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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섬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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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전, 사람들이 죽어갔던 도시가 개발되면서 문시백드림존 이라는 이름의 15층 건물이 들어선다. 식당가와 영화관, 오피스텔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이 복합빌딩의 최상층에 '섬' 이라는 이름의 술집이 있다.


술집 사장은 정희원이다. 그녀는 '아내를 의심하고 매질하는' 남편과 장애가 있는 4살난 아이,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었다. 그리고 그녀도 사고의 영향으로 폐경을 맞았다. 이후로 그녀는 땅에 뿌리박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문시백드림존의 제일 꼭대기 층에서 왠만하면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자가 지배인 효섭이다. 효섭은 정희원과 세속을 이어주는 '끈'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를 위해 은행일을 보고, 곤란한 손님을 쫓아냈으며, 그녀의 주거환경과 건강상태를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효섭은 소리없이 수행했기 때문에 마치 그림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다 죽어가던 정희원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의 뒤를 쫓아 이곳 '섬'까지 온 사내다.


둘이 꾸려가는 술집 '섬'에 문시백드림존에 사는 여러 인물들이 드나든다. 그들은 정희원에게 호감을 갖기도 했고, 효섭을 짝사랑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보지 않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왔던 방송작가 진주, 아내가 어느 날 '당신은 발전이 없다'며 떠나버린 뒤 '섬'에서 위안을 얻는 교사 영중, 삶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악착같이 자기 몫의 삶을 가꿔나가는 새미, 그리고 20년 전의 학살의 경험 때문에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섬'의 전 주인이자 문시백의 아들 영로.


그들은 '섬'에 가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한다. '섬'은 그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면, 그제서야 '섬'을 떠났다. 마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정희원과 효섭이 서류상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에 태풍이 몰아친다. 정희원은 '사랑의 집'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에 홀린 듯 자원봉사를 갔다가 그곳이 자신이 머무를 곳이란 생각을 한다. 장애가 있는 4-5살난 아이들과 지내면서 과거 자신이 사고를 일으켜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져 속죄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효섭은 한동안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희원의 바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2001년에 발간된 소설로 20년이 흐른 지금 읽어보면 꽤나 고전적인 맛이 난다. 밀레니엄 세대라며 날렵한 문체와 시선의 서슴없는 변화 등을 미덕으로 여기고, 가볍고 찰나적인 사랑이 각종 소설에서 판을 치던 시기에 발표된 <불꽃섬>은 다소 고풍스럽고 느린 전개로 인물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그러나, 드라마적 재미라 할만한 것이 그다지 없고 희원, 효섭, 진주, 영중 등 주요 등장 인물 중 딱히 마음 가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은 소설을 지루하게 만드는 감점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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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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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우가 살고 있는 집은 춘의산 자락을 뒤로 끼고 있었는데, 공장 부지로 팔려 곧 헐릴 예정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동대문에서 옷 장사 하는 올케를 도우며 혼자 살고 있는 신우의 처지와 집의 처지는, 어쩐지 닮아 있었다.

어느 날, 신우는 뒷 마당에서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사내를 만난다. 그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고 처음 꺼낸 말은 "세상이 화안해요" 였다. 아마도 산벚나무 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얘기한 것일지 몰랐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나마스테" 라고 인사했다. 그의 이름은 카밀이었고, 네팔 사람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3년째였는데, 청바지 공장에서 샌드기에 맞아 상처를 입은 데다가 주소만 들고 친구를 찾아 왔다 길까지 잃는 통에 신우의 집 뒷마당까지 흘러들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 뒤 카밀은 같은 네팔인 처녀를 데려와 방을 빌려줄 없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다.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긴 신우는 방을 내준다. 카밀과 사비나라는 이름의 처녀는 그녀의 집 방 한 간을 빌어 살림을 시작한다.

그러나 셋의 기묘한 동거 생활은 곧 파국을 맞는다. 사비나가 도통 신우를 어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신우는 사비나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사비나도 지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 사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 얼마 뒤 사비나가 카밀이 모은 돈 천만원이 든 통장을 들고 잠적한다.

