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가 있는 사막
해이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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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몽구 형의 한 계절


'내'가 학보사 공모전에서 수필로 가작을 수상하자, 아버지가 '나'를 경기도 삼주에 위치한 오두막으로 데려간다. 거기에는 신춘문예로 등당했지만, 지금은 무위도식하는 몽구형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몽구형을 쫓아다니는 죽부인은 얼굴도 예쁘고 경제력도 있었지만, 몽구형은 도무지 죽부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몽구형이 오로지 하는 여자는 마리아 수녀님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밥을 먹다 더 들라고 권하자, 몽구형이 돌연 "子曰 君子食無求飽하고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라 했습니다" 라고 말을 꺼낸다. 이에 아버지가 "옳거니,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라며 논어 학이(學而)편을 인용하여 주거니 받거니 한다. '나'는 깜빡 잠이 들었는데 잠시 후 들려온 아버지의 대화는 이랬다.

"야, 짜샤, 너 벌써 이 짓거리 몇 년째냐. 너 올해는 뭔 일이 있더라도 꼭 쇼부를 봐야 해. 그 동안 썼던 거 잘 오사마리해가지고 문단에 카운터 완빤치 한 방 멕이는 거야. 너 인마 이대로 야코 죽으면 네 인생의 후까시는 그야말로 뽕빨나는 거다..."


o 돌베개 위의 나날


한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뾰족한 호구지책이 없어 '나'는 아내와 호주 시드니로 떠나왔다. 아내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한은 호주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고, 졸업 후에 직장을 잡게 되면 시민권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뒷바라지를 위해 '나'는 백선배를 따라 청소 일을 다닌다.

청소업계는 한국인들끼리 단가 경쟁을 하다보니 품삯이 박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빨리 처리해야 일감이 떨어졌기에, '나'는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막힌 변기에서 여자 생리대를 끄집어내기까지 한다.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최씨를 따라 공장 청소에 따라 나선다. 하지만 최씨가 두 달치 임금을 떼먹고 사라져 버린다. 아내 등록금이었다.

아버지 유산이 있다는 호언장담은 흰소리였고, 백선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최씨만 찾아내면 요절을 내서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는 '나'에게 백선배가 최씨는 진즉에 '불자(불법체류자)'로 잡혀들어갔다 했다. 그리고 자신도 사실은 '불자'였다면서 선물로 제라늄 씨앗을 건낸다.


o 캥거루가 있는 사막


호주의 사막을 여행하던 '내'가 코바야시 이사오라는 일본인을 만난다. 사막을 관통해 에어스록에 오르던 날, 코바는 자살을 시도한다. '내'가 가까스로 코바를 구해낸다. 킹스 캐니언을 마지막으로 '나'와 코바는 헤어진다. 코바는 사막 도시들을 여행한 뒤, 다시 사막으로 거슬러 올라가겠다고 했다.

마그네틱 섬에서 일본에서 온 여인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을 우미코라고 소개했다. 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것처럼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둘은 몸을 섞게 되고, 각자의 비밀을 적어 유리병에 넣기로 한다. '나'는 동성동본이며, '나'의 아기를 뱃속에 키우고 있는 아영이를 떠올린다. '나'는 이상한 충동에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유리병을 다시 파가지고 길을 떠난다. 유리병 속에 적힌 것을 읽어보고 '나'는 코바야시와 우미코는 친남매지간이었고, 서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출악어기>는 한문선생을 1년 가량 하다가 역마살 때문에 트럭 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악어'라고 불리는 '나'에게 어려운 문자를 써가며 매일같이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다. 어느 날 범종 아홉번을 치고 아버지가 거창하게 길을 떠난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사실 한문선생과 함께 자취를 했을 뿐이고 떠나는 곳도 둘째부인 집이었다.


<우리 전통 무용단>은 시드니에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는 '나'와 우리 역사의 어두운 한 시기에 남편을 잃은 할머니들이 며칠 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이다. 할머니들이 추는 춤이 '나'는 창피했지만, 외국인들은 그것을 한국의 전통 무용이라 생각하며 신기해 한다.


<어느 서늘한 하오의 빈집털이>는 우울증 아내와 이혼한 선배가 아내가 없는 틈을 타 자신의 물건을 오토매틱 밴에 싹쓸이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보물 1호를 남기고 오는 바람에 전부인에게 현재의 애인이 사준 모바일폰으로 전화를 걸어 애걸복걸한다.


<관수와 우유>는 소심한 관수와, 그의 우유를 빼앗아 먹은 택기, 그리고 택기의 지나친 행동을 제지하다가 싸움을 벌인 '나'의 이야기이다. 택기가 다른 반에서 응원군을 데려오고, '나'의 반에 3년 꿇은 '또자형'이 가세하여 싸움은 더 커지고, 급기야 교련선생과 국어선생이 소주를 까다가 소란을 듣고 달려온다. 하지만 싸움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 누구도 하지 않고, 관수는 자신의 '인내심 없음'을 자책한다.


<환원기>는 벽천의 문원에 들었다가 성급한 맘에 글도둑질로 등단하는 성진의 이야기이다. 줄탁지기(啄之機)를 모티프로 쓰여진 글이다.

알 속의 병아리가 충분히 발육하여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자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어미닭이 부리로 껍질을 깨드려 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히 미묘해서 닭과 병아리가 서로 쪼는 곳이 다르면 병아리는 세상 구경을 못 하게 된다. 또한, 병아리가 알 속에서 성숙하기도 전에 성급한 어미닭이 알을 먼저 깨거나, 부화기를 맞은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데 밖에서 어미가 응답하지 않아도 병아리는 숨이 막혀 죽고 만다. 선학(禪學)에서는, '참선자가 개오(開悟)의 경지에 도달할 때'를 사승(師僧)이 알아 그 깨달음의 길잡이 노릇을 해낼 수 있는 솜씨를 가르켜 '줄탁지기(啄之機)' 라 한다.

해이수 소설의 구조는 일견 순박하다. 그는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하여 이야기를 엮어 간다.

<몽구 형의 한 계절>에서의 몽구 형과 아버지, <출악어기>의 아버지는 어려운 한자를 써가며 식자연 하지만 사실은 주워들은 것들이라 깊이가 없고, 그들의 실제 모습 역시 속물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이 속물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하여 생활력 있고 예쁜 죽부인을 멀리하거나, 한자선생이 남기고 간 노트를 달달 외우고 범종을 쳐가며 온간 젠 체를 다한다. 사실은 수녀님 궁둥이를 훔쳐보거나, 생활력 있는 때밀이 출신 셋부인을 두고 있는 처지이면서.

이러한 모습은 <돌베개 위의 나날>과 <어느 서늘한 하오의 빈집털이>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는 '선배'가 등장하는데, 온갖 약은 척은 다하지만 사실은 '나'에게 까지 사기를 치고 '불자'로 고발당해 시드니에서 쫓겨 나거나, 우울증 걸린 아내를 속이고 바람을 피웠다가 걸리자 도리어 이혼을 한 뒤 집을 싹쓸이해 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세상 사는 약은 요령을 알려주지만, 사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 실상이다.

<우리 전통 무용단>와 <캥거루가 있는 사막>은 다소 작위적이다. <관수와 우유>에서는 공지영과 같은 태도가(작가 해이수는 소설 속 '나'와 같은 관찰자를 소설가라고 생각했겠지만 정말 그럴까?) 엿보이고, <환원기>는 얼핏 이외수의 <들개>를 떠올리게 한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 동양고전과 서양고전을 읽는 행위나, 폐교에 스스로를 유폐시켜 글을 쓰는 행위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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