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의 지독한 사랑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의 목록에 오른 책이라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다. 한 때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 했었고, 1001권의 목록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책도 2011년에 사서 고이 모셔두었던 터다. 그리고, 1001권의 목록에 올라있는 책들 중 실망한 두 번째 책이 되었다.(첫번째 실망한 책은 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이었다)


내용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마리 퀴리, 그리고 그녀의 친구이자 조수 블랑슈 비트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두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이야기한 "Amor Omnia Vincit,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라는 말로 시작되며, 작가는 시종일관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그 사랑이야기가 명확하지도 않고 일반적이지도 않지만, 사실관계만 놓고 본다면 다음과 같다.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가 죽고난 뒤,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유부남인  폴 랑주뱅과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나고, 폴 랑주뱅은 마리를 배신하며, 언론은 마리 퀴리를 부도덕한 창녀로 몰아간다.

한편, 블랑슈 비트만은 히스테리 환자이자 영매로 전설적인 신경과 의사 장 마르탱 샤르코의 병원에 입원해 히스테리와 관련된 실연에 참여하며 유명해진 여자다. 샤르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블랑슈 비트만에 대해 경외에 가까운 동경을 품고, 블랑슈 비트만은 그런 샤르코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한 채 애를 태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되는 사랑은 관념과 사변의 세계에서 둥둥 떠다니느라 도무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애틋함도 없다. 게다가 사실관계만 놓고 본다면 그저 한차례 불륜에 불과한 관계였는데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창피만 톡톡히 당했거나(마리 퀴리와 폴 랑주뱅), 이렇다할 정신적 육체적 교감도 없이 마조히즘을 연상시키는 묘한 관계 속에서 십여년 이상을 질질 끌어온 관계(블랑슈 비트만과 샤르코의 관계) 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작가는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 고 중언부언해댄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극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리 퀴리는 배신한 남자와 언론을 피해 도망치고, 블랑슈 비트만은 끝내 사기꾼과 진짜의 모호한 경계에서 배회할 뿐이다. 게다가 소설 속 화자는 가끔 '나' 라고 지칭하며 1인칭 시점을 제시하면서 3인칭 시점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도대체 소설 속 '나' 가 누구란 말인가?-, 역자 임정희는 분명 독일어 전공자인데 스웨덴 소설을 번역해내는 기염을 토하며 전문 번역가라고 프로필에 올려 놓았다.(독일어 번역본을 재번역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문장은 소설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가 있다)


먼저 작가가 얼마나 비맞은 중처럼 웅얼거리는지 보자.


그 당시 샤르코는 알아차려야 했다. '난 절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라는 말의 뜻을. 사랑의 본질은 이런 식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는데도 마리를 구하기 위해 내가 쓴 모든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275p)


곰곰히 읽어봐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샤르코가 죽음을 앞두고 블랑슈 비트만에게 울면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자 블랑슈 비트만이 "난 절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한 뒤 이어지는 문장이다.

첫 문장은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식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정도의 의미인 것 같기는 한데, 알아차려야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또, 뜬금없이 '마리를 구하기 위해 내가 쓴 모든 이야기'는 또 무슨 말인가? (마리 퀴리에 대한 이야기는 몇 페이지를 앞 뒤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더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인가. 도무지 맥락도 없고 이유도 없는 문장들이 300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다.


게다가 역자는 기본적인 한국어 문장 자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함에 분명한데,


금지된 열정과, 죄악의 가장 내밀한 동기이자 위협적인 종착역인 유혹을 창조하는 여자에 대한 경건주의의 고착의 산물인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어린아이들은, 이 순진한 어린아이들은 초원이나 숲 속, 눈밭에 작게 무리지어 누워서 옷을 입은 채로 토끼들이 우글거리며 교배할 때 보인 일상의 경련성 동작들을 따라했다.


해석 불가다. 도대체 꾸미는 대상이 무엇인지 수수께끼를 내는 문장 같다. 결국 꾸역꾸역 끝까지 읽긴 했으나 한숨만 나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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