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야 삼촌
윤정모 지음 / 다리미디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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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동생이 '휴가를 가야하니 아버지를 맡기겠다'고 통보한 뒤 '나'의 집 앞에 삼촌을 세워 두고 도망 가버렸다. 삼촌은 이제 겨우 오십줄이었는데 머리에는 온통 서리가 내렸고 기억 상실을 동반한 치매끼도 있었다. 4수생 아들 은수와 감옥에 있는 남편 만으로도 우울한 내 생활에 치매에 걸린 삼촌까지 끼어들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삼촌을 데리고 놀이터로 간다. 갑자기 삼촌이 눈을 까뒤집더니 '나'에게 "와 무섭다고 하지 않노?" 라고 묻는다. 모래밭으로 데리고 갔더니 자갈을 골라 주며 '먹어보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치매 노인 노릇을 시작할 참인가 싶어 울상 짓던 '나'는 문득 과거의 기억 한 자락을 떠올린다. 눈을 까뒤집어 보이며 '나'를 웃겨 보려던 삼촌, 땅콩을 골라주던 삼촌. 그렇다. 삼촌은 지금 열 다섯 소년 때로 돌아간 것이다. 엄마와 헤어져 외갓집에 맡겨졌던 어린 '나'를 부모처럼 보살펴 주던 그때의 삼촌으로.


전쟁이 터졌을 때 '나'의 엄마는 스물 셋이었다. 아버지는 나팔장이였다. 읍내에 들어와 공연하던 아버지 모습을 본 엄마가 첫 눈에 반해 쫓아다녀 둘은 결혼했다. 피난 도중 아버지가 군에 차출 당하고, '나'와 엄마만 외갓집으로 향한다. 도중에 우방군의 오폭으로 기차가 폭파되고, '나'와 엄마는 한참을 걷다가 곰박사니 때문에 온 몸을 긁게 된다. 마침 발견한 냇가에서 목욕을 하는데, 군인들이 엄마를 발견하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나'는 큰 뒤에야 엄마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된다.

외갓집에 '나'를 맡기고 엄마는 아버지를 찾는다며 집을 나가버린다. '나'를 돌보아준 사람은 인보 삼촌과 인구 삼촌이었다. 인구 삼촌이 지금 치매를 앓고 있는 꾸야 삼촌이다.


보야 삼촌과 꾸야 삼촌은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다. 특히 꾸야 삼촌이 그랬다. 꾸야 삼촌은 매일 울기만 하는 '나'를 위해 토끼를 잡아 주었고, 익살스러운 짓으로 웃음 짓게 만들었다. 전선이 밀려 내려와 외갓집도 위태로와 졌을 때, 식구들은 경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때 꾸야 삼촌은 함께 피난갈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길잡이 시킨다고 꼴을 베던 꾸야 삼촌을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꾸야 삼촌이 뒤꼍에서 달려나왔다. 꾸야 삼촌은 우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뒤꼍 벽에 세워진 멍석에 몸을 말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꾸야 삼촌은 우리들이 피난 가 있는 동안 군인들을 따라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당시 꾸야 삼촌이 많은 시체들을 보았고, 그 시체들 속에는 꾸야 삼촌의 친구와 '나'에게 잡아다 준 토끼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꾸야 삼촌은 군인들을 무서워 했다.


외갓집인 나우리로 어느 날 엄마의 편지가 날아 들고 '나'는 삼촌과 함께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의사인 새아버지와 재혼을 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과거의 그 사건 때문인지 아이를 갖지 못했다. 외갓집에서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잊혀져간다.

다시 삼촌을 만난 것은 삼촌이 군기피자가 되어 서울로 도망왔을 때였다. 삼촌은 과거의 사건 때문에 군에 가느니 차라리 잡혀가겠다며 무서워했다. 새아버지가 빽을 써서 편하다는 카투사에 넣어 주었는데, 얼마 뒤 엄마에게 '누님 살려달라' 는 편지가 와서 다시 일반 군대로 옮겨준다.

제대하던 날 기찻간에서 여자를 만난 삼촌은 그 여자와 결혼한다.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새아버지의 권유로 오토바이를 타고 의약품 배달하는 일을 얻었는데 1년만에 사고가 나서 그만 두게 된다. 그 뒤로 삼촌은 차만 보면 무서워했다.

숙모가 임신하자 삼촌은 어떻게든 돈벌이를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전화 가설 브로커 노릇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화국장이던 친구 아버지가 갑자기 파면 당하자 '와이로'를 썼던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징역을 살게 된다. 그 뒤로 삼촌은 빈둥거렸고, 숙모는 집을 나가버린다. 당시 새아버지도 모르핀을 복용하다 수사가 좁혀오자 자살해버린 참이었으므로 두 집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삼촌 집에 찾아갔다가 삼촌이 아이들과 농약을 먹으려는 걸 간신히 말려놓은 '나'는 '나'라도 돈을 벌어야 했기에 장당 50원짜리 번역일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삼촌네 막내 동우가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동우에게 보상금이 조금 들어오자 숙모가 집으로 들어와 살림을 다시 합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는 보상금까지 챙겨서 야반도주한다.

