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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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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0여년 전 작가가 고향에 들렀다가 우연히 <오봉선생 실기> 라는 책을 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실기의 주인공은 확고한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하고도 집안의 관심 있는 사람들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로 성은 채(蔡), 이름은 이항(以恒)이며 자는 여구(汝久), 호는 오봉(五峰)이다. 이 소설은 채이항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가상의 인물 채동구(東求)의 네 번의 가출기이다.


채동구는 과거에 나아가기에는 글이 부족했고, 무관이 되기에는 근골이 약했다. 그는 벼슬 없는 한미한 시골 선비로 살았지만, '충성'과 '숭명대의(崇明大義)'라는 신념만은 누구 못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라가 위급에 처했을 때 채동구는 그러라고 시킨 이도 없고, 그럴 이유도 꼭 집기 어려웠으나, 어쨌든 가출을 했다. 이괄의 난에는 근왕을 위해 공주로 갔고, 정묘호란에는 강화도에 갔다. 병자호란에는 남한산성으로 가 오랑캐를 멀리서 바라봤고, 끝내 척화를 주장하는 상소가 원인이 되어 심양까지 끌려간다. 


어찌 보면 그의 가출은 미욱해 보인다. 특히나 뽑히지 않는 칼을 차고 명선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가는 모습은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난 이 어른이 뭘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이 어른은 초지일관해서 당신 가실 길을 가셨네. 남들이 우습다고 하고, 미쳤다고도 했지만 어른은 신념을 지키셨네. 신념이 옳다 그르다가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그걸 지킨 것. 난 바로 그게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작가는 에두르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신념을 지킨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힘이라고.


잘 쓴 소설이다. 채동구의 일생을 조롱의 빛을 띄고 서술하던 작가의 어조가 차츰 공감과 감동으로 변화하는 대목도 자연스럽고, 액자식 구성으로 현대와 과거를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솜씨도 멋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과거의 어느 한 때라면 이 책을 읽고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저지르던 자들, 8.15에 코로나 확산 파티를 벌이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의 '신념'을 보고난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코미디언이 한 말인지, 원래 있던 말인지 모르겠으나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오히려 와닿는 요즘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9790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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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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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90년대 초, 인하대학교 앞에는 '길' 이라는 서점과, '새벽' 이라는 서점이 있었다. 두 서점 모두 책을 사면 비닐로 포장을 해주었다. '길' 서점은 내가 3학년 때인가 흉흉한 소문과 함께 사라졌다. '새벽' 서점은 주인장이 만화책방을 겸영하며 '도서 판매량 저하 경향'에 맞서다 장렬히 산화해 갔다.


당시 용돈을 타거나 가욋돈이 생기면 서점에 갔다. 서점에 들어가기 전엔 졸밋한 기분이 들며 요의가 느껴지므로 화장실에 들른 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렇지 않으면 도서 선정을 그르치기 쉽다.

제일 먼저 주인장이 중앙에 진열해 놓은 권장도서를 훑어 본다. 사회과학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적당히 조합한 그 권장도서들은 물론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민음사에서 한창 새로이 번역하여 발간하기 시작한 세계문학들도 만만치 않다. 아, 책등 한가운데 빨간색 네모 안에 <문학과 지성사>가 박힌 소설들도 나를 유혹한다. 그렇지만 역시 <창작과 비평> 사의 소설들 쪽이? 아니야.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아직 읽지 못했잖아... 나는 한시간여를 그렇게 구경만 하다 겨우 한 두권을 아쉽게 사서 탐닉하듯 읽었다. 


그러다 작가들의 서재를 찍은 사진 등에 매료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쓰모토 세이초, 고은, 심지어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교수의 서재까지...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그 사진과 그림들에서 나는 묘한 위안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취직을 한 뒤 책들을 살 여유가 더 많이 생겼다. 술을 마시지 않고, 별다른 취미도 없는 나에게 독서는 그야말로 맞춤한 취미였다. 월급에서 얼마간의 돈을 헐어 책을 사고, 그 책들을 읽는 것. 건강하고,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나의 방은 책들에 점령되기 시작하였다. 


5천권 가량 된 시점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7천권이 되었을 때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책은 내 방 4면을 모두 채우고, 거실을 잠식한 뒤, 복도의 자투리 공간까지 빠짐없이 요구하더니 마침내 책장들 앞에 2중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이사를 한번 하려면 10만원에서 20만원의 추가 견적이 나왔다. 책은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며 위안했지만 단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사서 꽂아놓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책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년필이나 볼펜도, 컴퓨터와 노트북도, 다운로드 받은 영화들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물건으로부터의 '소외'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그때 읽게 된 책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이다.


...전자책에 대해 느꼈던 위화감은, 사실은 종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읽어도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위해 모으는 거라고 믿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은 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과시욕의 산물이었다.

...나는 가득 쌓인 책으로 나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흔 중반에 접어든 지금은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 대한 두근거리는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과시욕의 산물이 되고 말았다.


물건을 늘리면 늘릴수록...'침묵의 To Do 리스트'가 늘어난다. 


