀와의 많은 차이점은 무시하고 사소한 몇 가지를 공통점이 많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녀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배반하는 게 맞지만, 배반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자기반성을 이끈다. 헬레나는 파벨과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공산주의는 ‘사적 삶과 공적 삶의 일체(240쪽)’를 주장했지만 온전한 삶은 사적 삶과 공적 삶의 조화를 통한 균형적인 발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야로슬로프는 아들 블라디미르가 자신의 뒤를 이어 ‘왕들의 기마행렬’의 왕이 되지 않으려는 것이 서운했다. 상대의 상황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라며 원망하는 것은 미성숙한 사랑이다. 루비니크는 공적 삶이 준 부당함을 ‘순수’한 루비에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루비에는 루비니크를 받아들일 만큼 순수하지 않았다. 아니 루비니크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순수했다. 불행을 같이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문장은 한쪽의 불행이 다른 한쪽의 불행보다 적거나 없을 때 성립한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인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56쪽)

 

루비니크는 자신이 마르게타에게 보낸 엽서의 농담을 읽고, 당과 대학에서 축출하는 것을 제안한 파벨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 헬레나를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가 파멸시킨 것은 파벨이 아닌 헬레나였다. 게다가 그녀는 삶의 농담 때문에 생을 구하지도 못했다. 오래전 나는 ‘혼란’은 청춘의 시기에만 통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도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것은 시대가 나와 그/녀들 사이에 농담을 주고받을 여유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농담이 통용되지 않았다고 하여, 타인에 의해 자신이 파멸됐다고 하여 타인을 파멸시킬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루비니크는 믿었던 자들에게 적으로 판단되어 유린당한 삶을 살았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또 다른 버림받은 자들을 짓밦는 모순을 자행했다.

 

삶의 아이러니랄까, 혹은 지독한 농담이랄까. 루치에는 루비니크의 친구 코스티카의 ‘경계 밖’ 애인이 되었다. 루치에는 고민 많은 인간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코스티카를 사랑했다. 코스티카가 루치에의 전부를 알고 있다는 믿음이 착각일지라도. 루비니크의 행위에 대해 동조하지 않지만, 동정은 한다. ‘아무것도 용서되지 않은 세상, 구원이 거부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391쪽)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삶의 정화(精華)는 내가 버림받았다고 해서 타인을 버리는 행위에선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상대를 파멸시키면서 이어져 왔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어져 오기도 했다. 『농담』은 읽고 나서 큰소리로 웃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절망의 시대를 살다 보면 삶에 대한 고민은 사치로 여겨지고 원망만 남는다. 자포자기의 생을 선택하거나 사랑으로 절망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올바른 삶도, 진정한 사랑도 아니다.

 

이 책은 절망의 시대라 할지라도 삶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추운 겨울이 계속되다 보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의심이 간다. 이미 경험한 봄은 기억되지 않는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왔다. 기다리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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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상황들로 독서가 쉽지 않은 상태라

고심 끝에 11기 신간 평가단을 신청했고

운 좋게 9기·10기에 이어 11기 신간 평가단이 되었다.

계속 예술/대중문화 평가단이었고

이번에 예술/대중문화 분야가 포함된 인문/사회/과학/예술 평가단이다.

예술/대중문화 평가단과 마찬가지로

소설에 편중된 독서에서 벗어나고자 신청했으나

독서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리뷰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아 살짝 두려움이 든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생각이다.

예술/대중문화는 신간이 많질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번엔 신간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그 중에서 이 책들을 골랐다.

 

 

 

 

 며칠째 뜨거운 날들의 연속이다. 봄날이 가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인생은 오직 인생은 짧다는 것이고, 인생이 짧다는 것은 오직 짧아진 다음에야 깨단할 수 있어, 과연 ‘봄날은 간다’는 것만큼 실한 화두는 없을 것입니다. 비용이 없는 진실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봄날이 가는 일을 빼고는 슬픔도 외로움도 지혜도 성숙도 체감할 수가 없지요.”-서문, 알라딘 재인용

 

‘깨단함’을 찾아보니 ‘오랫동안 생각해 내지 못하던 일 따위를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거나 분명히 알다’라는 뜻이다. 책 소개 중에선 “대중의 속도감 있는 지식의 소비 욕구를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특유의 고집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점, 형식을 토대로 현대사회가 잠식해버린 개념을 정제된 언어로 톺아본” 책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삶의 본질을 알게 되면 좋겠지만 정제된 언어를 만나는 일로도 설렘이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가 만난 풍경에 동행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은 돈이다. 정의를 실천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근본에는 돈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마이클 샌덜 교수의 질문들에 답해 가면서 시장만능주의의 폐해에 대해 고민해 보고, 더불어 삶의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림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얼마나 똑같이 그렸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시각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차원에 있다”는 저자의 시선이 흥미롭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라캉의 정신분석이론과 프로이트의 심리학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시녀들의 욕망을, 그리고 화가의 욕망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 속 욕망과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관심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가연 2012-05-06 21:01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번에 파트장이 된 가연입니다. 얼마나 이렇게 댓글을 남기며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ㅎㅎ 이전에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셨네요.ㅎㅎ 확인했습니다.

빨간바나나 2012-05-07 10:36   URL
네. 반갑습니다. 이전에 예술분야에서 활동하긴 했는데 독서가 쉽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인문분야는 더 어려울 것 같아 고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