삼촌은 낙심하다가 대구에 지방 공무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군인과 민간인의 교통사고에 휘말렸다가 수배가 된 삼촌은 또 다시 우리집으로 도망을 와 숨어 살았다.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서거할 즈음, 삼촌은 기소 중지가 된다. 찬우 대학 등록금이라도 벌 요량으로 삼촌은 포장마차를 시작한다. 엄마는 삼촌을 지극정성을 돕는다.

82년에는 좋은 일 두 가지와 슬픈 일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좋은 일은 찬우가 대학에 합격한 일과, '나'와 남편의 사업이 빛을 보게 된 일이다. 국가원수의 기록물을 취급하게 된 남편의 출판사는 날로 번창하게 된다. 

슬픈 일 두가지는 할머니와 숙모의 죽음이다. 숙모의 장례식장에 간 우리는 숙모가 중앙부처의 고위공직자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숙모의 새 식구들은 찬우와 동우가 숙모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것에 고인에 대한 예의라면서. '나'는 진짜 예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분노한다. 하지만 삼촌은 혼자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며 숙모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남편 출판사에서 잠깐 일을 맡아보던 삼촌은 어느 날부터 설사병이 났다며 출근을 안하더니 얼마 뒤 대학 수위가 되어 나타난다. 찬우가 다니는 대학교의 수위였다. 84년에 찬우가 학내 시위 도중 끌려간다. 남편이 빽을 써서 찬우를 빼내 주지만 86년도에 찬우가 집에 오더니 '살인마를 옹호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얼마 뒤 강도가 들었는데 '나'는 그것이 찬우 짓임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출판사의 호황과 '나'의 안락한 생활은 94년 즈음에 끝이 난다. 남편은 유력한 인사를 만나 위성방송사업을 계획했고, 출판사는 내가 경영하게 된다. 남편은 자본금을 끌어대며 사업을 구체화 시켰고, 나는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동독 작가를 만나 작품을 계약하는 등 야심차게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IMF가 터지고, 사업은 부도가 나고 만다. '나'와 남편 명의의 재산은 모두 차압을 당했고, 그러고도 빚갈이가 안 되어  남편은 구속된다. 그 때 엄마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내준다.


그런 생각들 끝에 설움이 북받힌 '나'는 삼촌 앞에서 엉엉 운다. 삼촌이 그 옛날 어렸을 적의 '나'를 달랠 때처럼 토닥여 준다. '나'는 부엉이가 정말 사람 눈을 빼먹는지, 피난 갔다 와서 없어진 토끼를 삼촌이 잡아 먹었는지... 그런 것들을 어린아이처럼 삼촌에게 묻는다.


이제, 어머니도 삼촌도 '나'의 곁에 없다.

동독에서 들었던 얘기인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들이 동독 여성을 강간하자 그녀들이 고발을 했다고 한다. 강간을 한 소련군들은 붙잡혀 총살을 당한다. 서독에서도 미군들이 강간을 했는데, 서독 여성들은 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이한 사실은 동독 여성들은 그 뒤로 오래도록 정신병에 시달렸는데 서독 여성들은 그럭저럭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삶의 모든 부분에 천착하는 복잡 미묘한 여성 심리 때문일까? 확실한 대답은 알 수가 없다. 엄마도 전쟁 중에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 뒤로 엄마는 나, 삼촌, 그리고 손자인 은수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아붓는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삶의 목적인 듯이.

삼촌은 지난 3월 위암으로 죽었다. 숙모도 위암이었다. 한평생 착하게만 살았던, 하지만 너무나 재수가 없었던 삼촌이 숙모를 만나 행복하길 빈다.


2~3개월 가량 눈이 너무 아파서 독서를 별로 못했는데, 그 때 궁여지책으로 <라디오 문학관> 같은 옛날 프로그램을 들었다. <꾸야 삼촌>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책의 초반부를 성우들이 조금 낭독하고 뒷부분은 작가가 나와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는데 못내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 결국 책을 사서 보게 된 것이다. 송기숙의 <암태도>, 최수철의 <고래뱃속에서>, 그리고 <꾸야 삼촌>을 당시에 들었는데 앞의 두 책은 절판이어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윤정모의 소설은 97~8년 즈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 <고삐>였던 것 같다. 너무 교조적인 느낌을 받아 그 뒤로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꾸야 삼촌>은 그때의 윤정모와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아주 잘 쓰인 소설은 아니지만 가볍게 읽히는 소설도 아니고,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대목이 많은 소설이다. '우리 부모가 저렇게 살았던 것을 '내'가 봤었지'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라디오에서 듣기로 <꾸야 삼촌>에서 작가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로 또 어떤 작품 활동의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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