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은 리투아니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헬렌 킴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헬렌 킴의 모델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짐작은 <작가의 말>에서 확인 된다. 작가는 그 사람과 소설 속 인물을 혼동해선 안된다고 주의를 주지만, 사실 그 주의 때문에 독자는 짐작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주의'의 진의가 의심된다.


헬렌 킴이 초등학생이고, 화자가 재수생일 때 둘은 처음 만나게 된다. 만나게 되었다고 표현했지만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화자가 헬렌 킴을 지켜봤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부산 부민동 골목길에서 헬렌 킴은 눈에 띄였다. '금발의 제니'를 연상 시키는 외모에 한국말, 그것도 부산 사투리를 구사했으니 매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헬렌 킴이 한국아이들과 놀다가 심한 모욕을 받게 된다. '미국년'이니, '아이노꼬(튀기)'니 하는 말이 오간다. 헬렌 킴은 자신이 한국인이 맞다고 항변하면서도 당황한다. 그 모든 장면을 뒤에서 말없이 지켜본 사람이 둘이 있었으니 화자와, 헬렌 킴의 아버지이다. 헬렌 킴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교육시키고 화자와 인연은 그것으로 그만인 듯 했따. 


둘이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10년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 남자들>이라는 연극을 통해서였다. 화자는 극단의 총무를 하고 있었는데 헬렌 킴이 음악을 맡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리투아니아 인이므로 잘해 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 뒤 화자와 헬렌 킴은 연극, 뮤지컬 등을 매개로 마치 오누이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둘은 마치 근친의 기억을 간직한 남매와 같았고, 주위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 같았다. 


헬렌 킴은 한국인과 한 번 결혼하지만 이혼하고, 화자 역시 이혼 전력이 있는 여배우와 결혼했다가 파국을 맞는다. 둘 사이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인연이 계속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조우했을 때는 함께 '길거리 대학' 강좌를 듣는답시고 뮤지컬을 연구하기도 한다. 후에 한국에서 육체관계를 맺게 되고, '근친의 추억'을 형질전환시키고 싶어하는 화자와 그러고 싶지 않은 헬렌 킴의 욕망이 상충되어 헤어지게 된다. 근 30년간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난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몰락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라고 해야할까. 소설은 치졸하고, 유치하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주인공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과 대화하다 살의를 느끼는 대목이 나온다. 이문열의 전 생애가 어쩌면 '독학자의 자격지심', '左에는 끼기 싫고 右에는 끼고 싶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등의 점철이 아니었나 싶다. 

'홍위군 운운'과 '임화의 딸이 양공주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풍문'을 굳이 써내려가는 대목은 치졸했고, 예술을 만드는 자와 주입당하는 자의 이분법은 이문열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이문열은 결국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건가. 그래서 이토록 소설이 중언부언인건가. 민망하고 민망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67078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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