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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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겐토의 아버지 고가 세이지가 지하철역에서 쓰러져 사망한다. 사인은 '흉부 대동맥류 파열'이었다. 겐토는 아버지가 생전에 연구자금 부족에 허덕였고, 사교성이 떨어졌으며, 약간 좀스러웠음을 떠올린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은 빛이 난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달라 보였다. 

가까운 친지들과 지인들을 모시고 장례식을 치룬 뒤, 일상생활로 돌아간 겐토는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보낸 메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아버지가 메일을 보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메일을 보낸 날짜가 아버지가 이미 사망한 뒤였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아이스바로 더러워진 책을 펴라'는 메일 내용에 따라, 어렸을 적 겐토가 더럽힌 아버지의 책을 펴니 거기에는 또 다른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검은색 소형 노트북과 500만엔이 든 현금카드를 가지고 도쿄의 한 아파트로 가라는 것, 그리고 모든 통신 수단은 도청된다고 간주할 것. 겐토가 도쿄의 아파트로 가보니 그곳은 실험실로 꾸며져 있었고, 마지막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흰색 노트북에 연구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들어 있으니 2월 28일까지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여 미국인이 방문하면 거네주라는 것이었다.


한편, 조너선 '호크' 예거는 민간 경호 업체 웨스턴 실드 社에 소속된 용병으로 이라크에서 목숨을 걸고 돈을 벌고 있었다. 미군이 사망하면 여론이 들끓었지만 민간 경호 업체 직원의 사망에 대해서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응당 미군이 해야할 일들을 민간 경호 업체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조너선 역시 원래는 특수부대원이었다. 하지만 아들 저스틴의 병원비를 대기에는 급여수준이 맞지 않았다. 저스틴은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사경을 헤메고 있었고 치료비 역시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리디아가 조너선에게 전화를 걸어와 저스틴의 용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아들의 살 날은 기껏해야 한 달 남짓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조너선에게 한달에 4만 5천 달러의 급여가 지급되는 특수임무 제안이 들어온다. 임무의 내용은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신종 전염병에 감염된 것으로 판단되는 일단의 부족, 그리고 그 부족과 접촉한 미국인을 사살하는 것.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또 다른 임무는 '신종 생명체로 보이는 것과 조우하는 즉시 죽일 것' 이었다.


일본과 아프리카 콩고를 잇는 연결점이 과연 무엇이기에, 전혀 다른 이 두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일까? 혹시 겐토가 합성하려는 화합물이 저스틴이 걸린 '폐포 상피 경화증'의 특효약은 아닐까? 하지만 전혀 다른 대륙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조우하게 된다는 말일까. 그리고 '신종 생명체'라는 것은 무엇이기에 보이는 즉시 사살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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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라는 말은 인종, 이념, 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살해하여 절멸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 단어를 처음 본 게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Black Sabbath의 Dehumanizer 앨범에 수록된 Computer God이라는 노래에서 Ronnie James Dio가 마침표를 쎄게 찍듯이 발음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는 아직 냉전시대였기 때문이었겠지만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핵전쟁 시에 사망자를 세는 단위인 Megadeath의 철자를 살짝 변형시킨 Megadeth가 매우 인기있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가사들이 뭐가 멋지다고 연습장에 쓰고 외웠는지 헛웃음이 나온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용기 있는 발언들을 쏟아낸다. 중국 난징에서 자행되었던 대학살, 한반도 식민지배 중 자행 되었던 잔인한 행위들, 관동 대지진의 희생양으로 학살당한 조선인들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인간은 스스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종족인가?


가끔씩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이 모든 것이 최고로 발달된 '마지막'이라는 착각을 한다. 헤겔조차 그러한 오류에 빠졌으니, 필부인 우리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체제가 가장 완벽한 체제가 아닐 것이고, 인간이 진화된 최종 단계의 생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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