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쳐 : 이성의 목소리 위쳐
안제이 사프콥스키 지음, 함미라 옮김 / 제우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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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영약과 비약으로 신체를 변화 시키는 한편, 검술과 마법을 수련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죽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위쳐가 된다. 그들은 드래곤, 뱀파이어, 스트리가, 브룩사 같은 괴물들을 물리치고 그 댓가로 돈을 받는다. 사람들은 위쳐를 필요로 하면서도 멸시했다. 


위쳐 중 하얀 늑대로 불리우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리비아의 게롤트이다.


<이성의 목소리>는 <위쳐> 시리즈에서 시간 상 첫 부분에 해당한다. 이야기는 독창적인 면은 별로 없고 갖가지 옛 동화들을 마구잡이로 차용해서 전개된다. 


일몰 때 부터 새벽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곁에 함께 있어주면 스트리가로 변한 공주의 저주가 풀린다던가, 여사제를 겁탈한 죄로 멧돼지로 변한 니벨렌이 뱀파이어의 일종인 브룩사에게 홀려 사랑에 빠진다던가, 우연히 주운 앰포라(손잡이가 양쪽에 달린 항아리)에서 공기의 정령이 나타나는 데 세 번 소원을 들어준다던가(지니?) 하는 식이다. 


신트라의 여왕 칼란테 왕비가 딸 파베타의 신랑감을 구하는데 나타난 것이 에를렌발트의 고슴도치 듀니였다는 이야기와,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진 엘프 필라반드렐이 게롤트와 그의 친구이자 음유시인(트리바도어)인 단델라이언을 해치려다 예언자 릴레의 만류로 그만 두게되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드라마 <위쳐> 시즌 1이 다소 변죽만 울리다 끝이 났다면, 시즌 2는 지나치게 건너 뛴 이야기가 많아  산만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배경 지식을 얻을 겸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이 연대기 순이 아닌 에피소드 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필요한 배경 지식과 세계관은 슬쩍 곁들이는 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 이나, <왕좌의 게임> 과 같은 대작과 비교하면 다소 유치하고 구성이 정교하지도 않다. 그저 심심풀이 삼아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지 비교하는 정도로 가볍게 읽을 정도의 수준이다. 


왠일인지 네이버 블로그에서 책 글감 첨부가 사라졌다. 일시적인 장애인지, 정책이 바뀐 건지 잘 모르겠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69068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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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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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아미티지가 무명 생활 11년 만에 <셀링유> 라는 시트콤 대본으로 대박을 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작가의 꿈 만은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것 만은 아니었다. 생활고가 가져오는 부부간의 사소한 다툼이 데이비드와 그의 아내에게도 찾아왔던 것이다. TV 방송국과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막대한 금액의 인세 수입 등을 거두자 젊고 아리따운 여성들도 데이비드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데이비드는 샐리라는 여성을 만나 자신이 다시금 사랑에 빠졌다고 느꼈으며, 자연스러운 결과로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이혼 직후부터 데이비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내친 김이었다. 양육권을 빼앗겨 딸을 마음껏 만나지 못하는 씁쓸한 상황도, 명예와 부, 그리고 새로운 사랑이라는 감미료 덕분에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데이비드 아미티지에게 엄청난 부호 필립이 접근한다. 필립은 돈이라면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진짜 꿈은 훌륭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에게 그럴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립은 데이비드 아미티지가 데뷔 전 쓴 시나리오를 각색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데이비드도 어마어마한 액수에 동해서 응낙한다. 치기 어린 시절 썼던 거친 시나리오를 다듬어 필립에게 건내준 직후, 데이비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한다. 그런데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표절 시비였다. 사소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 표절 시비는 데이비드의 예상과 달리 심각하게 흘러 가고, 데이비드 주위 사람들도 하나 둘씩 떠나간다. 


방송국은 기존 작품도 표절이라며 이미 지급된 보수를 돌려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그를 칭송하던 문단의 평론가들도 등을 돌렸다. 샐리와 친구들도 낙오자와는 말도 섞기 싫다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 희망은 필립에게 제공한 시나리오의 원고료였는데,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필립은 그 시나리오가 자신의 단독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가 무명 시절에 썼던 다른 시나리오들 까지 필립은 자신의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이제 데이비드가 기댈 곳은 필립의 아내 마사 밖에 없었다. 마사는 필립과 정서적인 면에서 매우 잘 통했고, 짧은 순간이지만 사랑을 느끼기도 한 관계였다. 데이비드에게서 전후 사정을 모두 전해들은 마사는 필립을 도와주기로 하고, 둘은 대반격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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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스토리가 특징이다. 모름지기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주인공은 어떠한 역경을 거쳐야 하고, 나쁜놈은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하고, 복선과 갈등은 어떻게 배치해야 하고... 따위의 법칙에 따라 쓰여진 공산품 같다. 게다가 영화가 제작된다면 스폰 받고 싶은 상품들은 무엇인지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상표명을 반복적으로 노출 시킨다.


