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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1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현재의 삶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대부분 밝지 않다.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대폭발 이후 ‘돔’ 안의 세계와 ‘돔’ 바깥의 세계로 분리된, 암흑의 미래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퓨어(pure)’는 ‘돔’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돔’ 바깥 세계의 사람들은 대폭발의 후유증으로 땅, 동물, 플라스틱 그리고 가족과 융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 프레시아 역시 한 손이 인형과 융합되어 있다. 그녀는 현재 열여섯 살로 길러준 할아버지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살고 있다. ‘돔’ 바깥 세계에선 열여섯 살이 되면 혁명군에게 끌려가 살인을 배우거나 새와 융합된 브래드웰처럼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다.
‘돔’의 바깥 세계에서 보면 선택받은 자들만이 사는 ‘돔’ 안의 세계는 완벽한 세계지만, ‘돔’ 안의 세계에도 문제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것이 ‘돔’의 세계였다. 아이를 낳은 것조차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패트리지를 비롯한 ‘돔’ 안 세계의 아이들은 허락받은 내용만 교육받았고, 통제를 잘 받기 위해 코딩시술을 받아야 했다. 프레시아에게 부모와 가족은 미지의 존재였고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패트리지에게 아버지는 권력자일 뿐이었다. 패트리지의 완벽한 형이었던 세지는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빈부의 차로 인해 공립학교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하늘 가까이 치솟은 최첨단 고층건물이 존재하는가 하면 재개발이 중단된 이후 폐허로 변한, 아예 재개발 논의에서 배제되어 버려진 마을도 존재한다. ‘돔’ 안의 세계는 고층건물로 대표되는 건설과 첨단과학의 세계와 연결되었고, ‘돔’ 바깥의 세계는 현실의 최소한의 인권조차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와 연결되었다. 아름다움과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몇몇 특정인들의 욕망이 숨겨져 있음을, 갖지 못한 자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기에 『퓨어』의 세계가 소설 속 허구의 세계로만 읽히지 않았다.
브래드웰은 대폭발이 조작됐다고 생각했다. 진실이 조작됐음을 알면서도 현실의 버거움은 침묵하게 한다. 하지만 브래드웰의 말처럼 ‘잊고 싶은 일들이라고 해도,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후대에 전해야’만 한다. 진실만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기에. 다만 보이는 것 모두를 진실이라고 믿는 착각은 위험하다.
『퓨어』의 ‘돔’ 안의 세계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의 세계로, 대폭발 이전의 세계는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세계이자 어머니의 세계로 읽혔다. 패트리지는 어머니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돔’ 밖의 세계로 탈출했다. 그 계획은 어머니가 필요했던 아버지 윌럭스가 세운 함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가진 건 우리의 이야기뿐이야.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지켜주지.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해. 우리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으니까, 알겠니?”(111쪽)
아버지의 세계에 살았으나 어머니의 세계를 기억하는 패트리지와 어머니의 세계를 온전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머니가 숨겨둔 단서들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던 프레시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레시아를 사랑하게 된 브래드웰의 협심은 현실은 어두울지라도 다가올 미래는 밝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들’에게 허락받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프레시아를 도왔던 잉거십의 아내 일리아 역시 ‘어머니’였다.
동생 헬머트와 융합된 앨 캐피턴은 자신은 동생의 대장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는 때때로 동생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가족이니까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존재했기에 살아갈 힘도 얻었을 것이다. 참혹한 현실이지만 아이들을 믿었던 ‘어머니’와 서로 도와주며 스스로 삶을 결정했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미래는 숨겨진 진실을 함께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인간은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모순을 저질렀다. 과거를 지우고, 본성을 버리고 사는 삶은 ‘그들’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나’의 유토피아였지 ‘우리’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어머니’ 애리밸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254쪽)'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아야 미래를 꿈꾸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퓨어』는 『퓨즈』와 『번』으로 이어질 3부작 중 첫 번째라고 한다. 아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분명 잘 이겨낼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 『퓨어』1,2 권 통합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