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한겨울, 20년간의 옥살이를 마친 황바우가 교도소 문을 나선다. 검사와 판사가 빨갱이에 부역하고 사람을 죽인 죄라 했으므로 황바우는 그런 줄로만 알고 20년의 형기를 채웠다. 그나마 처음엔 사형이었으나 무기로 감형된 후 4.19. 덕분에 출소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60이 다 된 황바우는 누구를 찾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얼마 후 전라남도 문창에서 양달수라는 부유한 양조업자가 온몸을 난자당한채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관할 지서 주임이었던 오병호는 사건에 책임을 지고 대기 발령 상태가 되어 문창경찰서에서 하릴 없이 지내게 된다.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지만 조용한 삶을 원해 문창으로 내려온 오병호는 아내가 죽은 후 더욱 외곬으로 홀로 있기를 원했으므로 대기발령 상태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문창경찰서장은 오병호가 아까운 인재임을 알아보고 그에게 대기 발령 기간 동안 수사비나 출퇴근에 구애됨이 없이 독자적인 수사를 해보라고 권한다. 

도경은 양달수가 살해 당시 함께 있었던 양조장 일꾼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여 닦달해대고 있었는데 오병호는 그들이 엉뚱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보고 양달수의 주변과 과거를 조사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아낸 바는 다음과 같다. 
양달수는 20여년 전 문창에 양조장을 개업하면서 고향에는 발을 끊었다. 본처와 세 아들은 고향에 버려두고 손지혜라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살았는데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 양달수가 죽자 본처와 일가붙이들이 몰려와 손지혜를 쫓아내고 양조장을 비롯한 재산을 오롯이 차지하였다. 손지혜와 딸은 겨우 몸만 빼내 서울로 쫓겨간다.

양달수가 어떻게 젊고 예쁜 손지혜와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내밀한 얘기가 있었다. 
동경 유학 후 조선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거물급 사회주의자 손석진은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리자 무장세력을 규합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벌인다. 동경 유학 중 만난 후배 강만호, 그리고 자신의 딸 손지혜를 비롯한 10여명 남짓한 규모였다. 초기에는 군율이 비교적 잘 지켜졌으나 손석진을 껄끄러워 한 북로당이 손석진을 반동분자로 몰아 처형하자 강만호가 대장직을 물려받게 되었고 그 후로 기강이 문란해진다. 이 즈음 부역을 시키기 위해 마을에서 끌고온 자가 황바우와 한동주였다. 황바우는 그저 순박하기만 한 사람이었으나 한동주는 달랐다. 그는 공산주의에 찬동하였기에 적극 동조, 가담했던 것이다. 
군율이 땅에 떨어진 빨치산 부대에서 유일한 여자인 손지혜는 누구의 씨인지 모를 아이를 베고 있었다. 게다가 빨치산들이 그녀를 윤간하기 시작하자 강만호는 자수를 결심한다. 친구 조익현을 통해 청년당장을 접촉하여 자수하면 살 수 있는지를 타진했는데, 이 때의 청년단장이 바로 양달수이다. 
하지만 자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수할 의사를 나타내면 쏘아 죽여도 무방하다는 내부 규율 때문에 빨치산들을 자수시키기는 요원한 일이었고 손지혜와 황바우만이라도 자수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강만호가 데리고 간 청년단과 국군에 포위된 빨치산들은 예상대로 결사항전하였고 모두 사살 당한다. 황바우는 손지혜와 빠져나오다가 한동주가 방해하자 그를 칼로 찌르고 가까스로 자수에 성공한다.

황바우와 손지혜는 단순 가담으로 처리되어 곧 풀려나고 살림을 차린다. 황바우는 누구의 씨인지 모를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기른다. 그 아들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강만호의 아이였다. 손석진이 몰래 숨겨 두었던 재산까지 찾은 그들이 이제 행복을 만끽하려 할 때, 황바우가 뜬금 없이 살인죄로 잡혀 들어간다. 한동주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황바우가 빨치산에 적극 부역한 죄가 밝혀질까 두려워 한동주를 살해한 것으로 몰아가 사형을 구형한다. 손지혜는 청년단장 양달수를 통해 구명운동을 펼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양달수는 손지혜와 그녀가 가진 막대한 재산을 탐해 죽지도 않은 한동주를 죽었다고 한 후 황바우를 사형에 처해지도록 손을 쓴 것이었다. 

과거사를 파해치던 오병호 형사는 한동주가 살아 있다는 증언을 토대로 수사를 해나가다 한동주의 동생을 정당 방위로 살해하고 만다. 이제 도리어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 오병호 형사는 손지혜의 아들이 범인일 것이라는 예감을 부여잡고 친구인 엄기자와 함께 수사를 계속해 나간다. 
마침내 범인인 손지혜의 아들을 잡았지만 그는 이미 정신병에 걸린 뒤끝이었다. 한동주의 강한 암시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질렀기에 처벌할 수는 없었다. 황바우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범행이라는 유서를 남긴 후 자살하고, 손지혜 역시 사망한다. 
오병호 형사는 진실은 밝혀 냈지만 모두를 희생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권총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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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 수상 작품으로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과 사회의 부조리를 음울한 어조로 그려낸 소설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 비춰본다면 반공 일색으로 흐르지 않고 비교적 휴머니즘적인 견지에서 소설을 끌어나가려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소설 속에서 검찰, 법원, 교도소 등 거의 모든 정부 기관은 부정으로 얼룩져 있어 지위가 높을수록 큰 사기를 치고, 말단 관리들은 소위 '와이로'가 아니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사회 정의를 위해 애쓰는 기관은 언론으로 상정되어 있으나 이마저도 대재벌이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한 상황이라 이제 사회 정의는 오병호 형사와 같은 개인적인 결단 외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오병호 형사는 자신이 진실은 밝혀 냈지만 그들의 행복은 앗아갔다는 죄책감에 자살하고 만다.
긴호흡으로 사회 부조리를 을씨년스럽게 엮어가는 <최후의 증인>은 1980년 이두용 감독, 하명중(오병호), 정윤희(손지혜), 황바우(최불암)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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