데이비드가 나락에 빠진 것은 모두 필립의 의도였다. 필립은 데이비드의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데이비드를 표절 작가로 몰아가는 한편, 그의 초기작들은 작가협회를 매수해 저작권 등록 한 것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68068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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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17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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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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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경찰서의 혈흔 분석가 덱스터는 오늘도 "검은 승객"과 함께 신나는 살인 행각을 벌일 참이다. "검은 승객"과 함께하는 덱스터는 그야말로 포식자에 다름 아니다. 그의 타깃이 된 먹잇감은 어김 없이 올가미에 걸려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관통 당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이번 타깃은 돈 많은 놈팡이 잰더라는 놈으로, 이 녀석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감언이설로 노숙자를 꾀어내 살해하고 트로피로 신발을 수집하는 자였다. 덱스터는 잰더를 얼마간 쫓아 다니다 기회를 포착하여 마침내 처형대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잰더는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덱스터에게 애걸복걸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덱스터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잰더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해 지더니 "그가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라는 말을 한 것이다. 덱스터는 잰더가 마지막으로 허풍을 떨어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처치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덱스터가 잰더를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덱스터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있었다. "관찰자"는 덱스터가 몹시 성가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묘한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은 두 구 였는데, 목이 잘린 상태였고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황소 머리 조각상이 놓여져 있었다. 데보라는 예의 덱스터의 "직감"이 어떠한지 묻는다. 언제나 연쇄살인의 징후가 보이면 덱스터는 놀라울 정도의 "직감"을 발휘하여 사건 해결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덱스터는 어떠한 "직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내부에 언제나 존재하며 덱스터를 포식자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검은 승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검은 승객"은 어쩐지 훨씬 더 무서운 존재를 피해 도망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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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에서 "검은 승객"을 동반한 압도적 포식자 덱스터가 등장하고,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에서 리타라는 여성과 남녀 관계를 맺는 생활인 덱스터가 등장한다면, 이번 <어둠 속의 덱스터>는 "검은 승객"이 정체가 어렴풋이 공개된다.


제프 린제이는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특이하게도 솔로몬은 사악한 악마 몰로크 신을 위해 신전을 세우기도 했고, 단지 '속내가 사악하다'는 이유 만으로 형을 살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사악한 속내'가 곧 "검은 승객"을 의미하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은 승객"은 악마 몰로크가 하느님의 피조물 중 악한 심성을 받아들이기 용이한 동물이나 사람에게 깃들어 "살해"를 통해 충일감을 맛보는 존재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검은 승객"은 악마 몰로크가 자신을 복제하여 여기저기 퍼뜨린 악마의 피조물이기도 하다. 


본편에서는 이러한 몰로크 신과 맞닥드린 덱스터 내부의 "검은 승객"이 일시 움츠러든 상황을 에피소드로 엮는다. 몰로크 신의 추종자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덱스터는 다행스럽게도 리타의 아들 코디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다. 이제 코디의 몸 안에도 "검은 승객"이 어엿하게 깃든 것 같다.


원작 2편 부터는 드라마와 내용을 달리하여 전개된다. 드라마에서는 코디가 순진무구한 어린이로 나오다 리타가 살해된 뒤 언급조차 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덱스터의 후계자가 코디인 것처럼 그려진다. 물론, 덱스터 시즌 9 격인 <덱스터 뉴 블러드>에서는 자신의 친아들 헤리슨이 후계자로 나오지만...