그래서 최근 나는 허접한 책들을 '읽어치우는' 데 골몰하기도 했다. 과거에 돈이 없어 책을 사기 어려웠을 때는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소중하게 읽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할 여유가 된 후에 급격히 책이 불어나 보관할 공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허접한 책을 먼저 읽고 북스캐너로 해치우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독서생활이었다.


지난 주부터 2주간 50리터 쓰레기 봉투 20여개 분량을 내다 버렸다. 쓰지 않는 전자기기와 옷가지들을 분리수거함에 넣었음에도 쓰레기가 저렇게나 나왔다. 


북스캐너도 바삐 돌아가고 있다. 침묵의 To Do 리스트를 줄이니 현재가 보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물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새삼 생겼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크게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공감이 간다. 실천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주위에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음은 사사키 후미오가 말하는 물건을 줄인 후 찾아온 12가지 변화이다.


01. 시간이 생긴다.

02. 생활이 즐거워진다.

03.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04.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05.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06.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07. 집중력이 높아진다.

08.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한다.

09. 건강하고 안전하다.

10.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11.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12. 감사하는 삶은 산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9667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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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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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선물받은 책을 꺼내어 읽는다. 비닐 안에 창호지를 넣어 책을 싼 걸로 보아 인하대학교 앞 "새벽" 서점에서 산 책 같다. 책 표지를 넘기니 선물해준 이가 쓴 글이 보인다. 그 친구는 노래패에 몸 담고 있던 친구였다. 동아리가 달랐고, 지향하는 바도 달랐다. 그런데 동기다 보니 이런 저런 일로 자주 만났고, 이유는 잊었지만 책을 선물 받았다. 24년 전 일이다. 그 사이 그 친구와는 연이 끊어져 연락이 닿지 않고, 저자인 신영복 선생도 타계했다. 


<나무야 나무야>는 선생이 남한 곳곳을 여행하고, 그 소회를 담은 글이다. 성찰과 통찰이 번득이는 글들에 밑줄을 그어 책을 읽고, 그 글들을 여기 남겨 시일이 흐른 뒤 다시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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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이야기는 물론 소설가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사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사실이라는 그릇은 진실을 담아내기에는 언제나 작고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쇄 가운데에다 자신을 세우기보다는 한 벌의 패션 의상과 화려한 언술로 자기를 실현하고, 또 자기를 숨기려 하는 것이 오늘의 문화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권력의 창출 그 자체는 잠재적 역량의 계발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는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다'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애를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미륵불은 석가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마저 구제하기 위하여 오는 부처입니다. 석가의 완성을 위하여 오는 부처이며 반드시 와야 할 부처, 당래불(當來佛)입니다... 소망의 세계마저 제도화되어버린다면 미륵은 영원히 미완인 것으로 완성되어버릴 것 같은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그린벨트가 바로 '꿈'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한마디로 미륵의 좌절로 점철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은 또 다른 미완성으로 이어져 역사가 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완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청년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그러기에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역경(易經) 64괘는 미완의 괘인 '미제'(未濟)괘로 끝나고 있습니다. 괘사(掛辭)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우가 시내를 거의 다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대의 가장 첨예한 모순을 향하여 서슬 푸르게 깨어 있는 정신이야말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을 가리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고 생각됩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夢昧)와 탐닉(耽溺)이 됩니다.


'또 하나의 손'이 짐을 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천수보살의 손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합니다.


자국내의 모순을 세계화를 통하여 해소하려고 하는 중심부의 그들과는 반대로 세계경제의 중하층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은 그러한 모순을 내부의 희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게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일은 분명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광활한 요동 벌판의 상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어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는 비약에 있는 것...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금(金) 없이 권(權)이 설 수 없고 권(權) 없이 금(金)이 재생산될 수 없기 때문에 금권의 야합과 세습, 그것은 고금을 통하여 변함 없는 정치적 주제라 하였습니다. 민생(民生)과 철학은 그것의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의 땅' 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한 사람이란 많은 사람의 힘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드는 사람.


금강산은 빼어나긴 하나 장중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중하나 빼어나지 못하다고 합니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하여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한 남명. 벼슬아치는 가죽 위에 돋은 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는 탐관오리를 질타하였습니다. 


'오늘의 개량'에 매몰되는 급급함보다는 '내일의 건설'을 전망하는 유장함이 더 소중한 까닭은 오늘의 개량이 곧 내일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야의 요체는 독립성이라 믿습니다. '오늘'로부터의 독립이라 믿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정은 흔히 그 외형이 파렴치하고 거칠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마치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의 손마디가 거친 까닭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합법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작 딱한 것은 그 부분을 줌렌즈의 피사체로 잡는 세상사람들의 춘화적(春畵的) 탐닉이며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당의(糖衣)에 길들어 있는 우리들의 빈약한 의식(意識)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찰의 막강한 소유구조 위에 서 있는 무소유의 역설(逆說)은 우리를 쓸쓸하게 합니다.