 

카밀은 사비나를 잃고 괴로워했다. 신우는 카밀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아픔에 공감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카밀은 차츰 신우에게서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느끼게 되어 의지하게 된다. 결국 남녀 관계로 발전하게 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신우 오빠의 완강한 반대와 카밀의 어정쩡한 태도로 둘 사이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신우는 오빠에게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L.A.흑인 폭동을 상기시키려 애쓴다. 신우의 아버지는 L.A.흑인 폭동으로 인해 사망했기 때문에 타국에 돈 벌러 간 가난한 나라 사람의 처지를 오빠가 십분 이해해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오빠는 요령부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방황하고 절망하던 카밀이 신우 옆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카밀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카밀의 내부에서 고통 받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카밀은 그들이 일한 만큼 댓가를 받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며,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밀의 그런 주장이 무색하게도 정부의 입법 방향은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결국 자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카밀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이 환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캄캄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치던 카밀이 세상을 향해 던진 마지막 말은 현수막에 씌여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그 현수막을 따라 카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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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 의거, 4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행된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분류되던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을 이어 투신하거나, 분신하거나, 목을 메었다.  고향의 가족은 물론이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빚을 얻어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에게, '추방'은 '죽음'과 다른 말이 아니었다. 그 해 11월, 다르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청년이 자살한다. 그리고 뒤 이어 방글라데시 사람 비쿠가, 러시아의 안드레이가, 우즈베키스탄인 부르혼이 자살한다. 12월엔 우즈베키스탄인 카임이 자살했고, 중국동포 김원섭씨가 행려병자처럼 죽어갔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 한국의 가요가, 영화가,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그 와중에 소위 '국뽕' 컨텐츠가 범람하고, 나치즘을 연상케 하는 정도의 민족주의적 사고도 매우 진보적인 것인 양 포장되어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위상은 문화적인 컨텐츠의 인기와 수출 만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하게 세계 공영에 기여하는가 역시 중요할 것이다. 국력이 높아질 수록 보편적인 인간 권리에 대한 존중, 과거사에 대한 제한 없는 반성을 타국이 볼 때 극성스럽다 할 정도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뽕'과 '민족주의'라는 정신적 자위행위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찰나에 소비되는 자극적 컨텐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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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3 - 루프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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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살이 된 가오루가 어느 날 특별한 발견을 한다. 중력 이상의 마이너스 지역과 장수촌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가오루의 아버지 히데유키는 인공생명 개발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였는데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부자는 언젠가 장수촌이 위치한 뉴멕시코 인근을 함께 여행하자고 약속한다.


시일이 흘러 가오루가 스무 살이 되었지만 부자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히데유키가 전이성 인간 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히데유키는 매일 매일 쇠약해졌고, 가오루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다.


아버지가 걸린 전이성 인간 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오루는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가 과거 관여했던 연구, 즉 루프라 명명한 인공생명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 연구의 목적은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 생명을 탄생시켜 DNA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하면서 돌연변이나 기생, 면역 등의 메커니즘을 함께 담아 지구 생명의 진화를 모방한 독자적인 생물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생명 탄생 이래 40억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를 파악 가능한 디지털 시간으로 응축하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하고 만다. 어느 순간 패턴이 암화(暗化)하고 만 것이다. 링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동일 유전자에게 점령당한 가상 공간은 다양성이 없어지고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가상 공간에서 발생한 링 바이러스가 현실의 전이성 인간 암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 어머니가 미국 민간 전승 기록을 연구하다 발견한 특정 장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 아버지와 스기우라 레이코라는 여인 - 을 치료하기 위해 가오루는 미국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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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비디오 테이프를 본 4명이 사망한다.

"영상을 본 자는 일 주일 후 이 시간에 죽을 운명에 놓여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실행에 옮겨라. 즉..."

끊어진 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로 해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던 아사카와는 야마무라 사다코가 억울하게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유골을 수습한 뒤 장례를 치뤄준다.

'전설의 고향' 에서 라면 통했을 법한 이 행위는 그러나 해답이 아니었다. 아사카와의 아내와 딸이 사망한 것이다.

다음으로 수수께끼 풀이에 참가한 사람이 다카야마 류지이다. 다카야마 류지는 DNA가 자신을 복제하듯 테이프를 복사하는 행동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다카야마가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은 아니었다.

링 바이러스는 그것을 본 사람이 여자이고 배란기일 경우 난자에 유전자를 염사(念寫)하여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링 시리즈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링3 루프> 에서는 이 이야기 전체가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링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순간 실험은 암화했고, 중단된다. 그리고 얼마 뒤 실제 인간 세계에서 인간 전이성 암 바이러스가 나타나 실제 세계가 암화하고 있다.


