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조구호 옮김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정신병원에서 나름대로 쾌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손님이 방문한다. 사회에 있을 때 안면을 익힌 플로렌스 반장, 그리고 반장과 함께 온 수녀는 '나'와 대화를 원했다. 그들이 '나'에게 펩시콜라를 제공했기에 '나'는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6년 전, 그러니까 1971년 4월 7일, 산 헤르바시오의 성 라사로 수녀 학교에서 특이한 사건이 일어난다. 열네 살 난 이사벨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홀연히 실종된 것이다. 정문에는 두 마리의 맹견이 지키고 있었고, 담장은 높았기 때문에 소녀 혼자 수녀학교를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녀의 실종은 부모에게 통지됐고,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틀째 되는 날, 여학생이 기숙사에서 발견된다. 소녀는 아침 기상시간에 그녀의 침대에서 발견되는데, 그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방귀깨나 뀌게 생긴 소녀의 부모는 경찰에게 사건에서 손 뗄 것을 요구한다.


자, 그럼 플로렌스 반장과 수녀는 왜 '나'를 찾아왔느냐. 6년이 지난 최근, 그때처럼 소녀가 사라지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반장은 사건을 조용히 조사하고 처리할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내'가 그 일을 처리해준다면 정신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도록 조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흔쾌히 사건을 맡은 '나'는 일단 누나를 찾아간다. 누나는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누나의 환심을 사서 그녀에게 신세 지기로 작정한 터였다. '나'의 아버지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몸으로 퇴역한 뒤 술로 세월을 보내며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습관적인 도벽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터라 누나는 '나'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누나의 뚜쟁이를 자처했고, 누나는 여전히 갈보짓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누나를 찾아간 날 스웨덴 청년 하나가 누나의 손님으로 찾아왔다. '나'는 되도 않는 영어로 뚜쟁이 누나와 그치를 연결시켜 주려 애 쓴 뒤, 건달패들에게서 시계와 볼펜을 훔쳐 여관을 찾아든다. 더럽고 냄새나는 여관에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한 명 찾아오는데, 아까 그 스웨덴 청년이다. 청년은 '내'가 문을 열어주니 다짜고짜 권총을 꺼내들어 '나'를 위협한다. 하지만 청년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곧 죽어버리고, '나'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마약 따위를 발견한다. 잠시 뒤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는 허겁지겁 자리를 떠 누나의 집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누나의 집에 아까 그 스웨덴 청년의 시체가 있고, 경찰이 또다시 급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누나는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만다.


'나'는 수녀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게 생겼다고 생각하여 수녀원의 정원사를 꼬드겨 이름을 하나 얻게 되는데, 메르세데스라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이사벨의 절친이라 했다.

메르세데스를 찾아간 '나'는 그녀로 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6년 전 이사벨이 사라진 날, 메르세데스는 우연히 이사벨의 뒤를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벨은 수녀원 바깥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지하 납골당에 간 것이었는데, 메르세데스는 이사벨이 어떤 남자에게 위협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다급함을 느낀 메르세데스가 남자를 뒤에서 칼로 찔렀는데 그만 사망하고 만다.

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은 뻬라쁠라나가 메르세데스에게 수녀원을 나와 외딴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도록 요구했고, 그 뒤로 유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임을 금방 간파했고, 사실은 이사벨이 남자를 찔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결혼을 앞둔 이사벨이 '나'와 만난 뒤 갑자기 자살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뻬라쁠라나를 미행해 이번에 사라진 여학생의 부모인 치과의사 내외를 만난 '나'는 그들로 부터 뻬라쁠라나가 아이에게 에테르를 맡게 하면서 이틀만 데리고 있다가 학교로 되돌려보내면 모든 빚을 해결해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치과의사 내외는 그 이상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사건의 시발점인 지하 납골당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하지만 미로와 같은 납골당에서 '나'는 길을 잃게 되고, 거기서 뜻밖에도 스웨덴 청년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누나도 발견하지만 곧바로 의식을 잃고 만다.


플로렌스 경위 등에게 발견되어 의식을 되찾은 '나'는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유야무야 되고, '나'의 정신병원 퇴원도 무산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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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인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하지만, 1970년대 스페인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물결을 지켜보며 일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1973년부터 82년까지 뉴욕에 정착한 멘도사는 UN본부에서 통역과 번역 일을 하며 첫 소설인 <사볼따 사건의 진실(75)>을 발표하여 비평상을 수상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발표된 소설이 <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79)>이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자신이 가장 애정을 갖는 작품이 이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피카레스크 소설과 탐정 소설 형식이 결합된 작품으로, <올리브 열매의 미로(82)>, <여자 화장실의 모험(01)>과 함께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3부작을 구성한다.

소설 속 '나'는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꼭 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정신병원 의사의 이름 수그라녜스에다가 적당한 명칭을 덧붙여 대충 둘러댄다. '나'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필요한 것들은 그때그때 조달하며, 정신병자이면서도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일종의 체념을 통해 정신병원이 그다지 나쁘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는데, '정상적인 사회'와 '자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정신병원' 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아리러니하다.


'나'는 결국 수녀원 사건을 해결한다. 여학생들이 사라진 것은 뻬라쁠라나가 이미 살해한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살해된 사람을 자신의 딸과 납골당에서 만나게 한 뒤, 딸이 그 사내에게 핍박받다가 살해한 것처럼 꾸밀 작정이었다. 메르세데스는 우연히 딸애를 따라온 탓에 사건에 휘말려든 것이었고, 사건의 진실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불대는 위험을 막기 위해 뻬라쁠라나는 그녀를 외딴 동네에 유폐시킨 뒤 생계를 지원해온 것이다.

그런데 6년이 흐른 뒤, 또 다른 사내를 살해할 필요가 생겼다. 바로 스웨덴 청년이다. 과거의 사건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수녀원에서 여학생이 사라졌는데, 그 소녀가 바로 치과의사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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