드라마 덱스터 시리즈가 완전히 종결된 후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읽었는데 스핀오프 성격으로 스토리나 전개가 딱히 마음에 들진 않는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67156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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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8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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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덕훈)는 5년 전 회사에서 계약직 프리랜서로 일했던 그녀(=인아)를 만났다. 그녀는 소위 '볼매' 였고, '내' 섹스 판타지를 실현 시켜 줄 용의와 능력을 겸비한 '섀도 스트라이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죽고 못 사는 축구의 광 팬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독점 본능에 굴복해 청혼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나'의 청혼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일처제를 원치 않는 부류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키는 대로 술을 먹고 싶어했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주저 없이 잠자리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와 결혼하면 그런 자신의 욕망이 좌절될 것이므로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구슬리는 한편, 일부 조건에 대해서는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물론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결혼을 하면 어느 정도 그런 자유분방함이 사그라들 것이고, 특히 아이라도 생기면 가정적으로 변해 평범한 주부의 외양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전 자신의 의지를 결혼 후에도 관철시켜 나갔고,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를 하다가 어느 날 덜컥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나'와 이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나'와 새로 생긴 남자인 '재경' 모두와 함께 살고자 하며, 만약 함께 살 수 없다면 양쪽 집을 오가며 둘 모두를 남편으로 두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로 저항하던 '나'는, 그러나 아내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 애정인지 모를 어떤 감정 때문에 점차 아내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그녀가 살고자 하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생기면 아내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 오리라던 '아이'가 마침내 둘 사이에 생기지만, 아내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고,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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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라는 괴상한 단어를 가진 가족의 형태가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아내와, '나' 외의 또 다른 '남편'을 떼어내고 그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일부일처제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처절한 싸움이 작가의 해박한 축구 지식과 결합하여 다소 기괴한 소설이 창조 되었다.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보면 일부일처제란 자본주의 사회 제도가 체제를 재생산 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인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정당한 가족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매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발전시켜왔고, 그러한 가족 제도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박현욱은 소설이라는 질료를 가지고 일종의 '시뮬라시옹'을 펼쳐 놓는데, 양식 있는 독자라면 여기에 '도발적인 질문', '재기발랄한 문체' 운운하며 작가의 발칙한 상상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나'는 이제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시뮬라시옹'에 과도하게 몰입한 탓인지 그다지 기꺼운 마음으로 소설을 칭찬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말에 불과한 덕훈이 처한 상황에서 일종의 공포를 느낀다. 사랑하는 여자를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면서도,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 원치 않는 가족 형태를 내면화하는 모습이야 말로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반응은 전혀 작가가 의도한 반응이 아닐 것이다. 


몇 달 간 책을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닌데 독서일기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동안 뭘 했나 따져보니 드라마를 일단 열심히 봤다. <응답하라 1988>, <홈랜드>, <나르코스>, <왕좌의 게임>,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를 매일 같이 보니 시간이 참 잘 갔다. 집에 오면 뭔가 할 일이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좀 더 진지하게 들어보려다 헤드폰과 이어폰을 과도하게 사 들였다.  좋은 장비로 음악을 듣다 보니 뭔가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나만 이런 세상을 몰랐던 것 같은...그러다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음색과 음향을 듣는 느낌이 들어 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책을 읽는다. 직관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멋진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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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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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봐줄 만한 외모에 상위 3%에 속하는 대학을 졸업한 주인공 이라희는 용산 한복판에 위치한 <스포츠 엔터>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월급은 50만원이었는데, 그마저도 회사가 아닌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었다. 첫날엔 의자도 없어 쓰레기통 위에 앉아야 했고 노트북도 빌려 써야 했다. 그러다 차츰 회사의 필요에 의해 책상과 노트북 하나씩을 배정 받은 이라희는 '기자가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기자가 해야 할 일' 이란 별거 없었다. 진위나 깊이와는 무관하게 최대한 인터넷에 많이 표출시키기 위해 쓰레기 문장들을 엮어 기사를 생산하는 일, 신문사를 우습게 보는 소속사 배우를 몇 달이고 지면을 통해 '조지는' 일 따위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언론사 특유의 가부장적 문화를 견뎌내야 했는데, 성희롱은 일상이었고 출퇴근 역시 상급자의 의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다.

집이 망해버린 탓에 혹독한 '굴림'을 어쩔 수 없이 버텨 나가는 이라희의 일상은 처절하다. 하지만 그 보답으로 이라희는 군대와 같은 기자 사회에서 차츰 한 사람의 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재관 부장의 가스라이팅은 계속 되었다.

인턴 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들 즈음, <스포츠 엔터>는 국장과 부장 라인으로 나뉘어 싸움이 벌어진다. 혼란한 와중에 친하게 지내던 연애인이 빗길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죽고, 용산 참사가 일어나 단골 칼국수집 할머니가 사망하는 아픔도 겪는다.

이런 슬픔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라희는 한 사람의 기자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나 하재관 부장은 이라희가 '열정이 없다' 며 인턴 계약 연장을 거부한다.


어느 순간 '기자' 라는 직업군은 '기레기' 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듯 하다. 사실을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지면에 싣고, 이를 통해 대중을 호도하는 행위를 하는 기자를 사람들은 '쓰레기' 라고 지칭함으로써 최대치의 혐오감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소설 속 이라희와 주변 인물들도 '기레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표출 횟수와 클릭 빈도를 높이기 위해 서슴없이 기사를 날조하고, 인간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외면한다. 기껏 준비한 기획 기사를 또 다른 특종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부장을 이라희는 말리지 못 한다.


결국 이라희는 하재관 부장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끝에 기자라는 직업군이 가질 수 있는 힘에 일순 도취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1년이 지나 소모품 취급 당하고 사회로 내팽개쳐 진다. 


작가 이혜린은 인턴 제도가 가지는 부조리함, 언론 지형의 부패와 기자라는 직업군의 문제점 등 시대상을 발랄한 문체로 포착하여 그려낸다. 하지만 '소설쓰기' 기술의 일천함으로 인해 인물과 사건의 연계가 느슨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방식도 다소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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