가오루는 이러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루프'라 명명된 과거 실험을 조사했고,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다카야마 류지라는 컴퓨터 속 인간이, 섬광처럼 '자신이 실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가상세계의 인간임' 을 깨달은 것이다. 다카야마 류지는 자신의 DNA를 그대로 복제해 현실 세계에서 탄생키켜 달라고 말한다. 그 소원은 연구자들에 의해 현실이 된다. 그리고 태어난 자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가오루이다.


전이성 인간 암 바이러스에 대해 진정한 저항성을 가진, 전혀 새로운 타입의 인간 가오루 덕분에 암화는 중단된다. 가오루는 '뉴트리노 스캐팅 캡처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다시 '루프' 세계로 이동한다.


'루프' 속 링 바이러스 이야기도 충격적이지만, 외전 격인 <링 3> 역시 매우 정교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 잡는다. 신 기술을 소설 속에 무리 없이 녹여내는 솜씨도 훌륭하다.


"주사위가 백 번 계속해서 같은 눈이 나왔다면, 누군가 그 주사위에 농간을 부린 게 뻔하지 않겠니?"

제로에 가까운 확률을 극복하고 생명은 발생했다. 그렇다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역시 神이 조종하는 일종의 가상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인식, 그것만큼 허무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인식이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무한에 가까운 우주를 생각하면, 무한이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확률에 있어서는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사위가 백 번 계속해서 같은 눈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무한. 알 수 없는 것을 神이라는 존재로 치환하느냐, 아니면 무한히 진리에 접근하는 과정이라는 낙관론적 가지론을 받아 들이느냐가 과거에는 전혀 상반된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확신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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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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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오세 미노루는 오카지마 설계사무소에 근무하는 건축사이다. 거품 경기 때는 인테리어 기술자인 아내 유카리와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하지만 거품이 붕괴되고, 건축사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힘든 시기가 닥쳐왔다. 그 즈음 아내와 집에 대한 의견 차이가 불거졌다. 아내는 목조 주택을 지어 가족이 함께 하자 했다. 하지만 아오세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에 대한 이미지를 키워갔다. 사소한 의견 차이였지만 어느 순간 서로가 낯설어졌다. 결국 아오세는 아내와 딸 히카리와 헤어져 혼자 살게 되었다.


그러다 지은 주택이 Y주택이었다. 의뢰인은 요시노 도타라는 수입잡화 도매업자였는데, 그는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라며 건축을 맡겼다. 아오세는  north light를 대담하게 활용한 북향 집을 지었다. 그리고 <헤이세이 주택 20선> 이라는 잡지에 당당히 실리게 된다. Y주택이 아내 유카리가 원하던 그런 목조주택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아오세는 다시금 건축사로서 자긍심을 되찾고 가족과의 관계 개선도 도모하나 했는데,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다. Y주택에 사실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설계했고, 유수의 잡지에도 실렸으며, 다른 사람도 원하는 그 주택에 실상 의뢰인은 입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은 아오세의 신경을 계속해서 긁어댔다. 결국 아오세는 친구이자 설계사무소의 사장인 오카지마와 함께 Y주택을 방문한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Y주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가구도, 생활의 흔적도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은 빈집털이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편안해 보이는 의자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 오카지마가 의자에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브루노 타우트가 만든 의자 같다는 것이다. 브루노 타우트라면 쇼와(1926-1987) 초기 나치스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해 온 건축가로, 가쓰라 별궁의 건축미를 재발견하고 일본의 공예품 보급과 디자인 향상에 이바지한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70년이 흐른 지금, 어째서 그의 의자가 빈 집에 놓여 있을까?


아오세는 사라진 요시노 도타를 찾아내 그 답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탐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이혼한 지 오래 되었고, 아내라고 소개한 것과는 전혀 다른 키가 큰 여성과 Y주택을 방문했다고 한다. 또한 그를 뒤쫓는 것으로 보이는 험상궃은 장년 사내도 어른거린다. 그는 야쿠자에게 쫓기는 것일까? 키가 큰 여자는 불륜의 상대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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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도타의 아버지는 가구 장인이었다. 그는 브루노 타우트에게 사사받길 원했고, 결국 의자 설계도 하나를 얻게 된다. 그때 만든 의자가 바로 Y주택에 놓인 의자이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는 아오세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게 만든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는 두고두고 이 일을 후회하고 참회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반드시 이를 보상하라고 유언으로 남긴다.

