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수선화 - 창비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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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목마른 계절(1993. 창작과 비평 여름호)


남편과 이혼하고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애 둘을 키우는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 산다. 하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이웃에 사는 유정이 엄마 현순씨는 까페를 운영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내' 아이들 또래인 유정이를 종종 맡아주었고, 그 인연으로 친해진다.

대선이 끝난 광주는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현순씨네 가게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여름은 뜨거웠고, 물이 부족해 제한급수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현순씨네 가게에서 여급으로 일하는 절름발이 '미스 조'의 애인이 자살한다. 애인은 5월항쟁에서 살아남은 시민군이었다. 얼마 뒤 '미스 조'도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아파트 뒷편은 항상 덤프트럭으로 시끄러웠다. 찻소리가 시끄러우니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목소리가 커지니 텔레비전 볼륨도 올라갔다. 소음은, 소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단순한 소리들을 제 주변으로 끌어당겨 이내 소음화시켜버렸다. 현순씨는 역사가 귀신이라고 했다. 마치 소음처럼,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끌고 가버린다 했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했다. 5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o 불탄 자리에 무엇이 돋는가(1994. 문예중앙 가을호)


해희는 짝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지고 술을 마시다 걸려 정학을 맞았다. 할머니네 집에 내려온 해희는 빈둥대며 주변사람들을 관찰한다. 바람난 할머니, 마누라가 도망가버린 점쟁이, 그리고 시민군이었던 남자와 삶이 지운 짐 때문에 힘든 여자를 본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인생의 외로움을 통감한 해희는 다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이 외친다. "오메 오메, 저것이 아직도 술 못 끊었어"


o 그들이 사라진 저쪽(1993. 샘이 깊은 물 9월호)


'나'는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에게는 본부인이 있었다. 아이를 산동네 탁아소 '아기둥지'에 맡기고 방을 구하러 다닌다. 맞춤한 방들은 비싸다. 글쓰는 것은 돈이 별로 되지 않는다.

친구 필순과 운주사에 간다. 필순은 아이를 뗐다고 했다. 남편이 원치 않았다고 한다. 

우연히 희아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차가 없어 애를 먹다 간신히 한 대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희아는 타지 않고 도망가버린다. 필순은 희아의 가방에 약이 있었다고 했다. '아기둥지'에는 '내' 애기만 남아 오지 않는 어미를 그리다 하마 잠이 들었을 것이다.


o 피어라 수선화(1993. 상상 겨울호)


아버지는 큰집 사람들 몰래 논문서를 저당잡혀 도시로 나가 사업을 벌였다. 사업은 실패했고, 병을 얻어 입원한다. 그래서 '나' 영심이가 일곱살 동생 금심이가 다섯살 때 큰집에서 지냈다. 둘이서 불장난을 하다가 큰집을 태워 먹는다. 큰엄마한테 한껏 혼이 난 날 밤, '나'는 몹시도 앓는다. 그날 밤 큰엄마는 '나'에게 '잠밥'을 먹이며 '짠한 것'이라고 안쓰러워 한다.

어른이 된 '나'는 뱃속에 아이를 가졌지만 마음 편히 낳고 키울 처지가 아니다. 옆집은 매일같이 시끄러웠다. 공고생과 배다른 여동생, 그리고 엄마 세 식구였는데 매일같이 상소리를 하면서 싸웠다. 공고생의 담임과 엄마가 좋아지내는 것과, 공고생이 배다른 여동생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공고생이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곧 공고생이 어머니의 정부이자 자신의 담임을 찔러 죽이는 상상에 빠져든다. 

어느 날, '나'는 자살을 기도하지만 옆집 고등학생에 의해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배다른 여동생이 없어져 찾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몸이 회복된 뒤, 칼 다 갈았냐는 '나'의 물음에 공고생은 금속공작 숙제라고 심상하게 대꾸한다. 그리고 또 모자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생명이 움트는 곳에 대해 생각하고,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o 목숨(1992, 창작과 비평 가을호)


시골에서 상경한 혜자는 시다 역할을 하다 경님이 덕에 미싱을 타게 된다. 하지만 유인물을 뿌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줬다가 공장에서 쫓겨난다. 그 뒤로 차장 노릇을 3년 정도 하다가, 차장이 필요없게 되어 직업을 잃고 술집 작부가 된다. 당장 거처할 곳이 필요했었다.

그러다 영등포 쇳공장 노동자 재호를 만나 살림을 차린다. 계속 작부 생활을 하기는 뭐해서 호프집을 차렸다. 하지만 재호는 5월 시민군이었고, 그때의 트라우마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다 혜자 곁을 떠나버린다. 혜자의 뱃속에는 아이가 들어 서 있었다. 재호의 고향에 가보니 거기에 홍이라는 이름의 그의 아이가 있었다.

기진맥진해서 호프집으로 돌아온 혜자가 설저지를 하고 냄비밥을 해서 먹는다. 아이가, 또하나의 목숨이 혜자에게 쓸쓸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 혜자에게는 아이가 두 명이었다. 홍이와 홍이 동생이었다. 꿈속에서 혜자는 행복했다.


o 우리 생애의 꽃(1994. 문학사상 5월호)


남편은 순직했고, 쥐꼬리만한 공무원 연금은 살림에 별 보탬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 갔다 와서 '내'가 없으면 밥을 안 먹는 것으로 엄마의 부재를 규탄했다.