저항성에는 그 저항의 근거지가 먼저 요구되는 법이며 개인의 경우 그 근거지는 바로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거지가 없는 저항성은 결국 후기모더니즘의 무정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最高値)' 이기 때문입니다...'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양식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은 자유의 실체이며 내용입니다. 자유는 양적 접근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역사란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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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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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4월 30일 독일에서 태어난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하나로 꼽힌다. 아직 말을 하기 전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계산을 틀리게 하자 이를 지적했다든가, 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1부터 100까지 더하라는 선생의 과제에 3분만에 5,050이라는 답을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1+100, 2+99, 3+98 ... 모두 101이므로 101 x 50으로 계산)

대수학, 정수론, 해석학, 기하학, 통계학, 물리학, 천문학, 전자기학에 기여했고, 발표된 논문 외 미발표 논문들도 다른 수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연구한 내용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한다.

최소제곱법을 만들어 현대 통계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행성 세레스의 궤도를 정확히 계산하는 등 당시로서는 다른 수학자들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젊은 시절 대부분 해치웠다.

정17각형 작도, 소수 정리로 유명하고 가우스 기호, 가우스 분포, 가우스 소거법, 가우스 적분 등등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정의들도 무수히 많다.


1769년 9월 14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훔볼트는 형과 함께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광업학교에서 광물과 식물을 조사하며 학문적인 소양을 익힌 훔볼트는 봉플랑이라는 동료와 함께 남미의 미개척지 대부분을 여행하였고, 특히 오리노코 강의 곳곳을 유럽에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또한 당시 최고봉으로 알려진 침보라소 산을 무산소 등정했다. 갖가지 독물을 직접 먹어보고, 화산 분화구에 들어가 보는 등 무엇이든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고자 한 사나이였다. 그는 찰스 다윈, 괴테 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독일 이외의 여러 나라의 국왕이 그의 모험담을 직접 듣고자 하였다.


<세계를 재다>는 '뭐든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방랑벽의 소유자 훔볼트'와 '밤낮 책상머리에만 붙어 앉아 수학과 물리 문제를 고민하는 은둔형 천재 가우스'의 이야기를 교대로 직조하여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문체는 유머러스하고 상상력이 개입하는 부분은 엽기적이다. 기승전결이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전기와 달리 두 인물의 삶에서 흥미로운 특정 부분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단의 평가는 꽤나 좋았는데 캉디드 상, 아데나우어 기금 문학상, 클라이스트 당, <디 벨트> 문학상을 수상했고, 독일 북셀러 선정 2005년 올해의 작가 및 올해의 책, <타임>지 선정 2006년 전 세계 10대 소설에 선정되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8198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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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르게 - 박노해의 희망 찾기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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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련이 몰락하고, 박노해가 잡혀가고, 대학을 입학하던 해에는 시인 김남주가 사망했다. 그런 시기에 나는 사회과학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방에 굴러 다니던 잡지에 기고한 백태웅의 글이 기억난다.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 사회 모순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고 변화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련이 무너진 것을 이상향이 없어져 버린 것과 같은 태도로 절망하고 좌절한다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종교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몰락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철거촌에서 조폭이 웃통을 까고 문신을 드러낸 채 깨진 유리병으로 주민들을 겁박하던 모습. 무전기를 들고 쳐다만 보던 정보과 형사. 집에서 쫓겨나게 생겨 하염없이 울던 아주머니들. 1994년 남한의 어느 곳에서 벌건 대낮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나는 알았다. 그때는 어렸고, 그런 것들이 슬펐다. 


동아리방에서 박노해의 시 <하늘>에 곡을 노래를 부르면서 여러 번 울었던 기억, 옥중에서 출간한 시집 <참된 시작>에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짤막한 글을 읽고 어떤 일이 있어도 여자를 돈 주고 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기억. 그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던 박노해는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사의 구형은 '사형' 이었다. 6년의 수배, 8년의 감옥생활. 1998년 8.15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 박노해가 1999년 펴낸 책이 <오늘은 다르게>이다.


사람이 품은 사상이나 마음가짐 때문에 사형을 선고 받는다는 것, 무기징역을 산다는 것. 그것은 견디기 힘든 공포와 고통을 가져왔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굳센 의지를 가진 혁명활동가라 할지라도 고문을 이겨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기껏해야 거짓으로 시간을 버는 것 정도가 가능할까,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육체를 정신의 그릇으로 삼고 있는 이상, 육체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하물며, 사형이다, 무기징역이다, 하는 정신에 직접 가해지는 공격에 피폐해지지 않을 사람은 또 누구이랴. 


박노해는 <오늘은 다르게>를 통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얘기들을 늘어 놓는다. 잘 봐줘야 한 때 운동을 했던 생태주의자 정도로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패배하지 않았다, 더 나은 차원의 운동을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는 패배자의 두려움을 책 곳곳에서 풍긴다. 두려움의 냄새는 잘 감지되는 법이다. 


책 속에 수록된 시 중 섬뜩한 문구가 있어 적어본다.


기억하라

앞서가는 이여

그대를 지켜보는 의혹의 시선들을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를


진보진영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공격들, 그리고 연이은 자살들이 떠올랐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07439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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