요시노 도타는 자라서 아오세에게 아버지의 유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돈을 건네는 간단한 방법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Y주택의 설계를 의뢰한 것이다. 키 큰 여자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아오세의 아내였다. 아오세의 아내는 남편이 지은 Y주택을 보고싶어 했기에 그와 동행한 것이다.

야쿠자 같은 사내는 요시노 도타의 前처남이다. 아내와 헤어질 때 다소간 원한을 사서 쫓아온 것이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나오키상과 관련, 심사위원과 '현실성' 문제로 다툰 것은 문단에서 유명한 사건이다. 그런데 <빛의 현관> 을 읽다보면 이번에는 심사위원 쪽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70년에 걸친 이야기도 비현실적이고, 아버지의 유언이기 때문에 자신과는 사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3천만엔 가까운 돈을 투자하는 것도 그렇다.

현실성과는 별개로, 장르 소설의 미덕도 그다지 갖추지 못했다. 사건성이 별로 없고, 그나마 사건이라 할 만한 내용도 책의 중반 이후에나 제시되다 보니 초반부가 무척 지루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52631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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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머니 (보급판 문고본)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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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일본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인 1998년 봄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시라토 노리미치는 도쿄 소재 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이렇다 할 직장도 없이 빠찡꼬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우익 계열 야쿠자가 신장개업 예정인 빠찡꼬 앞에서 행패 부리는 것을 구경하던 시라토는 고즈카라는 이름의 70대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무척 세련된 차림이었는데, 야쿠자 두목인 다쓰미도 노인에게는 깍듯하게 대했다. 노인은 시라토에게 관심을 표하며 묘한 제안을 한다. 자신의 비서가 되어 주가 흐름을 파악하고 경제를 공부하는 한편 잔심부름을 해주면 월 30만엔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시라토는 그날부로 노인의 비서가 되어 그럴싸한 옷차림을 하고 그의 집을 드나들게 된다.

처음에 노인은 시라토에게 경제 일간지를 읽도록 했고 거래하는 마쓰바 은행의 주가를 기록하게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시라토는 차츰 '마켓'에 대한 감을 익히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난 뒤 노인은 시라토에게 마쓰바 은행 주식 거래를 권한다. 물론 자본은 노인의 수중에서 나왔다. 시라토는 바닥이라고 확신한 시점에 마쓰바 은행 주식을 샀지만 3주일 간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호재가 나와 겨우 주가가 반등했지만 시라토는 자신이 샀던 금액 언저리에서 주식을 처분한다. 시라토의 첫 거래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분산 매입 방법이라든가, 흐름을 기다리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차츰 '마켓'의 생리를 몸으로 익힌 시라토는 고즈카 노인이 부재중일 때 대신 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그 즈음에 고즈카 노인은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는다.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며 동아시아발 위기가 시작되던 즈음의 이야기이다. 일본 역시 버블이 붕괴되고 기나긴 침체로 가는 초입이었다. 버블 시기에는 어떤 자산이든 사 두면 값이 뛰었다. 이 시기에 부도덕한 은행이 노인들에게 부동산 담보 대출과 변액 보험을 결합한 상품을 위험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팔아 치웠다. 그들은 일단 노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그 돈을 변액보험에 투자하게 했다.

경기가 하락하자 변액보험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손실이 불어나자 담보로 잡아 두었던 노인들의 집을 경매 처분했다. 손에 돈 한번 쥐어본 적도 없이 집에서 쫓겨나는 이 상품에 가입한 노인들이 100만명에 달했다.


절친한 친구가 사업 실패로 자살한 직후, 남겨진 그의 아내가 위와 같은 불완전 판매 상품에 당해 파산하자 고즈카 노인이 은행을 상대로 주가 조작을 실행하여 큰 돈을 벌어 들이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면밀히 따져 보면 고즈카는 은행을 파산시킨 것도 아니고 단지 거짓 정보와 공매도를 통해 이득을 취했을 뿐이라 은행에 어떤 타격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3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도입을 추진하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드디어 시행 되었다.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충분히 설명하고 부당한 권유를 해서는 안되며, 허위과장 광고가 금지될 뿐만 아니라 위법한 계약에 대해서는 해지 권리도 신설되어 상당히 강력한 법이다.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팔아 치운 뒤 나 몰라라 하는 영업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들이 새로 생겨날 때 반골 기질이 있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다 해 먹었나? 이제 그런 방법으로 해 먹는 것은 더 큰 저항에 직면할 위험이 있나? 그래서 법이라는 이름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못하도록 단도리를 해 놓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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