어느 날, 아파트 앞 채전에서 방뇨를 하다가 수자씨를 만난다. 수자씨는 젖가슴이 크고 예뻤다. 수자씨는 그 젖가슴을 앞세워 남강민물매운탕집에서 남자들을 후렸다. '나'는 그런 수자씨를 보며 응원을 보내는 바였다. 어느 날, 수자씨가 꼬드겨 카바레를 갔으나 남자를 후리지 못한다. 택시기사를 꼬셔 까페에서 술을 먹은 다음 날, 둘은 택시기사가 토큰 하나 남김 없이 싹 쓸어갔음을 깨닫는다. 수자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강민물매운탕집에 가면 다시 남자를 후릴 수 있을 것이라 외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리고 '나'는 감시 우리 생애의 꽃이라고 이름 붙여버렸던 내 허술한 반란의 나날들이 참혹하게 무릎 꿇는 것을 본다.


o 흰 달(1993. 실천문학 겨울호)


순(純)의 남편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다며 아이를 데리고 시골집으로 와버렸다. 남편은 시민군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창녀와 사이에 낳은 자식이 하나 있었다. 나는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젊을 적 밖으로만 나돌며 바람을 피우다 술집 작부에게서 아이를 하나 얻었다. 간에 몹쓸 병이 걸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이제 하냥 죽을 날 받아놓은 것 처럼 사위어 가고 있었다. 배다른 동생 호길이는 눈치가 있었지만 아홉살 어린애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호길이가 가여우면서도 싫은 소리를 내지르고 후회하곤 했다. 

남편과 살던 집에 찾아갔다가 되돌아오던 길에 버스가 고장 나 '나'는 시골길을 걸어오며 아버지, 남편, 호길이, 누리, 그리고 남편과 창녀 사이에서 낳았다던 아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길이 이렇듯 밝은 것이 달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동쪽 하늘을 보니 아버지 집 지붕위로 아버지의 흰 저고리가 사뿐 내려앉고 있었고, 흰 달 같은 혼백 하나가 막 흰 저고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o 목포는 항구다(1994. 월간 예향 8월호)


비닐구두를 신고 고향을 찾아가려는 여자, 그리고 우연히 여자를 만나 술을 산 남자가 여관에서 밤을 보낸다. 여관 주인의 딸은 벙어리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벙어리 아가씨가 매일 듣는 노래는 '목포는 항구다' 였다. 고향으로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또는 갔지만 고향이 없어져버린, 이들이 여관에 머물렀던 시기에 동백꽃이 진다. 


o 씨앗불(1991. 창작과 비평 겨울호)


5월 항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시민군 출신인 그들은 갖가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함께 싸우다 총탄에 맞아 숨진 동료들의 기억, 계엄군에게 끌려가 죽도록 얻어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 감옥에 갖혀 뭉텅 잘려나간 청춘. 그들은 현재의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보상은 커녕 제대로된 평가마저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분신자살하는 동료의 소식을 들으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의준 역시 그런 고통 속에서 아내 진예의 속을 썩이기 일쑤였다.

살아남은 자들끼리의 대책 회의도 다툼이 일어나 의견이 갈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날, 의준은 미군과 함께가던 양공주와 싸움이 붙어 경찰서에 끌려가고, 돈으로 합의를 본다는 말에 '살아내는 방법은 오직 몸 하나로 부딪치고, 싸우고, 때우고, 굴리고, 개기는 것 그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밤이 이슥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준은 각목으로 테러를 당하고, 아내는 또 한차례 울음을 쏟아낸다. 하지만 위준은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오일팔 귀신들이 씨앗불로 남아 이글대고 있음을, 그 씨앗불의 힘으로 앞으로 살아갈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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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책을 사가지고 집에 간 날, 작은형이 작가에 대해 알은 척을 했다. 같은 과 선배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해 뭐라 했는데, 지금 얼핏 기억 하기론 '강단 있는 분'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책날개에 나온 작가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는지, 책은 읽혀지지 않았다. 그때만해도 '먼 데 있는 무당이 용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으므로, 가족이 알고 있는 작가의 소설은 대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물론 이 생각은 나중에 작가의 단편 '타관 사람'을 읽고 깨진다. 나는 그 소설이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주 월요일에 헤지 펀드 운용사 실사를 위해 뉴욕과 시카고에 가게 되었다. 내 업무도 아니었고 내 순번도 아니었는데, 대타로 이름이 올라 출장명단에 든 것이었다. Morgan Stanley, UBS 그리고 Mesirow와 같이 자본주의 첨병인 그 회사들을 방문하기 전, 나는 비행기 속에서 예방접종을 맞는 기분으로 읽을만한 소설을 책꽂이에서 찾다 <피어라 수선화>를 발견했다. 비행기에서 읽는 내내 나는 내 선택이 훌륭했다는 것과, 곧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을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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